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연의 : 리더십을 말하다 - 중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국가리더십연구센터 국가리더십연구총서 3
진덕수 지음, 정재훈 외 옮김, 김병섭 편집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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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연의》 중권은 우리 실생활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내용들로 구성됐다. 중권의 핵심은 바로 리더십인데, 리더십의 핵심은 두 가지로 첫 번째는 지도자의 치인이고, 두 번째는 지도자의 수양이다. 《대학연의》는 이상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할 사람이 바로 지도자라고 강조한다. 사실 나는 국가 운영을 한 사람의 책임으로 규정하는 전통적인 시각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왜냐면 오늘날 민주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국정 운영을 독점하는 모습보다, 분산된 권력의 모습이 더 친숙하고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근대 왕조 국가에서 나온 숱한 제왕학 책을 읽을 때마다 국가경영에 있어 한 개인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대학연의》 독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현대인이 전근대 왕조국가의 시대적인 사회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비롯한 것이다. 책이 나온 시기, 그리고 책이 다루고 있는 배경은 한 명의 절대권력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이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이런 불편한 마음과는 다르게, 《대학연의》에서 고찰하고 있는 인간 중심의 리더십은 오늘날 현대에서도 매우 유용한 덕목들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회생활이나 학교생활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학교나 직장 생활에 있어 교우관계, 인간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문제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시대가 바뀌어도 유효하다.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도 인간관계가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데, 국가의 운영이나 조직의 운영에 있어 인간관계의 중요성은 두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어떤 사람을 임용해야 하고, 어떤 사람을 내쳐야 하며,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일을 맡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국가와 조직운영의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과 국가의 경영에 있어 인간관계는 사적인 영역의 인간관계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사적인 영역에서 인간관계가 틀어졌을 시 개인이 피해를 받는 선에서 그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의 잘못된 인간관계는 공동체 전체에게 막심한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나 지금이나 정치의 근본은 인사에 있다고 강조한다. 《대학연의》에서는 좋은 사람을 고찰하는 것 이상으로 악한 간신들을 구별하는 방법에 집중한다. 그들은 지도자에게 달콤하게 접근하며, 지도자의 눈과 귀를 닫아버리고, 권력을 사유화한다. 왕조국가에서 권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권과 군권을 소리 없이 장악하며, 자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소인배들을 정치판에 끌어들여 당파를 결성한다. 그렇게 권력을 손아귀에 틀어잡은 뒤, 가면을 벗고 가렴주구에 열중하며 허수아비 같은 지도자를 압박하고 겁박한다. 지도자는 권력을 빼앗기고 나서야 간신들의 정체를 깨달으며, 후회한다. 

 우리는 이런 비슷한 사례를 최근 겪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문고리 3인방이 그 주인공이다. 《대학연의》에서 고찰한 간신의 유형과 21세기 최순실이 행했던 모습은 토시 하나 바뀌지 않고 똑같이 재현됐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학연의》에 권력을 빼앗긴 군주들은 빼앗긴 권력을 두고 후회하거나 되찾으려는 모습을 보이기라도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아예 그런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전근대에는 권력의 핵심이 군대였지만, 오늘날은 권력이 핵심이 돈으로 대체됐다는 차이. 이 두 가지가 다를 뿐 나머지 국정농단의 흐름은 완전히 똑같았다. 현재는 과거를 그저 재현할 뿐이고, 인류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은 늘 반복된다는 문구 역시 이러한 사례를 꼬집은 것이리라. 《대학연의》는 앞선 국정 농단 사례와 같이 인간사에 있어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반복적으로 일어나던 인간 관계 문제를 심도있게 분석하고 있다. 반복되는 사건과 국정 농단을 세심하게 분석하여 지도자의 통치에 있어 거울로 삼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럼 과연 박근혜 대통령이 간신의 행적을 자세하게 논한 《대학연의》를 읽었다면,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할 수 있었을까. 회의적이다. 과거 그녀는 치국의 도를 얻기 위해 《정관정요》를 탐독하고 읽었다는데 고전을 읽고도 실천을 하지 않았으니, 아마 《대학연의》를 읽는다 해도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인사와 더불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지도자의 자기 수양이다. 인간은 완벽한 동물이 아니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인간의 내면적 결점을 깊이 인식한 《대학연의》는 모든 지도자의 리더십은 지도자의 수양으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마음 수양에 매진할 것을 강요하는데, 빈틈없이 부단히 노력하라는 유학의 자기 수양론은 너무 빡빡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너무 도덕에 집착하고 도덕을 강조하는 것도 좋게 보이진 않는다. 억지로 강요된 도덕은 결국 타율적 성격을 가지는데, 이런 취지로 퍼진 도덕은 자율성을 내포한 도덕의 본뜻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또한 냉정하게 따져본다면 자기 수양이 일의 성사와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인품이 뛰어난 사람은 전반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좋은 결과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오늘날에 커다란 공을 이룬 지도자라도 도덕적, 인성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 자기 수양은 리더십과 관계가 없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우리는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능력이 바로 도덕성이다. 동서고금, 그리고 시대를 막론하고, 하층민은 상층에 있는 사람에게 도덕적인 모습을 기대했다. 그리고 이런 시각은 특히 예법과 도덕을 강조한 유교적 전통이 있는 지역에서 더욱 강했다. 지도자는 슈퍼맨이 아니다. 그렇기에 현실적이지 않은 도덕성의 잣대를 들고 엄격하게 해부하듯 평가하는 것은 지양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도덕성이 결여된 인간을 정치에 들여서도 안된다. 너무 엄격한 잣대로 도덕을 재단하는 것도 문제지만, 도덕성이 아예 없는, 자기 수양과는 거리가 먼 인간을 중요 요직에 올리는 것도 경계해야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적어도 자기 스스로를 수양하는 것이라도 열중했다면 이렇게까지 욕을 먹진 않을 것이다. 수양을 통해 마음을 정갈하게 하였다면, 측근을 이용하여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유혹을 극복했을 지도 모르고, 최순실의 국정 농단도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을 지도하는 위치에 서려는 사람들은 적어도 남보다는 더 나은 도덕성을 보여줘야만 한다. 그래야 남들로부터 신망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권력에서 나오는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 수양이 덜 된 지도자는 권력에서 뿜어나는 유혹을 거부하지 못하고 권력의 달콤함에 굴복해 타락하고 만다. 이런 지도자를 우리는 역사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으며, 굳이 복잡하게 역사책을 뒤지지 않더라도 오늘날 현실 정치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결국 지도자가 자기 수양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남에게 도덕적으로 잘 보이기 위해서라는 표면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핵심은 바로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극단적으로 과도한 자기 수양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자기 수양은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 《대학연의》가 추구하는 리더십은 어떤 의의를 가질까? 얼핏 보면 큰 의의가 없어 보이기도 하다. 좋은 내용의 글이고 현실성이 있다지만,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권력자가 아니고 권력과는 거리가 멀기에, 최고 권력자의 리더십을 논한 《대학연의》는 크게 와닿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리더십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덕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오늘날 현대 시민은 권력과 권한이 과거보다 분배된 사회에서 살고, 민권이 성장한 시대에 살기 때문에, 이런 현대 시민에게 있어 리더십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필수적인 덕목이다. 가정을 이끌어가는 부분에서, 자식을 교육하는 부분에서, 친구들 간의 모임을 주선하는 부분에서, 직장 생활에서 짬밥이 붙어 부하들을 인솔하는 과정에서, 일상 모든 부분에서 리더십은 필요하다. 이런 일상의 리더십이 보편화된 시대에서, 《대학연의》가 추구하는 리더십은 인간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두고 있기에 교우의 구분, 직장의 관계, 일상의 인간관계에 크게 도움이 된다. 또한 상류층의 도덕적 해이가 일상화된 오늘날 사회에서 지도자의 자기 수양을 강조한 《대학연의》의 리더십은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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