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 개정판
이덕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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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 '비밀의 문'이 방영되면서 사도세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물론 드라마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이고 있지만, 나는 나름대로 만족하며 보고 있다. 극중 나오는 사도세자의 이야기나 스토리의 구성에서 이 저서가 떠올랐다면 오버일까?

 

실제 이 책을 읽어보고도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비밀의 문'의 작가는 이 책을 탐독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많은 대사나 사도세자의 모습들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모습과 겹치기 때문이다. 이덕일은 사도세자에 대해서 긍정적인 해석을 가하여 이 책을 완성시켰다. 그는 여기서 혜경궁 홍 씨가 집필한 <한중록>의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것은 지금 주류 사학계가 받아들이고 있는 사관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학계의 논쟁, 정병설과 이덕일은 이 문제로 강하게 대립했다. 정병설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서 <권력과 인간>이라는 책에서 다루고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덕일이 주장하는 논고에 대해서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자 이덕일 역시 책을 개정하면서 대대적으로 정병설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서두에 남겼다.

 

그들의 논쟁은 둘째치더라도, 책 서두에 이런 부분을 50여 쪽에 가까이 할애하여 논고한다는 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떠나 보기에는 안 좋았다. 나는 책을 볼 때 항상 머리말을 읽는다.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에서도 책을 살 때 머리말을 보고 구매를 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 책은 서두부터 다소 논쟁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어서, 다소 난잡하게 느껴졌었다. 차라리 이 부분은 책의 말미에다가 뒀으면 어떨까 싶다.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이덕일의 입장을 존중하고, 이덕일이 해석하는 사도세자의 모습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정병설이 주장하는 <한중록>의 입장을 존중하는 부분은 따르기가 힘들다. 상황적인 부분과, 그녀의 배경, 그리고 그 당시의 노론과 소론의 분위기 등등을 살펴볼 때에 <한중록>이 사실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사도세자는 권력의 암투에서 제거된 차기 임금이었으며, 당쟁의 희생물이다.

 

그러나 사도세자가 성군의 자질을 가지고 있고,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도 선뜻 수긍하기는 힘들다. 모든 역사적 텍스트는 엄정한 사료이지만, 후대의 집권 세력의 이념이 투영된 경우가 많다. 엄밀하게 말해서 역사라는 학문은 객관적일 수 없는 학문이다. 따라서 사도세자를 추존하는 사료들 역시도 쉽게 믿을 수가 없다. 당시에 사도세자는 제왕의 후계자로 태어났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기특한 점이 발견되면 신하들이 뻥 튀겨서 성군의 자질이 보인다고 이구동성으로 오버를 하기도 할 가능성도 있다. (이건 역대 임금들이 어릴 때에도 숱하게 나오는 부분이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께 나 똑똑했어요 나 좀 특별한 점은 없었어요?라고 말하면 누구나 하나쯤은 다 있기 마련이다.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자식이 조금만 기특하고 뛰어나도 엄청 기특하다고 생각하며 자랑한다. 세자도 이와 같다. 신료들의 눈에는 차기 임금의 기특한 부분을 뻥 튀겨, 성군이 되실 것이라고 칭송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서에 나오는 뛰어난 현군이라는 말 역시도 쉽게 믿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덕일이 주장하는 현군의 자질이라는 점 역시도 쉽게 믿기지는 않는다. 물론 사도세자가 현군일 가능성은 있고, 현군임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인 노론을 지지하기보단 야당인 소론을 지지하여서 배척당해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사서에 기록된 사도세자의 돌출 행동들은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정조처럼, 좀 더 고압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 영조의 기준에 맞춰, 공부나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고, 정사에 모범을 보이는,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었을까? 결국 사도세자는 영조라는 아버지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고, 손자인 정조는 영조를 정확하게 이해하여서, 영조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고, 참고 또 참아서 왕이 됐다.

 

영조라는 임금은 현군이며 똑똑하긴 했지만, 상당히 히스테릭하며, 논쟁적이고 자신의 충성을 시험하고 싶었으며,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도세자를 항상 견제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런 권력지향자의 아버지 앞에서 세자인 사도세자는 좀 더 참고 기다릴 순 없었을까? 이덕일의 책은 이러한 사도세자의 모습마저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설명을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자신이 좀 더 인내하며, 아버지의 뜻에 거스르지 않으며, 아버지의 위압에 억눌리지 않으며 자존을 지켜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서 용상에 앉았을 때, 자신이 원했던 정사를 - (이덕일이 주장하는 것은 북벌이라고 했다.) 펼치는 것이 차기 지존으로서의 인내의 도가 아닐까? 물론 이 죽음 때문에 타산지석을 삼은 정조는 역도의 아들이라는 오명 속에서도 잘 인내하고 잘 절제하여 용상에 오른 뒤 어머니의 가문을 도륙 내버린다.

 

나는 책을 보면서 모든 것의 시작은 인조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책의 시작은 인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조는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세손에게 왕위를 주지 않고, 둘째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지목한다. 원래, 왕위 승계는 세자가 죽으면 세손이 잇는 것이 관습이다. 그런데 인조는 그렇게 둘째를 왕으로 내세우며 첫째의 씨를 말라 죽여버리는데 일조했다. 인조라는 왕 자기 스스로도 왕이 되려고 반정을 했으며, 그렇게 왕이 되어 호란으로 인해 굴욕을 당한다. 말년에 자신의 첫째인 소현세자를 정치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소현세자가 죽은 뒤 소현세자 가문을 박살내고, 둘째를 왕위에 올린다.

 

그 뒤로, '삼종의 혈맥'이라는 신조어가 태어난다. 삼종이란 효종(봉림대군) - 현종 - 숙종을 뜻하며, 특히 이 3대에는 아들 손이 귀하여 '삼종의 혈맥'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즉 그만큼 손이 귀하다는 뜻이다. 아마 적손이었던 소현의 가문을 죽인 원한이 이 삼종의 혈맥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라는 섬뜩한 생각도 들기도 했다.

 

거기다 숙종의 두 아들, 경종과 영조 역시도, 배다른 형제이지만, 정치적 노선이 달랐다. 동생인 영조는 형인 경종을 압박하기도 했고, 경종은 영조를 감싸면서도 배척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결국 경종 역시도 의문사를 당한다. 그렇게 영조는 권력투쟁에서 살아남아 왕위를 계승한다. 그리고 먼 훗날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권력 때문에 죽여버린다.

 

소현세자의 의문사, 경종의 의문사, 사도세자의 죽음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권력의 개입이라는 부분이다. 소현세자는 설에 따르면 병약하여 죽었다고도 하지만, 일각의 시각으로는 살해당했다고도 한다. 이 당시 소현세자는 아버지 인조와 정치적 대립을 하고 있었다. 경종 역시도 마찬가지다. 경종은 영조가 음식에 독을 타 죽였다고도 했으며, 실제로 영조 집권 시기 그런 의혹들에 영조는 히스테리 한 반응과 갑옷을 걸치고 국문까지 진행할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어쨌든 어떻게 죽은 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경종의 죽음 직전에는 왕과 소론의 경종 라인과 세자와 노론의 영조 라인의 대립이 있었다. 사도세자의 죽음 역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영조와 장인, 처가 세력의 노론과 세자의 소론이 대립했었다. 결국 세 인물 모두가 죽기 직전 권력의 개입이 있다는 부분이 공통점이다.

 

자고로 권력은 아들과도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때때로 비정한 군주와 세자의 사례를 보여준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가서는 그 강도가 더 심해진다. 정통성이 없는 군주일수록, 이러한 강도는 더욱더 심하다. (인조, 영조) 게다가 조선 왕조에서 종이 아닌 조자 붙은 임금들은 태조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정통성이 불안했던 임금들이 많다. 자고로 조자는 함부로 붙이는 것이 아닌데, 역설적으로 가장 약한 정통성을 지닌 왕들이 그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조를 붙인 것은 아닐까도 생각했다.  

 

어쨌든 이 책은 조선 후기의 비극적인 사건,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사건에 국한하지 않고, 인조 시대 때부터 비극의 싹을 심도 있게 밝힌 부분이 흥미로웠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조선 후기에 왕가의 비극이 많다는 점은, 결과적으로 왕권의 약화라는 부분으로 귀결됐다. 신하들의 붕당을 막아야 할 왕이, 자신의 정권 강화를 위해 한쪽 붕당을 편애하고 기반으로 삼는 것은 그만큼 신권이 강력해졌다는 뜻이며 왕권은 그만큼 취약해졌다는 뜻이다. 반정과 올바르지 않은 왕위 계승은 그런 왕권 약화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다만 한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이덕일의 초기 역사서들은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바로 서술 방법 중 문제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 것인데. 책을 보다 보면 책에서 역사적 인물의 심적인 부분까지도 묘사하는 부분이 보인다. 가령 이런 부분 책의 첫 대목 사도세자가 태어날 때의 설명을 하면서 영조의 심정을 묘사한다. '제발... 아들이기를'

 

이 책은 문학 작품이 아니다. 역사 책이다. 설사 영조가 그런 마음을 지녔다. 하더라도, 기록되지 않은 부분을 함부로 추측하여 쓰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후대의 생각으로 선대를 오해할 수 있는 좋은 예가 아닐까? 그래서 반대 측인 정병설 쪽에서 '아류 소설'이라고 폄하하는 이유도 이 부분은 아닐까 생각했다. 나도 이 부분은 참으로 아쉽다. 만약 이러한 근거가 실록에 있다면 정확한 인용을 밝혀야 하고 주석으로 처리를 해야 한다.

 

이덕일은 서두에서 자신은 이 책을 두 가지 버전으로 내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지금의 책 형태로, 두 번째는 다소 주석을 가하여, 전문성을 보완한 형태로 출간하려고 생각했단다. 그러면서 두 번째 책을 내지 않은 이유에, 분명 주류 사관의 입장인 정병설 쪽이 인정하지 않을게 뻔하다며 이야기하는데, 그럴수록 더 주석이 달린 책을 발간해야 하지 않을까? 주석을 인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며 가장 아쉬웠던 점이 '전문성'이 없는 부분이 아쉬웠다. 판단은 독자가 한다. 분명 주석을 달고 인용을 하면 옛 문헌 자체를 인용해야 하는데, 그 옛 문헌이 수정될 여지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않을 것 같다는 모호한 이유로 주석을 곁들은 책을 내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정병설 쪽이 인정을 하던 안 하던, 옛 문헌이나 옛 문집,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바뀌지 않는 한, 타당한 인용과 근거를 제시한다면, 오히려 역으로 자신의 주장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 책 개정문에서 스스로의 책을 둘러 보건대, 이 책이 참으로 잘 지었고 그 시절 참으로 열정을 가지고 공부를 한 흔적이라고, 그런 비슷한 말도 남겼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좀 더 자세한 사도세자의 입장이나 새로운 논거를 펼치고 싶다면, 대대적으로 책을 다시 개정하여, 논의한 부분들의 인용을 정확하게 밝혀준다면 더더욱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최근의 이덕일의 책들은 인용도 정확하게 나타내고, 역사적 인물의 생각을 자신의 추측대로 기술하는 그런 서술 방식도 보이지 않아서 괜찮았는데, 이 시절의 책은 그렇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아무튼 의미가 있는 책임은 분명하다. 이 책 덕분에 우리는 사도세자라는 인물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었다.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 책임에는 분명하다. 내용적으로 보자면 권력의 비정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이러한 다양한 역사적 해석이 많이 나왔으면 싶다. 아무튼 주석이나 서술 방식이 보완된 개정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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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신혼이 아름답다 - 사랑도 공부가 필요해
조연경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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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처럼, 서점에서 기웃거리며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책 저 책을 둘러보고 둘러보고 하다가, 뻔한 제목의 다소 튀는 표지, 핑크 핑크 한 러블리한 표지의 이 책을 발견했었다. 뻔하고 뻔한 책이겠거니 했지만, 역시 뻔한 책이기도 했었고 뻔하지 않은 책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주문을 했었다. 책은 간결했다. 쪽수도 짧았고, 하루에 다 읽을 정도로, 집중하면 4시간 안에 독파할 정도로 부담 있지도 않았다. 거기다 꼬아 놓은 부분도 없었다. 그래서 술술 읽혔었다. 술술 읽히는 책이었지만, 가볍게 서술된 내용과는 다르게 나는 상당히 집중하여 읽었던 책이었다.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라는 대사처럼 과연 연애나 결혼을 글로 과연 배울 수 있을까? 나는 글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겠다. 얕은 기교나 하룻밤 잠자리를 위해 부리는 잔꾀나 꼼수가 기록된 책이 아닌, 사랑의 본질적인 부분을 이야기한 책들에게서는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하고, 다른 사랑을 다룬 책들과는 다르게 평이한 일상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핵심은 다름이다. 배우자와 나에 대해서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배우자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여서 내가 더 배려하자는 그런 생각. 여기까지만 하면 다른 책들과 다를 바 없는 뻔한 책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다름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소상히 밝히고 있었다.

 

특히 내가 감동받은 부분은 여행에 관한 부분이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여행에는 다른 서로가 어떻게 그 다름을 인정하며, 여행을 같이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연인과 여행을 가게 된다면 모든 일정을 같이 보내는 것을 생각한다. 뭐든 함께 해야 하고 뭐든 함께 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의 기호가 다르듯 여행에서 추구하려는 개인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책에서 말한 대로 나와 같은 경우는 여행 가서 맛 집들을 일일이 검색해서 찾아가서 먹는 것을 선호한다고 치자. 그러나 배우자는 아니다. 대충 앞에 들어가서 먹는 주의라고 한다면, '식사'를 따로 하면 된다. 배우자는 호텔이나 숙소에서 늘어지게 누워서 쉬는 것을 선호하고 나는 바닷가를 거니는 것을 좋아한다. 이럴 경우 따로 행동하면 된다. 사실 여행 가서 커플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참 많다. 연인 때야, 서로를 배려하고 같이 행동하지만 결혼하고 나면 그런 배려심은 사라진다. 피곤한 일상에서 나만의 힐링 방법 (설사 그것이 늘어지게 쉬는 것이더라도)으로 쉬겠다는데 그 사람의 휴식의 방법에 대해서 '당신은 분위기도 없고 감수성이 없다.'라고 매도해버리면 상대는 발끈하기 마련이다. 합치될 수 없는 경우에는 다름을 인정하고 따로 행동하면 된다고 하는데 상당히 일리 있는 방법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여행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것은 변함없다.

 

책에서는 혼자서 잘 노는 사람이, 외롭지 않고 결혼 생활도 잘 한다고 한다. 배우자에게 너무 의존하고 배우자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을 나는 종종 봤다. 그러나 배우자가 곁에 없더라도 스스로 홀로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스님의 주례사>에서도 이야기한 부분으로 온쪽과 반쪽의 개념으로 이야기를 한 부분이다. 나 스스로의 온쪽이 되야만 상대가 있어도 없어도 구애받지 않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상대를 너무 의존하는 것 역시 상대를 지치게 하고 상대를 힘들게 하는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배우자가 일에 치이거나 휴식 날 늘어지더라도, 개념치 말고 놀고 싶다면 혼자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일리 있는 말이다. 결혼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배우자와 함께 할 수는 없으니까,

 

또 한가지 감동적인 부분은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가족에게 먼저 호의를 베풀어라는 부분, 이 부분도 상당히 일리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장인과 장모를 어려워하고, 시월드는 역시 시월드라며 꺼린다. 분명한 사실은 그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의 가장 직접적인 효력은 가족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그 사람만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니다. 그 사람을 둘러싼 모든 환경과 그 사람의 모든 가족들까지도 받아들이는 것이 결혼이다.

 

나와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가족으로 맞이하고, 그 가정에 갔을 때, 나를 긁는 사람도 있다.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시동생이나,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어머님 등등 복병은 수도 없이 많다. 책에서 그런 분들에게 대응하는 방법은 마음으로 품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때론 시댁이나 장인의 집에 가서 불만사항을 배우자에게 토로하기도 하는데, 사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다. 인생 살다 보면 나랑 원치 않는 인간관계도 많이 만난다. 학교에서 재수 없는 동창, 직장에서 꼴보기 싫은 상사, 친구 중에서 유난히 거들먹거리는 인간 등등 모든 인간 사회에서는 내가 원하고 날 이해해주는 인간만 볼 수 없다. 처가나 시댁도 마찬가지다.

 

그런 부분을 이해하고, 불만을 받더라도 불만 사항을 이야기하기보단, 감싸 안으며 생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책은 강조하고 있다. 배우자 앞에서 배우자의 가족을 욕하는 것만큼 배우자를 화내는 일은 없다. 반대로 배우자에게 점수를 따려면 배우자의 가족을 품어안아야 한다. 때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시동생, 어머니더라도, 결혼한 순간부터는 '내' 가족이니까

 

그리고 또 하나 여자들이 특히 잘하는 심리전인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 이런 태도는 부부관계를 망치기 마련이라고 했는데 특히 공감 갔다. 연애시절에는 일정한 밀당이 있고 그 밀당이 있어야지 연애가 탄력도 받는다면 결혼은 다르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해법을 찾아야지 자꾸 꼬아서 생각하고 갈등을 쌓아둔다면 자신에게도, 그리고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배우자의 기분도 상당히 안 좋다. 사실 나도 이런 습관이 있었는데 이 습관이 아주 안 좋은 습관이라는 것을 느끼고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가치'를 확고하게 세워서 결혼을 진행해야 한다는 부분, 이리저리 휘둘리고, 저 사람은 혼수를 이렇게 했네, 이 사람은 예단 예물을 이렇게 했네 이런 환경들을 다 고려하다 보면, 싸우기 마련이다. 결혼의 준비는 일차적으로 아내 될 사람과 남편 될 사람 두 사람이 정해야 하며, 결혼 준비 노트를 만들어서 스스로 계산해보고 양가 부모님께 조언을 구하는 방법도 괜찮아 보였다. 자꾸 사회적인 가치를 따지고, 체면을 따지다 보니 결혼의 주체가 신랑 신부가 아니라 신랑 신부를 둘러싼 환경으로 결정되는데 이 부분도 잘 생각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번거로운 부분을 다 최소화하고, 실용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부분들만 준비해서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는 말들이 참 많았다. '아내는 엄마가 아니다.' '남편은 오빠나 아빠가 아니다.' 등등의 말들, 그리고 평이한 서술이고 에세이 형식의 서술이었고 특별하게 거창한 서술 방식이 돋보이진 않았어도, 글의 참으로 잘 읽혔고 마음을 움직이는 구절이 많다고 생각했다. 책을 통해 에세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

 

 모쪼록 여성이 쓴 책이라서 섬세한 감수성이 돋보이고, 약간은 낭만적인 부분들 (예를 들면 이태원에서 유럽풍 귀족 드레스를 사서 남편을 위해 입는 ㅋㅋㅋ)도 보이기 마련이었지만,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스님의 주례사>보다는 더 실용적이고 괜찮은 책 같아 보였다. 확실히 결혼 전에 읽어두면 상당히 유용할 것 같고, 결혼하고 나서도 부부싸움 후 이 책을 본다면 많은 부분을 느낄 것도 같다. 돈값은 하는 책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스님의 주례사>,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와 더불어 '나만의 결혼 3 서'로 지정하여서 책꽂이에 두려고 한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결혼생활에 대한 모든 것을 짧은 지면으로 다루다 보니, 다소 경제적인 부분을 덜 다룬 부분이 아쉽다. 물론 보험이나 재테크, 돈 관리 요령 등등의 거국적인 이야기를 쓰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부분을 자세하게 다뤄졌으면 어떨까 싶다. 챕터가 39장으로 이뤄졌는데 솔직하게 중복되는 내용들도 많아서, 그런 부분들을 모아서 다시 편제하고 경제적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고찰했으면 어떨까도 싶었다. 결혼은 돈과 연관되는 현실적인 부분도 크니까 말이다, 책 보다 보니 저자가 부동산이나 경제에 대한 지식도 빠삭한 것 같아서 그런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책은, 신혼부부뿐만이 아니라 특히 권태기의 부부들에게도 좋은 책 같다. 오래간만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흥미롭게 본, 느낀 것이 많은 책이다.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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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 산동성주간
노병천 지음 / 양서각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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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해서 미뤄왔던 손무의 <손자병법> 서평. 올해가 가기 전 여러 번 읽었던 경험을 하나로 쏟아내어, 정리하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수도 없이 읽고 또 읽은 책인데, 이제야 드디어 리뷰를 끄적여본다. 물론 나의 이 리뷰는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이고, 앞으로도 더 병법 사상에 대해 공부하며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중간결산을 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내가 한간본 <손자병법>을 읽어 오며 느꼈던 점들을 최대한 추려 적어보려고 한다. 단 책의 이 부분에서 나는 손무의 사상을 이야기하기보단, 한간본에 대한 내 생각을 추려서 적으려고 한다. 자세한 손무의 병법 이론과 사상에 대해서는 따로 <손자병법> 서평을 작성해도 록 해 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손자병법>이라는 텍스트를 검토하려면 세 가지 판본을 대조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한간본이라 불리는 <산동성 죽간 손자병법>, 그리고 통행본 <손자병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국지의 영웅 '조조'의 주석이 달린 <손자병법>이다. 우리가 흔히 보고 있는 <손자병법>은 이 중 두 번째에 위치한 책으로 11가 주석이라 불리는 <손자병법>의 원문을 뜻한다. 11가주 주석<손자병법>은 정형화된 통행본 <손자병법>에 조조를 필두로 한 11명의 대가들이 주석을 넣은 주석서를 뜻한다. 여기서 주석을 삭제하고 원문만을 옮겨 놓은 것이 통행본 <손자병법>의 모태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 우리는 <손자병법>이 하나의 문헌으로 내려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동양의 많은 텍스트들은 여러 사본과 여러 이본들이 존재하며, 시대를 거치며 원저자의 원문이 왜곡되거나 수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손자병법> 역시도 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존 내려오는 <손자병법>은 여러 가지 의문이 있었다. 과연 원저자인 손무가 실존 인물인가? 손자라는 것이 손무를 뜻하는 것인지 그의 후손인 손빈을 뜻하는 것인지 모호하기도 했으며, 어느 학계에서는 '조조'가 <손자병법>의 실제 저자라고까지 주장할 정도로, 여러 가지 설이 난무했다.

 

왜 이렇게 <손자병법>의 저자를 둘러싸고 학계의 공방이 치열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손자병법>이라는 책이 문헌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굉장히 높은 가치를 지닌 책이며, 뛰어나고 조리 있는 전쟁이론의 책이라서, 이를 둘러싼 여러 의문점들은 중세와 근세 그리고 지금에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신동준 씨가 <손자병법>의 원저자는 조조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부분은 상당히 근거가 떨어지는 것 같다. 실제 조조는 원문의 100배나 뻥튀기된 난잡한 <손자병법>을 대거 수정하여 지금의 13편으로 추려 놓은 공이 있다. 현행 <손자병법>의 원문은 그가 대폭 수정하며 손질한 원문일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다른 누구의 주석보다도 조조의 주석은 가치가 있다. 지금의 현행 원본을 수정하며 자신의 생각을 짧고 간결하게 주석을 달아놔서, 내용의 정리를 시도하였기에 그의 주석은 가치가 있는 주석이다. 실제로 조조는 실전 전쟁에 달인이었으며, 진중에서도 병법 이론을 공부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즉 실전과 이론 둘 다 능통한 주석가였으며 주석가로서도 편집자로서도 자질은 굉장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문사들이 탁상공론으로 주석은 단 것에 비해, 그의 정리 방법은 군더더기가 없고 장황하지 않으며 핵심만을 추려서 주석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손무의 사상을 읽어내는 데에 참고할 만한 자료이다.

 

그래서 일각에는 편집자인 조조가 손무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병법 이론을 정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주장했으며, 따라서 <손자병법>은 실질적으로 조조의 저작이라고도 이야기하는데, 이에 대해서 태클을 걸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1972년 전한 시대의 무덤에서 무더기의 죽간이 발간됐는데, 이 죽간들 중 특이한 사항은 병법 죽간이 많았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의 <손자병법>이 들어 있었다. 바로 손무의 <손자병법>과 손빈의 <손자병법> 두 가지가 나왔었다.

 

이 죽간들의 발간으로 두 가지 문제가 정리된다. 첫 번째는 통행본 <손자병법>과 한간본 <손자병법>의 대조를 통해, 학계는 조조의 <손자병법> 정리본이 한간본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었다. 이 말은 즉, 조조가 <손자병법>을 정리했을 때에는, 참고할만한 정본을 바탕으로 하여, 난잡하고 원문이 부풀려진 <손자병법>을 정확하게 정리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물론 편명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인 편제와 기본적인 문체가 얼추 비슷한 부분으로 볼 때, 조조가 정리한 통행본 <손자병법>은 조조의 자의적인 견해보단 정확하게 원문을 살려 추려서 정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기존의 의견은 삼국지의 악역 조조의 이미지 때문에 (촉한정통론) 조조의 학문적인 식견을 의심하며 심지어 그의 주석을 폄하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 조조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통행본 <손자병법>을 정리할 수 있었으며, 그는 손무의 원문을 최대한 복원하는 쪽으로 책을 정리했다고 밖에 결론을 지을 수가 없다. 따라서, 저자가 조조라는 설도 설득력을 잃게 되고, 손빈이라는 설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 (손빈의 사상이 담긴 또 다른 <손자병법>이 동시에 나왔기 때문에...) 어쨌든 손무의 사상을 계승한 <손자병법>이라는 책은 전국시대 이래로 쭉 내려져 오고 있었다.

 

다만 과연 이 한간본 <손자병법>이 실제 손무가 지은 원본과 동일하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기 열전>에는 손무의 열전이 나오지만, <춘추>에는 손무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춘추>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손무라는 인물이 가공된 인물이라고도 주장하고, 일각에서는 실존하는 손무의 사상을 누군가가 정리한 책이 <손자병법>이라고도 하는데, 책의 원 저자에 대해서는 솔직히 문헌이 없어서 알 도리가 없다 손무가 가공의 인물인지, 손무가 실존했고 그가 쓴 병서인지, 손무라는 인물은 존재했지만 <손자병법>은 손무가 쓰지 않고 그의 이름을 빌린 누군가가 그의 병법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분명한 사실은 전국시대 이래로 내려져오는 <손자병법>이란 텍스트를 조조가 최대한 올바르게 복원하였다는 점. 그리고 1972년 발견된 한간본 <손자병법>은 통행본 <손자병법>보다 훨씬 연대가 앞서기 때문에 진본에 가까운 문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위의 세 가지 사례를 정리하여서, 앞서 나는 <손자병법>이라는 문헌을 진지하게 탐독할 때엔 세 가지 텍스트를 고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간본 <손자병법>은 지금까지 출토된 <손자병법> 문헌 중 가장 시대적으로 앞선 문헌이므로 진본과 가장 가까울 가능성이 있어서 반드시 참고하여야 한다. 통행본 <손자병법> 역시 조조의 정리가 가미된 부분이 있지만, 고대 이래로 현재까지 원문으로 공인받은 문헌이므로 무시할 수 없다. 조조의 주석 역시도 <손자병법>을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그의 생각을 담은 글로서, <손자병법>의 사상을 연구할 때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손자병법> 번역물들은 통행본 원문을 번역하고, 아전인수 격으로 얕은 경영 이론에 대입하는 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조조의 주석을 가미하여 내놓은 <손자병법>은 두 가지 책이 있는데, 하나는 유동환의 '조조병법' 이란 책이며 또 하나는 신동준의 '무경십서 - 손자병법' 편이다. (유동환의 '조조병법'은 절판됐다. 신동준의 '대여대취'라는 책도 조조의 주석이 가미된 <손자병법>을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은 국내에서는 최초로, 대중에게 한간본 죽간을 베이스로 하여 <손자병법>을 번역한 책이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다만 일단 불만을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첫째로 한간본을 베이스로 한다고 했지만, 내가 읽었을 때 주된 책의 베이스는 기존 통행본 <손자병법>이었던 것 같았다. 그 예로, 한간본에만 보이는 '기정편'이 이 책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며, 다른 한간본 문헌들(합려와 손무의 궁녀 시범, 황제가 적제 청제, 백제, 흑제를 토벌하는 내용 등등) 역시도 번역되지 않은 것이 많다.

 

즉 통행본 체제에 입각하여서, 통행본의 해석과 한간본의 해석이 다를 때 한간본의 해석을 담아 놓을 뿐, 결국 이 책이 한간본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진 않았다. 통행본과 한간본의 차이는 편명과 단어의 차이가 많았는데, 그 부분들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이 책만으로는 한간본이 어떤 체제로 구성됐는지 올바르게 확인할 수 없었다. 이 부분이 결정적으로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장점이 있다. 첫째로, 통행본의 체제로 한간본의 번역을 기술한 책이라, 통행본 <손자병법>을 번역한 책들과 비교하여 봤을 때, 한간본만의 어휘나 추가된 구절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이를 통해 어느 부분이 후대에 변화를 주고 첨삭을 했는지를 살펴보기엔 용의하겠다.

 

두 번째로는, 책의 사이즈가 아주 적고 얇아서, 들고 다니기가 아주 간편하다. 다른<손자병법> 처럼 원문 이상의 뻥튀기된 사례 중심의 책이 아니라, 깔끔하게 원문만 번역한 책이라서, 군더더기 없이 고전의 원문만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은 다이어리 사이즈에 200쪽 내외다.

 

어쨌든 그래도 아쉽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손자병법> 정본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간본 <손자병법>의 원문과 번역을 충실하게 번역하여 포함하여야 한다. 두 번째 통행본 <손자병법>의 원문과 번역을 충실하게 번역하여 포함하여야 한다. 세 번째, 조조의 주석을 반드시 표기하여야 한다. 네 번째, 작년 리뷰한 리링 교수의 <손자병법> 해설서 같이 통찰력 있고 철학적으로도 깊은 내공이 담긴 역자의 해설이 있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네 번째까지는 내 욕심이긴 하지만, 세 번째 항목까지는 반영하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국내에 <손자병법>에 대한 책은 난무하지만 내가 만족하는 <손자병법> 번역서는 아직도 없는 실정이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한간본 <손자병법>의 내용을 오롯이 알 수 있는 텍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심히 유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상당히 의미 있는 책이나 앞서 말한 통행본의 입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어쨌든 이 책의 한계를 보완하여 한간본 <손자병법>에 내용과 체계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번역본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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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치요 - 3천년 리더십의 집대성
샤오샹젠 지음, 김성동.조경희 옮김 / 싱긋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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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의 명군들에겐 그 명군들의 정신세계를 지탱한 서적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예를 들어보면, 조선 왕조의 경우, 태조와 태종, 세종의 머릿속에는 <대학연의>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치적을 밝히는 일은 그들이 애독한 서적들을 살펴보는 것으로도 알 수 있겠다. 고려 시대 광종의 경우는 <정관정요>를 애독하였다고 하며, 그 <정관정요>는 고려의 중요 제왕학 교제가 됐었다.

예나 지금이나 리더십 강의는 중요했다. 특히 동양에서는 뜻이 있는 군주들은 어떻게 통치를 해야 할까를 두고, 많은 논의가 있었고, 효율적이고도 바람직한 리더십을 연구한 학문이 바로 제왕학이다. 지금 시대에서 성행하고 있는 리더십에 대한 책들의 뿌리는 태고의 인간이 집단과 국가를 가지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레 발달했었고, 지금도 성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제왕학이란 학문이 군주나 국본인 세자를 위한 학문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발전했고 이미 절대적인 신분계급제는 타파됐으며, 이제는 누구나 능력만 있다면 리더를 꿈꿀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바야흐로 리더십의 시대라고 할 만 하다.

<군서치요> 역시도, 그 시대의 리더십을 고민한 책 중 하나였었다. 이 책은 당 태종 이세민이 집권하면서 그의 명으로 편찬된 제왕학의 책이었다. 당 태종 이세민은 어린 시절 현무문의 변을 통해 정권을 찬탈한 뒤, 제왕에 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아버지 고조와 함께 전선에 앞장섰으며, 당나라 개국의 큰 공을 이룩했었다. 그러나 나라의 건국 뒤에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형제들과의 권력 다툼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싸워왔었고, 칼로써 형제들을 무찌르고 그렇게, 권력투쟁이 승리하여 권력의 정점에 섰다. 그는 수나라의 몰락을 지켜보며 느꼈었다. 권력이라는 것은 집권하기보다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칼을 빼 들은 그여서, 통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깊이 독서를 할 수도 없었다. 그런 그가 왕이 되자마자 자신의 통치를 위한 제왕학서를 편찬하라고 당대의 명신(위징을 포함한)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렇게 하여 완성된 당나라 태종의 제왕학서가 바로 <군서치요>라는 책이었다.

보통 우리는 당 태종 이세민 하면 <정관정요>를 떠올린다. 물론 <정관정요>는 당 태종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며, 당 태종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료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관정요>라는 책은 당 태종 사후에 오긍이라는 사관이 사료를 참고하여 만든 책이다. 즉 당 태종이 집권할 시기에 당 태종이 애독했던 책은 바로 <군서치요>라고 할 수 있겠다.

내용상 <정관정요>와 <군서치요>를 살펴보자면, <정관정요>가 당 태종의 행적들을 중심으로 밝힌 역사적 성격의 제왕학서라고 한다면 <군서치요>는 중국 고대의 여러 제자서들과 경서, 그리고 역사서들에서 군주의 통치에 도움이 될 만한 구절들을 집대성한 철학적 성격(이론 중심적)의 제왕학서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정관정요>는 당 태종의 행적들만을 살핀 역사서라고 보면 되겠고, <군서치요>는 중국의 고대 이래로 내려져오는 철학과 역사를 통치론으로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군서치요>는 중국 당나라를 대표하는 제왕학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이와 비슷한 책이 떠올랐다. 바로 송나라에서 만들어진 유가적인 제왕학서 <대학연의>가 떠올랐다. 두 책은 경(철학)과 사(역사)가 만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연의> 역시 유학의 이론서들과 <사기>와 <한서>, <자치통감> 등의 역사서들을 혼합시켜서 군주의 통치를 논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책의 성향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가령 예를 들면 <대학연의>는 철저하게 유학 중심적인 제왕학서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대학연의>에 인용되는 경전들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유가 서적들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군서치요>를 살펴보면 유가에서 극도로 꺼리는 제자서 들을 대거 포용하여 집대성하고 있다. 바로 법가의 <한비자>, 도가의 <노자>, 병가의 <손자>, <울료자> 등등 유가를 포함한 40여 가지의 제자서를 분류하여 군주의 통치에 도움이 될 만한 부분들을 모두 인용하여 밝히고 있었다.

물론 <군서치요> 역시도, 기본은 유학 중심적인 사고가 깔려있다. 당 태종 이세민 역시도 유학을 존중했고,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유학을 중시하는 분위기였다. 유학이 추구하는 인과 예 의 지 등등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연의>가 완강하게 유학적 사고를 고집하고 강요하는 느낌, 그리고 타 사상에 대한 비판을 논한 부분 등에서 보이듯, 다른 사상에 대한 관대하지 않은 부분이 <군서치요>에는 없었다. 유학을 존중하되, 다른 제자학에 대해서도 군주의 통치에 도움이 되는 구절들은 사상을 가리지 않고 기록하여 남기고 있었다. 즉 <대학연의>에 비해 사상적 편협함은 보이지 않았다는 부분이 느껴졌었다.

이 부분은 <군서치요>가 나온 당나라와, <대학연의>가 나온 송나라의 사회적 분위기도 반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당나라의 경우는 어쨌든 북방 민족이 건국한 이민족의 국가였다. 당 태종 이세민은 유학을 존중했지만, 도교를 국교로 선택할 만큼 도교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군주였었다. 즉 사회 분위기가 사상적 편협함이 송나라보다는 덜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족이 세운 송나라의 경우는 전형적인 유교 지향적 사고 관념을 보여주고 있고, 정자와 주자를 비롯한 학자들이 성리학을 개척했었다. 그 과정에서 타 사상들은 모두 배격됐었고 성리학만이 유일한 국학으로 인정받았다. 그 이론에 입각하여서 <대학연의>가 편찬됐었다.

또 다른 차이점은 <군서치요>의 편찬자들은 여러 명이었던 것에 비해, <대학연의>의 저자는 진덕수 한 사람이다.

<군서치요>가 또 중요한 점은 풍부한 제자서의 인용 덕분에, 지금 원본이 손실된 책들의 중심 내용이, <군서치요>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사료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책인데 우리나라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당나라를 깔보는 시각도 있었을 것이었으며, 결정적으로 <군서치요>에는 사료적인 가치를 의심할 만한 의문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실 중국에서 원본이 없어진 책이다. <군서치요>는 <대학연의>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방대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에 논의된 권수는 40권이라고 하는데, 이 책이 중국 본토에서는 오랜 내전 끝에 없어졌었다. 그럼 어떻게 이 책이 전해질 수 있었느냐? 책이 제작되고 일본에 전수한 적이 있는데, 그 때문에 이 책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역대 천황들이 이 책을 보며, 제왕학을 익혔다고 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도 이 책을 굉장히 중시했다고 나온다.

일본에 전파된 <군서치요>는 세월이 지나 일본에서 역으로 전파되어 중국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책 몇 권이 소실됐다.) 아무튼 그런 기구한(?) 운명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진본이 없어진 책이라서, 사료적 가치에 대해서는 학자들에게 논쟁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컸다. 나 역시 이 책의 존재를 <정관정요>에서 발견했었는데,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은 제왕학서라 기억에 사라졌는데, 이렇게 책을 만나게 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유학을 존중한 국가였다. 따라서 유학 중심적인 <대학연의>를 제왕학의 교제로 선택했고 다른 사상은 인정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번역되는 동양 고전 책들을 보면 아무래도 유학 중심적인 번역이 많다. 이 부분도 참 아쉬운 부분이다. 다양한 사상의 고전들을 번역해야겠고, 유학의 중요성은 인식하되, 유학에 집착하는 관념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바로 <군서치요>와 같은 주옥같은 고전들도 원전 번역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책을 보며 생각했었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은 <군서치요>의 원전이 아니다. 샤오쟝센이라는 엮은이가, 방대한 군서치요를 일반인들이 보기 좋게 주제별로 나눠서 재편집하여 해설을 가한 '안내서'와 같은 책이다. 책을 읽어보니 최대한 <군서치요>의 철학을 잘 알려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원전을 다 밝혀놓은 것이 아니라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책은 요약 안내서이지만 쪽수가 535쪽 양장본으로 상당히 두툼한 책이었다. 그만큼 원전이 방대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쨌든 바쁜 현대인이, 방대한 고전인 <군서치요>를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국내에서는 이 책 외에는 <군서치요>를 볼 수 있는 책이 없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조금 욕심이 나서, 책의 원전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과연 번역할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겠지만...)

책의 해석이 조금 중화주의 사상 중심적인 시각이 보여서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그런 부분을 스킵하고, 본다면 상당히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한 문헌들의 내용도 많이 있어서 그 부분들을 확인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다만 이렇게 <군서치요>라는 책을 편찬한 당 태종 이세민도, 현신들이 먼저 죽자, 말년에는 꽤나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실정을 저지르기도 했다. 게다가 가장 결정적인 것은 후계구도에 대한 취약성도 나타났다.

당 태종과 조선 태종은 참으로 닮았다. 부왕인 태조를 도와 개국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과, 아버지를 따라 종군하여 전쟁 경험을 두루 겪은 점, 형제들과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여 용상에 올랐던 점, 그리고 나라의 초석을 다진 점 당 태종은 <군서치요>를 바탕으로 정치를 했고, 조선 태종은 <대학연의>를 바탕으로 통치를 했다.  참으로 닮은 부분이 많다. 하지만 당 태종과 조선 태종의 차이점은 앞서 말했듯 후계 구도다. 당 태종 사후 당나라는 급격하게 왕권이 약화됐지만, 조선 태종은 세종이라는 군주를 배출했다. 당 태종은 말년에 고구려 원정이라는 무리수를 뒀지만, 조선 태종은 자신이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그 임무를 충실하게 했다. (사담으로 이방원은 역사상 과거 급제를 한 유일한 공인 능력 인증 군주라는 점도...)

 아무리 이런 통치학의 책을 발간하고 익혔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실천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당태종 이세민을 통해 확인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좋은 글을 집대성하고, 통치에 도움이 되는 사상을 엮는다 한들, 끝까지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세상에 좋은 글은 차고 넘치지만, 그 좋은 글을 한결같이 실천하기란 참 힘든 법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리더가 될 사람들은 깊이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책은 완역이 아니라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발간하지 않은 <군서치요>, 그 <군서치요>의 요체를 밝힌 핵심 안내서를 만날 수 있다는 부분에서, 기쁨도 있었다. 하루빨리 완역본이 발간되길 기대하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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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식당 - 요리사 박찬일의 노포老鋪 기행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중앙M&B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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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자고 일어나 한 챕터를 읽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보는 음식의 글은 나를 배고픔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짬짬이 읽다 보니, 다 읽게 됐었다. 책의 이름은 <백년식당> 요리사 박찬일이 쓴 식당 리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신간인 이 책을 굳이 내 돈 주고 산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나 역시 블로그를 하고 있고, 나 역시 식당 리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식당들을 리뷰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대충 사진 몇 장으로 때우고, '맛있었다.' , '우와 짱' 이런 식의 수식어로 치장한다면 한결 수월하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듯, 나는 그런 리뷰를 지향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먹은 것들에 대해서 생생하게 표현하고 좀 더 입체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싶었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숱한 리뷰들과는 차별화하기 위해서, 매번 고심하고 고심했다. 그래서 글 쓰는 요리사인 박찬일의 신간을 참고하려고 이 책을 구매했었다.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소개하는 식당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 나 역시 한 사람의 맛객이므로, 맛있는 식당들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고 찾아가서 먹어보고도 싶은 그런 식객이기도 하니까,


세 번째는 오래가는 '식당의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책은 우리나라 전국의 오래된 노포들을 취재하고 있었다. 여러 맛집을 다룬 책과는 달리 18개의 노포를 다루고 있었다. 왜 이 책에 소개된 노포들이 살아남았는지 살아남은 조건은 무엇인지, 과연 좋은 식당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보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 첫 번째로 해박한 박찬일 요리사의 지식이었다. 물론 그는 요리사고 이 분야에 전문가이지만, 그가 쓴 18개의 탐방기를 읽다 보면 혀를 내두른다. 위로는 고전의 문헌에서부터 아래로는 재료의 맛과 질에 대해서까지, 그리고 다른 나라의 비슷한 음식들과 비교와 차이까지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여 썰을 풀고 있었다.


두 번째로 내가 느낀 것은 실제적으로 음식의 맛을 묘사한 대목은 적었다. 18개의 음식점을 리뷰하며 342쪽을 소모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는 가게의 음식만을 설명하고 있지 않았다. 주인과의 심도 있는 인터뷰를 통해서, 재료에 대해서, 그리고 식당의 역사에 대해서, 시대상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즉 '음식'만을 위한 리뷰가 아니라 '노포 그 자체'를 리뷰하고 있었다. 노포의 세월과, 노포의 역사, 음식의 재료와 공수, 서비스 등등 여러 가지 다방면적으로 식당을 소개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부분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었다.


나 역시 식당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리뷰하러 가는 경우도 몇몇 있는데, 이때 나의 리뷰의 포인트는 음식에 집중을 했었었다. 그러나 사실 음식을 메인으로 한 리뷰는 한계가 있다. 맛있는 부분을 묘사하는 것에는 아무리 길게 쓴다 한들, 한계가 있다. 따라서 나도 초대받아서 리뷰를 하는 경우에는 음식의 맛도 리뷰하겠지만, 가게 주인과 대화를 많이 나눠서 가게를 운영하는 철학과 재료의 공급 등등 그런 부분도 심도 있게 설명해야겠다 느꼈었다.


내가 책을 읽으며, 오래가는 음식점, 노포들의 공통점을 추려 봤는데 다음과 같다.


1. 가게의 철학이 있으며, 가게만의 철학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2. 가게의 중심은 지키되, 시대적으로 변동된 음식 취향을 참고한다.

3. 주인이 편하게 쉬지 않는다. 특히 포스 있는 집들은 주인이 요리를 담당하고 있다.

4. 종업원들을 쉽게 자르지 않는다. 그만큼 주인의 덕이 돋보인다. (20~30년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분들도 많다.)

5. 최상의 재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재료 공급처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

6. 선대의 맛을 보존하려고 애쓴다.

7. 가게가 허름하더라도, 음식은 굉장히 깔끔하게 손질하여 낸다.

 

사실 우리나라 요식업은 그 역사가 짧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 소개된 가게들의 역사만 읽더라도, 근현대의 여러 역사들이 맞물려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 노포들을 기록한 이 작은 에세이는 읽기에 따라서, 음식으로 본 근현대사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지 않나 싶다.


그리고 숱하게 나와있는 맛집 소개서들은 몇 백 개의 음식점을 그저 팸플릿처럼 소개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딱 18개의 업체만 소개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소개하는 것이 아닌 가볍게 스쳐서 알려주는 것이 아닌, 맛깔지게, 역사성 있게, 음식의 지식을 동원하여 해박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토리가 있는 에피소드가 살아있는 이 책의 썰이 좋았다.


특히나 술 먹고 내가 단골처럼 해장하던 청진옥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 잘 알게 됐었다. 아버지가 주로 갔던 용금옥에 대해서도 알았고, 고향인 대구의 유명한, 상주식당의 추어탕과, 육개장 맛집 옛집식당도 굉장히 반가웠다. 그 외 내가 모르던 열차집이라는 곳과 부산의 맛집들, 특히 서면의 마라톤집은 꼭 가고 싶은 집으로 찍어놨었다.


확실히 요리사인 박찬일이라 그런 것일까, 부담 없고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그리고 글 만으로도 꼬르륵거리게 잘 써논 것 같았다.


책의 편집도, 마음에 든다. 손 때가 잘 묻기 쉬운, 마모되기 쉬운 종이로 겉지를 만들어서 남들은 책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런 편집이라서 '백년식당'이라는 콘셉트에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책의 겉지가 좀 마모되면 어떠랴, 백년식당 이라는 이름처럼, 다소 좀 흐트러지고 닳더라도, 어울리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내가 알고 있는 오래된 집들이 대거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도 강원도와 전라도의 오래된 맛집들이 없다는 점도 아쉬웠다. 이 부분은 필자도 아쉬움을 토로한 부분인데, 나도 읽으면서 다소 아쉬웠다. 후에 속편을 발행한다면 더 많고 다양한 집들을 소개해줬으면 하는 기대감도 있다.


너도 나도 식당을 하는 시대, 그래서 흔해진 것이 요식업이지만, 맛집 블로거들에 의해, 맛집에 대한 위상도 높아진 것이 지금의 식당업의 현주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식당 일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런 부분을 이 책을 통해서 읽어낸 것 같았다. 단지 여기에 소개된 집들이 궁금해서 이 책을 사는 이유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을 보는 독법은 다양하다. 나처럼 책을 읽으며 나의 리뷰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특히나 요식업을 하시는 분들의 눈으로 보자면, 왜 이 노포들이 살아남고 인정받는가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부분들도 많다.


분명 노포라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래된 것이 살아남으려면 역사성도 중요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성에 못지않은 깊이다. 한결같이 내려오는 깊이와 역사성 이 둘을 갖췄을 때, 우리는 그 집을 진정한 노포라고 칭할 수 있겠다. 숱한 식당은 많지만 '역사'와 '깊이' 둘을 가진 식당은 흔하지 않다. 그런 부분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이 집들은 '깊이'와 '역사'가 서려 있는 집들이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나라에도 '백 년이 된 역사와 깊이가 서린 식당'이 많아지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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