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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 개정판
이덕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최근 드라마 '비밀의 문'이 방영되면서 사도세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물론 드라마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이고 있지만, 나는 나름대로 만족하며 보고 있다. 극중 나오는 사도세자의 이야기나 스토리의 구성에서 이 저서가 떠올랐다면 오버일까?
실제 이 책을 읽어보고도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비밀의 문'의 작가는 이 책을 탐독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많은 대사나 사도세자의 모습들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모습과 겹치기 때문이다. 이덕일은 사도세자에 대해서 긍정적인 해석을 가하여 이 책을 완성시켰다. 그는 여기서 혜경궁 홍 씨가 집필한 <한중록>의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것은 지금 주류 사학계가 받아들이고 있는 사관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학계의 논쟁, 정병설과 이덕일은 이 문제로 강하게 대립했다. 정병설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서 <권력과 인간>이라는 책에서 다루고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덕일이 주장하는 논고에 대해서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자 이덕일 역시 책을 개정하면서 대대적으로 정병설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서두에 남겼다.
그들의 논쟁은 둘째치더라도, 책 서두에 이런 부분을 50여 쪽에 가까이 할애하여 논고한다는 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떠나 보기에는 안 좋았다. 나는 책을 볼 때 항상 머리말을 읽는다.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에서도 책을 살 때 머리말을 보고 구매를 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 책은 서두부터 다소 논쟁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어서, 다소 난잡하게 느껴졌었다. 차라리 이 부분은 책의 말미에다가 뒀으면 어떨까 싶다.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이덕일의 입장을 존중하고, 이덕일이 해석하는 사도세자의 모습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정병설이 주장하는 <한중록>의 입장을 존중하는 부분은 따르기가 힘들다. 상황적인 부분과, 그녀의 배경, 그리고 그 당시의 노론과 소론의 분위기 등등을 살펴볼 때에 <한중록>이 사실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사도세자는 권력의 암투에서 제거된 차기 임금이었으며, 당쟁의 희생물이다.
그러나 사도세자가 성군의 자질을 가지고 있고,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도 선뜻 수긍하기는 힘들다. 모든 역사적 텍스트는 엄정한 사료이지만, 후대의 집권 세력의 이념이 투영된 경우가 많다. 엄밀하게 말해서 역사라는 학문은 객관적일 수 없는 학문이다. 따라서 사도세자를 추존하는 사료들 역시도 쉽게 믿을 수가 없다. 당시에 사도세자는 제왕의 후계자로 태어났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기특한 점이 발견되면 신하들이 뻥 튀겨서 성군의 자질이 보인다고 이구동성으로 오버를 하기도 할 가능성도 있다. (이건 역대 임금들이 어릴 때에도 숱하게 나오는 부분이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께 나 똑똑했어요 나 좀 특별한 점은 없었어요?라고 말하면 누구나 하나쯤은 다 있기 마련이다.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자식이 조금만 기특하고 뛰어나도 엄청 기특하다고 생각하며 자랑한다. 세자도 이와 같다. 신료들의 눈에는 차기 임금의 기특한 부분을 뻥 튀겨, 성군이 되실 것이라고 칭송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서에 나오는 뛰어난 현군이라는 말 역시도 쉽게 믿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덕일이 주장하는 현군의 자질이라는 점 역시도 쉽게 믿기지는 않는다. 물론 사도세자가 현군일 가능성은 있고, 현군임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인 노론을 지지하기보단 야당인 소론을 지지하여서 배척당해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사서에 기록된 사도세자의 돌출 행동들은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정조처럼, 좀 더 고압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 영조의 기준에 맞춰, 공부나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고, 정사에 모범을 보이는,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었을까? 결국 사도세자는 영조라는 아버지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고, 손자인 정조는 영조를 정확하게 이해하여서, 영조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고, 참고 또 참아서 왕이 됐다.
영조라는 임금은 현군이며 똑똑하긴 했지만, 상당히 히스테릭하며, 논쟁적이고 자신의 충성을 시험하고 싶었으며,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도세자를 항상 견제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런 권력지향자의 아버지 앞에서 세자인 사도세자는 좀 더 참고 기다릴 순 없었을까? 이덕일의 책은 이러한 사도세자의 모습마저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설명을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자신이 좀 더 인내하며, 아버지의 뜻에 거스르지 않으며, 아버지의 위압에 억눌리지 않으며 자존을 지켜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서 용상에 앉았을 때, 자신이 원했던 정사를 - (이덕일이 주장하는 것은 북벌이라고 했다.) 펼치는 것이 차기 지존으로서의 인내의 도가 아닐까? 물론 이 죽음 때문에 타산지석을 삼은 정조는 역도의 아들이라는 오명 속에서도 잘 인내하고 잘 절제하여 용상에 오른 뒤 어머니의 가문을 도륙 내버린다.
나는 책을 보면서 모든 것의 시작은 인조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책의 시작은 인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조는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세손에게 왕위를 주지 않고, 둘째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지목한다. 원래, 왕위 승계는 세자가 죽으면 세손이 잇는 것이 관습이다. 그런데 인조는 그렇게 둘째를 왕으로 내세우며 첫째의 씨를 말라 죽여버리는데 일조했다. 인조라는 왕 자기 스스로도 왕이 되려고 반정을 했으며, 그렇게 왕이 되어 호란으로 인해 굴욕을 당한다. 말년에 자신의 첫째인 소현세자를 정치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소현세자가 죽은 뒤 소현세자 가문을 박살내고, 둘째를 왕위에 올린다.
그 뒤로, '삼종의 혈맥'이라는 신조어가 태어난다. 삼종이란 효종(봉림대군) - 현종 - 숙종을 뜻하며, 특히 이 3대에는 아들 손이 귀하여 '삼종의 혈맥'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즉 그만큼 손이 귀하다는 뜻이다. 아마 적손이었던 소현의 가문을 죽인 원한이 이 삼종의 혈맥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라는 섬뜩한 생각도 들기도 했다.
거기다 숙종의 두 아들, 경종과 영조 역시도, 배다른 형제이지만, 정치적 노선이 달랐다. 동생인 영조는 형인 경종을 압박하기도 했고, 경종은 영조를 감싸면서도 배척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결국 경종 역시도 의문사를 당한다. 그렇게 영조는 권력투쟁에서 살아남아 왕위를 계승한다. 그리고 먼 훗날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권력 때문에 죽여버린다.
소현세자의 의문사, 경종의 의문사, 사도세자의 죽음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권력의 개입이라는 부분이다. 소현세자는 설에 따르면 병약하여 죽었다고도 하지만, 일각의 시각으로는 살해당했다고도 한다. 이 당시 소현세자는 아버지 인조와 정치적 대립을 하고 있었다. 경종 역시도 마찬가지다. 경종은 영조가 음식에 독을 타 죽였다고도 했으며, 실제로 영조 집권 시기 그런 의혹들에 영조는 히스테리 한 반응과 갑옷을 걸치고 국문까지 진행할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어쨌든 어떻게 죽은 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경종의 죽음 직전에는 왕과 소론의 경종 라인과 세자와 노론의 영조 라인의 대립이 있었다. 사도세자의 죽음 역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영조와 장인, 처가 세력의 노론과 세자의 소론이 대립했었다. 결국 세 인물 모두가 죽기 직전 권력의 개입이 있다는 부분이 공통점이다.
자고로 권력은 아들과도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때때로 비정한 군주와 세자의 사례를 보여준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가서는 그 강도가 더 심해진다. 정통성이 없는 군주일수록, 이러한 강도는 더욱더 심하다. (인조, 영조) 게다가 조선 왕조에서 종이 아닌 조자 붙은 임금들은 태조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정통성이 불안했던 임금들이 많다. 자고로 조자는 함부로 붙이는 것이 아닌데, 역설적으로 가장 약한 정통성을 지닌 왕들이 그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조를 붙인 것은 아닐까도 생각했다.
어쨌든 이 책은 조선 후기의 비극적인 사건,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사건에 국한하지 않고, 인조 시대 때부터 비극의 싹을 심도 있게 밝힌 부분이 흥미로웠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조선 후기에 왕가의 비극이 많다는 점은, 결과적으로 왕권의 약화라는 부분으로 귀결됐다. 신하들의 붕당을 막아야 할 왕이, 자신의 정권 강화를 위해 한쪽 붕당을 편애하고 기반으로 삼는 것은 그만큼 신권이 강력해졌다는 뜻이며 왕권은 그만큼 취약해졌다는 뜻이다. 반정과 올바르지 않은 왕위 계승은 그런 왕권 약화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다만 한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이덕일의 초기 역사서들은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바로 서술 방법 중 문제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 것인데. 책을 보다 보면 책에서 역사적 인물의 심적인 부분까지도 묘사하는 부분이 보인다. 가령 이런 부분 책의 첫 대목 사도세자가 태어날 때의 설명을 하면서 영조의 심정을 묘사한다. '제발... 아들이기를'
이 책은 문학 작품이 아니다. 역사 책이다. 설사 영조가 그런 마음을 지녔다. 하더라도, 기록되지 않은 부분을 함부로 추측하여 쓰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후대의 생각으로 선대를 오해할 수 있는 좋은 예가 아닐까? 그래서 반대 측인 정병설 쪽에서 '아류 소설'이라고 폄하하는 이유도 이 부분은 아닐까 생각했다. 나도 이 부분은 참으로 아쉽다. 만약 이러한 근거가 실록에 있다면 정확한 인용을 밝혀야 하고 주석으로 처리를 해야 한다.
이덕일은 서두에서 자신은 이 책을 두 가지 버전으로 내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지금의 책 형태로, 두 번째는 다소 주석을 가하여, 전문성을 보완한 형태로 출간하려고 생각했단다. 그러면서 두 번째 책을 내지 않은 이유에, 분명 주류 사관의 입장인 정병설 쪽이 인정하지 않을게 뻔하다며 이야기하는데, 그럴수록 더 주석이 달린 책을 발간해야 하지 않을까? 주석을 인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며 가장 아쉬웠던 점이 '전문성'이 없는 부분이 아쉬웠다. 판단은 독자가 한다. 분명 주석을 달고 인용을 하면 옛 문헌 자체를 인용해야 하는데, 그 옛 문헌이 수정될 여지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않을 것 같다는 모호한 이유로 주석을 곁들은 책을 내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정병설 쪽이 인정을 하던 안 하던, 옛 문헌이나 옛 문집,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바뀌지 않는 한, 타당한 인용과 근거를 제시한다면, 오히려 역으로 자신의 주장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 책 개정문에서 스스로의 책을 둘러 보건대, 이 책이 참으로 잘 지었고 그 시절 참으로 열정을 가지고 공부를 한 흔적이라고, 그런 비슷한 말도 남겼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좀 더 자세한 사도세자의 입장이나 새로운 논거를 펼치고 싶다면, 대대적으로 책을 다시 개정하여, 논의한 부분들의 인용을 정확하게 밝혀준다면 더더욱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최근의 이덕일의 책들은 인용도 정확하게 나타내고, 역사적 인물의 생각을 자신의 추측대로 기술하는 그런 서술 방식도 보이지 않아서 괜찮았는데, 이 시절의 책은 그렇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아무튼 의미가 있는 책임은 분명하다. 이 책 덕분에 우리는 사도세자라는 인물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었다.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 책임에는 분명하다. 내용적으로 보자면 권력의 비정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이러한 다양한 역사적 해석이 많이 나왔으면 싶다. 아무튼 주석이나 서술 방식이 보완된 개정판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