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huri > 알면 알수록 흐뭇해지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바람의 나라 1
김진 지음 / 시공사(만화) / 1998년 6월
평점 :
품절


(알라딘에 올리는 첫번째 마이리뷰네요^^) 인터넷 서점 중에서 최초로 접하게 된 이곳, 역시 최초로 올리는 리뷰로서는 바람의 나라가 저에겐 가장 의미있는 작품입니다. 고 2때부터의 취미 아닌 취미로 완독 후에 몇 글자씩 깨작거려 보는 습관이 들었는데, 굵은 싸인펜으로 쓴 커다란 제목과 파란색 펜으로 쓴 작가, 출판사, 완독일자가 나의 독서 노트의 조그만 형식입니다. 지금은 노트 반장씩 꽉꽉 메꿔서 써도 모자랄 정도의 책들도 많지만, 쓰기를 즐겨하지 않는 당시의 저로서는 그것의 절반도 겨우겨우였지요. 현재는 '가장 소중한 것'중의 하나가 된 나의 첫번째 독서 노트. 핑크색 바탕에 미니마우스가 그려진 그 노트의 첫장을 펼지면 나오는 게 바로 '바람의 나라'입니다.

한창 감수성 많던 사춘기 시절 처음 대한 책이라, 없는 문장력 진땀 흘리며 구사해 보고 학교 축제때 어줍잖게나마 휼이와 연이를 주제로 시화전에 출품도 해보고... 정말 많은 추억이 깃든 책입니다. 오죽하면 한메일 주소부터 시작해서 이곳 알라딘 아이디까지 모두 무휼일까요 ㅋㅋㅋ 바람의 나라는 참 어려운 책입니다. 첫장을 열던 그 순간부터 내 신경을 마비시켰던건 만화독자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김진 님의 화려한 톤 실력, 거기에 만만한 상대로만 생각했던 고대 설화의 의외로 복잡다단한 구성들까지. 당시에는 시공코믹스판이 출판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옛 댕기의 책으로 봤는데, 결국 몇권 못 보고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완간되지는 않았었지만 몇 권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은 한마디로 메스껍다... 였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기분이 이해가 가지만, 아무튼 만화를 즐겨보는 나에게는 그것은 낯선 감정이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몇년 후, 시공코믹스판 정품(?)이 화려한 겉옷과 함께 시장에 등장하게 되었고 좀더 성장했던 까닭인지 문득 다시 읽고 싶어지더라구요. 그리고 집어든 책은... 정말 나의 짧은 식견을 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장 전권을 사서 다시 한번 읽고, 또 읽고... 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수긍이 갑니다.

김진 님의 작품은 '아버지'라는 것을 모티브로 한 것이 꽤 있습니다. '숲의 이름'도 그중 하나지요. 그러나 바람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듯이 그 아버지라는 존재는 아들과는 대립항적인, 다시 말해 그를 꺾어야만 비로소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운명적 라이벌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가장 소중한 존재를 떠나보내고는 영영 마음을 닫아버린, 그네가 남긴 단 하나의 아들마저도 맘껏 예뻐할 수 없는 아버지의 기구한 운명도 씁쓸하지만, 천성적으로 여린 성품을 애써 속여 가며 아버지를 따르고자 했건만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아들의 최후도 눈물겹습니다.

19권에 이르른 지금에서야 본격적으로 왕자 수업을 받고 있지만, 이미 내려진 결론까지 어떻게 이끌어가느냐는 작가의 역량이겠지요. 타고난 성격과 환경의 차이에서 시작한 인물들의 갈등이 저마다 가슴아픈 사연을 품고 얽혀가는 가운데 그 영역은 점차 확장되어 신수, 고구려, 나아가 동북아에 이르기까지, 촘촘히 짜여진 그물을 타고 이야기는 흘러갑니다. 이것이 이 작품을 감히 masterpiece라고 칭할 수 있게 하는 것 같구요.

다만 아쉬운게 있다면, 제가 만화를 볼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대사의 배열(끊어읽기)이나 인물의 표정과 주변상황, 나레이션의 조화인데, 솔직히 지금도 별점을 5개 주는 걸 망설이게 된 이유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인물들의 표정이나 묘사 때문입니다. 인물의 클로즈 업과 교차, 대비 등을 기가 막히게 잘 쓰시는 김진 님이지만요.

흔히들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대무신왕 무휼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이나 독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캐릭터는 아니지요. 그런 그가 추구했던 '왕'이라는 지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사생활을 철저히 억누르고 오직 차가운 정치적 이성으로만 사고하는 왕. 한승원님의 프린세스, 비욘이 보여주는 왕의 길 역시 제가 보기에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인간인 이상 어느정도 '행복할 권리'는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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