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지록 (양장) - 큰 뜻, 짧은 말로 천고의 심금을 울리다
사토 잇사이 지음, 노만수 옮김 / 알렙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오래간만에 고전 리뷰다. 가장 주제가 난해하다고 할 수 있는 주제 '잠언집'을 리뷰하려고 한다. 이 책은 사토 잇사이라는 일본의 대유학자가, 40년의 세월 동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쓴 글귀들이 담겨있는 책이다. 책의 제목은 <언지록>이라고 나와있는데, 사실 원제는 <언지사록>이라고 불리고 있다. <언지사록>은 <언지록>, <언지후록>, <언지만록>, <언지질록> 등 4권으로 구성됐다. 이 책은 이 4권을 모두 번역한 책이다.

책의 주제는 뭐라고 집어 낼 수 없다. 처세를 비롯해, 학문, 독서, 생활, 수양, 마음, 정치, 등등 여러 부분에 있어 사토 잇사이가 생각한 경구들을 기록한 책이다. 우리는 이런 책을 '잠언집'이라고 부른다. 다소 짧은 경구의 글들로 이루어졌고, 저자의 진솔한 내면의 언어로만 기록된 책인데, 이와 비슷한 책으로는 중국의 <논어>를 비롯한 <노자> 그리고 <채근담> 등이 있겠고, 우리나라에는 정조 대왕이 쓴 <일득록>이라는 잠언서와, 퇴계 이황이 쓴 <자성록> 등이 있다. 서양으로 가면 아루렐리우스의 <명상록> , 루소의 <수상록>, 쇼펜하우어의 <인생록>, 귀치아르디니의 <회상록>, 등등이 있다.

다소 이런 깊은 체험적인 성찰을 짧은 경구로 쓴 것을 어려운 말로 한다면 '아포리즘'이라고 명명하는데, 나는 이런 다소 어려운 용어를 쓰는 것을 지양하는 편이라서, 그냥 '잠언'이라고 명명하겠다. 아무튼, 이 책은 일본 유학계의 거두, 사토 잇사이의 잠언이 담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잠언서들과 다르게, 사토 잇사이의 <언지록>은 독특한 특징이 있다. 바로 40대부터 쓰기 시작해서 80이 넘어서까지 이 책을 서술했다는 점이다. 즉 사람 인생의 반평생의 철학이 녹여든 책이라고 할 수 있겠고, 그런 삶의 울림 때문인지, 메이지유신을 일궜던 사무라이들 역시 이 책을 숙독했으며, 현재 정계나 재계에 있는 일본의 거장들 역시 이 <언지록>을 '인생의 책'으로 격상하여 보고 있다.

일단 모든 책의 내용을 다 담으면 리뷰하는데 끝이 없으니 압축해서 담아보겠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균형감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잠언서들과 비교를 해도 되겠으나, 일단 우리나라의 유학계의 거두 퇴계의 <자성록>과 비교를 한 번 해 보겠다. 퇴계와 사토 잇사이는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둘다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울대학교 국립대학 총장을 지닌 그런 경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두 학자 모두가 유학자이므로, 아무래도 비교를 해 볼 법하다고 여겼다.

일단 <자성록>은 다소 형이상학적인 고찰이 많이 드러난 부분이다. 사실 <자성록>은 퇴계의 잠언이라기보단, 당대의 문인들과 학구적 논쟁을 한 편지들을 모아 엮은 책인데, 그래서인가 다소 형이상학적인 고찰이 많다. 가령 사단칠정에 대한 논의, 기대승과의 논쟁의 서부 터 시작해서, 여러 유학자들과의 논의를 담은 책인데, 솔직하게 말해서 이 <언지록>에 비해 상당히 심오하고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더불어, <자성록>이란 책은 철저하게 주자의 관점을 존중한 책이다.

반면, <언지록>의 경우는 다소 형이하학적 고찰이 많이 드러난다. 용어 자체가 굉장히 간결하며, 일상용어들로 자신의 느낀 바들을 적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현실 중심적인 철학을 대변하고 있진 않다. 잇사이는 어쨌든 관학의 총장을 맡고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주자학을 존숭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양명학을 존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 그는 주자학이 옳으니 양명학이 옳으니 논쟁하기보다는 각자 장점을 취하여 발전하면 그만이다.라는 중도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내가 봤을 때는, 사토 잇사이는 양명학 학자인 것 같았다. 그의 글에서는 물론 정통 주자학적인 사고도 보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양명학에 대해서 굉장히 긍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양명학은 유학의 일파로, 다소 주자학에 비해 실천 중심적인 학풍이며, 주자학의 사변적 논의에 비해서는 다소 담박한 느낌의 사상이다.

일본 사람들의 가장 큰 장점은 뭘까? 바로, 장점들을 모두 흡수하여, 자국화하는 능력이 굉장히 탁월한 민족이다. 그러한 이론적 철학을 정립시킨 것이 <언지록>이 아닌가 싶다. 겉으론 주자학을 존중하는 것 같으면서도, 양명학의 부분을 인정하는 부분에서 잇사이의 균형 감각을 볼 수 있다. 즉 뭐가 좋은지 공리공론으로 따지지 말고, 좋은 것만 그냥 받아서 발전시키자.라는 실용주의 관점이 돋보인다.

잇사이의 중도주의 관점은 책에서 몇몇 구절들로 나타나는데, 가령 '실력이 없는데 명예를 너무 쫓지도 말고, 실력이 있는데 너무 명예를 거부하지도 말라.'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무조건적으로 명예를 거부하는 것 역시도 나쁘다고 하고 있다. , '명리를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자기만을 위해 쓰는 것이 문제다.' '이익을 얻는 게 어찌 악하다고만 하겠는가? 단지 자기 혼자만 독점하면 곧바로 다른 이로부터 원망을 사는 길이다.'라는 부분에서 동양 전통에서 명리를 나쁘게 인식하는 것과는 다소 반대적인 입장을 두고 있다.

'위정자의 개혁에도 때가 있다.'라는 부분에서, 개혁은 필요해도 시기가 중요하고, 적당한 시기에 개혁을 하지 않고 서두르면 모든 것을 망친다는 부분 역시도 음미할 만 했다.

아무튼 기존 유학적인 사고관을 그대로 종용하는 경구들도 보이지만, 무비판적으로 존숭하지 않으면서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부분이 돋보였다. 특히나 가장 놀라웠던 점은

도라는 것은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중국은 미리 그 도(유학)를 밝혔을 뿐, 중국이 먼저 밝혔다고 해서 성인의 국가, 성인들만 있는 국가인 것은 아니다. 중국도 악인들이 있고, 오랑캐로 취급받는 나라에서도 성인은 있으며, 악인이 있는 법이다. 이것은 모든 역사가 그렇다.라는 논지를 전개했는데,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주체적으로 유학을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솔직히, 주자의 권위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개혁군주 정조의 사고 관념에도, '주자'가 중심에 있었으며, 그것은 근대를 이루기 전까지도 지속됐던 것이었다. 그러나 잇사이는 이런 주자의 권위에 의문을 표한다.

'옛날 주자학파라고 하는 자들은 고루함에 빠져 있다. 오늘날 주자학자라고 칭하는 이들은 잡박함에 빠져 있다. 오늘날 양명학을 잘 참작하여 주자학 말류의 폐단을 구하는 것이 좋다.'

이런 부분에서, 잇사이는 주자학의 권위에도 눌리지 않고, 양명학을 대변하며, 상호 보완적인 유학 발전을 일궈낸다.

물론 잇사이의 이 <언지록>에도 모순은 있다. 그는 유학의 관점에서 주자학과 양명학만을 인정했을 뿐, 서양 양학에 대해서는 초기에 부정적인 눈초리를 보내며 거부해야 하는 학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80세에 기록한 <언지질록>에서는 서양의 과학 기술 문명에 대해 어느 정도 애매하게 포용하려는, 관점을 내비친다.

특히 그의 후학들은 주자학자와 양명학자가 고루 배출되는데, 막말 일본 선각자인, 사쿠마 쇼잔의 문하에서 가쓰 가이슈, 사카모토 료마, 요시다 쇼인, 고바야시 도리사부로 등의 다수 메이지 유신의 인물들이 배출된다. 그리고 그들 역시 잇사이의 <언지록>을 심취했다.

물론 잇사이는 유학적 관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유학적 관점, 주자학적 관점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양명학과의 조화를 통해, 교리적 주자학과 실천적 양명학의 조화를 이뤄 유학을 발전시키려고 했다. 그 균형감각이, 서양 지식에까지는 미치지 못한 한계는 있지만,

그의 후학들은 그의 <언지록>의 사상, 균형감각을 더욱더 발전시켜서, 동양의 유학적인 학풍과,
서양의 지혜 역시도, 균형감 있게 인식하고 습득한다.
그 결과 일본은 빠른 근대화로 나아 갈 수 있었고, 동양의 어느 나라보다도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는 배경이 있었다.

즉 일본의 장점, 좋은 점을 자국 화해 내는 능력을, 이론적 잠언(아포리즘) 철학으로 확립시킨 저작이 바로 <언지록>이다. 책의 주제는, 여러 처세와 여러 부분을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마음을 수양하는 것을 가장 최고로 두고 있으며, 바른 마음 맑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한 유학자의 성찰적 잠언이 담긴 책이다. 특히나 그런 잠언집을 40년 반 평생 써오며 교정한 책이라는 점에서, 그냥 내뱉은 말이 아닌, 잇사이가 필사의 노력과 각고의 심혈을 기울여 쓴 문구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동양 철학이라고 하면, 중국 철학과, 우리나라 자국의 철학만을 최고로 여기고 일본 철학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나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며 나는 정말로 반성했다. 도는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잇사이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의 인식에는 반일 감정이라는 감정적인 부분 때문에, '일본 철학'을 굉장히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 책을 보니 확실히 일본 철학만의 매력이 있다. 첫 번째 쉽고, 두 번째 간결하고, 세 번째 그러면서도 깊다. 이것은 현대의 일본 저서들의 특징이기도 했다. 아무튼 <언지록> 이 책은 굉장히 좋은 책이다.

다만 이 책의 첫 장에 대해서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첫 장은 사람은 정해진 운명이 있고, 노력해도 자신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다소 운명론적인 관점이 있는데, 나는 이에 대해 절대 수긍하지 않는다. 잇사이도 <언지록>에 이렇게 말했다. '다른 것은 양보해도 뜻만큼은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했는데, 나는 이 구절을 여기에 적용하고 싶다.

아무튼 이 부분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격언들에게서 깊은 울림을 받았다.

나는 이 책을 솔직하게 말해서 좋은 감정으로 만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 친구와 오사카에서 이야기를 하다 싸우면서, 알게 된 책인데, 이제야 이 책을 완독했다. 그때는 이 책이 참 꼴보기 싫었는데, 지금은 그렇게라도 이 책과 만나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까지 생각된다. 이 책을 통해서 마음을 닦고 배운다는 것,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많이 생각했다. 깊은 울림을 가진 책이고, 굉장히 좋은 저서다. 이렇게 좋은 책이 1쇄에 머물렀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 게다가 리뷰도 거의 없다... 애석할 다름이다.

일본인, 일본인의 장점, 일본인의 강점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깊이 있게 숙독할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한 번 보는 것에 의미를 두지 말고 재독하고 재독 하길 권한다. 이것은 모든 잠언서들에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