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좌전 - 상 - 전면개정판 춘추좌전
좌구명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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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은 공자가 편찬한 노나라 역사서인 《춘추》에 좌구명이 주석을 가한 책을 말한다. 과거에 나는 한길사에서 신동준 역자가 3권으로 번역한 《춘추좌전》으로 《춘추》를 처음 접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 책의 개정판이 출시됐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상, 하 두 권으로 번역됐다. 이 리뷰는 개정본 《춘추좌전》 상권에 대한 리뷰다.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는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난세의 시대였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전국시대, 그리스 폴리스 국가들의 경쟁 체제도 난세 중의 난세라고 할 수 있지만,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비하면 포스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중국의 난세는 무려 500년이나 가까이 지속됐고, 이런 난세의 시기는 세계사에서 흔하지 않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21세기는 외면적으로는 치세의 시기를 보내는 것 같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무조건적으로 평화로운 치세의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무한 경쟁으로 인해 약육강식의 법칙이 강조됐고, 그렇기에 겉으로는 평화로운 치세의 시기더라도 실상은 난세의 시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춘추좌전》은 이런 난세 중의 난세의 시기를 다룬 역사서다. 물론 고대의 난세와 오늘날의 난세는 시대적인 이질감이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난세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기에 춘추전국 시대의 역사적인 사례를 배우는 것도 오늘날의 난세를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춘추좌전》은 춘추시대의 제후국 중 하나인 노나라의 역사를 기준으로 전개한다. 다른 나라들도 많지만 왜 하필 노나라인 것일까? 이는 유교적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자는 말년에 이르러 《춘추》라는 역사서를 편집했다고 한다. 《맹자》에 이르길 공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것도 《춘추》일 것이요, 자신을 비난하는 것도 《춘추》로 비롯할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노나라는 그런 공자의 조국이었고, 공자는 자신의 조국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했는데 이것이 바로 《춘추》라고 알려져 있다.공자는 왜 노나라 역사를 정리한 것일까? 단순한 애국심에서 저술한 것은 아니었다. 공자가 자국의 역사를 편찬한 이유는 바로 노나라의 역사적인 배경에 있었다. 노나라는 주나라의 명재상인 주공이 봉지로 받은 나라였다. 주공은 유학에서 가장 이상적인 신하의 롤모델이었다. 그는 왕좌를 찬탈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고, 황위를 이을 어린 조카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그런 주공이 건국한 나라였고, 또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주나라 황실의 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국가였다. 따지고 보면 공자의 유학 역시 이러한 전통으로부터 정립된 철학이므로, 공자가 노나라의 역사에 집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찬란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노나라지만, 노나라는 중원의 패권과는 거리가 있는 국가였다. 《춘추좌전 상》은 노은공에서부터 노양공의 치세 중반까지를 다루는데, 읽은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노나라의 역사는 힘없는 나라의 기록이었고 오히려, 다른 국가들의 팽창이 더욱 돋보였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나라는 관중과 환공의 제나라, 그리고 떠돌아다니며 인생의 역전을 노렸던 진문공의 이야기, 남쪽의 강국 초나라의 부상 등등이다. 이들은 차례대로 춘추시대의 패자를 선포한 군주국이다.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주나라 중앙 황실은 지방의 제후국을 제어할 수 없는 그저 명목상의 천자로 전락했고, 힘 있는 국가들은 힘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국가를 중심으로 국제질서를 규정했다. 제환공, 진문공, 초장왕은 차례대로 패자에 오르며, 자신의 실력을 과시했다.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힘을 숭상하는 분위기는 고조됐고, 국제질서뿐만 아니라 나라 안의 군신관계도 힘에 의해 결정 났다. 힘없는 주군을 시해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이 시대에 매우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노나라 역시 이런 참화로부터 벗어날 순 없었다.

즉 춘추시대는 이전 시대에 있었던 도덕과 덕이 떨어진 시대였고,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소위 막장의 시대였다. 대륙은 욕망의 전란으로 들끓었고, 평화보다 전쟁이 더 일상화된 시기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철학이 발전했고, 마찬가지로 이러한 시대적인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역사학이 발전했다. 《춘추좌전》 역시도 혼탁한 시대를 바로잡으려는 지식인들의 노력하게 만들어진 고전이었다. 《춘추좌전》의 백미는 역사적인 기술도 기술이지만, 그것을 넘어 역사라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에 있다.

사학자 랑케는 역사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면 E.H. 카는 객관적 역사를 토대로 한 주관적인 역사를 강조했다. 이를 《춘추좌전》에 대입하여 설명해보자. 공자가 편찬한 《춘추》의 본문은 소략하기 그지없다. 짤막한 단문으로 역사적 사실만을 짧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공자의 《춘추》는 랑케의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역사기록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춘추좌전》은 이런 공자의 짤막한 기록에 풍부하고 자세한 해설을 첨가했다. 재미있는 점은 짤막한 본문을 자세하게 부연하여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역사가의 주관적인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춘추좌전》의 묘미는 바로 이 사관의 주관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이렇게 생각해서 잘못됐다. 이 사건은 이렇기 때문이 바른 일이다.' 그렇기에 《춘추좌전》은 E.H. 카의 의미론적인, 주관적인 역사관과 궤를 함께하고 있다.

《춘추좌전》의 저자는 왜 이렇게 시대적인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걸까? 바로 시대의 기준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였다. 모든 것이 막장으로 치닫는 난세, 그저 힘이 최강인 시대가 과연 옳은 시대일까? 땅에 떨어진 인간의 윤리와 도덕은 어떻게 바로 세워야 하는가? 야만의 시대에서 사라진 과거의 문명적 관습은 어떻게 복원해야 하는가? 그런 치열한 관념 아래에서 《춘추좌전》은 탄생했다. 평가의 백미는 '군자'라고 칭하는 인물이 사건을 평가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군자는 저자를 뜻하며, 시대의 기준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는 당대의 지성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춘추좌전》의 필법은 '춘추필법'이라는 이름으로 후대 역사가들에게 역사 서술의 표준으로 각인됐다. 이러한 춘추필법의 영향으로, 후대의 역사가들은 무미건조한 사실만을 기록하지 않으며, 이러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서 자신의 의견을 사건이나 인물 말미에 정리하였다. 이런 사관의 주관적 논평이 뛰어나면 그 역사서는 높은 명성을 받았으며, 논평이 편협하고 타당하지 않으면 역사서의 평가 역시도 덩달아 낮았다.

물론 《춘추좌전》의 해석이 타당한 해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춘추좌전》은 유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역사를 평가하는 기준은 바로 유교적인 마인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떤 사건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명분론에 입각한 모습도 보이고, 너무 형식적인 해석도 볼 수 있었다. 자리를 바로 세우고, 권위를 회복하고, 질서를 바로잡는 부분은 봉건 국가에서는 중요하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으로 볼 때에는 이런 것들을 너무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소소한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춘추좌전》은 매우 뛰어난 책이다. 동양 사서 집필의 표준을 제시했다는 점. 그리고 몰락하는 시대의 기준을 바로 세우려고 했다는 점, 그리고 숱한 역사적 사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처세와 치국의 팁 등 배울 점이 무궁한 고전이다. 살아남은 책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다만 방대한 분량과, 생소한 문체와 배경 등등이 다가가는데 부담으로 작용하겠지만, 그런 것들을 감안하고서라도 읽을 가치는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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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777 2021-07-11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훌륭한 서평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