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연의 : 리더십을 말하다 - 하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국가리더십연구센터 국가리더십연구총서 3
진덕수 지음, 정재훈 외 옮김, 김병섭 편집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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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에서 권력자들의 주변 인물이 공적인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는 사례는 흔하게 찾을 수 있다. 권력자의 친인척, 그리고 직계 가족들의 비리로부터 자유로웠던 정부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례뿐만 아니라, 보수와 진보 어떤 정권에서도 이런 문제는 늘 제기됐었다. 전근대에 비해 권력이 분산된 현대에서도 이렇게 권력의 핵심부는 사적 남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막강한 권력이 집중된 전근대 왕조 국가에서는 권력의 사적 남용이 엄청난 문제로 인식됐을 것이다. 제가의 요체는 이러한 특권 세력의 국정 농단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다.

제왕에게 있어 가족의 존재는 매우 모순적이다. 전근대에서 왕의 힘은 국가의 공적인 힘과 일치했다. 그러나 이런 제왕도 가족을 이루며 자식을 가지게 되면, 편애하는 마음으로 가족과 자식을 챙길 수밖에 없다. 즉 제왕에게 있어서 가족과 외척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충돌하는 전쟁터였다. 외척이 쉽게 권세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제왕과 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이다. 만약 군주가 가족에 대한 애정에 과도하게 도취되어 중심을 못 잡고 인척을 편애한다면, 권력의 축이 외척에게 이전된다. 외척은 이런 총애를 바탕으로 권력의 핵심을 장악하고 파당을 이루며 자신의 가족들을 권력의 핵심에 올린다. 이렇게 세도 가문이 탄생하고, 제왕은 허수아비로 전락한다.

사실 《대학연의》 하권의 내용인 '제가의 요체'는 《대학연의》 중권에 '격물치지의 요체' 챕터 안에 '인재를 분별함'과 거의 흡사하다. 차이점이라면 '제가의 요체'에서 나오는 국정 농단의 주체는 제왕의 가족이나 외척, 환관(內臣) 들인데 반해 '인재를 분별함'에서 나오는 국정 농단의 주체는 일반적인 신하(外臣) 들이다. 책을 읽으며 비슷한 내용을 이렇게 구분하고 굳이 중복해서 서술할 필요가 있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분량 면에서 '제가의 요체'가 '인재를 분별함'보다 훨씬 많고,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당시 빈번하게 이뤄졌던 국정 농단은 외신들보단 내신들과 제왕의 인척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일어났음을 유추할 수 있다. 아마 저자인 진덕수는 권력의 타락은 권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이뤄진다는 교훈을 강조하기 위해, 국정 농단에 관련한 내용을 앞서 서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의 요체에서 다시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영국의 역사철학자 액튼경은 절대권력에 대해 이런 명언을 남겼다. '모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대학연의》 역시 이러한 관점을 깊이 있게 숙고하고 있고, 이런 막강한 절대권력의 부패를 막기 위하여 지도자의 수신을 그토록 강조하였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성공적으로 절대권력을 휘두른 제왕보다, 권력에 굴복하여 타락한 제왕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만큼 힘이 집중된 절대 권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부패의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이런 권력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군주의 가족들과 군주를 최측근에서 모시는 내신들이다. 그들은 유혹적인 권력의 향기에 쉽게 노출됐고, 쉽게 타락했다. 그 결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저자 진덕수는 《대학연의》의 '제가의 요체'에서 제왕의 가족들과 내신들의 단속을 엄격하게 강조했던 것이다.

지도자의 외척이나 인척이 중심이 된 권력의 사유화는 과거에도 우리 시대에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조선 말기에는 외척들이 왕의 권력을 능가하며, 국정을 사유화했으며, 2016년에는 최순실이라는 가정주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묵인 아래 대한민국의 모든 국정을 사유화하여 좌지우지하였다. 물론 이런 비정상적인 경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개국 초, 태종 이방원은 외척 세력들의 비리를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권력 앞에서 절제하지 못했던 그의 처남들은 태종의 칼날에 모두 숙청됐으며, 외척뿐만이 아니라 미래를 이을 세자를 위협할 수 있는 권신들을 모두 제거했다. 냉혈한이라 불리는 이방원이지만, 왜 인간적인 갈등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공적인 책임과 사적인 감정을 혼동하지 않았다. 힘들게 건국한 신생국 조선의 탄탄한 아침을 위해, 그는 사적인 감정을 억제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후대에 처가를 몰살했다는 잔인하다는 혹평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안정된 왕권과 탄탄한 나라 기반을 세종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대학연의》는 그런 태종의 애독서였다. 태종은 《대학연의》를 논하며 '외척에 대한 역사적인 교훈'을 얻었다고 이야기하는데, 분명 '제가의 요체' 챕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가족이나 친지를 챙기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적인 감정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대학연의》 하권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지도층도 공사를 구분할 수 있는 태종 이방원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길 희망했다.

 

 

 

- 책을 완독하며

 

《대학연의》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여름이었다. 무척 더웠던 계절, 네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대학연의》가 번역본이 나왔다며, 가장 친한 형이 선물을 해 줬는데, 그때의 벅찬 기쁨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생하다. 그 시기의 가장 큰 행복은 일과를 마치고 찬물로 샤워를 한 뒤 스탠드에 불을 켜고 《대학연의》를 읽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책은 쉽게 읽어지지 않았다. 철학과 역사의 만남. 유학의 형이상학적인 이론 철학과, 중국의 시대를 종횡으로 넘나들며 전개하는 역사적 식견은 각각 감당하기에도 벅찬 수준이었는데, 이 둘이 혼합되어서 전개되고 있었기에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린아이가 인수분해 문제를 들고 하루 종일 고민하는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꾸역꾸역 읽어나갔다. 처음 완독했을 때에는 전체적인 윤곽만 파악했고, 세세한 부분까지는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첫 완독 직후에는 스스로 뿌듯한 감정에 흠뻑 도취됐었다.

여러 번의 완독을 거치면서, 텍스트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해되지 않던 문장들은 반복을 거듭하자, 조금씩 문이 열리는 듯하였고, 생소하던 역사적 사건들도, 중국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나니, 친숙하게 다가왔었다. 그렇게 책이 익숙하게 읽힐 무렵, 나 스스로가 절제가 되지 않거나, 분노의 감정에 휩싸였을 때에는 습관적으로 《대학연의》의 구절을 찾아서 마음을 다스렸다. 국정이 농단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대학연의》에 일부 권신, 외척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농단하던 사례를 찾아 읽었다. 분명 1000년 전에 쓰인 책인데도 불구하고, 그때의 정치적 모순이나 오늘날 정치적 모순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흡사했다.

그렇게 내 곁에는 항상 《대학연의》가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새로운 《대학연의》 번역본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새롭게 나온 《대학연의》는 기존의 《대학연의》 번역이 가지고 있었던 아쉬운 부분들을 모두 수정하여 나왔다. 명확한 번역, 전문성, 쉽게 읽히는 문장, 꼼꼼한 편집, 주제별로 잘 나눈 분권, 예쁜 표지까지... 확실히 서울대에서 출판한 책이라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흠잡을 곳이 없었다. 물론 지금 이렇게 만족하는 번역본일지라도, 훗날 이보다 더 나은 《대학연의》 번역본을 만나고 싶긴 하다.

두꺼운 책을 끼고 다니며 읽으니 사람들은 말한다. 뭐 하러 그런 고리타분한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냐고. 현실에 뒤떨어진 곰팡내 나는 벽돌을 굳이 저렇게 애정 하며 읽을 필요가 있냐고도 하더라. 그런 사람들에게 굳이 내 입장을 번거롭게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냥 좋아서요.라고 일갈하듯 끊어버렸다. 실제로 《대학연의》는 지금 읽어봤을 때 현실감이 떨어지는 내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대학연의》 뿐만이 아니라 모든 고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결점이다. 고전은 그 시대의 산물이기에, 태어난 시대의 모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대학연의》가 품고 있는 가장 큰 결점은 바로 인간에 대한 시각이다. 《대학연의》는 주장한다. 인간은 선하고, 그렇기에 그런 선한 마음을 바탕으로 인의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선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반성을 끝없이 해야 하며, 지도자는 이에 더욱 앞장서야 한다고. 여기서 가장 핵심은 인간이 선하다는 것에서 논지가 시작한다는 것이다. 과연 인간은 선한 것일까? 만약 선하지 않다면, 《대학연의》가 주장하는 정치와 치국론은 근본적으로 성립될 수가 없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인간의 마음을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게 됐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인류가 선하고 착하다면, 종족의 번식을 위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인간은 자신의 생존, 그리고 자신의 집단의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생태계뿐만이 아니라 동족인 같은 인간도 죽였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 무한 경쟁 사회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과연 성선설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인 생각이다. 그럼 인간은 법가가 주장하듯, 악하고 이기적이며 욕망으로만 가득 차기에 힘으로 굴복시켜야만 하는 존재인가. 그렇지도 않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공감력에 있다. 인간은 유대감과 공감력이 매우 뛰어난 편인데, 이런 유대감과 공감력의 배경에는 선한 마음이 있다.

생물학적 이기와 인간만의 이타가 공존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 과학이 밝힌 인간의 본성이다. 오늘날 사회는 겉으로는 이타를 권장하지만, 속으로는 이기를 추구한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연일 뉴스에서는 인간의  뒤틀린 이기가 극도로 발현된 사건들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정치에도 사회에서도 이타적인 모습보다는 이기적인 모습이 주로 보인다. 인간적인 휴머니즘을 갈구할 때 나는 습관적으로 《대학연의》를 읽었다. 책을 읽으며 무한 이기주의에 익숙한 우리가 잊어버렸던 이타의 가치는 무엇인지 되돌아보려고 노력했다. 《대학연의》의 성선설이 시대적인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철학적으로 고찰한 인간의 이타주의는 오늘날 사회를 돌아보기에 충분한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임어당이 극찬한 수필집인 《유몽영》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경서(철학서)를 읽기에는 겨울이 좋다. 정신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서(역사서)를 읽기에는 여름이 좋다. 날이 길기 때문이다.'  《대학연의》는 철학과 역사가 고루 섞인 책이고, 분량도 많은 편이기에 날이 긴 여름에 읽기에 적합한 도서라고 생각한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무척 더웠지만, 그래도 완성도가 높은 《대학연의》 번역본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렇게 유난히 더운 2018년 여름에 나는 행복을 부르짖으며 《대학연의》를 다시 완독했다. 완독을 하는 동안, 지독히도 추웠던 2016년의 겨울의 순간이 자꾸 떠올렸다. 육체는 푹푹 찌는 여름에 있었지만, 의식은 싸늘하게 추웠던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지금 우리가 이룩한 국가는 어떤 국가인지',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의 지도층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지',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의 마음은 세속의 타락과 유혹으로부터 굳건하게 저항할 수 있는지',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치유해야 할 모순이 많고, 지도층의 리더십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 스스로도 자기 수양에 있어 부끄러운 부분이 많았다. 그렇기에 다음 《대학연의》를 읽을 때에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했던 물음들에 확실하게 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더라도,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졌기를 희망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그저 바라고 소망하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성취로 이뤄진다. 그래서 나는 다음에 《대학연의》를 다시 마주할 때까지,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의 내면 수양을 꾸준하게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더 나은 사회, 그리고 더 나은 자신을 스스로에게 약속하며 두툼한 양장본을 서재에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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