제갈량 평전
여명협 지음, 신원봉 옮김 / 지훈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삼국지를 보면 유비가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중학교 시절 삼국지를 읽으며 책을 읽으며 밤을 지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삼국지를 많이 읽었던 것 같다. 보고 또 보고하면서, 내재된 촉한 정통론을 보지 못하고, 유비 세력이 아군 세력이고 조조의 세력이 적군의 세력이라는 이분법적인 판단으로, 책을 봤었다. 당시 유비 측의 오호대장군이라 일컫는 장군들과 제갈량의 모습은 나에겐 우상이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먹고 성인이 되어 본 삼국지는 달랐다. 어느 정도 현실화된 나에게 있어서 영웅의 가치는 조조 쪽으로 많이 기울었고, 일반적으로 악평을 했던 조조의 이면에는 그의 뛰어난 모습이 담아져 있었으며, 역사의 시각이라는 부분을 생각한다면 유비나 조조 어느 한 쪽을 지지할 순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조조는 삼국지의 숱한 군웅들을 이겨오면서, 성장했던 세력이고 유비는 그런 조조에게 항상 밀렸다는 것이다.

 

나는 소설이 아닌 실제 역사 삼국지를 보자면 전반부를 장식하는 영웅은 조조라고 생각하고 후반부를 장식하는 영웅은 제갈량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제갈량 사후 삼국지는 재미가 많이 없었으며, 사마의의 비범함을 제지할 상대가 없어서 다소 삼국지의 재미가 떨어졌었다. 사실 제갈량에 대해서 우리는 많이 알고 있고 무용담을 많이 알고 있지만, 그것은 80%가 거짓말이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사에 나온 제갈량은 비바람을 몰아치는 신선의 풍모도 없었으며, 주유와 지모 싸움을 하지도 않았고, 더불어 사마의의 군대를 성문을 열고 모략으로 퇴각시키지도 않았다.

 

나는 역사적인 제갈량의 모습이 궁금해서 정사 삼국지 촉서와 더불어 제갈량의 삶과 사상을 분석한 평전을 구해 읽었다. 오늘 리뷰할 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갈량이라는 인물의 평전이다. 책의 구성은 반은 제갈량의 인생에 대해 실증적으로 저자가 밝히고 있다. 구성은 여느 인물 평전과 같이 서사적인 구성이며, 따라 읽다가 보면, 굳이 삼국지 촉서를 읽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제갈량의 실제적 삶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책의 또 다른 부분은 제갈량의 사상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치와 군사적인 사상 그리고 경제 사상과 법제사상, 윤리사상 등 제갈량이 행하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심층적인 접근을 하며 분석을 했다. 즉 구성 자체는 5:5의 비율로 삶과 사상을 동일한 비율로 잘 나눠 설명하고 있었으며, 꽤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물론 한계도 있는데 지적하겠다.)

 

일단 제갈량은 동양에서는 굉장한 지모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비단 중국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그리고 서구권에서도 제갈량은 신비스러운 모략가 이미지가 있는데, 그것은 제갈량의 본 모습이 아니다. 제갈량은 모략과 계략보단, 원리원칙 주의자였으며, 그 잔꾀를 부리기보단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정도적인 입장의 위인이다. 그는 군사 부분이나 모략 부분에서 진가를 발휘한 것이 아닌 정치적인 부분과 민생 안정적인 부분에서 탁월한 두각을 보여줬다.

 

더불어 거국적인 시각 역시도, 시국을 정확하게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유비가 관우 사후에 무리하게 군사를 일으켜 제갈량이 구상했던 시국을 망쳐놓았지만, 제갈량의 시각 자체는 탁월했었다.

 

 책에서 본 제갈량의 모습 중 가장 눈에 들어온 점은, 정적이 있더라도,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그의 판단력이 돋보였다. 실제로 우리는 제갈량이 정적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그렇지 않다. 촉한이 건국되고 유비의 총애를 받고 있지만 유비의 집단은 굉장히 파가 나눠져 있었다. 관우를 중심으로 한 직계 수하 세력, 제갈량을 중심으로 한 형주의 선비들, 그리고 이엄을 중심으로 한 익주의 투항 세력들이다. 제갈량은 이런 정적들과의 권력 다툼이 있었다. 법정과 제갈량은 사실 소설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세력으로 보면 파벌이 달랐다. 그러나 제갈량은 공과 사는 구분하여서 일을 처리했다. 추후에 제갈량이 원정을 나갔을 때 이엄이 제갈량을 시기하여 군량을 대지 않은 일이 있었다. 제갈량은 대노하여 군법을 물어 그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유배를 보낸다. 제갈량 사후 이엄은 울면서 '제갈량이 죽었으니 이제 누가 나를 써 주겠는가?'라고 할 정도로 제갈량은 정적에게조차 인정받는 모습을 보였다. 정적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은 굉장한 친화력이라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위나라 군대가 촉한을 공격할 때 제갈량의 무덤을 지날 때 인사까지 하고 갔을 정도니 그의 인망이 이와 같았다.

 

우리는 보통 제갈량을 가난한 선비에 비유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의 누나들은 모두 형주의 세력가들과 결혼을 했고, 당연히 제갈량은 그 혜택을 받고 자랐었다. 형주는 전란 기간 동안 다소 조용하던 지역이었는데 이곳에 많은 선비들이 은거하러 와서 학풍이 높았다. 그런 곳에서 제갈량은 조용히 성장했다. 그의 장인 황승언 역시도 그 부분의 은사였으며, 당대에 내놓으라 하는 기재들과 난세지만 조용히 공부할 수 있었다.

 

공부를 하는 부분에서 제갈량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책을 꼼꼼하게 독서하는데 제갈량은 책을 대강 훑으며 핵심 요약만을 읽고 지나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글들을 보면 어긋남이 없었으니 그런 능력이 부러웠다.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로 비유를 한 부분이나, 서서와 최주평에게 '자네들은 군수 정도밖에 되지 못할 걸세.'라고 한 발언 등으로 볼 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은 굉장히 뛰어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생애에 대한 부분은 사서를 읽어서 별다른 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특이할 사항은 맹획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는 아무 비판 없이 넣었는데, 사실 맹획과 남만 정벌에 대한 부분은 아직까지 검증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칠종칠금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왈가왈부하는 부분인데, 이런 부분을 짚지 않고 그냥 사실로 기록한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얼추 제갈량의 실제 모습을 잘 복원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경제사상 부분이다. 사실 의문이 드는 것이, 제갈량의 촉한은 위나라의 국력의 1/10 수준이다. 그런데도 몇 번이나 군대를 이끌고 공세를 취하는 입장이니 이상할 수밖에 없다. 전쟁은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국력도 약한데 어떻게 그런 것을 감당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어떤 경제 정책을 시행했는지, 궁금했는데, 다양한 방법으로 국세를 조성하고 있었다. 우선 가장 보편적인 부분이 소금과 철의 전매제도 시행인데, 역시나 제갈량도 이런 부분을 잘 간파하고 시행하고 있었다. 좀 어이가 없는 부분은 소금 전매제도를 이야기하면서 동굴의 천연가스 이야기까지 확장하여서 설명하는데 이런 부분도 가설이긴 하지만 너무 앞서간 주장 같았다. 그러나 저 두 제도는 중국의 경제 정책의 핵심이었으니 제갈량도 따랐을 것이다.

 

한중 쟁탈전 당시 조조는 퇴각을 하면서 한중의 인구를 거의 모두 이주시켰다고 책에는 나왔다. 그래서 유비가 한중을 장악했을 때, 주변 신하들이 '백성이 없는데 무슨 이득이겠습니까.' 하고 상소까지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제갈량은 이런 한중에 농본 정책을 시행하는데 둔전을 감행했다. 따라서 한중을 빨리 원상복귀 시켰으며 이런 한중은 훗날 위나라 침공의 핵심 기지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 외 각종 양잠이나 농업 등을 장려하고, 특히나 특산품인 촉한의 비단을 값비싸게 거래를 하여 국가적으로 이득을 많이 봤다고 한다. 촉 지역은 비단이 아주 곱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이런 부분까지 제갈량이 활용했다고 한다. 즉 상업적으론 철과 소금의 전매제를 시행하고, 농업 부분에서는 농본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며, 양잠을 하여 비단을 특산품으로 활용하여 외교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제갈량은 특히나 관중을 흠모했는데 그는 분명 <관자>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 (분명 봤을거다. 유선에게 필사까지 해 줬다고 하니) <관자>는 제자서 중 잡탕적 성격이지만 상업에 대한 부분이 상당히 많이 나와 있는 책이니, 제갈량이 이런 부분도 참고를 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제갈량의 '출사 표'를 보면서 '울지 않는 사람은 충신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걸로 말한다면... 나는 충신이 아니겠다. 사실 제갈량이 쓴 출사표를 보며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이렇게 깊구나라는 것을 느꼈고 상세한 인사정책에 대해서도 그가 수고를 한 부분도 인정을 했지만 감동까진 안 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는 제갈량의 삶의 부분으로 볼 때는 감동을 했었다.

 

 유비를 사람들은 대체로 덕이 많고 어진 군주로 평가하는데, 사실 유비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위인이다. 그 역시 한 고조 유방과 같이 음험하고 모략과 계략에 빠삭한 군주다. 삼국지를 조금만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면 유비나 조조나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을 느낄 수 있다. 제갈량과 유비의 사상은 전혀 다르다. 제갈량은 오로지 정도와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품이고 유비는 다소 모략적이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인덕으로 감췄을 뿐이다. 제갈량은 아마 알았을거다. 유비가 죽기 전 유선을 부탁하며 눈물 어리게 조위를 타도해달라고 할 때, 유비가 어떤 인간인지 몰랐을 리 없다.

 

유비는 제갈량을 빠삭하게 이해했다. 그에게 맡기면, 그는 배신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을 도와줄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마지막으로 눈물로 호소했다. 사실 제갈량의 구상에 초를 친 것은 유비다. 결국 유비는 대업의 큰 구상을 감정적인 원한 때문에 그르쳤고, 그 수습을 제갈량은 하려고 노력했다.

 

유비 사후 제갈량이 받는 압박은 심각했다. 사기는 떨어졌고, 군주는 우매하고, 집정 대신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나라와의 관계도 회복해야 하고 국토는 형주를 빼앗긴 상황에 모든 것이 최악인 상황이었다. 더불어 밑에 남만의 세력들마저도 반기를 드는 입장이었다.

 

누가 봐도 사실 제갈량의 북벌 정책은 무리수가 따랐다. 그러나 제갈량은... 노력했다. 안될 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피하지 않고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다. 그는 군주를 보좌하면서 두마음을 품지 않았고, 사욕을 위해 재물을 채운 적이 없었다. 죽을 때 나무 몇 그루밖에 없었던 그의 재산으로 볼 때 그는 청렴한 관리였다.

 

안정적인 그라서, 군사를 움직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나라에서 군대를 일으킨다는 것은 굉장히 백성들로부터는 고단한 일이다. 백성들이 전쟁을 좋아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제갈량이 군사를 몇 번이나 일으켜도 백성들은 불만하지 않았고, 제갈량이 쓰러져 죽었을 때 온 국민이 울었다고 했다. 이것은 제갈량이 얼마나 국민들에게 공감 받는 정치인이었는지 모범적인 정치인이었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는 만능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 역시 실수를 했고 마속을 알아보지 못했으며, 그래서 군사를 돌려야만 했었다. 그도 군대를 이끌고 가서 이긴 적 없이 군량이 없어서 돌아온 적도 많았다. 그가 군사적 재능이 없다면, 위나라가 방어 위주로 정책을 펴지도 않았을 것이고, 사마의가 국지전으로 군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장기전으로 전쟁을 끌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위연과의 자오곡 계책으로 인해 공명을 폄하하는데, 분명한 것은 그 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있고 (책의 저자는 공명의 편이다.),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공명이 병법을 모른다는 주장은 과하다고 생각한다.

 

비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상대의 모략을 알아내고, 화살을 얻어오는 그런 신기를 부리는 제갈량은 없었다. 다만 역사적 제갈량은 자신의 주어진 여건에 충실히 살았고, 질 줄 알면서도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 군주의 유언을 따랐다. 어찌 보면 어리석다고도 평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다. 그의 이런 우직한 충성심은 훗날 여러 사람들에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 적국에서조차 애도하고 명신이라고 칭송할 정도였다. 세월이 흐르고 한족의 이데올로기가 겹치고, 소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허구가 붙여졌을 뿐이지 역사적인 제갈량의 모습은 성실 그 자체였다.

 

역사의 제갈량은 실수도 했고, 그 실수 때문에 스스로의 관작을 낮췄으며, 그럼에도 인재가 없는 촉을 책임 지려고, 고심했고 분투했던 한 인간이었다. 지금 유행하는 드라마 정도전 역시 자신의 이상향은 '제갈량'으로 잡고 있다. 두 사람은 엄청나게 공통점이 많다. 반쪽짜리 성공자였다는 점. 재상 주의를 지향했다는 점, 군주에 충심을 다 했다는 점, 학문이 뛰어난 점, 문무를 겸비했다는 점, 행정에 능했다는 점, 도덕적인 탄핵이 없다는 점, 청렴 결백했다는 점, 성장기에 신진사대부와의 교류와 형주의 선비 집단과의 교류 등, 공통점이 아주 많은 두 사람이다.

 

실제로 <삼봉집 경제문감>에서 정도전은 제갈량과 재상 주의를 엄청 칭송한다. 아마도 자신도 그런 청렴한 재상으로 나아가겠다는 부분도 볼 수 있다. 어쨌든 제갈량은 그의 재상 정치의 롤모델이 됐던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제갈량과 정도전의 가장 큰 차이는 정적에 대한 대응이었다. 제갈량은 정적과의 감정적인 대응을 피하고 포용하고 포섭하고 공과 사를 그르치지 않으려 노력하여 상대적으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정도전은 사실 좀 편협했고 권력욕에 사로잡혀 정적을 몰살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것이 두 사람의 차이였다. 그런 안정과 화합의 가치관은 국정에서도 보여준다. 국민들을 위한 선정을 베풀고, 조세를 감면하면서도 법제 기강을 확립하여 국가의 법률을 바로잡았다. 제갈량이 행한 법제는 굉장히 강도가 높은 법제였지만 국민들은 불평불만하지 않고 따랐다는 것. 그것은 제갈량의 공감력의 힘이었다. 더불어 정적들과의 관계도 적절하게, 공사를 구분하며, 처신하고 화합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에서 율곡 이이가 추구하던 상생의 정치의 모습도 떠올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갈량이 정도전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품과 정치력과 화합의 관점으로 봤을 때, 제갈량의 처신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선조들은 이런 모습에서 제갈량에게 감동받지 않았을까?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 없듯, 위인이라 칭송받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실수하는 모습이나 부족한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다. 제갈량이나 정도전 역시 우리와 같이 뜨거운 피를 흘리는 한 인간일 뿐이다. 그 점은 확실하게 인지해야 한다.

 

제갈량에게서 아쉬운 부분은 아무래도 인재관이다. 마속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 장완과 강유의 천거 등도 아쉽다. 실제로 제갈량이 죽고, 군권은 강유에게 인사권과 정치권은 장완에게 넘겨준다. 두 사람은 화합하지 못했고, 제갈량 사후 내시 세력들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런 황제를 보필하지 못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촉한은 인재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제갈량이 그들을 지목하고 국사를 맡겼을 때에는 어쩌면 인재가 없는 촉의 한계라서 그런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정몽주가 죽고 고려가 망했듯, 그는 촉한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의 사후 촉한은 급격하게 쇠락했으며, 결국 멸망했다. 역사적으로 패자에 불과한 제갈량은 사후 굉장히 추존되며, 지금은 동양의 지혜로 상징되고 있다. 아름다운 현실의 패배자였지만, 역사적인 승리자가 된 셈이다. 이런 부분에서 현시대에서는 불행했었고 역사적으로 승리자가 된 선배들, 플라톤이나 공자의 삶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어찌하랴, 살아서 이루고자 했던 촉한 부흥의 꿈을 못 이루고 끝내 괴롭게 죽어야만 했던 그, 정군산에 묻힌 그는 후세의 숱한 칭송에도 불구하고 말이 없다. 과연 그는 이런 칭송들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덧없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면, 감응력이 뛰어난 정치가, 안정적인 내면을 가진 문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국내에서 나온 책들 중 제갈량에 대해서 소상하게 밝혀놓은 책이다. 삼국지를 읽지 않더라도 보는 데에는 지장이 없으며, 삼국지를 읽고 제갈량에 대해 역사적으로 자세히 알고 싶다면 추천할만한 도서다. 어차피 똑바로 된 제갈량에 대한 평전은 내가 알기로 이 책 밖에 없는 듯싶다. 삼국 시대 후반의 실제 역사와 더불어, 눈물겹게 아름다운 패자의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