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율의 줌아웃 - 암울하고 위대했던 2012~2017
천관율 지음 / 미지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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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책장을 넘기고 있으니 그녀가 묻는다. '내가 볼 때마다 너는 과거와 관련되거나, 과거를 다룬 책만을 보는 것 같아.' 그녀의 말에 나를 돌아본다. 물론 개인적 취향으로 인해 인문고전을 좋아하긴 하지만, 나름 책을 읽는 데 있어서 밸런스를 신경 쓴 것 같은데, 그런 내 노력이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애써 변명하고자 하기보다 그냥 웃음으로 넘겼다. 내가 남겼던 서평들을 쭉 살펴봤다. 확실히 역사, 인문학, 철학, 고전에 관련된 책이 압도적이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기서 한 가지 변명을 하자면 나는 역사나 철학을 그저 지적 유희를 위해 읽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과거에 대한 호기심도 있겠지만, 그것을 넘어서 오늘날과 미래에도 통용될 수 있는 지혜를 얻고자 읽는다. 대부분의 일반인이 고전을 읽는 이유도 나와 비슷할 것이다. 나는 역사나 과거에 관심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현실 문제를 민감하게 인지한다. 그렇기에 쇼 프로나 버라이어티는 보지 않더라도 주요 뉴스는 꼬박꼬박 챙겨서 본다. 정치권에 대한 관심도 많다. 단지 티를 내지 않을 뿐이지.

현실 문제는 민감하다. 나름 많은 것을 읽고 배웠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지식으로 현실의 문제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아는 것과 아는 것을 활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렇기에 조심스럽다. 그래서 현실에 관한 기사나 뉴스를 접하면서 최대한 감정적으로, 무비판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내가 적극적으로 내 주관을 억제하려고 노력하진 않았다. 오히려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문제 등등을 스스로의 관점으로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가치중립을 지키는 것이나 회피하는 태도로는 내가 가진 주권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어떠한 현상을 관찰할 때 줌인의 관점을 고수했다. 무엇이든 직접 파는 쪽이었고, 그 안에서 관찰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생생하게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탐구하려는 대상 안에서 탐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부제에 나와있듯 암울하고 위대했던 2012 ~ 2017년의 시기를 줌인이 아닌 줌아웃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직접 들어가서 몰입해서 보기보다, 멀어지는 시각으로 시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방법이 물아일체라면 저자의 방법은 서정적인 관조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의 방법이 나무를 앞에서 겪는 것이라면 저자의 방법은 숲을 관조하는 법이라 할 수 있다.

2012년에서 2017년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보수 정권은 유례가 없는 타락을 보여줬고, 지도자는 무능했다. 국정은 농락당했다. 노무현의 죽음을 시작으로 진보 역시도 좌충우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철수라는 새로운 정치 프레임이 등장했다. 배가 침몰했고, 메르스 소동으로 시끄러웠다. 참다못한 국민들은 광장으로 뛰어나와 정부를 응징했다. 젊은 세대의 일부는 극우주의인 일베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고, 남녀 감정의 골은 역대급으로 높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으며, 임기중인 문재인 정부는 핵심 공약인 '사회적 공정'의 실현을 두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 책의 핵심은 보수와 진보, 즉 정치권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것 외에도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굵직한 사회적 이슈를 놓치지 않고 있다. 

줌아웃이라고 해서 현상의 개괄과 표면만을 다루고 있진 않았다. 전체적인 시각은 사건과 현상을 관조하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핵심 부분이나 강조할 만한 부분에서는 심도 있는 줌인의 시각으로 현상을 해석한다. 말 많고 탈 많은 작금의 시대, 우리의 현대사를 저자는 융통성 있게 조망하고 있었다.

책의 내용은 당위적인 결론, 그리고 통속적인 결론도 있긴 했지만, 신선한 해석도 많았다. 저자의 해석이 타자와 비교하여 통속적이고 당위적인 해석이라 하더라도, 그 통속적인 생각으로 해석하는 저자의 사유 과정에서 나는 내가 놓친 부분이나 알지 못하는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같은 생각, 비슷한 생각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러한 결론에 이르는 데, 비약적이고 통념적인 부분에 의존하여 쉽게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저자는 비슷한 생각과 관념에 도달하면서도 그러한 사유의 흐름을 꼼꼼하게 분석하여 책에 제시했다. 이런 저자의 글에서 나 역시 통념이나 감정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사회 현상 대한 해석을 꼼꼼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책을 읽은 지는 꽤 됐지만, 선뜻 서평이 쓰여 지진 않았다. 지나왔던 아픈 일들, 그리고 분노했던 일들을 다시 끄집어내서 관조하는 데에는 필요 이상의 감정 소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숙제가 남아있다. 올바르지 않은 정부를 혁명으로 응징했지만, 여기에 멈춰 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문제점이 남아있다. 정치적으로는 '올바른 정부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숙제가 남았으며 사회적으로는 극단적인 커뮤니티에 대한 문제, 남녀 성별에 대한 극단적인 갈등, 이민자 문제, 노동, 정규직, 실업 문제, 양극화 등등이 남아있다. 2012년에서 2017년 사이에 많은 일들과 격변을 겪었고, 커다란 성과를 거뒀지만,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기 시작한 이래로 어느 시대가 그렇듯, 유토피아적인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018년 그리고 그 이후의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작금의 시대적인 문제와 숙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우리는 지나왔던 길을 줌아웃한 친절한 사진기자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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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김용만 지음 / 바다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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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에게 고구려는 늘 아쉬움과 선망의 대상이다. 한반도 역사는 5000년의 유구함을 지녔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는 단점이 있다. 한반도에 있었던 국가는 대체적으로 직간접적인 중원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타율성이 많은 역사를 가졌기에 우리는 그나마 우리 역사에서 자율적으로 활동했던 고구려에 대해 선망과 동경을 가졌다. 특히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의 정복전쟁은 한반도 국가가 요동 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한 흔치않은 사례였기에 오늘날 광개토태왕은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긴다. 이런 고구려가 신라와 당나라에 멸망당했기에, 몇몇은 강성한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고구려라는 나라는 이렇듯 우리에게 있어 자부심과 아쉬움으로 남겨져 있다.

  여기서 뜬금없는 의문을 제기해보자면 단지 고구려가 영토가 넓었기에 오늘날 우리 민족이 동경하는 것일까? 고구려를 지탱하던 자율성은 순진한 정복욕의 산물일 것인가? 고구려의 영토는 과거 한반도에 위치했던 국가 중 가장 드넓은 영토를 가진 대국이었다. 그들은 왜 이런 정복전쟁을 추구했던 것일까? 중국의 역사에서 막강한 대국을 일궜던 군주들의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바로 '중화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무제, 당태종, 명의 영락제, 청의 강희제 등등의 명군들은 중원의 내부를 다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화의 범위를 중원 밖으로 확장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을 움직인 이데올로기 '중화사상'은 중원의 천자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서 지배하는 것을 유학적으로 정리한 사상이다. 중원으로부터 멀리 있는 오랑캐는 예의와 문화로 교화시키되 중원에 위치한 천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군대로 토벌하여 중화 문화권의 이데올로기를 받들도록 권했다. 단순하게 표현해보면 '내가 짱인데 날 받들지 않으면 토벌해버린다.'라는 뜻이다. 중원의 야심찬 군주들은 자신들의 정복욕을 고상한 중화의 철학을 빌려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야심이 먼저인지 중화사상 때문에 정복전쟁을 시행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중요한 사실은 중원 패권국의 팽창정책은 근본적으로 중화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놀랍게도 고구려에도 중원에서 유행했던 '중화사상'과 같은 관념이 존재했다. 바로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이다. 고구려는 스스로를 천손의 자손이라고 생각했으며, 자신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떠받드는 속주 국가들을 설정했다. 이러한 속주 국가들의 범위는 남쪽으로는 백제와 신라, 가야가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말갈과 거란과 같은 여러 유목민들이 포함됐다. 즉 고구려는 중국의 제국이 추구했던 '중화사상'과 비슷한 '천하관'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고구려는 한반도 국가에 존재했었던 제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 한반도에 제국은 고구려 밖에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고구려 이전에 제국의 풍모를 갖춘 것은 백제였다. 근초고왕 시기 백제는 자신을 맹주로 하여 왜와 가야를 포섭한 연합 세력을 구축하였다. 근초고왕은 이런 연합 제후국의 맹주였으며, 이러한 연합군을 통해 신라와 고구려를 견제했었다. 그러나 근초고왕이 만들어 놓은 백제 중심의 연합 시스템은 광개토태왕의 천하관에 의해 박살 나고, 백제와 신라 가야는 한동안 고구려의 통제를 받는 속국으로 전락했다. 광개토태왕이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는 이유는 단순히 영토를 넓혔다는 것을 넘어 고구려가 주체가 되어 천하를 경영한다는 정신을 구현했다는 점이 클 것이다. 이러한 주체적인 고구려의 사상은 일제 치하의 민족주의 역사가들에게도 커다란 영감을 줬다.

  그러나 고구려의 천하관은 중국의 중화사상과는 다른 점이 존재했다. 고구려의 천하관은 중국의 중화사상과는 다르게, 자신의 영향을 벗어난 지역의 제국의 존재를 인정했다. 즉 내 주변국들 사이에서는 내가 실력자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지역의 실력자는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중원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중화사상은 이러한 다원적 제국의 존재를 부정했다. 천하는 유일한 중원의 천자의 것이다. 자신들 이외에 다른 제국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이러한 사소한 철학의 충돌은 결국 나라의 명운을 건 전쟁으로 표출됐다. 수나라 양제의 무리한 고구려 침공, 그리고 당태종 이세민의 고구려 침공이다.

  연개소문은 당태종 이세민의 침공에 맞서 싸운 인물이다. 그는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이세민을 두 번이나 크게 이겼지만, 결국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사후 당나라에 멸망됐다. 그래서 전해오는 역사적 사료는 승자인 당나라의 기록이 대다수이기에 연개소문에 대해 매우 불리한 기록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책은 그런 연개소문을 고찰한 역사서인데, 사실 연개소문에 집중한 평전이라기보다 고당 전쟁에 집중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태종 이세민은 연개소문의 반역 소식을 듣고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결심했다. 당나라의 서쪽 토번을 정벌한 이세민은 기세를 몰아 수나라도 공략하지 못했던 동쪽의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역사서에서 그는 명군으로 칭송받는 군주지만, 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사서에 자신의 이름과 공적을 남기기 위해 과도한 정복전쟁을 추구한 전쟁광이기도 하였다. 특히 팽창정책을 추구하는 중원의 정복군주는 중화사상 이데올로기를 실천하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여겼는데, 그렇기에 이세민에게 있어 고구려는 평생의 숙원을 이룩하고 자신의 공업을 드높이는 데 있어 가장 안성맞춤의 먹잇감이었다. 게다가 고구려는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진 자존감이 높은 국가이므로, 유일무이한 제국을 꿈꾸는 이세민의 입장에서는 고구려의 높은 콧대가 거슬리기 그지없었다. 서토를 개척했다는 자신감, 수나라도 정복하지 못했던 나라, 당나라가 주도하는 중화 질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자존심 높은 나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고구려의 정벌로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길이 남기려는 허망된 야망. 그렇기에 이세민에게 있어 고구려의 정벌은 연개소문의 정변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예견된 사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연개소문은 그런 당태종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외교적으로 신흥 강국 당의 눈치를 보는 영류왕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다.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자주성, 고구려의 천하관을 고수했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신흥 제국 당나라와 전통적인 동방의 제국 고구려는 그렇게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국가와 국가의 싸움을 넘어 세계와 세계의 충돌이며, 사상과 사상의 충돌이었다. 그렇게 독자적인 두 세계관을 지닌 문명은 서로 격돌했다.

 1,2차 전쟁의 흐름은 당의 공격과 고구려의 수비로 전개됐다. 당은 압도적인 군대를 동원하여 1차는 육로 중심으로 2차는 해로 중심으로 침공했지만, 연개소문은 이를 적절한 전략으로 막았다. 전쟁의 최종 승자는 고구려였지만, 국력의 회복에 있어서는 고구려는 당나라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자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었기에 물자와 생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전쟁 이후 복구에 있어서도 고구려보다 당이 훨씬 유리했다. 이는 국력의 차이가 빚어낸 결과였다. 게다가 당은 1,2차 전쟁 직후 고구려의 동맹이라 할 수 있는 거란과 백제 세력을 제압하여 고구려를 고립시켰다. 고구려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뽐내던 연개소문이 있을 때에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그가 죽자, 내분으로 인해 와해됐고 결국 3차 나당전쟁 때 신라와 당군의 연합군에 멸망당했다. 

 연개소문의 평가는 시대를 걸쳐 다양하게 나타났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유교적 사대주의 관념으로 연개소문을 군주를 죽여 반란을 일으킨 것에 입각하여 혹평했지만 그가 가진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구한말 일제 치하에 민족주의 사학자인 신채호와 박은식은 연개소문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영웅으로 추앙하고, 그런 그의 기상을 본받아 독립을 이루자고 주장했다. 이렇듯 연개소문의 평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극과 극으로 평가됐다. 우리나라의 고대 영웅의 평가는 대체로 극과 극으로 치닫는데 연개소문 역시도 그렇다. 이러한 극단적인 평가는 연개소문의 본모습을 알아가는 데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인물에 대해 극단적인 견해를 고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무리하게 주장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이나 의미를 과장, 확대해석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박은식과 신채호도 연개소문의 자주성을 과도하게 주장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무리하게 왜곡했다. 민족자존을 우선시하기 위해서 연개소문의 해석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였고, 이러한 의미 부여는 오늘날 냉정하게 평가해볼 때 왜곡의 단초로 볼 수 있다. 고대의 영웅은 현전하는 사료가 부족하기에, 자의적인 견해를 곁들여 해석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자의적 해석은 전하는 사료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책을 읽으며 연개소문의 장단점을 평해보자면, 일단 가장 큰 장점은 고구려의 천하관과 자존감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는 정권을 잡으면서 신생 대국 당나라의 중화사상으로부터 고구려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게다가 국력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의 당나라의 대군을 막아서 승리했다는 것 역시 큰 의의가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연개소문의 이미지는 호탕함인데, 책에 나온 연개소문의 행적으로 봐서, 아마 실제적인 연개소문의 성격 역시도 호탕하고 대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그는 개인적 카리스마가 뛰어난 인물이었고, 그런 카리스마를 통하여 고구려의 민심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이런 그의 지도력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점을 꼽아보자면 외교 능력, 그리고 첩보의 아쉬움, 후계자 선정, 전쟁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의 부재, 고구려의 행정 개혁의 필요성 등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가장 꼽고 싶은 부분은 거시적인 관점이다. 1,2차 고당 전쟁의 승자는 분명 고구려지만, 사실 이는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었다. 당은 막대한 군사적 손실을 입고 패전했지만, 패전 이후에도 고구려를 굴복시키기 위해 외교적으로 군사적인 모략을 계속해서 감행했다. 당은 외교적으로 고구려를 고립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고구려에 속한 이민족들을 포섭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고구려의 우방인 백제를 단숨에 몰락시켜서 고구려를 국제적으로 고립시켰다. 물론 고구려는 자국의 영토에서 전쟁이 벌어졌기에, 국토 피해가 극심하여 복구하는데 모든 신경을 쏟아붓느라 외교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의 외교적인 대응은 아쉽다. 물론 고구려가 나름 거란의 지배권을 당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중원의 여러 외곽 민족들에게 사신을 보내 당과의 전쟁을 독촉했다지만, 이미 당시의 흐름은 당이 주도하는 중화 이데올로기가 대세였기에 적극적이지 않은 고구려의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당의 노력 때문에 전쟁에서는 이겼더라도, 시대의 대세는 고구려보단 당의 우위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아쉬웠던 점은 연개소문의 정권 초반에 신라의 김춘추가 백제를 견제해달라고 사신으로 왔을 때 강압적으로 나가고 백제와 동맹을 맺은 부분이다. 물론 연개소문의 계산에는 당시 백제가 신라보다 강하며, 무엇보다 백제는 왜국과 긴밀한 관계이기에 백제와 손을 잡으면 왜나라와 통할 수 있다는 이점을 고려하여 백제를 선택했겠지만, 차라리 백제와 신라 양국과 동맹을 맺어서, 남방에 싸움에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고 방관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신라가 당에 붙은 주요한 원인은 바로 고립이다. 동쪽의 왜, 서쪽의 백제 그리고 북쪽의 고구려로부터 고립된 신라는 어쩔 수 없이 대국인 당에게 빌붙을 수밖에 없었다. 백제는 시종일관 신라와의 전쟁에서 우세를 점했지만, 과도한 자만감에 사로잡혀 결국 나당 연합군에 허무하게 멸망당했다. 만약 백제를 선택할 것이었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백제와 함께 신라를 압박하여 멸망시켜서 후방을 안정화시켰다면 고당 전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백제의 몰락은 결국 고구려의 몰락과도 직결된다. 사실 고구려 입장에서도 백제가 그렇게 허무하게 멸망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고구려가 어떻게 손을 쓸 틈도 없이 백제는 순식간에 몰락했으니 말이다. 고구려는 백제 부흥을 위해 왜에 도움을 요청하고 군사를 파견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는데,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려는 것처럼 비친다. 애초에 백제와 신라 중 백제를 선택했으면 백제를 도와 신라를 멸하는데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게 아니면 백제와 신라 두 나라가 각자 싸우도록 하고 고구려는 방관자의 입장으로 주시하되 주전력은 북쪽 당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백제는 신라 김춘추의 딸과 사위를 죽였기에 양국은 원수지간으로 돌변한 상황이니, 두 나라가 연합하여 고구려의 남쪽을 공격할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첩보가 뛰어난 국가다. 책에서 확인할 수 있듯, 연개소문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원인에는 바로 뛰어난 첩보 덕분이고, 당은 이런 고구려의 첩보를 의식해서 비밀 군령을 암호로 전달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첩보는 한계를 가지기도 했는데, 1차 나당전쟁 이후 연개소문은 요동과 요하 지역의 성곽에 병력을 집중 배치하였다. 그러나 당나라는 2차 나당전쟁 때 대규모 선박을 통하여 해상 상륙작전으로 평양 침공을 감행했다. 이를 고구려 첩자들은 파악하지 못했다. 더불어 당과 신라가 공통으로 백제를 멸하려는 계획을 고구려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고구려의 가장 직접적인 몰락의 원인은 바로 연개소문 아들들의 권력 다툼이다. 연개소문과 달리 그 아들들은 연개소문과 같이 비범한 능력을 지니지 못했으며 서로 반목했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이를 예견하지 않고 아들들에게 권력을 배분했고, 이러한 조치는 권력 독점을 위한 내전의 원인이 됐다. 따지고 보면 이런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능력 없는 아들들을 요직에 올린 연개소문의 인사 정책에서 비롯했다. 행정 정비의 개혁도 아쉬운 부분이다. 고구려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당과 대응한 연개소문은 군사적인 부분에 집중적으로 노력했다. 이에 반해 신생 제국인 당나라는 제도적인 체제 개혁과 내정 정비를 통해 정치 제도를 정비했다. 고구려의 행정 시스템은 신생국 당나라의 행정 시스템에 비해 역동적이지 않으며, 시대에 뒤떨어지는 제도였다. 연개소문은 이런 근본적인 시스템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군사적인 침공에만 집중했으니, 이 역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쓰고 나니 연개소문의 단점이 두드러지는 것 같지만, 그가 지키려고 했던 고구려의 자존감은 이 모든 단점을 상쇄한다. 고구려의 몰락은 허무하지 않았다. 물론 연개소문의 후계자들의 정쟁으로 무너졌지만 무너지는 순간에도 제국의 풍모를 고수했다. 백제처럼 허무하게 무너지지도 않았고, 신라처럼 줏대 없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고구려는 무너지더라도 고구려답게, 자존감 있게 무너졌다. 이는 연개소문의 분투 때문이다. 그는 사라져가는 제국 고구려의 자존을 마지막으로 불태운 인물이었다. 만약 그가 영류왕을 시해하지 않고 정권을 장악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의 인식에 자랑스러운 고구려가 없을지도 모른다. 영류왕이 추구했던 고구려는 고구려만의 천하관을 강조한 제국이 아니라, 당의 세계에 타협하는 제후국이었으니까. 그렇게 역사가 흘러갔다면, 어쩌면 우리가 당에 붙은 신라를 두고두고 비판하는 것처럼 고구려 역시도 그런 비판의 도마에 올랐을 지도 모르겠다. 여러 한계와 비판의 요소가 있지만 어쨌든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자존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지적한 단점들을 연개소문이라는 인물이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벅차보인다. 그래서 그의 투쟁은 근본적으로 패배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이뤄져서 고독한 색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연개소문의 삶과 고구려의 몰락을 읽으며 느낀 점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고구려가 독자적인 천하관을 주장할 수 있는 배경은 바로 국력에 있었다. 당나라의 팽창 중화주의에 연개소문이 맞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이 있었지만, 이런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 힘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의 결과였다. 이런 고구려의 입장은 삼국을 부분적으로 통일한 신라와 크게 비교된다. 신라는 스스로 저자세를 취하여 당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고, 당나라의 중화주의 세계관에 편입하여 국가의 실리를 챙겨냈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런 신라의 통일을 비난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오늘날 21세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은 자존감을 지키는 사람보다 실리적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질적 이득 앞에서는 나의 자존을 한 수 접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 보편적인 오늘날의 모습이다. 이런 오늘날 고구려의 자존감 있는 몰락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나는 이렇게 결론 내리고 싶다. 평범한 소시민들은 자존감보다 순간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특정한 위치에 있고, 자신이 여러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사욕보다는 그보다 한층 더 나아간 가치를 고수하기 위하여 사익을 내려놓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신라는 스스로 중심이 되어 제후국을 거느리거나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구려는 신라와 의식 자체가 달랐다. 스스로를 제국으로 인식했고, 그렇기에 으스러지는 순간까지도 제국의 풍모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고구려는 신라보다 스스로 대국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대국이니까 대국의 걸맞게 자존감을 지켜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후손인 우리는 고구려를 우리 역사의 자존심으로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라와 고구려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일반 소시민이 아닌 좀 더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 더 큰 꿈을 가진 사람들은 개인의 사적 이익보다는 더 큰 가치, 그리고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대의를 추구하는 것이 개인에게도, 집단에게도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물론 이러한 삶을 사회지도층에게 무조건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이 자발적인 인식을 통하여 행하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들에게도 인생에 있어 자유로울 권리고 있고, 사회지도층이라고 해서 밑의 계층들을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이 있어야 한단 시각 자체도 나는 비판적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고구려의 멸망, 그리고 연개소문이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가치를 통해 읽은 교훈의 핵심이다. 그 외에 독자적인 자존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직이든 개인이든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도 꼽을 수 있겠다. 구시대 체제를 고수하던 고구려의 행정은 고구려의 자존을 지키기에 너무나도 뒤떨어졌다.

  책은 잘 읽히는 편이지만, 편집이 조금 조잡해 보이기도 했다. 전문적인 내용은 챕터의 뒤나 책의 말미에 배치하여서 본문 가독성을 높이려고 한 것 같은데, 내 개인적으로는 너무 산만했다. 그냥 서사적 흐름에 따라 전문적인 내용도 편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본문 내용은 잘 읽히는 편이었으며, 사료에 대한 비판이 돋보였다. 무엇보다도 《일본서기》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참고하여 해석한 부분이 신선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서기》를 왜나라 시각으로 집필한 사서라 폄하하는데, 물론 자문화 중심주의적인 내용이 많고 왜곡도 많지만 그러한 왜곡의 바탕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고대사를 해석할 때 주교재로 참고해야 할 도서라고 생각한다. 연개소문 집권 당시 고구려는 왜와 굉장히 긴밀한 관계였고 우방이었으므로, 적국인 중국 측 사료보다 《일본서기》에 나온 기록이 더 신빙성이 있을 가능성도 높다.

  사실 우리나라의 고대사 기록은 미비하기 짝이 없고 기껏해야 《삼국사기》가 독보적인 사서로 권위를 인정받는데, 이런 《삼국사기》 역시 신라 중심적, 그리고 사대주의적 사고, 중국 측 사료를 무비판적으로 기록한 내용이 많다. 그러므로 《삼국사기》 역시 자의적인 해석과 왜곡으로부터 피할 수가 없다. 모든 역사란 기록은 기본적으로 자의적일 수밖에 없고, 특히 고대의 관찬 사료는 자국이나 정치적 입장에 의해 왜곡하여 기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는 중국의 명저인 《사기》와 《자치통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일본서기》 역시도 한계가 있지만 우리의 고대사를 비교적 자세하게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검토해야 할 주요 텍스트로 여겨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 고대사를 고찰하려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넘어 왜나라의 활동까지도 검토해야지 한반도의 고대사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리와 앙숙의 관계지만, 그런 것을 떠나 한일 고대사는 서로 너무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 있으므로 양국의 고대사를 명확하게 파악하려면 두 나라의 역사를 면밀하게 비교 분석해야만 한다. 왜는 백제나 가야에 의해 굵직한 사건 때마다  한반도에 파견됐고 활동했던 세력이다. 괜히 《일본서기》에 섬나라 역사 이외에 옆 나라 반도의 동태를 기록했겠는가. 아무튼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은 중국의 사료와 우리 측 사료 그리고 일본의 《일본서기》까지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해석하고 있는데, 전하는 사료가 워낙 소략하여 사료 간의 공백에 있어 저자의 주관성 깊이 들어있기에, 사람에 따라 저자의 해석에 딴죽을 걸 수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저자는 전해지는 사료를 해석 함에 있어 나름의 합리적인 면을 확보하려고 많이 노력한 것 같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아무튼 신화와 극단적 편견으로 가득한 연개소문의 역사적 모습을 책을 통해 탐구할 수 있었다는데 이번 독서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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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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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간

  기다리고 기대했던 시간이 지나고 책이 배송됐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 거기다 이번에 다루는 주제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장르라서 더더욱 기대가 컸다. 배송되자마자 마치 금방 배달되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치킨의 닭다리를 뜯는 기분으로 따끈한 새 책을 단숨에 읽어나갔다. 신메뉴 치킨은 쫄깃했고 맛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하듯 유시민은 광범위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는데, 특히 역사 분야를 좋아했다. 그가 쓴 역사 관련 책만 하더라도 이번 책을 포함하여 4권이나 된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젊은 시절 유시민이 썼던 세계사인데 지금은 절판된 책이다.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는 굳이 따지자면 유시민만의 역사 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인 《나의 한국현대사》는 유시민의 시각으로 해석한 한국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신간 《역사의 역사》는 역사 고전을 유시민의 시각으로 정리한 역사 르포르타주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독자는 이번 신간이 과거에 출간한 책 (아마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를 꼽는 듯하다.)을 개정증보한 책일 것이라고 의견을 남겼지만, 두 책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물론 중복되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두 책이 지향하는 방향과 내용은 전혀 달랐다. 하나는 역사이론을 다루고 있고, 하나는 역사 고전을 탐구하고 있으니. 


2. 표지 논란

 예판 구매를 했을 때, 놀란 것이 바로 표지였다. 처음에 나는 아직 표지가 정해지지 않아서, 출판사 측에서 임시로 올려놓은 이미지겠거니라고 생각하고 주문했다. 가끔 책이 언제 배송되나 서점 사이트들을 둘러보니 몇몇 인터넷 서점과 커뮤니티에서 표지를 두고 부정적인 의견을 많이 내더라. 나도 그랬다. '에이 설마, 요즘같이 리커버 북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인데, 그만큼 표지가 중요한 시대인데 이대로 표지를 낼까.'라고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이렇게 표지를 내고 리커버 북을 판매하려는 상술인가?'라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책을 주문했는지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을 무렵, 택배 배송이 됐고 신나서 봉지를 뜯자 정말로 예판 구매에서 봤던 그 표지가 덩그러니 있었다.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표지가 어색하진 않았다. 물론 이는 내 기준이지만. 와이프는 책의 표지를 보자 '표지 되게 예쁘다.'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표지임에는 틀림없다.

 계속 보다 보니 나도 이질적인 표지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여러 권의 역사책이 펴져 있는 콘셉트는 이해하겠지만 앞면 책의 타이틀 '역사와 역사'를 노란 글씨로 심플하게 쓴 것은 너무 간소하게 표현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제목이면 좀 더 포인트를 줘도 될 것 같은데 아무래도 표지 디자인이 강렬하기 때문에 타이틀은 비교적 간소화하여 표현한 것 같다만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표지보다, 표지 재질이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돌베개에서 나오는 유시민 작가의 책표지 재질은 손상되기 쉬운 재질을 사용하여서, 조금만 책을 들고 다니거나 읽다 보면, 쉽게 마모되고 스크래치도 많이 남는다. 이는 《나의 한국현대사》와 《국가는 무엇인가》도 비슷하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표지에 코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깔끔하게 보관하는 편인데, 앞서 열거한 돌베개의 유시민 책들은 깔끔하게 보관하려고 해도 재질 때문에 깔끔할 수가 없다. 아무리 깔끔하게 읽으려고 해도 손때가 묻고 모서리가 마모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으니 굉장히 아쉽다. 그렇다고 결벽 떠는 수험생이나 중고딩처럼 책에다가 비닐 커버를 씌울 수도 없고.


3. 전문 지식소매상과 함께 떠나는 역사 패키지여행

 논란이 많은 표지를 넘기고 본격적으로 내용을 읽어나갔다. 책은 인류사에 있어 위대한 역사 고전을 다루고 있었고, 역사 고전을 유시민이라는 안내자가 친절하게 해설하고 있었다. 저자는 시작에 앞서 자신이 사용하는 주요 단어들의 뜻을 명료하게 밝힌 뒤, 역사 고전 여행을 시작했다. 어떤 것을 설명하기에 앞서 자신이 사용할 주요 용어들을 정의한다는 것은 철학이나 학술적인 글에서는 필수적이다. 물론 이 책은 학술적 성격이 아니라 대중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대중서라 하더라도 용어 정의는 확실하게 하고 들어가는 편이 낫다. 그렇지 않으면 개념이 나올 때마다 중언하고 부언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쓸데없이 책의 부피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생각 외로 실망스러웠다. 너무나도 내용이 평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휴일 집중하고 다시 읽으니 초독 때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유시민의 글은 명료하고 깔끔했으며 군더더기가 없다. 이는 이전 글도 그랬지만 특히 이번 책에서 더욱 돋보였다. 그래서일까, 이번 신간은 잘 정리된 교과서와 같았다. 이렇다 보니 신간은 전작에 비해 강렬하고 날선 문장력은 비교적 보이지 않았지만, 반대로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문장들이 주를 이뤘다. 사실 이는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역사 고전을 탐구한 글이므로, 날카롭고 공격적인 문장으로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보다는 편안하고 차분한 문장으로 독자와 함께 역사 고전을 알아가고 탐구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 같다는 말의 장단점은 바로 '평이함'이다. 단점으로 바라볼 때에는 특출난 것이 없다는 뜻이 되지만 장점으로 바라볼 때는 안정감이 있고, 표준적인 모범을 가진다는 뜻도 된다.

  유시민은 신간을 두고 역사 고전 패키지여행이라고 칭했다. 이 시대 최고의 지식소매상이라 할 수 있는 저자가 주도하여 떠나는 패키지여행이니 얼마나 설레겠는가. 나도 그랬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역사 고전을 80% 이상 완독하였기에, 그는 나와 같은 책을 읽고서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했다. 여행을 갈 때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누구와 가는지, 언제 가는지에 어떻게 가는지에 따라 느낌은 전혀 달라진다. 여행러들에게 패키지여행은 독처럼 여겨지지만, 때로는 패키지여행이 유용할 수도 있다. 패키지여행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여행 도중 쓸데없이 쇼핑을 권한다거나, 일정을 맘대로 바꾼다거나 하는 것들인데, 이런 것들은 전적으로 현지 가이드의 재량에 달려있다. 즉 다르게 표현해보자면 현지 가이드가 개념 충만하다면 그 패키지여행은 오히려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어본 바, 유시민은 괜찮은 가이드다. 역사 고전을 편파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각각의 역사서가 가지는 장단점을 나름 심도 있게 분석했다. 물론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 드러나는 대목도 있지만, 전반적인 책의 어조는 저자의 생각과 느낌을 강요하기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너는?'이라고 말하듯, 책을 읽고 결론을 내리는 것을 최종적으로 독자에게 남긴다. 이런 그의 필법은 독선적인 느낌을 주기보다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런 문장의 안정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가 과거에 유시민을 좋아한 이유는 그의 날선 필법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에 탈고한 그의 글은 안정감은 없었지만 매우 집요하고 날카로우면서 날이 선 문장이 많았다. 그의 글은 매우 공격적이었다.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나는 그의 글의 번뜩이는 날카로움에 매료됐었다. 세월이 흘러, 정치에서 단맛 쓴맛을 다 맛본 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식소매상으로 그는 돌아왔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자유인의 글은 날 선 청년의 글과는 전혀 달랐다. 자유인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매우 이질적이라 적응되지 않았었는데, 계속해서 접하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자유인의 글이 예전의 스타일보다 더 편하고 좋았다. 예전 그의 글에는 없었던 안정감이 느껴졌고, 나 역시도 그의 안정감 있고 여유 있는 글에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평이한 문장 속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 나를 고요하게 자극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특히 좋아하는 주제를 논하고 있는 저자의 글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4. 전문역사가 vs 지식소매상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유시민이 박학하다 하더라도 결국은 역사에 대해 전문성은 떨어지지 않느냐. 열거된 고전을 설명하려면 그 분야에 전공한 전문역사가가 해설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일리 있는 말이다. 정통한 전문가가 안내하는 여행은 더 깊은 지식을 습득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사회에 만연한 인문학 학습의 통념을 언급해보자면, 언젠가부터 우리는 인문학을 배울 때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을 일반적인 관례로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인문학이 과연 전문가의 통찰과 주류의 해석으로만 설명되는 학문인가? 그렇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나 공자의 철학을 배울 때에는 그 분야에 전공한 사람의 시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읽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서구의 최초의 철학으로 여겨지는 소크라테스는 고상하고 전문적인 지식인층의 가르침을 수용하기보다, 포럼 즉 광장에서 떠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시비를 털며 '거리의 철학'을 실천했다. 소크라테스가 살아있다면 자신의 철학을 '굳이' 전문가들에게서 수업을 들으며 공부하는 사태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내 생각으로는 아마 소크라테스는 스스로의 사고로 자신의 철학을 생각하라고 권장했을 것 같다. 물론 선현들의 학문을 연구하는 것은 중요하고, 이러한 연구가 쌓이는 것이 지적 사회로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도 우리나라 인문학을 위해 열심히 연구하는 전문가들을 폄하할 의도도 없다. 다만 철학이나 고전의 탐구가 전적으로 전문가들의 연구에서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인문학 텍스트를 읽다 보면 때론 전문가의 견해와 상반되는 시각으로 독해할 수도 있고, 어쩌면 이런 아마추어적 견해가 학문 해석의 다양성에 불을 놓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비전공자이지만 박식한 지식소매상인 유시민의 생각도 이러한 예에 속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인문학에 있어서의 전문성은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전문가냐 아니냐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이다. 전문가의 해석과 유시민의 해석은 나의 주관을 보조하는 보조배터리이지 이것이 메인이 되면 안 된다. 물론 책에서 다루는 역사 고전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이 없다면, 잠시나마 유시민이나 전문가의 해석을 빌려 이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종착지에 가서는 텍스트를 스스로 판단하고 독해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이는 역사나 고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텍스트 읽기에서 필요로 하는 덕목이다. 내가 이 책을 구매한 이유는 유시민의 글과 필법이 좋아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가 바라본 역사 고전에 대한 시각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관점으로 독해했을까, 아니면 나보다 더 색다른 생각으로 텍스트를 바라봤을까? 그런 기대감을 나에게 심어준 저자였기에, 나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바로 책을 구매했다. 아마 이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세 부류가 아닐까. 첫 번째로 그냥 유시민이기에. 두 번째로 역사 고전을 읽고는 싶은데 엄두가 안 나서 친절한 가이드로 선택한 경우. 세 번째로 내가 읽었던 책을 유시민은 어떻게 독해했을까 확인하는 경우.  


5. 역사에 대하여

  그의 가이드를 따라 익숙한 역사 고전을 훑고 난 느낀 점을 이야기해보자면 '각 시대의 역사는 나름의 공과가 존재하고, 완벽한 역사는 없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인류 역사에 기라성 같은 고전들을 마주하는데, 그토록 위대한 역사서도 나름의 장단점이 반드시 있었다. '일어난 사건들'이 주관적인 인간의 관념으로 환원하여 기록한 것이 바로 역사다. 주관의 개입이 필수적이기에 역사는 필연적으로 오류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주관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인문학의 본질적 특성이기도 하다.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다르게 명확한 해답이 없다. 해답이 없다는 것은 결국 수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인간의 주관적 개입을 제외하고서라도 오류가 생길 부분은 많다. 시대적인 한계와, 그 시대를 지배하는 관념과 종교적 시각도 역사 기록에 있어서는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럼 누군가는 이런 오류투성이의 역사를 굳이 읽을 필요가 없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저자의 생각을 읽으며 판단한 내 최종 대답은 "그렇다."이다. 읽을 가치가 있다. 괜히 역사 고전이 살아남았겠는가.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고전의 내용은 여전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무엇이 담겨있다. 또한 내용을 넘어, 왜 그런 오류의 역사서가 탄생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배경도 탐구하다 보면 배울 점이 많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오류투성이고 빗나갔다 하더라도, 그가 왜 오류투성이의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었는지 알다 보면 오늘날 문제 되는 갑질 횡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틀렸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바르지 못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대안을 제시하다 보면 틀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틀리든 옳든 개선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값진 것이다. 이러한 값진 가르침을 가지고 있기에 역사는 읽을 가치가 있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서사의 힘'이라는 표현도 이러한 역사의 속성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책은 이런 값진 교훈이 가득한 역사 고전들을 독자들이 먹기 좋게 잘게 씹어서 안내하고 있다. 다만 역사적 교훈을 제대로 느끼려면 이 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에 언급된 고전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만으로도 서사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겠지만, 서사의 필하모니를 더욱 생동감 있게 느끼려면 요약, 해설본으로는 한계가 있다. 패키지여행이 아무리 퀄리티가 좋다 하더라도, 결국은 자유여행의 깊이를 따라갈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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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지젝
켈시 우드 지음, 박현정 옮김 / 인간사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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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슬라보예 지젝을 알게 된 계기는 철학에 있어 변증법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였다. 근현대 철학을 배우면서 변증법은 피할 수 없는 사고의 틀이었고, 이런 변증법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슬라보예 지젝이기 때문이다. 지젝에 관심을 가지며 그의 글을 검색하여서 읽었는데, 내가 읽었던 글은 영화에 대한 글이었다. 그 글에서 느껴지는 박식한 세계관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이후 지젝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경제학 저서를 뒤지면서였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을 공부하고, 공산주의 사상이 현대에는 어떻게 계승됐고 발전됐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나는 과거에 만났던 지젝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 두 번의 만남을 통하여, 나는 지젝의 철학에 궁금증이 생겼지만, 물리적 시간의 한계와 나의 게으름을 핑계로 만남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이렇게 개론서를 통하여 지젝의 관념을 처음이자 본격적으로 접하게 됐다. 

한 철학자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그 사상가의 철학을 정리하여 쉽게 풀어쓴 개론서로 만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공부하려는 철학자의 사상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또 한가지 방법은 바로 개론서 없이 원전 번역된 글을 직접 접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매우 거칠고 힘들지만, 타자의 도움 없이 나만의 주관적인 관념으로 철학자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두 방법 모두 좋은 방법이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그 철학자의 저서를 나만의 관념으로 독해하여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이 책은 지젝의 대표 저서를 차례대로 잘 정리한 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기존의 개론서가 가지는 성격과는 조금 다른데, 지젝의 사상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 나름대로의 주관을 개입하여서 해설을 시도하고 있었다.

책은 솔직히 어려웠다. 아무리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인물의 철학이라 하더라도, 철학이라는 장르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더구나 나는 근대철학자들의 저서를 아직까지 섭렵하지 못했으므로, 오늘날 현대 철학자라 할 수 있는 지젝의 사유를 이 책을 통하여 온전히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철학이란 장르가 그렇다. 철학은 이 땅을 살아온 선각자들이 행했던 사유의 집합이자 연속체다. 그렇기에 플라톤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비판적으로 계승됐고, 이런 고대철학은 중세의 신학 철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신학 철학에 반발로 이성을 중시한 근대철학이 들어섰다. 데카르트의 관념론은 칸트와 헤겔을 통해 이어졌고, 이런 헤겔의 변증법은 지젝의 철학적 사유의 핵심이 됐다. 이뿐 아니라 지젝의 철학에는 순수 철학과 관념론만 내포한 것이 아니다. 그의 철학에는 라캉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 역시도 포함됐으며, 마르크스의 정치 경제학적 요소도 포함됐다.

수학을 배울 때 곱하기 나누기를 모르면 인수분해를 할 수 없듯, 이 책 역시 개론서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 헤겔의 변증법과, 라캉의 정신분석학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헤겔에 대해서는 깔짝거려본 경험이 있고, 풍문으로 알고 있는 잡지식이 있지만, 라캉은 나에게 매우 생소했다. 지젝은 라캉을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철학적 이론을 전개하고 있으므로, 라캉의 이해 없이 지젝을 이해하기란 너무도 어려웠다. 물론 책 앞에는 라캉에 대한 기본적인 부분을 기술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책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라캉에 대해 알고 난 뒤에 다시 재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통해 만난 지젝의 세계관은 매우 넓었다. 저서를 통해 본 그의 사유는 굉장히 넓고 깊었다. 보통 철학자는 한 분야에 몰두하여 집중적으로 사고하기 마련인데, 이 사람은 정치, 경제체제, 문화, 영화, 혁명, 경제 등등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유를 전개하고 있었다. 한 인간이 다방면적인 사고를 통해 비치는 세계를 이토록 명료하게 정의하고 정리할 수 있다는 것에서 나는 감동을 받았다. 그의 글은 매우 논쟁적이고 도발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숙한 진지함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유머러스한 비유와 해학적인 풍자를 통하여 청중에게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였다. 또 인상적인 것은 그토록 방대하고 견고한 자신의 세계관을 스스로 비판하고 붕괴하여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의 철학을 스스로 비판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젝은 이런 사고과정을 통하여 스스로의 관념을 확장시켰다. 나는 이런 그의 비판정신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광대한 그의 사고, 그 사고로 형성된 지젝만의 세계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렵기도 어려웠지만, 같은 인간이지만 이토록 넓은 세계를 구축한 그가 부러웠다. 어려운 그의 세계관에 모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의 철학적 사유의 폭을 보며, 나의 인식의 빈약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나의 세계관은 지젝의 세계관에 비해 허술하고 좁으며, 깊지 않았다. 물론 넓고 깊고 튼튼한 것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그의 세계로 인해 정신적인 자극을 받은 것임에는 틀림없다. 철학의 목적은 무엇일까? 인간은 왜 타자의 깊은 사유와 세계를 배우고 받아들이며, 비판하는 것일까? 그저 타인의 사유를 수동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목적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지젝의 완고하면서 단단한 세계관과 나의 빈약한 세계관이 충돌했다. 그 충격으로 인해 나의 세계관과 관념은 박살 나고 일그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좁았던 내면은 붕괴했고, 이전의 영역보다는 좀 더 크게 사유하기 시작하고, 좀 더 넓은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사유와 사유의 충돌, 그리고 그 여파로 인한 내면적 갈등, 그리고 이어지는 내면의 성장. 이것이야말로 철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이 아닐까?

  그래서 나의 내면은 이 책을 통해 좀 더 넓어질 수 있었다. 책의 어려운 내용을 모두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독서를 통해 이러한 목적의식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큰 소득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번에 다시 읽을 때에는 지금처럼 불편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편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내면과 세계가 성장했다는 증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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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공양전 - 국내 최초 완역본
공양자 외 지음, 곽성문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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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를 주석한 책은 대표적으로 세 가지인데 이를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춘추좌전》, 《춘추곡량전》, 《춘추공양전》. 이 세가지 고전은 춘추삼전으로 불려왔으며, 공자가 편찬한 《춘추》를 이해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춘추》는 유교의 사서오경에도 들어가는 귀중한 역사책이지만, 사실 《춘추》 자체의 기록은 매우 소략하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거추장스러운 수사가 없는 짧은 단문 형식의 메모글로 역사를 서술하였기에, 《춘추》 자체만을 읽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춘추》가 이렇게 소략하게 기록됐기에 《춘추》를 연구했던 후학들은 독자적인 주석을 가미해 《춘추》의 뜻을 확장하고 《춘추》의 뜻을 명확하게 설명했으며, 《춘추》가 다루던 배경을 주석으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흔히 오늘날 《춘추》를 말하면 대부분 《춘추좌전》을 의미하는데, 그만큼 《춘추좌전》은 춘추의 주석서 중 가장 권위 있는 주석서로 인정받았으며 이런 시각은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춘추좌전》은 《춘추》의 소략한 기록의 배경을 방대하게 풀어내어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춘추》는 노나라 역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춘추좌전》에서는 노나라 역사도 역사지만 노나라 역사가 진행될 때 제후들과 주변국의 움직임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또한 간략하기 그지없는 《춘추》의 본문을 부연하고 해설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춘추좌전》이 《춘추》가 다루는 내용을 그저 부연하고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았다. 《춘추좌전》의 저술 목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당한 시비'에 있다. 그렇기에 결국 본문을 부연하고 주변 나라들의 동향을 자세하게 기록한 이유 역시 올바른 시대적 판결이라는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춘추공양전》과 《춘추곡량전》 역시 기본적으로 《춘추좌전》과 비슷한 목적하에 편찬됐다. 다만 《춘추좌전》에 비해 《춘추공양전》과 《춘추곡량전》은 역사에 가깝기보다 철학에 가까운 저서들이다. 《춘추좌전》은 공자가 편수했다는 《춘추》 본문도 중시하지만 그 외의 주변국의 상황이나 역사적 사례 등등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공을 들이고 있는데 반해, 《춘추공양전》과 《춘추곡량전》의 내용은 철저하게 《춘추》 본문의 경문을 벗어나지 않는다. 《춘추좌전》이 경문을 넘어선 배경까지 다루는데 반해 《춘추곡량전》과 《춘추공양전》은 철저하게 경문 중심이다. 두 책은 《춘추》의 경문이 어떤 연휴로 기록됐으며 기록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이런 기술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두 책은 《춘추좌전》에 비해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강조됐다는 부분이다. 《춘추》의 원문을 중시하여 밝힌다는 것은 이를 정리했다는 공자를 드높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에 《춘추곡량전》과 《춘추공양전》은 엄밀히 따지자면 역사를 바탕으로 한 철학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반면 《춘추좌전》의 경우는 전형적인 역사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춘추곡량전》과 《춘추공양전》은 둘 다 유학을 중심으로 철학적인 해설이 붙어졌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 《춘추곡량전》은 유학적 이념이 매우 깊은 저서지만 《춘추공양전》은 유학적 이념에 충실하되 현실적인 힘의 관계도 나름 고려하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춘추공양전》의 시각은 대표적으로 들끓는 패자 국가들과 주나라 황실에 대한 해석에서 볼 수 있다. 《춘추》와 세 주석서의 공통된 주제는 유학적 이념에 충실한 것이고, 그러한 유학적 이념이 지향하는 목표는 주나라 봉건제의 질서를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 책은 모두 주나라 황실에 대한 대의명분을 강조한다. 그러나 《춘추곡량전》은 무조건적으로 주나라 황실을 옹호하는 반면, 《춘추공양전》은 주나라 황실과 봉건제를 옹호하면서도 한편으로 신망을 잃은 주나라 황실 역시 비판적인 서술로 기록했다. 비유하자면 《춘추곡량전》의 입장은 윗물이 똥물이더라도 아랫물은 그저 맑아야 한다는 논리고, 《춘추공양전》의 논리는 아랫물이 맑아야 하긴 하는데, 윗물 역시도 맑음을 유지해야 하니, 이런 혼란은 결국 두 물 모두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기에 두 책은 유교 이념에 치우친 역사 철학서지만, 나름의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쪽은 《춘추공양전》 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춘추공양전》보다는 《춘추좌전》 쪽이 더 재미있었지만, 고대 동양에서 역사를 철학적으로 풀이한 《춘추공양전》 역시도 흥미롭게 읽었다. 《춘추공양전》의 핵심은 바로 '대일통 사상'이다. 즉 문자 그대로 하나로 통일된 것을 의미하는 '대일통 사상'은 《춘추》와 《춘추공양전》의 핵심적인 키워드다.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은 결국 무너지고 붕괴한 주나라 봉건주의 시스템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이고, 즉 이를 역사적으로 밝히기 위해 공자는 《춘추》의 경문을 지었다는 것을 《춘추공양전》은 강조한다. 공양학파의 논리를 정리해보자면 결국 공자는 《춘추》를 저술함에 있어 대일통 사상에 입각하여 역사를 정리하였고, 《춘추공양전》은 그런 공자의 숨겨진 대일통 사상을 자세하게 드러내어 공자의 집필 공식을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대일통 사상은 분봉제를 바탕으로 한 봉건주의 질서를 강조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순수한 지방 영주들 위주의 정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일통 사상의 핵심은 천자로 대표되는 막강한 제왕을 중심으로 정치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춘추공양전》이 한나라 시기에 유행했는지를 살펴보면 그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중국 한나라 시대에는 분봉제를 기초로 한 중앙집권 형태 국가였다. 그렇기에 지방 자치를 의미하는 분봉제와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중앙집권제가 혼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질적인 정치제도를 잘 굴러가게 하려면 분봉을 받은 제후국은 지방에서 실력을 과시하기보다 중앙 정부의 명령만을 잘 받도록 관리해야만 했다. 또한 중앙에 위치한 황제 역시도 지방 영주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야만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만방에 넓힐 수 있었다. 이런 환경은 필연적으로 《춘추공양전》이 지향하는 대일통 사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서 한나라 대에 황제들과 중앙 관리들은 의도적으로 《춘추공양전》을 드높였고, 그래서 한동안 성행했다고 한다. 오늘날 중국이 시행하는 소수 민족 정책 역시도 어찌 보면 대일통 사상을 떠올린다. 결국 중앙 한족으로 통일하는 것. 소수민족의 자치를 인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의도를 뜯어보면 궁극적으로 한족으로부터의 예속, 종속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춘추공양전》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공자가 다룬 노나라의 역사를 시기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눠 해석했다는 부분이다. 이를 두고 책에서는 '장삼세설'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세 부분은 난세(소전문세), 안정과 발전기(소문세), 태평세대(태평세)로 구분되는데, 유학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국가의 발전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춘추》의 경문은 공자의 죽음으로 끝맺고 있는데, 결국 국가 발전의 마지막 단계인 태평성대는 공자라는 성인의 등장과 그의 철학이 세상에 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기록과는 다르게, 국제 정세와 노나라의 정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패권주의로 흐르고 있었다. 《춘추공양전》의 장삼세설은 이념적인 측면에서 강조됐지만, 정작 현실은 《춘추공양전》의 기록과는 다르게 더더욱 난세로 치닫고 있었다. 기록대로라면 노나라의 발전과 중원 대륙의 발전은 태평성대로 끝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춘추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국가 간의 질서와 천자와 제후 간의 균형은 무너져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장삼세설을 통해 나는 역사를 파악하는데 있어 하나의 주관과 이데올로기를 고집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역사의 왜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춘추공양전》은 역사 기록을 유교 철학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잘 풀어낸 명저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유학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시각 때문에 역사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하였다. 나는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하나의 주관을 가지고 집필을 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물론 일정한 집필 방향이 있으면 좋겠지만 때론 집필 방향과 어긋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경우, 역사가는 진실에 입각하여 기록을 하기보다, 자신의 집필 방향 (어떠한 이념이나, 목적 따위)에 충실하여 진실에 입각한 역사를 져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역사가는 자신의 관념 역시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바탕으로 사료를 대하고 선별하며 해석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런 나의 역사적 주관에 입각한다면 《춘추공양전》의 장삼세설은 비판적인 눈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집필 방향이 아쉽긴 했어도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 까마득한 고대에, 역사를 두고 이토록 진지하게 철학적으로 풀어낸 저서가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춘추공양전》을 읽으면서 앞서 읽었던 《춘추좌전》이 많이 생각났다. 두 저서는 같은 《춘추》를 해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두 책이 추구하는 춘추필법의 공통점은 주나라 봉건시대로의 회귀를 지향한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집필법이 상이하다는 점이다. 《춘추좌전》은 전형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사건을 평가하는 정통 역사서고, 《춘추공양전》은 스토리텔링보다 《춘추》의 경문이 어떻게 집필됐는지 치밀한 질문을 통해 의미를 찾는 역사 철학서다. 따라서 두 책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했지만 집필 스타일로 인해 전혀 다른 장르의 책으로 갈라졌다. 《춘추공양전》의 문답법을 읽다 보면 서양의 소크라테스 문답법이 생각났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상대의 의견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춘추공양전》 역시 《춘추》 본문의 집필 의도를 밝히기 위해 끊임없이 물음에 물음을 거듭하고 있었다.

  역사철학서라 장르 자체에서 내용이 딱딱할 수밖에 없는 《춘추공양전》이지만, 중간중간에 역자의 센스 있는 해설이 있어서 책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해설은 모든 대목이 있진 않고 복잡한 사건이거나, 부연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만 나와 있는데, 괜찮은 편제 같았다. 해설이 길지도 않고 적당한 부분에만 있어서, 본문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춘추좌전》과 《춘추공양전》을 읽었으니, 《춘추곡량전》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춘추곡량전》까지 읽어야 비로소 '춘추삼전'을 읽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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