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서재
소준섭 지음 / 어젠다 / 201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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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괜찮았던 책이다. 다만 책의 제목 <왕의 서재>보다는, <왕의 공부>라고 이름 지었으면 더 적절할 것 같았다. 이 책의 주요한 논의는 바로 왕이 어떤 책을 보고 어떤 수업을 받으며,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대해 서술해 놓은 책이다.

대중을 의식한 교양서 치고 상당히 깊은 부분까지 치고 들어갔다.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엔 좀 부담스러울 수 있겠으나, 깊은 내용이더라도, 생각보다 서술이 평이해서 관심만 있다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비슷한 종류의 책인 <제왕의 책>과 비교를 해 보자면, <제왕의 책>에서는 어느 한 국왕과 제왕이 아꼈던 책을 엮어서 전개했지만, 이 책은 그런 다소 미시적 관점보다는 거시적인 왕가의 교육에 사용된 통합적인 제왕학 책과 더불어, 왕가의 교육, 경연에 대한 부분까지도 고찰하고 있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비단 우리나라의 제왕학이 아닌, 중국의 제왕학에 대해서도 서두에 비교하며 밝히고 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다만, 저자는 강희제의 예를 들어, 그가 호학 군주였다는 점과, 서책을 가까이하고 서책들을 정리하여 <사고전서>를 추려낸 건륭제의 업적의 토대를 마련한 문화의 군주라고 말하지만, 이 부분은 깊이 들어가 보면 사실 그렇지 않다.

건륭제의 <사고전서>는 건륭제가 자행한 문화적 압박과도 같다. 물론 건륭제가 세상에 떠도는 많은 경전들을 추려 내어, 국가적으로 <사고전서>라는 방대한 정리를 했다는 점은 맞지만, 그 <사고전서>의 규정에는 '보이지 않는' 사상의 차별과, 건륭제에 취향에 부합되지 않은 사상들의 책은 모두 소거시키고 말소시키려는 이면도 숨어 있다. 혹자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건륭제의 <사고전서> 편찬이라는 문화적으로 봤을 때 방대한 서적을 포함하여 책의 전집을 만들어, 사상과 문화를 한층 더 크게 진흥시켰다고 칭송하겠지만 (아니 대부분의 중국 논문에서는 그렇게 예찬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 사실 실상을 들여다보면, 문화적, 사상적인 획일성에 입각하여 정리된 사상적 탄압으로도 볼 수 있는 사실이다. 막말로 건륭제의 규정에 부합되지 않는 책들의 운명으로 본다면 이 <사고전서> 편찬을 칭송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은 얼마 전 리뷰를 남긴 천쓰이 선생의 <동양 고전과 역사 비판적 독법>에서 깊이 있게 설명되어 있다.

혹자들은 건륭제의 <사고전서>와 강희제가 무슨 상관?이라고 물을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 건륭제의 <사고전서> 편찬은 강희제의 문화 진흥 정책의 실질적인 결과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건륭제가 자행한 획일적인 문화적 가압(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과도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아무튼 이 점의 해석이 다소 아쉬웠었다. 책의 구성은 제왕학, 왕의 학문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제왕학에 사용된 책들에 대해서, 그리고 역대 왕들이 어떤 책들을 공부했는지 이야기하며, 역대 왕들이 했던 경연과 그 경연 기록들을 몇 부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종과 정조에 대한 예시를 들어 책의 결론을 마친다.

재미있는 점은 중종이 <대학연의보>를 모두 완독을 했다는 것이다. 중종이란 군주는 별로 두각이 드러나지 않는 군주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생각 외로, 경연에 충실했고, 많은 책을 읽은 군주였었다. <대학연의보>는 <대학연의>에서 치국평천하가 없어서 그것을 보충한 책으로 160-_- 권으로 된 방대한 책이다. 기존의 <대학연의>가 43권, 이 책도 엄청 분량이 많아서 역대 왕들은 경연을 할 때 1년 이상을 소모했던 게 정상인데, <대학연의>와 <대학연의보> 둘 다를 '경연'으로 완독한 군주는 중종뿐이라고 했다. 아무튼... 그렇게 열심히 경연에 책을 읽었다만... 역사에 뚜렷한 치적을 남기지 못한 중종에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경연의 가장 열정적인 군주는 세종이나 정조가 아닌 성종이었다. 실제로 성종은 하루 3번 경연을 '무조건적으로' 실천한 배움에 근면한 군주였다.

책을 보며 느낀 것은 역시 책을 많이 본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중종에게서 봤다. 세종이나 정조는 호학 군주긴 했으나, 그 지식을 활용하는 측면에서 중종보다는 성종이, 성종보다는 정조가, 정조보다는 세종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어림풋이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책의 무용론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보편적으로, 뛰어난 인물들이나 업적을 남긴 인물들의 공통점은 '책'을 많이 읽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 지식을 지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잘 활용하는 것. 거기에 독서의 효용은 있다는 뻔한 결론이 도출됐다.

최근 고전 교육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쪽도 있다. 이지성을 필두로 한 고전이야말로 전부고 모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입장, 그리고 그 반대 고전 무용론, 고전은 허세라고 하는 쪽도 있다. 가벼운 책만 보자, 두꺼운 책은 사람 잡는다, 책만 볼 수 없다 등등의 주장들...  책의 유용론과 무용론의 논쟁과 같은 취지이지 않나 싶다. 양쪽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는 생각한다. 지식으로 그칠 바에는 고전이라는 어려운 텍스트를 읽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스스로 정리할 수 있으며, 깨달음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현실적 행동으로 이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적극 고전을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 부분을 고전을 가까이한 두 군주 중종과 세종에게서 느꼈었다.


어쨌든 책은 왕가의 교육, 특히 텍스트에 입각한 교육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정리된 개론서이며, '제왕학'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잘 정리가 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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