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영원히 끝나지 않을것 같던 시절에 대한 추억
어느 특별했던 하루 - 단편
한혜연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다들 그렇겠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듯 지루한 고등학교 시절이 있었으리라. 보이는 어른들마다 학창시절만큼 좋을때가 없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막상 나는 뭐가 좋은지 하나도 모르겠던 시절. 그때 나는 공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노는애도 아닌 어정쩡한 아이였다. 마치 우리가 어른도 아이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였듯이 말이다. 공부는 아예 손을 놨지만 학교를 땡땡이 치지는 않았던 내게 유일한 구세주는 책이었다. 그 책들 덕분인지는 몰라도 내가 대학에 합격하면 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던 담임 선생에게 장을 지질 기회를 제공했고 나는 여전히 별 특색없는 삶을 사는 어른이 되었다.

한혜연의 단편 어느 특별했던 하루에는 그때의 나 만큼 어정쩡한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여자이고, 공부를 잘 하지도 못하고, 노는애들 속에 속하지도 않은 아이. 특별히 친한 친구도 없지만 그나마 같이 다니던 친구가 떨어져 나가도 그걸 잡을만큼 애착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는 아이.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아이를 보면 정이 간다. 아마 내 모습을 닮아서 그런것 같다.

만화를 그다지 즐겨 읽지는 않지만(그러나 만화를 아주 좋아한다.) 한혜연의 단편만큼은 꼬박 꼬박 읽었었다. 여동생이 정기적으로 나오는 만화잡지를 살때 마다 한혜연의 단편이 있으면 빼놓지 않고 보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여동생마저 만화를 보지 않아서 한참동안 나는 한혜연의 만화를 보지 못했었다. 어느 특별했던 하루 속에 있는 단편들도 다 만화잡지에 연재했던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두번째 에피소드인 One Summer Night만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

총 네개의 단편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은 어느 특별했던 하루이다.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한 매일매일 똑같을것 같았던 여고생이 늘 모범생인 반 친구와 함께 겪는 반나절의 일탈인데, 그렇다고 해서 뭔가 큰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늘 가던 학교를 빼먹고 영화를 보고 떡볶이를 먹는것 만으로도 그녀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하루가 된다.

두번째 단편은 공포물인데 그닥 많이 무섭지는 않지만 생각할수록 머리털이 서는 내용이다. 죽은 사람들은 자신이 죽은줄 모른다더라류의 수많은 영화들과 맥락을 같이한다.
1과 49는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던 1등과 49등을 하던 아이 둘이서 수학여행에서 사라지는 내용인데 조금 당위성이 부족하지만 일탈을 꿈꾸면서도 그럴 용기는 없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할듯 보인다. 마지막으로 여름방학은 왼손잡이 여학생이 여름방학을 보내는 동안 일어나는 에피소드인데 똑같은 왼손잡이 친구를 만나게 되고 또 한 친구는 멀어지고 마지막으로 한사람을 영원히 잃게되는 내용이다.

전부 여고생이 주인공인 단편은 솔직하게 말 하자면 그녀들의 크리스마스나 다른 단편들보다는 약간 재미가 떨어진다. 그렇지만 나처럼 이도저도 아닌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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