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조건 - 현대의 리더가 조선의 군주에게 배우는 33가지 지혜
김준태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래 본 자기 계발서 중 가장 좋은 책이다. 다소 번잡스럽지 않고, 간결했으며 핵심만을 잘 이야기한 책이다.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역대 왕들의 행동과 그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리더십의 정수를 뽑아낸 책이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동양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다.

저자는 리더에게 있어 가장 좋은 가르침을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리더'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현세의 리더는 아직까지 평가가 상반되는 부분이 많으니, 비교적 평가가 정확한 조선의 왕들을 기초로 하고 그 왕들의 업적이나 행적들을 적은 <조선왕조실록>이 좋은 사료라고 말하며 <조선왕조실록>에 의거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리더십의 정수를 33가지의 덕목으로 거슬렀다. 대체적으로 문체는 간결했고 번잡스럽지 않아서 좋다.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이 좋은 문헌이고 귀중한 문헌임엔 맞지만... 그렇다고 그걸 다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치 불교의 팔만대장경을 다 보겠다는 것과 같지 않을까? 아무튼 저자의 요약 정신이 돋보였다. 문체 역시도 간결했다.

혹자들은 말할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의 군왕들에게 배울 것이 뭐가 있는가? 대체적으로 현군보다 암군이 많았던 조선시대의 임금들에게, 과연 배울 것이 있는가?라고 이야기할 법도 하지만, 사실 개차반 군주라고 해서 배울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개차반 군주의 악행을 반대로 하기만 해도, 현군은 안 될지라도, 어긋나는 군주는 되지 않는 법이니까, 따라서 군주의 악덕 역시도 거울로 삼아 본보기로 해야 함이 옳다.

그럼 <조선왕조실록>을 추린 그 33가지 항목 중에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느냐? 내가 살펴본 바로는 아니었다. 다른 자기 계발서들이 하고 있는 말들과 똑같은 말들이 많았다. 즉 '뻔한 말들과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리더는 리더의 자리에 있는 자만이 현실적인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그렇게 떡밥에 낚인 사람들은, 정작 그 조선 왕들을 분석한 결과 특별한 점이 없다는 것에서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이 책 역시도 그저 그런 책이라고 덮어 버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은 가장 통속적이고 알려진 자기 계발의 법칙이 바로 '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특별하지 않은 것, 이미 듣고 들어서, 귀에 딱지가 날 법한 잔소리 같은 그런 자기 계발서의 법칙들, 그 옛날 임금들이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다를 것 없다. 우리는 답을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할 뿐이다. 실천하지 못하는 심리와 변명 속에서 뭔가 '새로운' 느낌과 인상을 줄 수 있는 그런 경구나 문구들을 찾아다닌다. 이미 통속화된 자기 계발서들이 숱하게 주장하는 그런 말들은, 맞는 말이다. 다 맞는 말이다. 공감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에이 뭐 별건 없네 이 책도.'라는 이중적인 마음이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책의 머리말과 목차를 보며, 나 역시도 그런 '신선한 경구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그 뻔하고 뻔한 자기 계발서에서 주장하는, 여러 책에서 재탕 삼탕 하는 그런 잔소리와 같은 말들에 대해서, 어쩌면 그 말들 역시도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느꼈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을 아주 뛰어난 기록이고,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아주 잘 나타낸 기록이라고 하며 이 책을 썼다.

그러나 이 책을 근본으로 쓴 <조선왕조실록>은 객관적인 역사의 기록이 아니다. 그 책에 나온 왕들의 행적은 때론 사관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기록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실록>을 무시할 수도 없다. 이 부분은 모든 역사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역사라는 존재는 한없이 주관적인 기록이다. 역사에 있어서, 불신을 할 수 있겠고,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도 존재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텍스트가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어느 나라에도 이렇게 소상하게 왕의 행적을 기록한 것은 없고, 사관은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벗어나진 못해도, 자기 딴에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했고, 왕들의 권위에 눌리지 않고, 소신껏 기록한 문헌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그리고 그 기록이 태조부터 한 왕조가 끝나는 시기까지 이어진다. 이런 문헌은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 없다. 다른 나라에서 전해져오는 주관적인 기록들에 비해 <조선왕조실록>은 나름대로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많이 노력한 텍스트다.

까놓고 말해서, 한없이 역사를 부정적으로 본다면,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를 믿을 건더기가 있겠는가? 비록 주관성이 조금 개입됐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을 후세는 잘 가려내 해석하고, 잘 가려내서 사실을 밝히며, 그렇게 역사의 진실을 탐구하고, 올바른 역사를 배워나가야 한다. 한없이 시니컬하게, 역사를 편파적인 기록이라며 부정하는 입장에 취하는 것 역시 안 좋은 태도임에는 분명하다.

따라서 나는 이런 시도가 좋다고 생각했다. 방대한 고전을 바탕으로 한, 자기 계발서를 쓴 것, 시중에는 고전을 모토로 한 여러 자기 계발서가 출간됐지만, 대체적으로 성찰보단 상업적인 부분이 많다. 이 책도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해석될 수 있고, 다소 가벼운 부분에서 그런 상업적인 모습도 보이지만,

내가 봤을 때는 나름 잘 요약했다고 생각했다. 조선 왕들을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니라, 때론 부정적인 모습들도 잘 조명하며 아쉬움으로부터 올바른 덕목을 도출하는 서술도 좋았다. 내용? 그냥 뻔한 자기 계발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33개나 읊어주고 있다고 보면 된다. 특별한 것도 없으니 그런 '신선한' 내용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뭐... 큰 감흥을 못 줄 것 같은 책이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논문에 <잠곡 김육의 실용적 경제사상 연구>, <호정 하륜의 정치사상 연구>, <현대 정책 이론의 관점으로 본 조준의 경세론 연구>, <정조의 정치사상 연구> 등의 연구 논물을 썼다. 대체적으로 현실 중심적인 이념을 가진 정치인들을 조명한 것 같다. 김육과 정조의 경우는 다소 이상적인 경세가에 둔다 할지라도, 조준과 하륜의 경우는 현실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경세가다.

저자 자체가 현실 정치에서 조선 시대를 경장했던 사람들을 집중 조망했다고 하는데, 책의 내용 역시도 현실 우위론적인 서술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름 현실과 이상 두 부분에 대한 해석이 편파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소 마음 편하게 봤던 것 같다.

선물 받은 책인데, 가볍고, 읽기 편하고, 예시로 든 것들이 <조선왕조실록>에 예시들이라서, 나름 내 취향과도 맞았다. 따라서 뻔한 소리 뻔한 이야기를 33개의 항목으로 나눠서 짧고 간결하게 설명한 책이다. 사람에 따라 이 책을 보며, 뻔한 소리 뻔한 이야기를 한다고 할 수 있겠으나, 나는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한 자기 계발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자기 계발서조차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뻔한 소리를 한다는 것은, 옛사람과 현대인의 리더의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앞서 말한 대로, 가장 평이하고 가장 뻔한 소리야말로, 올바른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뻔한 말이 대중에게 뻔하게 인식된 것은 그만큼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어쩌면 그 뻔한 소리를 행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닐까? 뻔한 소리로 인식된 덕목들은 사실 알고 보면 지키기가 꽤나 어려운 것들이 대다수다. 아는 것은 쉬워도 행동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 떠오른다. 다소 짧은 분량의 책, 어렵지도 않은 책이라 빨리 볼 수 있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봐도 무방한 책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