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깃털만큼 가볍고 가벼운 책이다. 책의 크기도, 책의 쪽수도, 그리고 심지어는 책의 내용마저도 가볍고 가볍다. 질탕하고 난잡하고, 구속적이지 않은 일본의 성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종이를 읽고 있는데도, 배를 꼬르륵하게 만드는 이상한 마력, 입가에 침샘을 자극하는 책이다.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 이국풍의 여행, 그리고 먹는 것, 그리고 이성 3개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무라카미 류는 일본에서 알아주는 소설가.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 에세이와 같은 단편적 글의 모음집이라서, 저자의 경험담을 섞어 쓰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검색을 해 보니, 소설이라고 하는데, 나를 혼동시킬 만큼 책의 서술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무라카미 하루키와 더불어 일본 대중문화 소설을 이끌어가는 작가의 글로 현대 일본의 문학적 경향이 이 글에도 잘 나타나있다.

 

일본 소설에는 성적인 묘사가 많이 나타난다. 이 책 역시도 그랬다. 여러 여자들의 이야기, 자유분방한 그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남자들은 억류된 성적 판타지를 개방시키고, 여성들 역시 처음에는 거북스럽겠지만, 한편으론 그가 글 쓰는 주인공들에게 묘한 매력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책을 구성하는 두 축, 음식과 여성, 그것은 모두 이성과는 거리가 먼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요소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자유분방함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밝히고 있으며, 스스로 해외에서 많은 돈을 '낭비' 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선언은 부끄러움이나 참회가 아닌 자신감이었으며, 이 소설은 그 경험담을 기초로 하여 써진 이야기다.

 

소설의 구성은 짤막한 이야기들 32가지로 구성됐으며 각 이야기별로, 테마 요리와, 대표적인 여성이 등장한다. 테마 요리에는 아무래도 쉽게 먹지 못하는 요리들이 많으며, 일상적인 아이스크림이나 쇼콜라 등도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음식 삼계탕 역시도 있었으며, 삼계탕 이야기에서 나오는 여성은 한국인이었다. 그녀는 토플리스 바 (스트립바)에 나오는 급 좋은 여자였고, 주인공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삼계탕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뭐 다 좋은데, 우리나라 여성을 이렇게 스트립 걸로 묘사하는 부분에서, 개인적인 부분이지만 조금 거부감을 느끼긴 했다. 그것은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다.

 

엽기적인 음식들도 있다 '순록의 간'이라는 테마에서 이 이야기를 읽으며, 과연 생간의 맛이 어떨까라는 상상도 했다. 나는 비린 간 음식 같은 것을 잘 먹는다. 물컹물컹한 그 날것을 먹으면 온몸의 세포가 곤두서는 느낌, 그것은 그 옛날 원시인들의 생명의 근원을 먹는 그런 기분이랄까, 소설에서는 그 간을 먹을 때의 오묘한 기분을, 생명 그 자체를 먹는다고 표현했는데, 정말로 공감했다. 회나 날고기를 먹는 인간의 습성은 그 옛날 과거의 원시적인 인류의 모습이었고, 그 날것이라는 음식은 생명력이 가장 가까운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가정이 있는 남자와 한 여자의 관능적 섹스 이야기를 다룬 '양 뇌 카레'이야기, 실제로 인도에서는 그런 양의 생 뇌를 넣은 카레가 있다고 한다. 자꾸 포스팅이 뭔가 날것의 음식들로만 써 내려가는데, 캐비아를 비롯한 샥스핀, 스톤 크랩 요리 등등 험하지 않으면서 '고급스러운'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책의 제목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이것 역시 한 편의 제목이다. 이 편은 무스 쇼콜라 이야기인데, 외국에서 만난 가정이 있는 남자와 단 두 번의 관계가 있었던, 추억의 여성과의 짧은 만남을 다룬 이야기였다. 이곳에서 풍겨지는 지독한 부르주아적 냄새, 초호화 리조트의 묘사, 그리고 진귀한 요리들, 그리고 그녀와의 짧은 관계 등, 온갖 욕망의 판타지를 미화하여 잘 묘사하고 있다. 특히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한 말은 이 책의 전체 주제, 나아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너에게는 리얼한 사랑일지 몰라도 난 잘 모르겠어, 하고 나는 말했다. 누구와도 다른 아주 특별한 사랑을 했다고 생각하는 건 좋지 않아. 마음을 가볍게 갖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다음 연애를 할 수 없게 돼......"

 

사회적인 미덕으로 볼 때 이런 주의는 문제가 있다. 대체로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질타하고 '도덕'으로 규제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도덕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그 사회는 문란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사회지도층이 도덕을 외치면서 뒤로는 온갖 쾌락을 다 누리는 것은 이제 시민들에겐 너무 익숙해졌다.

 

솔직히 무라카미 류와 같은 이런 작가들은 그런 면에서 솔직하다고 볼 수 있겠다. 속 다르고 겉다른 위선자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쾌락을 이렇게 돌직구적으로 표현하는 것. 그런 면에서 그는 진솔했다고 생각한다. 문학이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자유분방함이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사회가 규정한 부분을 거부하고, 다른 부분에서 방향을 찾는 선구자들이다.

 

일본은 우리나라 사회 보단 굉장히 많이 개방적이다. 같은 도시라도 풍기는 냄새가 다르다. 책에서 느낀 이 가벼움은 내가 예전 오사카에 놀러 갔을 때, 한국에서 놀고 마셨던 공간과는 전혀 다른 냄새 그 냄새의 가벼움과 동질성이 있었다. 더욱더 육감적이었고, 더욱더 관능적인 공간이었다.

 

어느 부분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물론 사람은 도덕을 추구해야 함은 옳다. 그러나 겉으로만 도덕을 규제하고 억지로 규제할수록 인간은 일탈을 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런 제도적인 도덕 규제가 아닌 자발적인 도덕 화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도적인 규제를 하며 역기능 때문에 더더욱 뒤로는 문란한 사회가 된다면, 나는 차라리 대놓고 개방스러운 무라카미 류의 방식을 쫓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보기엔 이 책은 너무나도 거북스러운 책일 것이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이 책은 너무나도 부러운 책일 것이다. 작은 책에서 풍기는 현대판 귀족주의에 입각한 현대판 한량들의 모습은 우리의 대다수 일반적인 삶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가 꿈꾸고 있는 삶일지도 모른다.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고, 진귀한 음식을 원 없이 먹으며, 다양한 이성들을 만나보며 본능에 충실하는 것. 그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솔직하게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 책이 가지고 있는 가벼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두 가지 테마 이성적 본능과, 음식, 식욕과 성욕 두 원초적인 어쩌면 인간의 가장 동물적인 속성을 다룬 이 소설. 나는 그래서 이 소설이 개인적으론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의 테마를 잘 녹여 쓰고 있었으며, 더불어, 우리가 누릴 수 없는 현대판 한량의 귀족주의적 묘사가 돋보였고, 이국에 대한 경험을 녹여 쓴 배경 묘사도 뛰어났었다. 더불어 내가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을 상상하는 기분 만으로도 좋았었다.

 

그러나 이상은 이상, 과연 내가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의 삶처럼 살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이상적 욕망에 충실하겠는가?에 대한 물음은 No라고 하고 싶다. 이상은 이상이라서 아름다운 법이다. 이상이 현실이 되면 오히려 그 아름다움을 탁색 시키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추악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 경우가 바로 이 책의 삶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 정도전 - 순수 이성에서 예언자적 죽음으로의 여정
문철영 지음 / 새문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웬만한 정도전의 전기는 다 읽어봤는데, 이 책은 조금 독특한 면이 있었다. 다른 삼봉의 전기들은 대부분 삼봉을 미화하고 만병통치약으로 삼봉을 해석하고 있어서, 조금 아쉬운 부분도 들었는데, 이 책은 그런 삼봉의 '업적'을 밝히는 것이 아닌 삼봉의 '내면'에 입각한 서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영우의 <왕조의 설계사 정도전>은 아무래도 학구적이고 삼봉의 여러 업적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을 볼 수 있는 글이다. 논조가 차분하고, 합리적인 해석을 가하고 있는 좋은 평전이었다. 조유식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의 경우는 삼봉의 일대기를 가장 먼저 조망한 저서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은 대체적으로 삼봉의 일대기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덕일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는 배경 설명과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탁월했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던 책이었다.

 

이 책들 외에도 시중에는 지금 정도전 열풍 덕분에 삼봉에 대한 책들이 많이 넘쳐나고 있다. 나는 그 책들을 오프라인 서점에서 다 훑어봤는데... 사실 볼 만한 책들은 없었다. 그러나 이 책 <인간 정도전>은 달랐다. 일단 이 책은 삼봉의 업적을 밝히는 것이 아닌 책 제목 그대로, 삼봉의 문집 <삼봉집>으로 삼봉의 내면을 밝히고 있는 책이다.

 

책의 쪽수는 200여 쪽이라 금방 볼 수 있는데, 이 책은 내가 일독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금방 볼 책은 아니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일단 삼봉에 대한 서사적 전기 <정도전을 위한 변명>이나 <정도전의 선택> 둘 중 하나를 읽길 추천한다. 그리고 한영우 교수의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을 읽고, 끝으로 <삼봉집>을 읽기를 추천하는데, 바로 <삼봉집>을 읽을 때, 이 책을 같이 읽기를 추천한다.

 

이 책은 <삼봉집>을 토대로, 하여 여러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동원하여 삼봉의 내면을 읽어내고 있다. 그 이론에는 프로이트를 비롯한 지크 라캉, 그리고 귀스타브 르봉 등의 심리학자들의 논의가 있었고, 그 이론들을 통해 <삼봉집>에 나온 시나 서를 바라보며 삼봉의 내면을 읽어내고 있었다. 사실 <삼봉집>은 그냥 보기에는 힘든 텍스트다. 그러나 저자는 서시적인 흐름으로 삼봉집을 차근차근 고찰해나가고 있는데,

 

내가 주목한 해석은, 삼봉의 아버지 정운경에 대한 부분, 어머니의 핏줄은 한미했지만, 아버지의 그런 중앙 정치 진출이란 점은, 삼봉에게 있어서 하나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고, 아버지의 청렴함을 닮겠다는 것, 그런 부분들을 조목조목 <삼봉집> 정운경의 행장에서 찾아내고 분석해낸다. 그 행장 속에 글을 쓴 삼봉의 내면을 추적하며, 여러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참고해가며, 삼봉의 내면을 밝혀내는데, 어쨌든 의미 있는 해석이라 생각됐다.

 

삼봉에게 있어서 특히나 도은과 포은은 친구 이상의 벗으로 통용됐다. 일전 <삼봉집>을 보며 도은과 포은에 대한 정을 나눈 시문들이 많았다. 셋의 우정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으며, 양촌과 호정과도 시를 주고받은 것들을 통해, 이 청년기에 맺어진 사나이들의 우정과, 조직은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질풍노도의 정도전 역시도, 이들과의 사상적으로도 유대적으로도 깊은 공감력을 가졌다고 해석했다.

 

나 역시도 사실 지금 생각해보건대, 중-고등학교를 같이 보낸 이들, 페밀리라고 서로 부르는 9명의 벗들 이들은 절대적인 신임을 보내며 싸우더라도 서로에 대한 우정에 대해서는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아마도 정도전 역시도 그런 심리였으리라, 같은 교우를 넘어선, 우애. 특히나 포은이 말한 대로 삼봉은 누군가를 인정하지 않는 성격인데, 그런 삼봉이 도은과 포은, 그리고 양촌에게는 인정하며 벗으로 받아들였다고 이야기하는데 공감했다.

 

유배 시절의 해석 역시도 좋았다. 나는 드라마 정도전과, 다른 평전들에서는 유배 시절에 대한 해석을 빠르게 지나쳐서 조금 아쉬웠었는데, 이 책은 유배와 방랑의 시기를 두 테마로 나눠서 깊이 있게 해석하고 있었고, 불우했던 정도전의 내면, 그리고 흔들리는 지금까지의 사대부의 이념, 믿었던 동지들과의 헤어짐과 홀로 남겨진 그가 생각했던 것들을 <삼봉집>에서 찾아내서 심리학적으로 분석했는데 굉장히 뜨겁게 느껴졌다.

 

가장 놀란 부분은 포은은 유배 시절 연군가와 같은 색채의 여성스러운 시를 습작했었다. 일전에 나는 <포은집>을 보고 리뷰까지 남겼었는데 대체적으로 여성적인 어조가 많았었어는 데, 그 시도 <포은집>에서 본 시였다. 게다가 도은은, 유배가 풀리자마자, 수도로 오면서 직접적인 임금의 은혜에 대한 칭송 시를 남겼다. 삼봉은 그러나 유배 시기 절대로 연군가를 작성하지 않았다. 이 때부터 삼봉은 그들과는 노선을 달리했던 것 같다.

 

동정 윤소종을 제외하고는 사실 급진파 사대부들과 삼봉은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다. 책에서 삼봉은 괴로웠을 것이라고 그랬다. 책에 나온 <삼봉집>에 실린 꿈에서 도은이 나온 시, 파도에 물에 젖은 도은의 모습. 그것은 삼봉의 마음이었다. 결국 삼봉은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시를 짓고, 어린 시절 열정을 함께 했던 자신의 집단을 배신하고, 결국 조준과의 교류를 통해 노선을 바꾼다. 조준은 도은을 탄핵했고, 이 때 저자는 삼봉의 심리에 대해서 묘사했는데, 정말 공감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절친한 벗들끼리 당파 싸움이 이뤄져서, 두 패로 나눴을 때, 그랬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뭐 지난 추억으로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참 마음이 안타까우면서도, 배신에 치를 떤, 이중적인 마음이 있었었다. 그것은 사실 '아픔'이었다. 삼봉 역시도 그랬을 것이다.

 

양촌과 서로 책을 같이 읽고 술을 같이 마시며, 이웃하며 화목하게 살자고 맹세하고, 도은과 포은과는 우애 맹세가 <삼봉집>에 많이 묻어져 나왔었다. 그런 삼봉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서는 삼봉의 문집에서 벗들에 대한 '진심'이 그렇게까지 묻어져 나온 시들이 줄어들었다. 물론 그때는 조선을 건국하고 행정에 바빠서 시 쓸 여유가 없었겠지만 젊었을 시절, 자신의 불우했던 시절에도 의를 변치 않았던 친우들, 그런 친우들에게 맹세했던 진심과 같은 뜨거운 시는 없었었다. 그것은 나도 <삼봉집>을 봐서 대충 느꼈었는데, 저자도 그렇게 풀이하고 있었다.

 

도은이야 그렇다 치고, 포은. 그래도 삼봉은 포은을 끝까지 데려가려고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정몽주는 중도적인 입장이었었고, 공양왕을 옹립하는 데에도 동조를 했으니, 삼봉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당여로 생각을 했을 법도 하겠다고 책에선 말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산산조각으로 무너졌고 선죽교는 붉게 물들었었다.

 

또 한가지 책을 통해 느낀 점은, 조선 혁명파들이 새 왕조를 건국하고 나서, 부귀를 누리거나 안일하게 승리를 만끽할 수도 있겠지만, 정도전을 비롯한 급진파 인사들은 그런 부분에서 최선을 다해 왕조의 기틀을 세웠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해석도 돋보였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무사 안일주의를 또다시 생각하게 됐었다.

 

아쉬웠던 점은, 어쨌든 정도전과 이방원 정몽주에 대한 해석에서 정몽주는 이념형 인간 이방원은 권력형 인간, 정도전은 균형적인 인간인데, 과연 누가 더 우위의 가치에 있을까라는 저자의 물음과 결과적으로 이방원과 정도전의 비교 속에서 정도전의 손을 살짝 들어주는 부분에서는 솔직히 개인적으론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이방원은 물론 권력형 인간임에는 맞다. 그러나 그 권력을 탈취하고 나서, 이방원도 이방원 나름대로의 가치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 군주였다. 서로에 대한 가치가 다를 뿐, 정몽주도, 정도전도, 이방원도 어느 한 쪽이 우열하다곤 판단할 수 없겠다.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겠고, 그런 여지를 남겨놔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튼 나는 세 사람 모두 다 의미 있는 영웅의 삶이라 생각되고, 누군가가 더 위대하다고 판단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책은 정도전의 심리에 대해서 아주 소상하게 주관적이지만, 깊이 있게 잘 해석한 것 같다. 물론 한계점도 있다.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정도전의 심리에 적중한 다곤 할 수 없다는 한계, 그러나 나는 이러한 시도가 좋다고 생각한다. 일반론적인 해석과 아전인수 처럼, 정도전을 만병통치약으로 격상시키는 것보단, 이렇게 흔들리는 정도전의 내면을 재해석하는 서술. 이런 책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는 그 영웅에 대해서 깊이 있게 더더욱 깊이 있게 알 수 있고 정확하게 알 수 있지 않나 싶다.

 

아무튼 저자의 빼어난 해석과 더불어 <삼봉집>에 의거한 심리학적 분석이 아주 탁월했다고 할 수 있으며, 사실 여하를 떠나서, 인간적인, 흔들리고 고뇌하는 한 인간 '정도전'을 잘 그려냈다고 할 수 있으며, 글 자체에서 풍기는 느낌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삼봉집>의 안내서로 추천하고 싶다. 쪽수가 적은 책이지만 인간 삼봉의 '인간스러운' 내면이 들어있는 책이다.

 

정도전뿐만 아니라, 포은이나 이성계, 이방원에 대해서도 좀 이런 책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너무 정도전에만 저서들이 집중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日1食 - 내 몸을 살리는 52일 공복 프로젝트 1日1食 시리즈
나구모 요시노리 지음, 양영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삼 거론할 것이 없는 책이다. 작년 한 해를 돌풍으로 몰고 갔던 단식 책이었으며, 아마 내 기억으론 장기간 베스트셀러를 유지했던 건강 책이었다. 저자는, 일본인의 의사로, 단식 1일 1식을 통해 건강을 되찾은 경험이 있었고, 그것에 대해서 책을 남겼다.

 

책 자체는 일본인들이 저술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작고, 적고 심플하게, 그래서 책의 양 자체는 얼마 되지 않았다. 요지는 우리는 너무 많이 먹고 있다. 단식을 통한 부분으로 몸의 여러 부분을 청결하게 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서도 많이 먹는 것보단 적게 먹는 것이 좋다. 등등의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자기가 주장하는 것에 대한 의학적 근거 사례 등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특히 먹는 것뿐만 아니라, 디저트와 술에 대한 부분까지도 절제를 해야 하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현실적인 대처 방안까지도 남겼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디저트와 술은 비싼 것을 사 먹어서 조금만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 다소(??) 소주와 막걸리 맥주 등의 술을 많이 먹는 나로서는, 그럼 바에 가서 양주 등으로 가끔 목을 축이라는 것인데... 공감은 갔지만 과연 실천할 수 있을까...는 자신이 없었다.

 

다소 우리가 알고 있던 건강 상식과는 대조적인 주장을 한 것도 많았다. 가령 예를 들면 몸을 무리해서 따뜻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과, 밥을 먹고는 바로 자라고 하는 부분. 저자는 이 부분에서 가장 좋은 1일 1식은 저녁이라고 말했다. 동물을 예를 들며 동물 역시도 먹고 바로 자는 습성이 있는데, 인간도 이를 따르면 좋다고 하는데... 음... 건강해지려고 무리하게 운동을 하지 말라는 주장(그냥 자연스럽게 많이 걸으라고 한다.) 등등이 있었다.

 

확실히 지금 시대는 과거와는 다르게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고, 하루 3끼를 꼬박꼬박 먹는 것이 정형화된 시대다. 그러나 옛날은 다르다고 한다. 아침이라는 것은 사실 어린아이와 노인들, 위장이 약한 사람들이 먹었던 식문화지 지금 시대처럼 보편적으로 먹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의문이 드는 것이 그럼, 내가 어렸을 때 숱한 언론들의 '아침을 안 먹으면 돌머리가 된다'라는 논의와 이 논의 중 무엇이 맞을 것인가?라는 생각.

 

그러나 의문이 가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공감 가는 것들은 있었다. 가령 채소나 생선 등을 통째로 먹으라는 부분. 이런 논의는 구석기 다이어트 등에서도 나오는 논의인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느 부위를 먹는 것보단 이런 통째로 먹는 것이 완전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데, 효율적이라고 하는데, 동감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쨌든 하루에 밥을 지속적으로 먹는다면, 세포가 활성화되지 않고 대체적으로 활동량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인간이 절박해지면 모든 세포가 활성화된다는 부분,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는 먹는 것보단 비우는 것 역시도 중요하다고 하는데,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어쨌든 균형이 중요하다. 많이 먹는 것도 나쁘고, 그렇다고 해서, 극단적으로 안 먹고살 순 없지만, 지금 시대에는 너무 과욕을 부리고 많이 먹는 문화가 보편화됐으니, 단식을 통한 몸을 청결하게 한다는 이런 주장도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고 본다.

 

하긴, 예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건강하려면 소식을 하려는 격언 등도 있고, 서구에서도 이런 간헐적 단식에 대한 운동이 있다. 지금은 뭐 추세가 시들하지만, 아무튼 많이 먹는 것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고 이런 부분에 이런 책들이 나온다는 것은 아주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종류의 책 <클린>, <먹고 단식하고 먹어라>, <구석기 다이어트> 등이 있지만, 내가 봐 온 바로는 이 책과 <먹고 단식하고 먹어라> 두 권이 가장 좋았다.

  

아무튼, 저자의 책은 쉽고, 짧은 글이라 부담 없이 볼 수 있겠다. 게다가 저자가 의사라는 점 역시도 책의 신뢰도를 더 높여주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1일 1식은 솔직히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따라서 3끼가 익숙한 사람은 2끼에 먼저 익숙하려고 노력하고, 2끼가 익숙한 사람은 1끼 등등 이렇게 먹는 양만 좀 줄여나가는 것으로도 단식 효과를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3끼 먹는 사람이 갑자기 1끼 먹으면...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는가

 

나 역시도, 사실 먹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런 책을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아무튼, 저자의 논의를 다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일 년 중 어느 정도는 단식 기간을 마련해서, 실천한다면 좀 더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더불어 건강에 대해서 단식에 대해서 아직은 논쟁 중인 부분들도 확실하게 검증된 심화된 책이 발간되길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득록, 정조대왕어록
남현희 엮음 / 문자향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정조대왕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의 어록집인 <일득록>은 너무나도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한 권이며,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경구나 문구가 많기 때문에, 나는 주기적으로 <일득록>을 읽으며 스스로를 반성한다.

 

 정조를 만났던 것은 국사 교과서 학교에서 말하는 탕평에 대한 부분으로 만났었다. 대체적으로 개혁 군주라는 칭호를 지닌 그였지만, 내가 바라본 정조의 모습은 개혁을 하긴 했으나, 시대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하고, 주자와 유학에 근거한 개혁이라는 점이 한계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의 어록을 보지 않았으나, 어느 날, 그의 어록 <일득록>을 얻고 나서는 그를 다시 보게 됐다. 특히 독서에 대한 그의 어록은 정말로 깊은 울림을 준다.

 

'박람강기 만으로는 남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하다. 왜냐? 겉만 배우기 때문이다.'

박람강기 - 동서고금 책을 많이 읽고, 기억을 잘 하는 것을 이르는 말

 

'나는 평소 성색을 좋아하지 않아, 정무를 돌보는 여가에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로지 서적뿐이다. 그러나 패관의 속된 글들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들 문자는 실용에 무익할 뿐 아니라, 그 말류의 폐해는 마음을 바꾸게 하고 뜻을 방탕하게 하는 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세상에 실학에 힘쓰지 않고, 방외의 학문에 힘쓰는 자들을 나는 매우 애석하게 여긴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깊이 생각하고 분명히 분변하고 독실히 행하라"<중용> '책은 무턱대고 많이 읽는다고 좋은 게 아니다. 요모조모 따져보거나 이 책 저 책 참고하며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그래도 의심나는 것은 스승이나 벗들에게 물어서, 그 의심을 완전히 풀어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나의 살이 되고 나의 피가 된다. 눈 따로 입 따로 마음 따로 이렇게 책을 읽어서는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아무것도 남는게 없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은들, 생각이 깃들지 않으면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 다섯 수레 열 상자 책을 설렁설렁 대충 읽느니 보다는, 차라리 한 권 책의 절반이라도 깊이 읽어서 진정으로 터득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시경>에 '큰 밭을 일구지 말라, 잡초만 무성하리라.' 했다.

 

'책은 많이 읽으려 힘쓸 게 아니라 전일하고 정밀하게 읽어야 하며, 신기한 것을 읽으려 힘쓸 게 아니라 평상적인 것을 읽어야 한다. 전일하고 정밀한 독서 속에 자연히 폭넓은 이치가 들어 있게 마련이요, 평상적인 내용 속에 자연히 오묘한 이치가 들어 있게 마련이다. 요즘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대체로 많이 보려고만 들고, 정밀하게 읽는 데 힘쓰지 않으며, 신기한 것만 좋아하고 평상적인 것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쯤 하자, 사실 <일득록> 책에는 독서뿐만 아닌, 삶을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해 정조의 말(생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 솔직하게, 정조의 개혁, 그 개혁이 방향성과 한계성이 있다 할지라도, 정조 자체는 굉장히 노력한 군주라는 점,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다른 군주들과는 다르게 스스로를 이렇게 다잡으려고 노력했다는 점,

 

그런 점을 <일득록>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 아래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 했던 그는 일탈과 탈선의 길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스스로를 다잡았다. 독서나 사색을 통해, 흔들리는 마음을 잡았다. 방황의 합리화로 일탈을 한 군주가 얼마나 많은가 광해군과 연산군을 보라. 그러나 정조는 그런 위인들과는 달랐다.

 

물론 <일득록> 역시도, 다른 고전들과 같이, 뻔한 소리, 그리고 훈계적 어투 등등이 있다. 과연 이 조항들을 정조가 다 실천했을까?라고 아니꼽게 생각할 법도 하다. 사실 나는 <맹자>, <논어>등의 유학 경전을 읽으면서 이 인간들은 과연 이걸 다 실천했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일득록>을 읽을 때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글을 통해 정조의 마음을, 정조의 숨결에 아마 깊이 공감해서일까?

 

아무래도 영화 '역린'의 흥행 때문인지 정조에 대한 관심도 높은데, 영화에서 <일득록>에 대한 부분도 좀 다뤄줬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중용>을 주 테마 도서로 책정한 것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긴 하지만...

 

<일득록>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특히나 잠들기 전에, 이 책을 본다. 침상에 들어서 잠자기 전, 그가 한 말들을 한 두 구절을 읽고 잠자리에 드는데, 그때 나는 아마 오늘 하루를 반성하지 않나 싶다. 그 정도로 이 책은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학 경전 중 '<맹자> 만장 하'편에, 이런 말이 있다.

 

"한 고을의 선한 선비는, 그 고을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삼고, 한 나라의 선한 선비는, 그 나라의 선한 선비와 벗을 삼으며, 천하의 선한 선비는 천하의 선한 선비와 벗을 삼는다. 천하의 선한 선비와 벗을 삼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 해서 위로 올라가 옛사람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옛사람이 지은 시를 외우고 옛사람이 지은 책을 읽으면서도 옛사람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 그런 까닭에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위로 올라가 옛사람을 벗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 나는 정조를 국사 교과서에서만 보고, 짤막한 역사서에서만 봤었다. 그래서 정조를 피상적으로만 이해했겠지, 그러나 그의 글을 보고 나서는 그가 참 대단한 군주라고 생각했다.

 

이런 큰 군주더라도, 시대적 한계를 못 벗어난 것이, 개혁의 큰 틀에는 복고적 사고관이 있다는 점이 너무나도 아쉽다. 그러나 한계는 한계고, 정조 개인의 인품에는 분명, 현대인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최고 통치자가 쓴 글 서양에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있다. 비교해보자면 다소 <명상록>보다는 읽기 편하고, 쉽게 써진 글이라서 부담 없이 볼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책은 어려운 책이 아니라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꼭 추천을 하고 싶은 책이며, 성인들에게도 추천을 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군주의 조건 - 현대의 리더가 조선의 군주에게 배우는 33가지 지혜
김준태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래 본 자기 계발서 중 가장 좋은 책이다. 다소 번잡스럽지 않고, 간결했으며 핵심만을 잘 이야기한 책이다.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역대 왕들의 행동과 그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리더십의 정수를 뽑아낸 책이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동양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다.

저자는 리더에게 있어 가장 좋은 가르침을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리더'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현세의 리더는 아직까지 평가가 상반되는 부분이 많으니, 비교적 평가가 정확한 조선의 왕들을 기초로 하고 그 왕들의 업적이나 행적들을 적은 <조선왕조실록>이 좋은 사료라고 말하며 <조선왕조실록>에 의거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리더십의 정수를 33가지의 덕목으로 거슬렀다. 대체적으로 문체는 간결했고 번잡스럽지 않아서 좋다.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이 좋은 문헌이고 귀중한 문헌임엔 맞지만... 그렇다고 그걸 다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치 불교의 팔만대장경을 다 보겠다는 것과 같지 않을까? 아무튼 저자의 요약 정신이 돋보였다. 문체 역시도 간결했다.

혹자들은 말할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의 군왕들에게 배울 것이 뭐가 있는가? 대체적으로 현군보다 암군이 많았던 조선시대의 임금들에게, 과연 배울 것이 있는가?라고 이야기할 법도 하지만, 사실 개차반 군주라고 해서 배울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개차반 군주의 악행을 반대로 하기만 해도, 현군은 안 될지라도, 어긋나는 군주는 되지 않는 법이니까, 따라서 군주의 악덕 역시도 거울로 삼아 본보기로 해야 함이 옳다.

그럼 <조선왕조실록>을 추린 그 33가지 항목 중에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느냐? 내가 살펴본 바로는 아니었다. 다른 자기 계발서들이 하고 있는 말들과 똑같은 말들이 많았다. 즉 '뻔한 말들과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리더는 리더의 자리에 있는 자만이 현실적인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그렇게 떡밥에 낚인 사람들은, 정작 그 조선 왕들을 분석한 결과 특별한 점이 없다는 것에서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이 책 역시도 그저 그런 책이라고 덮어 버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은 가장 통속적이고 알려진 자기 계발의 법칙이 바로 '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특별하지 않은 것, 이미 듣고 들어서, 귀에 딱지가 날 법한 잔소리 같은 그런 자기 계발서의 법칙들, 그 옛날 임금들이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다를 것 없다. 우리는 답을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할 뿐이다. 실천하지 못하는 심리와 변명 속에서 뭔가 '새로운' 느낌과 인상을 줄 수 있는 그런 경구나 문구들을 찾아다닌다. 이미 통속화된 자기 계발서들이 숱하게 주장하는 그런 말들은, 맞는 말이다. 다 맞는 말이다. 공감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에이 뭐 별건 없네 이 책도.'라는 이중적인 마음이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책의 머리말과 목차를 보며, 나 역시도 그런 '신선한 경구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그 뻔하고 뻔한 자기 계발서에서 주장하는, 여러 책에서 재탕 삼탕 하는 그런 잔소리와 같은 말들에 대해서, 어쩌면 그 말들 역시도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느꼈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을 아주 뛰어난 기록이고,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아주 잘 나타낸 기록이라고 하며 이 책을 썼다.

그러나 이 책을 근본으로 쓴 <조선왕조실록>은 객관적인 역사의 기록이 아니다. 그 책에 나온 왕들의 행적은 때론 사관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기록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실록>을 무시할 수도 없다. 이 부분은 모든 역사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역사라는 존재는 한없이 주관적인 기록이다. 역사에 있어서, 불신을 할 수 있겠고,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도 존재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텍스트가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어느 나라에도 이렇게 소상하게 왕의 행적을 기록한 것은 없고, 사관은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벗어나진 못해도, 자기 딴에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했고, 왕들의 권위에 눌리지 않고, 소신껏 기록한 문헌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그리고 그 기록이 태조부터 한 왕조가 끝나는 시기까지 이어진다. 이런 문헌은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 없다. 다른 나라에서 전해져오는 주관적인 기록들에 비해 <조선왕조실록>은 나름대로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많이 노력한 텍스트다.

까놓고 말해서, 한없이 역사를 부정적으로 본다면,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를 믿을 건더기가 있겠는가? 비록 주관성이 조금 개입됐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을 후세는 잘 가려내 해석하고, 잘 가려내서 사실을 밝히며, 그렇게 역사의 진실을 탐구하고, 올바른 역사를 배워나가야 한다. 한없이 시니컬하게, 역사를 편파적인 기록이라며 부정하는 입장에 취하는 것 역시 안 좋은 태도임에는 분명하다.

따라서 나는 이런 시도가 좋다고 생각했다. 방대한 고전을 바탕으로 한, 자기 계발서를 쓴 것, 시중에는 고전을 모토로 한 여러 자기 계발서가 출간됐지만, 대체적으로 성찰보단 상업적인 부분이 많다. 이 책도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해석될 수 있고, 다소 가벼운 부분에서 그런 상업적인 모습도 보이지만,

내가 봤을 때는 나름 잘 요약했다고 생각했다. 조선 왕들을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니라, 때론 부정적인 모습들도 잘 조명하며 아쉬움으로부터 올바른 덕목을 도출하는 서술도 좋았다. 내용? 그냥 뻔한 자기 계발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33개나 읊어주고 있다고 보면 된다. 특별한 것도 없으니 그런 '신선한' 내용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뭐... 큰 감흥을 못 줄 것 같은 책이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논문에 <잠곡 김육의 실용적 경제사상 연구>, <호정 하륜의 정치사상 연구>, <현대 정책 이론의 관점으로 본 조준의 경세론 연구>, <정조의 정치사상 연구> 등의 연구 논물을 썼다. 대체적으로 현실 중심적인 이념을 가진 정치인들을 조명한 것 같다. 김육과 정조의 경우는 다소 이상적인 경세가에 둔다 할지라도, 조준과 하륜의 경우는 현실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경세가다.

저자 자체가 현실 정치에서 조선 시대를 경장했던 사람들을 집중 조망했다고 하는데, 책의 내용 역시도 현실 우위론적인 서술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름 현실과 이상 두 부분에 대한 해석이 편파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소 마음 편하게 봤던 것 같다.

선물 받은 책인데, 가볍고, 읽기 편하고, 예시로 든 것들이 <조선왕조실록>에 예시들이라서, 나름 내 취향과도 맞았다. 따라서 뻔한 소리 뻔한 이야기를 33개의 항목으로 나눠서 짧고 간결하게 설명한 책이다. 사람에 따라 이 책을 보며, 뻔한 소리 뻔한 이야기를 한다고 할 수 있겠으나, 나는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한 자기 계발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자기 계발서조차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뻔한 소리를 한다는 것은, 옛사람과 현대인의 리더의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앞서 말한 대로, 가장 평이하고 가장 뻔한 소리야말로, 올바른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뻔한 말이 대중에게 뻔하게 인식된 것은 그만큼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어쩌면 그 뻔한 소리를 행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닐까? 뻔한 소리로 인식된 덕목들은 사실 알고 보면 지키기가 꽤나 어려운 것들이 대다수다. 아는 것은 쉬워도 행동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 떠오른다. 다소 짧은 분량의 책, 어렵지도 않은 책이라 빨리 볼 수 있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봐도 무방한 책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