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김지현 > 인간, 그 미워할 수 없는 존재
불의 검 1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고3 끝무렵에 김혜린이란 작가를 비천무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시기였기에 그 애절한 사랑얘기에 온통 빠져버렸던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서 그 작가가 좋아져서 그녀의 다른 작품인 <북해의 별>을 찾아 읽었다. 유명한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 당시는 그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했고 그저 스케일이 큰 작가란 것만 기억에 각인되었다. 지금은 <북해의 별>이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비교할 수 없는 역작임을 확실히 알지만 말이다.

20대하고도 중반에 나는 다시 같은 작가를 <불의 검>이란 작품으로 만났다. 예전에 읽었던 그 <비천무>의 작가란 사실 때문에 <불의 검>을 읽게 되었지만 그 작가는 몇 년 새에 더욱 성숙해진 이 <불의 검>으로 나를 사로잡았고 사춘기 때도 한 번도 안 써본 팬레터 라는 것을 쓰게 만들고야 말았다. 혹자는 나보고 '다 늙은 나이에 주책맞다.'라고도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만화 작가보다, 아니 어떤 소설가보다 온통 내 맘을 휘둘러 놓는 작가를 만나보지 못했다. 김혜린만 빼놓고...

<불의 검>을 읽고 내 맘이 그처럼 설레이고 감동되는 것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불의 검>은 그 흔한 사랑얘기를 값싸지 않고 숭고하게 표현했지만 사랑얘기 만이라면 딴 작품에도 얼마든지 있다. <불의 검>의 진정한 감동은 작가가 그 주변 인물들을 그저 책장이 넘겨지면 잊혀질 그런 존재가 아닌 주인공 못지 않게 긴 호흡으로 살아 숨쉬는 이들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서 미약한 조역인 내가 비록 시대적 공간은 다르지만 그 주연 및 조역들과 충분히 공감하며 같이 기뻐하고 같이 아파할 수 있기에 감동이 배가가 되는 것이다.

<불의 검>에는 사랑얘기 뿐 아니라 권력암투, 배신, 강간, 전쟁, 살인, 죽음 등 인간사회의 어두운 면도 생생하게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악인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처지 때문이며 나 자신도 때로는 그들처럼 행동하기에 감히 돌던지며 욕하기에는 내 양심이 너무 찔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추잡한 얘기들이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작가가 인간에 대한 희망 내지는 꿈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비천무> 때문에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으며 이 작품 때문에 존경하게 되었다. 그녀의 또다른 미완작인 광야를 보고 나서 그 존경심이 한층 더하게 되었고... 여러 독자들에게 감히 이 책을 추천한다. 그저 만화가 아닌 가슴 절절하고 끓게 만드는 이 대하 서사극을 처음 1권부터 한 번 쯤은 읽어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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