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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 ㅣ 리비우스 로마사 1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3월
평점 :

《리비우스 로마사》는 로마 역사를 다룬 고전 중 가장 권위 있는 책이다. 책은 150권으로 기획했으며 리비우스는 142권까지 집필을 하고 죽었다. 다루고 있는 시대는 로마 건국에서부터 시작해 옥티비아누스가 황제로 등극한 시대까지라고 하는데, 현존하는 부분은 초기의 1 ~ 10권 그리고 포에니 전쟁과 그 후를 다루는 21 ~ 45 권이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발간되자마자 화제를 모았으며, 후세에도 마키아벨리를 비롯하여 지식인 계층에게 두루 영향을 미쳤다. 서구 사회에서는 상류층의 교양을 상징하는 라틴어를 배울 때 《리비우스 로마사》를 교재로 삼았다고 한다. 최근 번역된 한국어 판본 《리비우스 로마사 1》은 1권 ~ 5권까지의 분량을 다루고 있다.
로마를 다룬 역사고전은 여럿 있는데, 대표적으로 꼽는 책이 바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다.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는 가장 화려했던 로마가 왜 몰락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고찰하는 역사서다. 그렇다 보니 글의 대체적인 어조는 건조하며 침울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리비우스 로마사》는 신생국 로마가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고찰한 역사서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책의 초반부인 1 ~ 10권이 이에 속하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글의 어조는 굉장히 힘차고 역동적이다. 그래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와 비교한다면 《리비우스 로마사》 1 ~ 10권의 부제는 '로마 공화국 발전사'라고 할 수 있겠다.
번역된 1권의 내용은 로마의 건국에서부터 왕정의 폐지와 공화정의 수립, 그리고 갈리아 민족의 침략까지를 다루고 있다. 전설 속의 트로이 전쟁 직후, 아이네이스는 트로이 유민들을 데리고 이탈리아 반도로 피난을 온다. 그곳에서 정착을 했고, 아이네이스의 후손인 로물루스는 로마라는 국가를 세운다. 창업자 로물루스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종교적 권위, 그리고 때로는 권모술수와 뛰어난 전쟁 수행 능력을 활용하여 로마의 초석을 쌓는다. 그 뒤 2대 왕인 누마 치세에는 평화와 종교 등의 내치에 집중했고, 툴루스 치세에는 다시 전쟁을, 안쿠스 치세에는 전쟁과 내치를, 타르퀴니우스와 세르비우스 시절에는 제도 정비와 사회 정비를 완료한다. 이때까지 로마 왕정은 세습이 아니라,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타르퀴니우스 시절부터, 그들의 자손들은 왕가를 세습하여 권력을 독점하려 시도했으며, 그 결과 세르비우스 왕을 몰아내고 타르퀴니우스의 아들이 옥좌를 차지하여 전제 정치를 휘두른다. 이러한 세습 군주정은 로마 귀족과 시민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귀족과 평민은 단결하여 왕정을 폐지했다.
그 뒤 로마에는 공화정이라는 정부 체제가 들어선다. 공화정이 들어서고 국가는 두 세력으로 나뉘는데 보수층을 대표하는 귀족 세력과 진보층을 대표하는 평민 세력이다. 집권 초기에는 귀족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했지만, 계속되는 평민의 견제로 인해 평민들에게도 정치적 입장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평민들은 투쟁과 집회를 통해 그들의 행정관인 호민관을 선출했으며, 보수층의 행정관인 집정관을 대신할 정무관 제도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큰 공헌을 한다. 그 외 많은 관직들도 평민들에게 개방됐고, 국가의 재정을 관리하는 재무관 역시 평민들에게 열리기 시작했으며, 귀족과의 통혼도 법적으로 허용이 됐다. 그러나 귀족 보수층은 기득권을 옹호하고 이권을 쉽게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평민들 역시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새로운 권리를 얻어내려 했으며, 그로 인해 공화정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신기한 것은 이러한 극심한 내부 갈등 속에서도 외부의 침공이 있을 때에는 단합하여 국난을 극복했다. 외부의 부족들도 로마의 정치적 분열을 빌미 삼아 침공한 경우도 많았는데, 빈번히 실패하고 패배한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정치적 내분은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고, 극심한 정쟁으로 인해 10인의 의원회라는 극단적 전제정치가 들어서기도 했으며, 갈리아인들에 의해 로마가 점령당한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국난 앞에서 로마는 굴하지 않고 서로 단합하여 문제를 극복했다. 리비우스가 주목하고 강조한 것도 이런 로마의 정신이었다.
책은 널리 알려진 고전답게 오늘날에도 매우 의미 있는 교훈을 주고 있었다. 첫 번째로 느낀 점은 바로 '소통과 토론의 중요성'이다. 동양의 정치사는 군주정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동양 역사서에는 군주에 대한 권위와 복종을 당연하게 서술한다. 동양에서의 민본이라는 것도 결국 아래에서의 외침이 아닌 위로부터의 목소리를 상징한다. 동양에서는 이 당시 신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가 없었고, 참여한다고 해도 그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신민은 그저 지배층의 수탈의 대상이었고, 왕의 절대적인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그래서 동양의 군주 중심의 역사는 읽다 보면 매우 경직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리비우스 로마사》는 달랐다. 이 당시 평민들은 귀족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했다. 힘없고 가난하고 수탈의 대상이었지만, 동양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고, 그 결과 귀족들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행정관을 선임할 권리를 얻어냈으며, 귀족들이 움켜쥐고 있는 권력을 최대한 나누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모습은 동양의 경직된 역사와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었다. 비유하자면 매우 역동적이며, 활발했다. 이러한 로마의 역동성은 상하의 소통에서 비롯됐으며 이러한 로마의 소통은 로마의 발전에 주요한 요소 중에 하나였다.
두 번째로 '상무정신'을 꼽을 수 있겠다. 초기 로마 역사를 읽으며 느꼈던 것은 로마의 성공 요인에는 상무정신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로마의 초기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건국 초부터 책의 말미까지 평온한 시대를 보낸 적이 드물었다. 한 해에는 몇 번의 원정이 있었으며, 적국의 침략 역시도 빈번했다. 공화정 로마국은 내부적으로 정쟁을 일삼더라도, 외부적인 침략이 있을 때에는 상하가 합심하여, 국난을 극복했다. 물론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전쟁에 대한 로마인의 열정은 시들어갔다. 외부 원정을 둘러싸고 귀족들은 전쟁을 통해 내부 문제를 덮으려 했고, 평민들은 그러한 귀족들의 징집에 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건국 초의 상무정신은 어느덧 정쟁에 가려져 사라져가고 희미해졌지만, 그럴 때마다, 귀족이나 평민 측에서는 정쟁보다는 더 큰 대의를 이야기하며 나라의 분열을 막으려고 노력했던 위인들이 있었다. 그로 인해 로마인은 그들의 상무정신을 되살리고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보호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외세를 점령할 수 있었다. 사실 로마가 존재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군사력이었다. 아무리 공화정이라는 민의를 바탕에 둔 훌륭한 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지탱할 수 없는 무력이 없다면, 외세의 침략 아래에서 로마라는 나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로마인은 그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었으며, 타국을 점령할 수 있는 무력이 있었다. 초기 로마의 발전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약탈품과 전리품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세 번째로 '보수와 진보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인류사를 관통하는 주요 테마 중에 하나는 바로 기득권과 피지배층의 갈등이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그러한 모습을 가장 역동적으로, 그리고 전형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역사서다. 당시 공화정이라는 수준 높은 정치제도 역시도 이러한 보수와 진보의 갈등과 조율 사이에서 구현된 제도였다. 귀족으로 대표하는 보수 세력은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애썼고, 평민들과의 차별화를 주장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위기가 올 때마다, 외세의 침입을 침소봉대하여 정치적 위기를 피해 가려고 애썼다. 마치 오늘날 보수가 사골처럼 주장하는 '보수 - 안보 - 국방' 트리오의 원조가 아닐까. 반면 평민으로 대표되는 진보 세력은 끊임없는 투쟁과 격쟁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구현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토지문제와 세금 문제, 그리고 전리품에 대한 보상 등등을 놓고 귀족과 싸웠으며, 정치적으로 공직의 선출 조건을 두고 원로원과 대립했다. 사실 보수와 진보의 갈등 요인의 핵심은 결국 자원의 분배에서 비롯하는데, 이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적 권력과 물질적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두고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오늘날에도 부동산 문제로 국가가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과거에도 비슷했다. 진보 쪽의 문제는 정쟁에 너무 열을 내서 정작 국가의 큰일을 못 보는 것을 꼽을 수 있는데, 이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심각한 외세의 침입 앞에서도 국가의 안위는 돌아보지 않고 정쟁에만 골몰하던 쪽은 대체로 평민을 대표하는 호민관들이었다. 리비우는 간접적으로, 귀족들의 입장을 옹호하지만 평민들의 입장을 내려깎아 서술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런 평민들의 수준 높은 정치의식이 로마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활기와 역동성이야말로 제도의 발전과 국가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마키아벨리를 비롯하여 후대 정치철학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네 번째로 '선공후사의 정신'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공화정 로마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하고 혼란했다. 귀족과 평민은 싸움의 싸움을 거듭했다. 각자의 이권을 서로 주장했는데, 이런 혼란 속에서도 선공후사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에, 로마는 이어질 수 있었다. 여러 사례가 나오지만 귀족들 중 가장 대표적인 예는 바로 2권의 파비우스 가문이다. 파비우스 가문은 원래 귀족 중 극보수 집안이었다. 그래서 평민들에 대한 불만을 한 몸에 받는 가문이었는데, 그들의 후예는 이러한 불신을 씻기 위해서 전쟁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싸웠으며, 평민 병사들을 독려했다. 이에 평민들 역시 그들의 진정성에 감동받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그 뒤 전쟁을 앞두고 귀족은 군대 징집을 평민은 징집 거부를 내세워 반발했다. 이에 파비우스 가문은 자신들의 가문으로만 병사를 편성하여 전장에 나선다. 이러한 행동은 로마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연상하며, 평민층에게도 귀족층에게도 귀감으로 남았다. 5권에는 전쟁영웅 카밀루스가 평민층 호민관의 정쟁 탄핵을 받고 추방된다. 그 뒤 로마는 갈리아 민족의 침략을 받는데, 정부에서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추방된 카밀루스를 독재관으로 임명한다. 카밀루스는 부당한 탄핵과 추방에도 불구하고 로마를 위해 싸워서 조국을 구원했다. 그 뒤 평민을 대표하는 호민관은 도시를 베이이로 이주하자고 주장했고, 그런 주장에 카밀루스는 선조의 얼이 살아있는 폐허가 된 로마를 버리지 말 것을 호소하며, 로마의 중요성과 상징성 강조했다. 이러한 모습은 계급을 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평민 쪽에서도 '선공후사'의 정신은 이어졌다. 귀족층과 극심한 대립 중에서도, 국가의 재정이 바닥나자 로마의 여인들은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국고를 채웠다. 게다가 귀족과 평민이 군대 징집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자, 국난의 위기에 압박을 받은 일부 평민 계층은 사비를 동원하여, 자신들의 말을 이끌고 자진하여 기마병 군단을 만들어 출격했다. 이에 대다수의 평민들은 자극받아 보병대를 꾸려서 출병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정신은 로마를 지탱해왔던 귀중한 자산이었다. 이렇듯 로마의 발전은 몸을 돌보지 않고 스스로의 기득권을 내던진 소수 귀족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국가의 위기와 대의 앞에서 양보할 줄 아는 평민들의 미덕에서 비롯했다.
다섯 번째로 리비우스의 뛰어난 '문체'를 꼽을 수 있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역사서지만 문학서 못지않게 표현이 아름다웠다. 책에서 나온, 광장에서 연설하는 정치인들의 연설문은 대부분 리비우스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글들인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표현으로 가득했다. 책에 나오는 정치인들의 연설문은 웅장하고 비장했으며, 전투를 묘사한 부분은 여느 전쟁소설에 뒤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사안들에 대해서 날카롭게 논평을 가하는 부분에서는 오늘날의 신문 사설을 연상했다. 흔히 동양 고전에서는 《자치통감》과 《사기》의 문체를 비교하여, 《사기》의 문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허구가 가득한 문학서라고 비평하기도 하는데, 《리비우스 로마사》 역시 《사기》의 문학적인 필법에 견줄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나는 《리비우스 로마사》와 마키아벨리에 연관성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흔히 사람들은 마키아벨리를 군주정을 대표하는 정치철학자라고 오해한다. 이는 그의 주요 저작인 《군주론》 때문에 불거진 오해다.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를 지지했고,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로마사 논고》라는 저작에 정리했다.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 로마사》의 1 ~ 10권의 내용을 바탕으로 《로마사 논고》를 작성했다. 즉 《로마사 논고》는 《리비우스 로마사》 1 ~ 10권의 주석인 셈이며, 《리비우스 로마사》를 바탕으로 한 공화주의 정치철학서다. 왜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 로마사》 1 ~ 10권에 집중하여 《로마사 논고》를 탈고한 것일까? 책을 읽어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리비우스 로마사》 1 ~ 10권의 주요 내용은 아까도 말했듯 '로마 공화국 발전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즉 신생 국가인 로마가 어떻게 대제국을 이룰 수 있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교훈이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공화주의자였던 마키아벨리는 이 부분을 토대로 자신의 역작 《로마사 논고》를 작성한 것이다.
그럼 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정치철학과 상반되는 《군주론》을 쓴 것일까? 이러한 이유 역시도 《리비우스 로마사》에 나와 있었다. 《리비우스 로마사》 2권 첫 부분에는 리비우스의 독백으로 시작하는데, 공화주의자인 리비우스도 신생국 로마가 왕정으로 시작했던 것에 대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한다. 새롭게 건국된 나라에서 바로 공화정을 시행했더라면, 공화정 특유의 불안정성 때문에, 국가가 기틀을 못 잡고 전복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즉 공화정이라는 수준 높은 정치 제도는 나름의 근본 바탕 위에서 구현되야 하는데, 신생국 입장에서 시행하기에는 너무나도 시행착오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건국된 나라의 기틀을 잡을 때에는 군주제가 필요악으로 필요했다며 군주정을 부분적으로 긍정하는 모습이 보였다. 즉 난세에는 군주정으로 나라의 기틀을 확고하게 다지고, 치세로 이어나갈 때에는 공화정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 리비우스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마키아벨리 역시도 이런 리비우스의 생각을 계승한 것이 아닐까? 마키아벨리 당시의 이탈리아 대륙은 사분오열 합종연횡으로 찢겨 있었다. 여러 유럽의 강대국들은 각기 대륙을 통일하고 제국으로 나아갔는데, 이탈리아 반도는 통일하지 못 하고, 도시국가 체제로 찢겨서 열강에 이용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난세의 시국에서, 강력한 군주가 일어나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통일 제국을 건설하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군주론》 26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뒤, 나라가 제국을 이루고 기틀을 이룬 뒤에는 로마의 선례를 본받아 정치제도는 공화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는 《리비우스 로마사》에 나온 리비우스의 생각과 로마인의 역사적 성공 사례를 귀감으로 삼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마키아벨리는 《전술론》이라는 군사 저작을 발간했는데 이 역시 《리비우스 로마사》와 관계가 깊다. 앞서 밝혔듯 로마의 성공 요인에는 '상무정신'과 더불어 자강을 꼽을 수 있다. 마키아벨리 시대의 이탈리아 도시국들은 용병을 사용하는 관례가 보편화됐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이런 용병의 고용을 매우 위험하게 생각했다. 《리비우스 로마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로마인이 성공할 수 있던 까닭은 정치적 분열 속에서도 자강할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힘은 바로 '강한 자국의 군사력'에서 비롯했다. 《리비우스 로마사》를 읽다 보면 군사력을 잃은 부족들이 어떻게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전술론》의 핵심 주제는 바로 자국 군대의 정예화인데, 이러한 부분도 직간접적으로 리비우스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의 번역은 영문판 중역본인데, 번역은 굉장히 매끄럽게 잘 읽혔다. 리비우스 특유의 수사적인 필법을 자연스럽게 번역했는데 역자의 노련미가 돋보였던 번역이다. 고전 애호가인 나는 개인적으로 원전 번역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원전 번역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가독성이다. 간혹 어떤 원전 번역본들은 너무 직역만을 고집하여서 읽기가 힘든 경우도 있었다. 이런 책보다는 중역이더라도 잘 읽히고 어색하지 않게 읽히는 책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고전을 가장 온전하게 읽으려면 고전이 기록된 언어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 고전을 읽자고 라틴어나 헬라어를 배우는 것 역시도 바쁜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독자 입장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가독성과 원전 번역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번역이 좋겠지만, 만약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가독성을 선택할 것이다. 매끄럽게 잘 읽혀야 이해할 수 있다. 역자는 고전과 사회학, 문화학 서적을 여럿 번역했고 그러한 경험이 있기에 이번 번역도 매끄럽게 잘 마무리한 것 같다. 이 책 번역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논할 수준이 아니지만, 적어도 책을 통해 리비우스의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문체를 느끼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오랜 소원 중 하나가 바로 《리비우스 로마사》의 완역이었다. 한국어 번역본은 총 4권으로 현전하는 《리비우스 로마사》의 모든 내용을 완역한다고 한다. 매우 반길만한 소식이다. 특히나 고대 로마에 대한 고전은 국내에 없었는데, 가장 권위 있고 가장 중요한 《리비우스 로마사》가 번역되고 있으니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에서 실각한 뒤, 시골로 내려가 점심에는 선술집에서 시민들과 어울려 놀고, 저녁때에는 관복을 갈아입고 고전으로 가득한 자신의 서재에서 고전 공부를 했다고 스스로 편지에서 밝혔다. 나 역시 이 책을 그런 기분으로 읽었다. 저녁에 집에 와서는 정갈하게 샤워를 하며 사회에서 묻은 때를 벗어내고, 깔끔한 옷을 갈아입고, 양서가 가득한 나만의 서재에 들어가 스탠드 불을 켜서 《리비우스 로마사》를 읽었다. 자유와 평등이 살아있는 공화주의의 정신을 읽을 때마다 내 감정은 고무됐고, 로마인들의 뛰어난 인품은 귀감으로 삼을 만 했다. 책을 읽는 순간 자체가 나에게는 힐링이었다. 어서 빨리 다음 권이 나와서 지적 유희가 하루빨리 이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