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득록, 정조대왕어록
남현희 엮음 / 문자향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정조대왕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의 어록집인 <일득록>은 너무나도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한 권이며,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경구나 문구가 많기 때문에, 나는 주기적으로 <일득록>을 읽으며 스스로를 반성한다.

 

 정조를 만났던 것은 국사 교과서 학교에서 말하는 탕평에 대한 부분으로 만났었다. 대체적으로 개혁 군주라는 칭호를 지닌 그였지만, 내가 바라본 정조의 모습은 개혁을 하긴 했으나, 시대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하고, 주자와 유학에 근거한 개혁이라는 점이 한계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의 어록을 보지 않았으나, 어느 날, 그의 어록 <일득록>을 얻고 나서는 그를 다시 보게 됐다. 특히 독서에 대한 그의 어록은 정말로 깊은 울림을 준다.

 

'박람강기 만으로는 남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하다. 왜냐? 겉만 배우기 때문이다.'

박람강기 - 동서고금 책을 많이 읽고, 기억을 잘 하는 것을 이르는 말

 

'나는 평소 성색을 좋아하지 않아, 정무를 돌보는 여가에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로지 서적뿐이다. 그러나 패관의 속된 글들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들 문자는 실용에 무익할 뿐 아니라, 그 말류의 폐해는 마음을 바꾸게 하고 뜻을 방탕하게 하는 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세상에 실학에 힘쓰지 않고, 방외의 학문에 힘쓰는 자들을 나는 매우 애석하게 여긴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깊이 생각하고 분명히 분변하고 독실히 행하라"<중용> '책은 무턱대고 많이 읽는다고 좋은 게 아니다. 요모조모 따져보거나 이 책 저 책 참고하며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그래도 의심나는 것은 스승이나 벗들에게 물어서, 그 의심을 완전히 풀어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나의 살이 되고 나의 피가 된다. 눈 따로 입 따로 마음 따로 이렇게 책을 읽어서는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아무것도 남는게 없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은들, 생각이 깃들지 않으면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 다섯 수레 열 상자 책을 설렁설렁 대충 읽느니 보다는, 차라리 한 권 책의 절반이라도 깊이 읽어서 진정으로 터득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시경>에 '큰 밭을 일구지 말라, 잡초만 무성하리라.' 했다.

 

'책은 많이 읽으려 힘쓸 게 아니라 전일하고 정밀하게 읽어야 하며, 신기한 것을 읽으려 힘쓸 게 아니라 평상적인 것을 읽어야 한다. 전일하고 정밀한 독서 속에 자연히 폭넓은 이치가 들어 있게 마련이요, 평상적인 내용 속에 자연히 오묘한 이치가 들어 있게 마련이다. 요즘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대체로 많이 보려고만 들고, 정밀하게 읽는 데 힘쓰지 않으며, 신기한 것만 좋아하고 평상적인 것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쯤 하자, 사실 <일득록> 책에는 독서뿐만 아닌, 삶을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해 정조의 말(생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 솔직하게, 정조의 개혁, 그 개혁이 방향성과 한계성이 있다 할지라도, 정조 자체는 굉장히 노력한 군주라는 점,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다른 군주들과는 다르게 스스로를 이렇게 다잡으려고 노력했다는 점,

 

그런 점을 <일득록>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 아래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 했던 그는 일탈과 탈선의 길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스스로를 다잡았다. 독서나 사색을 통해, 흔들리는 마음을 잡았다. 방황의 합리화로 일탈을 한 군주가 얼마나 많은가 광해군과 연산군을 보라. 그러나 정조는 그런 위인들과는 달랐다.

 

물론 <일득록> 역시도, 다른 고전들과 같이, 뻔한 소리, 그리고 훈계적 어투 등등이 있다. 과연 이 조항들을 정조가 다 실천했을까?라고 아니꼽게 생각할 법도 하다. 사실 나는 <맹자>, <논어>등의 유학 경전을 읽으면서 이 인간들은 과연 이걸 다 실천했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일득록>을 읽을 때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글을 통해 정조의 마음을, 정조의 숨결에 아마 깊이 공감해서일까?

 

아무래도 영화 '역린'의 흥행 때문인지 정조에 대한 관심도 높은데, 영화에서 <일득록>에 대한 부분도 좀 다뤄줬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중용>을 주 테마 도서로 책정한 것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긴 하지만...

 

<일득록>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특히나 잠들기 전에, 이 책을 본다. 침상에 들어서 잠자기 전, 그가 한 말들을 한 두 구절을 읽고 잠자리에 드는데, 그때 나는 아마 오늘 하루를 반성하지 않나 싶다. 그 정도로 이 책은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학 경전 중 '<맹자> 만장 하'편에, 이런 말이 있다.

 

"한 고을의 선한 선비는, 그 고을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삼고, 한 나라의 선한 선비는, 그 나라의 선한 선비와 벗을 삼으며, 천하의 선한 선비는 천하의 선한 선비와 벗을 삼는다. 천하의 선한 선비와 벗을 삼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 해서 위로 올라가 옛사람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옛사람이 지은 시를 외우고 옛사람이 지은 책을 읽으면서도 옛사람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 그런 까닭에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위로 올라가 옛사람을 벗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 나는 정조를 국사 교과서에서만 보고, 짤막한 역사서에서만 봤었다. 그래서 정조를 피상적으로만 이해했겠지, 그러나 그의 글을 보고 나서는 그가 참 대단한 군주라고 생각했다.

 

이런 큰 군주더라도, 시대적 한계를 못 벗어난 것이, 개혁의 큰 틀에는 복고적 사고관이 있다는 점이 너무나도 아쉽다. 그러나 한계는 한계고, 정조 개인의 인품에는 분명, 현대인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최고 통치자가 쓴 글 서양에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있다. 비교해보자면 다소 <명상록>보다는 읽기 편하고, 쉽게 써진 글이라서 부담 없이 볼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책은 어려운 책이 아니라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꼭 추천을 하고 싶은 책이며, 성인들에게도 추천을 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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