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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빅터 D. O. 산토스 지음, 안나 포를라티 그림, 신수진 옮김 / 초록귤(우리학교) / 2025년 9월
평점 :

곧 토요일입니다.
여기, 토요일을 맞는게 내키지 않는 아이가 있네요. 아이의 취향이 가득한 방에서 아이가 향하는 곳은 그리 유쾌한 곳이 아닌가 봅니다.
아이는 외출 준비 중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빠를 발견합니다.
아빠를 멈추게 한 것은 바로 할머니의 편지.
편지 속 어머니의 목소리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림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드라마나 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인공들과 눈을 마주치거나 주인공들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그림 구도. 그리고 이야기를 따라 다시 오가며 넘기게 만드는 장치들.
'---날을 기억해'라는 반복되는 문장 속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시처럼 들리기도 했구요.
그 모든 기억 속에 어머니는, 어머니의 눈은 항상 아들을 향해 있네요.
마주 보며 서로를 응시하는 눈
그리고 가만히 지켜보는 눈

너는 왜 해님이 하루 종일 빛날 수 없느냐고 물었지.
내가 추울까 봐 너는 아끼던 담요로 나를 감싸 주었어.
흔히 인생을 계절에, 하루에 비유하기도 하죠. 요즘 저도 인생에 가을에 진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하루로 치면 한낮을 지나 저녁을 향하고 있다고 해야할까요.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어 아들을 바라보던 엄마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늘 돌봄을 받는 아이가, 내게 담요로 온기를 불어 넣어줄 정도로 자랐을 때. 그리고 마침 해가 지던 그때.
모든 기억이 쨍하기만 했을까요?

곧 이어지는 장면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잔을 들고 방문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와
페이지를 넘어가야 보이는 아들.
엄마는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소리치는 모습에
얼어붙던 순간도 있었죠.
그렇지만 엄마는 알았어요. 아들의 진심을
아이의 방에는 여전히 폴라로이드와 사진이
그리고 침대 위엔 함께 덮던 담요가
침대 아래엔 추억의 조각을 모으는 가방이 있었으니까요.
때때로 우리는 오래된 걸 잃어버려야만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단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는 한결같이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억하고 있었죠.
그 모든 순간들을
이제 어머니는 기억을 잃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새롭게 기억할 것들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억을 나누어야 한다.”

편지를 다 읽고 난 아이의 표정에도 변화가 있네요.
이제 평소와는 다른, 내키지 않는 토요일이 아니라
함께 보낼, 잊지 못할 토요일이 될거에요.

이 그림책에서 저와 막둥이가 뽑은 최고의 장면이에요.
함께 지는 해를 바라보며 손을 포개는 장면.
<사랑해. 기억해>는 너무 당연하게도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네요.
어느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구요.
참고로 둘째딸은 엄마가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에도 기억을 더듬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감동을 했다고 했어요.
,
그리고 결국은 사랑.
그 사랑은 기억되겠지요.
어머니에게서 아들로 그리고 손녀로
사라지는 기억과 남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중요한 것은 지금 함께 셋이 손을 모으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
감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기억이 사라진 뒤에 새롭게 채워질 기억들, 얻게 될 순간들
책의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서 '치매'라는 말 자체가 어리석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오래전부터 명칭 변경에 관한 논의를 이어 오고 있다고 알려주네요. '뇌인지증', '신경저하장애'와 같은 대체 용어를 고려하고 있다는데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그들이 누구였고 누구인지가 잊혀지지 않기를. 그리고 존중되기를.
글 작가와 그림작가의 이름이 생소하다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전에 발상에 감탄하며 읽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의 작가 조합이군요. 다시 첫장면에서 이 책의 표지를 찾아보세요!
+전작에서도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돋보였는데 이 책 장면장면에서 보이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도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요소 입니다.
이번 토요일.
사랑으로 채워질 그 자리. 마련해두셨나요?
잎이 날리는 가을날에
해가 지는 저녁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읽으면 더 없이 좋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제이포럼 서평단으로 참여하여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