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세트 - 전32권 (2023년 최신쇄)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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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세대 때 남자들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소설로 꼽힌 작품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삼국지》고 또 하나는 바로 《대망》 즉 정식 이름으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작품이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분량이 많다는 점과, 엄청난 인물이 나온다는 점, 그리고 전형적인 남성 중심의 사고 관념에 입각하여 쓰인 작품이라는 점이다. 특히 지금 리뷰하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동양의 전통적인 남성 판타지물인 《삼국지》보다 훨씬 분량이 많으며, 훨씬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시판되는 단행본 기준 《삼국지》는 10권 이내로 끝나는데 반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무려 32권으로 구성됐으니, 어마어마한 장편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골적으로 말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삼국지》의 일본 버전이다. 남성들의 대의와 야망, 대망 등등을 웅장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 다루고 있는 시대는 전쟁이 일상화된 난세라는 점, 여성의 역할은 그저 남성의 야망에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념 등등... 두 소설은 일란성 쌍둥이와 같이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에 큰 관심이 있으면서도, 이 소설을 통해 도쿠가와를 만나고 싶진 않았다. 《삼국지》에서 중화적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기 위해 유비를 미화했듯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소설은 역사적인 이에야스의 모습을 분명 미화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 어머니가 이 책을 권하며, '남자라면 꼭 읽어야 할 소설, 무릇 대망을 가진 남자라면 필독서로 읽어야 하는 소설.'이라고 강조할 때마다 부모의 청을 모른 척 외면했다.

  나는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나는 허구가 곁들여진 소설보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비문학이나 생각을 담은 칼럼 등등을 주력하여 읽었고, 그랬기에 유명한 소설들은 대부분 축약본을 통해 스토리만 아는 정도였다. 그런 내게 32권이나 되는 장편 소설이라니 부담이 될 수밖에. 그러다 어느 날 잡지에서 서평을 읽은 적이 있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 소설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금은 정확하게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연세가 있던 분이 쓴 글이어서 그런지 호평 가득한 내용이었다. 글을 읽으며 하나의 장편소설이 어떤 힘이 있기에 한 시대의 저명한 인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장편 소설을 중고 서점에서 조금씩 조금씩 구매하였고, 틈틈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책은 내가 생각하던 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절대적인 선(善)의 가치를 불어넣어 미화하여 그려내고 있었다. 만약 일본 전국 시대에 역사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야마호카 소하치라는 인물이 가공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실제 역사 인물의 모습으로 착각하여 인식할 듯싶다. 중국 역사에서의 유비의 모습과 《삼국지연의》에서 그리는 유비의 모습이 전혀 다르듯,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나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실제 역사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다른 인물이다.

  책은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듯, 어마어마한 등장인물이 나온다. 또한 책에는 많은 여자들이 나오는데, 저자인 야마호카 소이치는 그녀들을 대체적으로 남성에 종속된 수동적인 존재로만 그려내고 있었다. 여자는 그저 어머니가 되어야만 비로소 여성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남자의 대의를 위해서라면 여자의 희생은 당연히 필요하다. 여성에게 있어 혼인은 남성을 중심으로 한 당주의 가문의 영속을 위한 정치적 결합에 불과하다는 생각 등등... 오늘날 남녀평등의 시각으로 이 소설을 바라보면, 굉장히 불편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근대 이전 일본은 남존여비가 다른 사회보다도 더 엄격하게 발달했던 지역이 아닌가.

  나는 중근세 시대에 일본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저자와는 다르다. 물론 그 당시에는 가문과 가문 그리고 영주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이 혼례를 이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여성들의 역할이 그저 남편에게 수동적으로 복종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시집 간 여성들은 물론 시댁에 충실하지만 그것을 넘어 그녀들은 자신의 친정에 시댁의 상황과 동태, 그리고 영주들의 세력 판도 등등을 남몰래 알려주곤 했었다. 즉 오늘날 기준으로 보자면, 정략적으로 시집을 간 여성들은 시댁에 충실한 그저 수동적인 며느리의 역할만을 한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친정 세력에서 파견된 공식적인 외교관의 역할, 세작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여성의 역할은 일본의 시대상, 즉 난세라는 상황 때문에 빚어진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일본 전국시대의 여성들을 그저 남성의 야망의 종속품으로 그려낸 소설은 자국 역사를 깊이 있게 인식하지 않은 저자의 편견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한국과 중국의 여성들보다 일본의 여성들이 훨씬 정치적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고 본다.

  또한 일본 전국시대를 두고, 여성들만 정략적으로 혼인을 올렸던 시대라고 생각하는데, 실을 남자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힘이 없는 영주들은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해야 했으며, 힘의 논리에 의한 결혼을 통해 자신의 세력을 보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마음 가는 여자를 마음대로 취할 수 있는 권한은 힘이 있는 영주에 국한됐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남자들 역시도 힘이 없으면 수동적인 인질 생활을 체험하기도 하며, 그렇게 힘 있는 자들에 이용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야스의 경우도 유년 시절을 인질 생활을 하였고, 첫 번째 부인도 원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을 했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전국시대는 남성 중심의 사회가 맞지만, 모든 남성이 대우받는 시대는 아니었다. 결국 힘이 없는 남성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수동적인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다.

  책에서는 도쿠가와가 천하를 가지기 위해,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고 끝내 수많은 어려움 끝에 천하를 쟁취하는 인물로 묘사한다. 동양 전통 소설의 전형적인 주인공의 모습이다. 고난과 시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인내와 불굴의 의지, 야망을 잃지 않으며 끝끝내는 대업을 이룬다는 스토리. 너무나도 뻔하고 식상한 주인공의 모습이다. 실제 도쿠가와는 이런 성격이었을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도쿠가와는 생각보다 매우 단순하다. 도쿠가와는 철저하게 실력을 중시하며, 실용을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와는 다르게 잡기와 고급문화 따위에 심취하지 않고 실용적인 부분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의 인생 초반부는 매우 수동적이었다. 그런 성장환경 때문인지 이에야스는 철저하게 힘의 논리를 따른 영주였다. 만약 자신보다 힘에 우위가 있는 인물이라면 그는 고집을 버리고 상대의 힘을 존중하며 이인자로 만족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 자신이 상대보다 힘의 우위가 앞서다고 판단했으면, 상대가 그런 자신의 힘을 인정해주길 은근히 바랐다.

  그래서 도쿠가와는 히데요시 집권기에는 히데요시의 힘을 인정하며 철저하게 이인자의 역할에 만족했지만, 히데요시의 급사 이후 풋내기 히데요리가 집권하자, 커지는 자신의 힘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길 권유했다. 그러나 히데요리는 자신의 지위를 앞세워 도쿠가와를 굴복하려 했고, 이에 도쿠가와는 세키가하라 전투를 통해 히데요리에게 자신의 무력을 과시했다. 이쯤 했으면 히데요리가 자신에게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도쿠가와지만 예상외로 히데요리는 도쿠가와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쿠가와는 인내심을 가지고 히데요리의 투항을 기다렸지만 결국 히데요리는 전투를 선택했고, 일본 열도의 패권을 두고 히데요리와 도쿠가와는 오사카의 진 전투에서 격돌하게 된다. 이 싸움에서 최종적으로 이긴 도쿠가와는 일본의 패자가 되고 에도막부를 열게 된다. 이런 도쿠가와가 과연 어린 시절부터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웅장한 대망을 품었을까? 아마 오다 노부나가,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장기 집권에 성공했다면 이에야스는 그들과 맞서기보다, 그들에게 있어 가장 충실한 이인자로 남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앞서 이야기했듯 도쿠가와는 철저하게 힘에 논리를 중시한 실용적인 성격의 영주였으니까 말이다. 즉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가지게 된 이유는 일차적으로 도쿠가와의 야망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주변 상황의 시세와 판도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저자의 소설을 읽으면 어린 시절부터 도쿠가와는 천하 통일을 꿈꾸고, 소망하는 인물로 그려내고 있는데, 이는 실제 도쿠가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책에서 도쿠가와는 '전쟁을 통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다짐한다. 이런 도쿠가와의 묘사를 통해 저자의 생각을 볼 수 있는데, 즉 저자는 도쿠가와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일본이 자행했던 태평양 전쟁과 타민족 침략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결국 일본이 자행했던 전쟁은 도쿠가와의 천하통일 전쟁과 같이, 최종적으로는 세계의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뉘앙스가 서려 있는 셈이다. (참고로 저자는 일본 지식인 중 전형적인 극우주의자다.) 과연 도쿠가와가 평화를 상징하는 인물인가?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도쿠가와의 평화를 지향하는 야망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일본이 자행했던 침략전쟁의 당위를 미화한 것이었다. 일본의 식민지를 경험했던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의 전쟁이 평화를 의미한 전쟁이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참 불편했다. 첫 번째 도쿠가와라는 인물을 왜곡하여 평화의 상징으로 내세운 소설이기에. 두 번째 그런 도쿠가와가 품은 야망은 천하 평화를 지향하고 있었고, 그것은 결국 일본 전쟁에 대한 미화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런 관념으로 쓰인 책이 우리나라에서 남자들의 필독서로, 야심이 있는 남자들의 필독서로 여겨졌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런 불편한 점을 떠나서, 책을 통해 중근세 일본의 관념, 생활 풍습 등등을 알 수 있었던 점은 유용했다. 특히 일본 전국시대에는 오늘의 적이 내일의 아군이 될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배신이 보편적인 시대였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신하는 무조건 주인을 위해 충성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일본에서는 자신의 부하에게 합당한 보수와 영지를 내려주지 않으면, 주인을 배반하는 경우도 흔하게 발생했다. 그래서 부하는 충성하는 대가로 영지나 녹봉 등등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신선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연봉제를 협상하고 스카우트가 보편화된 오늘날의 인재 정책과도 비슷하다. 이렇게 개방되고, 실력이 전부였던 시대를 겪었던 칼잡이들이 한가하고 태평성대였던 조선을 침략했으니, 임진전쟁 때 우리나라가 초반에 밀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는 생각도 든다.

어린 시절에는 《삼국지》가 만들어놓은 남성 중심의 '대의' 판타지에 젖어서, 무슨 일을 할 때에는 '도원결의식의 이벤트'를 하며 서로의 대망을 이야기하는 것을 낭만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돌이켜보면 다소 허망한 생각도 든다. 대의와 대망을 이루는 데 있어 굳이 '도원결의식 거창한 이벤트'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허심탄회하게 야망을 공유하며, '너 잘났니, 나 잘났니' 기싸움을 펼칠 필요도 없다. 그런 것들이 없더라도, 현실에 충실하고, 뜻을 꺾지 않는다면 대의와 대망을 이루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무서운 사람들은 자신을 잘났다고 떠벌리며 도원결의를 지껄이는 인간들보다, 조용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하나씩 이행하는 사람들이다. 거창한 대의와 대망이 없더라도 오늘을 충실히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런 사람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소확행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삼국지》와 같은 부류의 소설을 필독서로 꼽기엔 시대착오적이지 않나 싶다. 실제 역사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은 절판된 책이지만 《기다림의 칼》 21세기 북스,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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