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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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을 자주 쓰던 최진영 작가의 장르소설과 순수문학이 다양하게 담겨있다. <인간의 쓸모>에서 완전하게 태어나는 갤럭시존의 아랫단계 타운존의 안나가 인간다운 노고존을 찾아 나서는 것을 보며 완전함은 인간과는 거리가 먼 개념인 것을 보여주는데, 디스토피아적인 <쓰게될 것>보다는 재밌었다.

<썸머의 마술과학>에서 아빠는 사기를 당해 가정의 불화를 일으켰고 두 딸 봄과 여름 중 맏딸 봄은 잘먹고 잘살아보려 했을 뿐이라는 아빠를 맹비난한다. <디너코스>에서 오석진은 정년까지 버티지 못하고 명예퇴직한 이후 주식으로 퇴직금을 탕진하지만 아내 김선영은 출판사를 그만두고 도배 기능사를 취득해 현장을 다니며 하루하루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오석진의 생일에 모인 딸들은 바리스타로 취직을 하려는 오석진에게 남 밑에서 일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김선영에겐 현장일이 엄마의 품위에 맞지 않는 일인지 따지지 않는다. 어쨌든 그들은 부모의 실버인생을 위한 축배를 든다.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는 가장의 처량한 현실을 안타까워해야 하는지, 제 구실을 못하는 가장들을 비난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들에게 이해와 공감은 없다는 것과 자신의 입장만 고수한다는 점이 불통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유진>과 <차고 뜨거운>은 화자는 자신의 모순을 깨닫고 스스로와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 같다.
최유진은 친구 공미에게 대학생 때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았던 매니저 이유진의 부고를 듣는다. 이유진은 품위있고 고상했으며 아르바이트생들을 리드하는 리더쉽이 있었다. 어느 날 이유진이 반지하방에서 사는 것을 알게 된 아르바이트생들은 더이상 이유진을 따르지 않았고 그녀의 품위있는 척하는 행동이나 비싼 향수 취향에 대해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속물적인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했던 최유진은 결국 더 이상 그 공간을 버티지 못하고 레스토랑을 그만둔다. 당시 최유진은 이유진이 어른답게 자신을 무시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을 지도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최유진은 자신의 조카를 보며 자신의 어른스러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차고 뜨거운>의 화자의 가정은 불화로 가득했다. 아빠는 항상 나를 무시하고, 엄마는 나를 원망하고, 오빠는 하는 일 없이 인정받는 그런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화목한 이모네를 부러워하다 미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 딸 태양이를 낳았는데 엄마는 자신에겐 보이지도 않던 지극정성과 사랑을 손녀에게,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쏟아붓고 육아에 참견한다. 손녀를 보다 허리를 삐끗한 엄마는 병원에서도 나의 속을 긁는 소리만 하는 사이 이모 내외가 병문안을 오는데 여전히 화목한 두 부부를 바라본다. 내가 아는 모습과 다른 자신의 어린 모습을 기억하는 이모 내외를 보며 가족에게 더이상 얽메이지 않겠다는, 세상에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다채로운 장르의 단편이 묶여 있는데 주제가 소통의 지난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계급이 분리된 미래에서든, 가족간의 이해가 부족한 현재의 삶에서든.

이를테면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나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이해하며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의 영화 를 보면서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실감했을 뿐. 나는 그 정도의 속도로 내 인생이 흘러가길 바랐다. - P24

나는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들의 대화가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쟤 남자친구 서울대 다니잖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이 눈짓으로 가리키는 사람을 힐끔 바라봤으니까. 그렇게 예쁜가 생각했으니까. 그 연애 가 오래 갈까 의문을 가졌다가 서초동에 산다는 말을 듣고 이상하게 이해가 됐으며 말도 안 되는 박탈감을 느 꼈으니까. 그들의 관심사인 명문대와 강남과 명품 등에서 나는 엄청 멀리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대화는 나의 껍질을 자꾸 벗겨냈다. 모른 척하고 싶어서 아주 깊은 곳에 숨겨둔 나의 근성을 끄집어냈다. 나는 그런 대화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 P29

내 말은, 친구가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굳이 피할 필요도 없다는 거지. 너 여기서는 잘 지내잖아. 그럼 우리는 뭐야? 친구 아니야? - P30

근데 너 인도 갈 거라며. 거기서도 그렇게 물을 거야? 왜 이런 데서 살아요, 왜 이렇게 살아요, 묻고 다닐 거야? - P34

이유진은 우리를 크게 혼내야 했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멍청한 것을 그만두라고 가르쳐야 했다. 그런 다 음 우리의 분위기를 예전으로 되돌려놓아야 했다. 이유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태고, 그래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유진은 우리 중 가장 어른이니까. 이런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이유진이 정말 미웠다. - P35

어릴 때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애쓴 적이 있다. 그땐 어렸으니까 어른스러운 척을 할 수도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에도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애쓸 때가 있다. 나는 여전히 어른스러운 제 뭔지 잘 모르고, 모르니까 긴장했 다. 긴장할 때 나는 좀더 이나를 신경 쓸 수 있었다. - P37

마흔 살의 이유진과 마흔 살의 내가 대화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P37

일상에서 만나는 타인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상대를 깔보지 않는 높은 교양과 섬세한 배려를 한 달에 두 번은 체험할 수 있으니까. - P39

타운존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비교와 평가다. 그것이 있어 타운존 인간들은 행복하고 불행하다. 따돌리고 협력 한다. 승배하고 험오한다. 목표를 세우고 자살한다. 타운존에 사는 이상 누군가보다 부족한 인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 P78

증강현실을 이용하여 모와 버나드는 매일 데이트했다. 파티를 열고 여행을 떠났다. 물론 다투기도 했다. 권태 를 예방하고 애정을 복돋우기 위한 갈등이었다. 버나드는 적당한 순간에 모를 실망시켰고 언쟁을 유발했다.
그리고 반드시 감동을 줬으며 같은 일로 다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 P81

회사에서 부장이 아무도 웃지 않는 징그러운 농담을 던지거나 납득할 수 없는 고집으로 아이템 진행을 복잡하 게 만들 때면 오나영은 아빠를 떠올렸다. 우리 아빠도 회사 다닐 때는 누군가에게 끔찍한 존재였겠지? 생각하 면 서글프면서도 화가 났다. - P99

오석진과 30년간 부부로 살면서 김영선이 터득한 정신 건강 증진 방법 중 하나였다. ‘그나마 다행‘ 부터 찾아 내기. - P100

퇴직하던 당시 김영선은 자조적으로 자기를 다 쓴 사람‘이라고 칭했다. 그에 비하면 요즘 김영선은 ‘되살아난 사람‘에 가까웠다. - P101

형제자매가 있어야 욕심도 배우고 경쟁하면서 남들보다 빨리 클 수 있어. 서로 위할 줄도 알고 나이 들어 외롭 지도 않고. 당장 키우기 힘들다고 하나만 낳으면 자기만 알고 못쓴다. 커서 사회생활도 제대로 못해. 나중에 형제 없다고 부모 원망할 거야. 두고 봐라. 부모 죽으면 얘 혼자 남는 거 아니냐. 얼마나 불쌍하겠니. - P114

불행을 모으면서 안심하는 사람. 엄마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 다. 엄마는 내가 불행해야 안심할 것이다. - P114

아픈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네가 아픈 건 모두 네 맛이라는 그 말들. 그들은 어쩐지 뿌듯해하는 것처럼 보였 다. 그리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자신은 절대 아프지도 병들지도 않을 거라고. 나는 지쳐 있었다. 소리를 지르 거나 울 힘도 없을 만큼 고통에 파묻혀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아픈 사람들 천지인 이곳에서 제발 말조심하 라고 발을 구르며 경고하고 싶었지만, 사지가 고통에 묶여 꼼짝할 수도 없었다. 그때 나는 잠시 지옥에 서 있 었다. 인간들의 지옥. 그들의 말은 나의 자책과 다르지 않았다. 내 잘못을 찾는 방법으로 무엇을 얻고 싶었던 거지? 아프다는 이유로 잘못 산 사람이 될 순 없었다. - P134

그래서 엄마는 영혼을 믿어?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구부정한 자세로 한동안 정면만 바라보던 엄마가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그건 사람이 믿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야.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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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문학동네 플레이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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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는 자식도 버리고 미국에서 우주비행사라며 가족들에게 사기를 치고 외노자로 살아가는 망나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은 역시 단편적인 결말에 사연을 만들어 인생을 살아가는 한 인간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서술해 보여준다. 누구나 비난만 받을 이유는 없다. 실패라는 결말은 없고 과정으로 이어지는 경로일 뿐이니까.

과연 이 일로 무엇을 증명하고자 하는가, 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 게 돼요. 방법은 그저 단순해지는 것뿐이죠. 삶을 최소화시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확히 분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 P72

인생에 끝내 실패란 없어요. 실패를 통과해서 어디로든 가긴 가죠. - P76

"왜 할머니한테 가짜 편지를 쓴 거야?"
고모는 미소를 지었다.
"즐거움을 위해서. 만약에 우리가 원치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작은 위안도 누리지 못 할 이유는 없잖니."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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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상황과 이야기 - 에세이와 회고록, 자전적 글쓰기에 관하여
비비언 고닉 지음, 이영아 옮김 / 마농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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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람들의 고민들. 글을 읽는 사람들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글을 쓰는 일은 시간이 지나가는 것마냥 술술 흘러가는 것이 아니니까.

오로지 고인이 된 의사를 추도하려는 목적으로 소환되었지만,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관심 또 한 잃지 않는 자아_바로 여기가 기발한 지점이었다. - P8

작가의 민낯이라는 원료로 만들어지는 서술자는 이야기에 꼭 필요한 존재이다. - P8

사회적 책임과 예술적 책임을 혼동하여 예술적 진리를 저항과 정치적 선전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 - P9

복잡한 감정. 먼저, 그런 감정이 있음을 이해한다. 다음엔, 그 감정을 시인한다. 그리고 이를 통로 삼아 경험으 로 들어간다. 그러고 나면 그 감정이 곧 경험임을 깨닫는다. 이제 그는 쓰기 시작한다. - P9

출세욕의 병적인 성질 - P12

이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어조의 목소리를 찾아야 했다. 징징거리고, 짜증스럽고, 닦아세우는 목소리로는, 특히 닦아세우는 평소의 목소리로는 부족할 터였다. 그리고 문장 구조의 문제가 있었다. 내가 일 상적으로 사용하는 문장 파편적이고, 불쑥 끼어들고, 뒤엎는 문장 역시 먹히지 않을 테니 바꾸고, 조절하 고, 억눌러야 했다. 그러고 나서 글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이야기가 숨통을 열고 스스로 나아가게 하려면 이 사람들과 사건들에서 멀찍이 물러나야 한다는 걸 알았다. 간단히 말해, 내 이야기에 더 자유로운 연상을 허용 해줄 유용한 관점이 필요했다. 내가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놓쳤던 점은,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닌 서술자에게서 만 이런 관점이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 P16

독자들은 유기적인 완전체로서의 서술자를 믿음직하게 여긴다. 우리와 여정을 함께하고, 글을 완성시키고, 우 리의 시야를 전보다 넓혀주리라 믿을 수 있는 서술자. - P17

작가가한 조각의 경험을 구조화하기 위해 자신의 불안하고 지루한 자아에서 뽑아내는 서술자 - P18

이 글들은 에세이와 가장 깊은 차원의 관계를 맺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에세이라는 형식 자체 덕분에 작가의 깊숙한 내면으로 과감히 파고들었다. 이 글들은 구색 맞추기 식으로 설명을 이어가거나, 사유와는 무관한 이 미지들을 전개하거나, 서정적인 사색에 빠지거나 하며 지면 위를 방황하지 않는다. - P20

인생이란 ..... 점들의 문제가 아니라 흐름의 문제임을 알고 있었다. 중요한 건 흐름이다 - P21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모든 일을 떠맡는다. 누군가는 작가의 의향을, 누군가는 반대편의 생각을 전한다.
즉 누군가는 자아의 생각을, 누군가는 대치하는 타자의 생각을 대변한다. 그들 모두에게 발언권을 줌으로써 작가는 역동성을 얻는다. 논픽션 작가는 협업할 사람이 오로지 자기밖에 없다. 그러므로 작가가 움직임을 만 들어내고 역동성을 얻기 위해 찾고 구해야 할 것은 자기 안의 타자이다. 결국, 서술자가 고백이 아닌 이런 종 류의 자기 연구, 즉 움직임과 목적과 극적 긴장을 안겨줄 자기 연구에 몰두할 때 비로소 작품이 구축된다. 여 기서 필요한 요소는 적나라한 자기 폭로이다. 자신이 상황에 일조한 부분 즉 자신의 두려움이나 비겁함이나 자기기만_을 이해해야 역동성이 만들어진다. - P22

이 에세이는 한 작가가자신의 지혜를 전하기 위해 위기감을 극복해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 의미와 가치가 있다. 크루스는 서서히 인생에서도 그랬듯-그 지혜에 닿을 수 있었다. 에세이를 거울삼아, 인정하기 두렵고 창피한 일을 마주하는 어려움을 비춤으로써 서서히 더 깊은 통찰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니까, 누구나 자기 이 해에 도달하기를 꺼린다는 진실 말이다. - P28

미혼이었을 때 나는 결혼을 익사와 동의어로 생각했다. 내 정체성이 사라지고, 사생활을 침범당하고, 내 자야 는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리리라 생각했다. 결혼 후 내 생각이 옳았음을 알았다. 내가 물속에서도 이렇게 잘 살 수 있으리라는 걸 미처 몰랐을 뿐. - P40

우리는 결혼 생활을 더 좋게 만들 수 없고, 그저 극복해낸다. - P40

원하는 것을 위해 옳지 못한 일을 하기로 동의하는 것을 파우스트적 거래라고 한다 - P68

일생의 막바지에 이르면 자기 자신보다 남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지켜보는 법은 터득하지만, 외로움에 맞서 싸우느라 정작 자기 자신은 지켜보지 않는다. 책을 읽거나 카드를 섞거나 개 를 돌보며 자신을 회피한다. - P76

토머스 핀천Thomas Pynchon, 리처드 파워스Richard Powers, 돈 드릴로Don DeLillo 같은 동시대 소설 가들이 언어에 도취하여 원대하게 수행하고 있는 신화적 추상화 작업으로부터 문학이 허용하는 한 멀찍이 떨 어진 채 서술하는 자아로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럼에도 비평가들은 우리의 유일무이한 삶을 느끼게 하는 힘, 요즘 소설가들은 거의 가지지 못한 이런 힘이 회고록 작가 진실을 말하는 논픽션 서술자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회고록 작가들은 우리 모두가 처한 상황으로 들어와, 우 리가 지금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 P84

여느 평범한 독자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작품에 접근하는 것은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라 왜 쓰고 있느냐를 아 는 일이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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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0
오라시오 키로가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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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광기다…

하지만 자기 몸으로 낳은 짐승 같은 자식 넷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사라지자, 부부는 그 모든 운명을 남의 맛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태도는 열등한 존재의 고유한 특성이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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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오색 찬란 실패담 - 만사에 고장이 잦은 뚝딱이의 정신 수양록
정지음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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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광기를 응원했는데, 작가도 나이가 들어 조금 온순해진 것 같다.

사람은 너무나 복잡하여, 죄책감에 짓눌리면서도 그 익숙한 고통에서 안도를 느낄 수 있는 존재였다. - P18

구질구질한 일상이나마 지속하다 보면, 문득 과거의 수치가 미래를 수호하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 P22

그들은 나 말고도 거의 모든 한국 여자를 미친 사람 취급하고 있었지만, 모든 문장에 논리가 없었다. - P22

나쁜 사람들을 불쌍하단 이유로 용서하게 될까 봐서였다. - P23

그때 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들이, 생각보다 진중하거나 무거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도덕, 철 학, 법, 사랑, 다정 :.... 심지어 돈까지도 몇 시간의 단잠보다 가벼웠다. - P30

언젠가 내 묘비명에도 누군가를 채찍질하는 말보다는 다독이는 말을 적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 P34

실패에 대한 공포로 더 큰 실패에 직면한 처지인 내가 초라하고 우습다. 그런데 내 꼴이 이렇게 우스워진 이유 는 먼저 삶을 우습게 보았기 때문이다." - P39

어쩌면 원래 인생에는 대책이란 것이 아예 없을지도 몰랐다. 없는 대책을 강구하니까 힘든 건 아닐까? 내가 알 기로, 없는 걸 자꾸 내놓으라고 우기는 사람은 깡패였다. 깡패가 되려는 게 아니라면 없는 건 없는 줄로 알고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했다. - P39

그때 나는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에서 해방되는 가장 쉬운 방식이 포기임을 배웠다. 어느 시점부터는 결혼이나 내 집 마련, 고급 승용차에 대한 미련도 놓아버렸다. - P50

그러나 나는, 체제의 봉괴를 인정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 개개인의 삶은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봉 괴한 것은 체제니까, 개인의 삶이 회복되리란 가능성을 믿어야 지속될 수 있을 것 같다 - P52

친구는 내게 패배주의가 몸에 배어 정신 승리의 영역으로 가버렸다며 혀를 찼지만 사실 그조차도 별 상관없다. - P57

그는 술도 못 마시는 주제에 거짓된 주량으로 허세를 부리는 참된 진상이었다. - P64

그제야 통제 없는 자유는 감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짜 감옥에는 석방이라는 개념이나마 있을 테지만, 울타리가 없는 시간의 감옥에선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했다. 자유를 쟁취했다 생각했지만 실은 무방비한 자유 가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 P68

그들은 분명 나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인격적 결함을 옳고 그르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쩌 면 그들 또한 부적절한 양육 환경의 피해자일지도 몰랐다. - P76

지음아, 아빠는 네가 행복하다면 맨날 산에서 도토리를 줍고 놀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네가 맨날 산 에서 도토리나 줍고 놀아도 괜찮기 위해서는, 일단 돈이 많아야 한단다. - P79

또래 찬규둘울 예로 들자면, 보통 둘 중 한 가지 태도를 보인다. 나이듦을 경멸하거나, 두려워하거나. - P85

누군가는 하다못해 사소한 유머까지 검열하며 살아야 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유머는 바로 그 사소 함 때문에 힘이 세다.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일을 일회성 웃음의 소재로 삼으면, 어느 순간부터는 문제의식을 갖는 것 자체가 우스워진다. 사안의 본질도 퇴색될 수밖에 없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유머에는 웃음 이상의 힘 이 담기기에, 오히려 유머에 대한 성찰과 자중이 필요하다. - P86

내게 독서란 인간을 배제하는 방식 중에선 가장 인간적인 위로였다. - P97

때로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관계에 대한 이해로 자연스럽게 확장되기도 한다. 내 주변의 온갖 성인들 또한 나 와 같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움과 증오가 단번에 애처로움으로 변하는 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 P99

의외로 누군가와 잘 지내는 데에 꼭 진심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인간관계를 지명하는 요소는 그보다 단순하고 명료했다. 관계와 상황에 맞는 예의, 약간의 미소 정도면 누구와도 충분했다. 이것은 거짓이라기보다 또 다른 차원의 진심이었다. 단지 나에겐 상대에게 진심을 내보이고 싶지 않다는 의사가 최상위의 진심이라 그렇다. - P101

잠시 정신이 명료해질 때면 ‘지나친 쾌락 추구는 결국 자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너무 옳아 슬프다는 이유로 다시 술에 손을 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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