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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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를 볼 때도, 차남들의 세계사를 볼 때도 나는 이기호작가의 기독교 세계관, 아니 한국의 기독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감정이 궁금했다. 부인이 절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 정도 풍자라면 열렬한 기독교 신자에게 충분히 이혼 당할 만 한 일인데 역시 저작권료의 힘인가......
방화사건의 범인이 누구인가를 추측하기 보다는 ‘아버지’라는 자들의 모습, 습성을 이기호작가만의 해학적인 방식으로 조소를 보내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아버지가 되어보지 못한 점에서 크게 공감하지 못한 점, 간파해 내지 못한 부분이 많을 거라는 점이 아쉽지만, 점점 ‘아버지’들에 대한 작가의 의중이 그려져 나갈 때 쯤 마지막 한 학생의 진술에서 나온, 아이가 목사에게 아저씨가 우리 아빠라도 되냐는 소리를 들었다는 부분에서 모든 것이 시원하게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라니....... 나에겐 어렵다.

지금이야 엄연히 교회 담임목사와 집사 관계라고 하지만, 우리 면처럼 작은 동네에선 그거 이전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질서 같은 게 있잖 아요…(57p)

그거 알아요? 애들은요, 아빠가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구요, 문제가생긴 다음부터 아빠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구요.
그게 어떤 차이인지 잘 모르시죠? 하여간 좆같은세상이란 뜻이에요.(68p)

영업적 마인드가 있어야지 하나님도 팔고, 예수님도 팔고, 신앙심도 팔고, 복도 팔고, 하는 거죠. 네? 뭐 심한 말이에요? 그게 사실이죠…… 자본주의적 마인드로 보면 다 마찬가지예요. 열심히 하나님 믿고 신앙생활 하면 복 받는다, 그게 우리나라 교회에서 하는 말 아니에요?
아니, 뭐 막말로 우리 말 믿고 여기 상가 분양받으면 사장님 큰돈 버시는 거예요, 그 말하고 다른 게 뭐 있습니까? 다 같은 거죠. 제가 우리 영업사원들한테도 늘 그렇게 말한다니까요, 전도하는마음으로 영업해라, 고객을 네 이웃이라고 생각하며 사랑하고 접대해라. 교회에서도 늘 그렇게말하잖아요? 다 같은 거죠…… (1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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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경계를 넘어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아래를 향해, 즉 죽음을 향해 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때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나는 지금 당당하게 어둠을 향해 내려가고 있는가, 아니면 어둠을부정하고 그저 방의 불이 꺼진 것뿐이라 여기며 과거에 머물던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중인가.
더러워진 눈 밑에서 모습을 드러낸 빨간 장갑은 상속자에게 깨달음을주었다. 뭔가가 변화하고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 모든 것은 발전한다는확고한 믿음, 모든 종류의 낙관주의는 결국 청춘이 품고 있는 가장 큰 기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가 언제나 독약처럼 은밀히지니고 다니던, 절망으로 가득 찬 그릇이 그의 내부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상속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더러움처럼 여기저기 퍼져 있는 고난과 죽음, 부패를 목격했다. 예슈코틀레 곳곳을 걸었다. 유대식 도살장과고리에 걸린 신선하지 못한 고기, 셴베르트의 가게 아래 웅크리고 앉아있는 얼어붙은 걸인, 아이의 관을 운반하는 작은 장례 행렬, 광장 옆 나지막한 집들 위를 낮게 유영하는 구름과 사방으로 내려앉아 모든 걸 지배하는 어스름을 보았다. 이 광경은 서서히, 그리고 부단히 거듭되는 분신(焚身)을 떠올리게 했다. 그 속에는 시간의 불길에 희생양으로 던져진인류의 운명, 모든 생(生)이 깃들어 있다.
(43p)

모든 게 달랐다. 단지 세상의 윤곽만이 같을 뿐이었다.(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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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지나가기 쉬운 부분이라 신경 쓰는 사람이 많지는 않더라도 공간을 만든 사람에게는 이런 작은 부분 하나하나가 화룡점정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소비자 1명이라도 ‘아, 이 브랜드는 이런 작은 것 하나까지도 신경 쓰는 브랜드구나.‘ 하고 인지해주는 순간 공간은 소비자와 교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85p)

매장 안에 상품을 배치하고 소비자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 해서는 인테리어 도면의 동선에 의지하기보다 직접 매장 입구에 서서 공간을 소비자의 입장에서 경험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때문에 매장을 오픈할 때나 운영할 때, 집기의 위치나 상품의 위치가 계획했던 도면과 달라지는 경우들은 비일비재합니다.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은 고객의 동선이 A3 종이가 아닌 현장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1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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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유치찬란한 부분에서 실소가 터져 나오긴 하지만, (잘모르는사람들에겐)과학적으로 논리가 타당하게 뒷받침돼있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능력도 탁월하다.
작가가 재밌게 썼다는 공생가설이 제일 아쉬웠는데 연구실의 대화가 마치 중학교 방과후 과학탐구시간의 학생토론을 보는 듯해 손발이 오글......
그렇지만 소수자, 특히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에 관한 화두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여성문제에 관한 단편들도 무게가 가볍지 않았는데, 앞으로 작가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통렬한 시각이 과학적 논리와 상상력으로 한데뭉쳐 풀어줄 세계가 너무 기대된다.

인간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발생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존재를 폐기하는 것은 릴리에게 어떤 종류의 죄책감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릴리는 내가 그녀와 똑같은 유전병을 가진 것을 알았을 때 나를 즉시 폐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릴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릴리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나의 결함을 발견한 순간 이후에 남아 있는 릴리의 기록은 제대로 해독하기가 어렵다.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은 단한 줄이었다.
릴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로써 나는 태어날 가치가 없었던 삶임을 증명하는가?
릴리는 나에게서 스스로를 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원치 않았던 존재로 태어난 릴리. 세계에서 배제된릴리. 그러나 악착같이 살아남아 어떤 방식으로든 삶의 가능성을 입증한 릴리 다우드나.
그녀의 결정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직도 나는모르겠다. 릴리는 자신의 삶을 증오했지만, 자신의 존재를증오하지는 못했다.(47p)

괜한 정의감에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었다.(195p)

부정적 감정 라인은 판매되는 물량에 비해 실 사용량이 적대요. 다들 쓰지 않아도 그냥 그 감정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거예요. 언제든 손안에 있는, 통제할 수 있는 감정 같은 거죠. (205p)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214p)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 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2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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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는 정착의 사실뿐 아니라 실감이 필요한 듯했다. 쓸모와 필요로만 이뤄진 공간은 이제 물렸다는 듯, 못생긴 물건들과 사는 건 지쳤다는 듯. 아내는 물건에서 기능을 뺀 나머지를, 삶에서 생활을 뺀 나머지를 갖고 싶어했다.(16p)

찬성은 본능적으로 이런 때 작은 금욕과 희생을 감내하고 나면 기분이 나아지리란 걸 알았다.(77p)

누군가 양동이에 소음을 담아우리 머리 위에 쏟아붓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옆자리의 학생들이몇십 분째 누군가를 맹렬히 헐뜯는지라 나는 그만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걔가? 그 교수랑? 어머, 어떻게 그래? 타인이 아닌 자신의 도덕성에 상처 입은 얼굴로 놀란 듯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도 잘 아는 즐거움이었다. (153p)

곽교수는 ‘단계‘ 없이 대화하는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면 직관적이고 나쁘게 보면 제멋대로인.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아도손해 보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왔거나 반대로 그렇게 잃은 것들을향해 복수하듯 떠들어대는 성격인 듯했다. 그런데 그게 마냥 수다스럽지만은 않아 힘을 빼고 높은 패를 던질 땐 ‘선수‘ 같았다. 곽교수는 자신이 이공 계열 교수들과 친하다며 그 판 사람들은 꼬인게 덜해 좋다고 했다. 책은 우리랑 비슷하게 읽는 것 같은데 원한이 없어 편안하다고. 나는 그것도 일종의 착시 아닐까 생각했지만 토 달지 않았다.(163p)

어느 화제든 상대의 진심도,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 태도가 담백하고 노련했다.(164p)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어떤 사건 후 뭔가 간명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불만족스럽게 요약하고 나면 특히 그랬다. 그 일‘ 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씨 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173p)

- 그건 내가 한 선택들이 아니잖아.
- 온전히 자기가 하는 선택이 어디 있어.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지. (255p)

-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가진 도덕이, 가져본 도덕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래.(199p)

가끔 엄마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활달함이랄까 생명력이 실은 무례와 상스러움의 다른 얼굴이었나 싶어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내 사촌언니 두 명이 한 달 새나란히 사고로 아이를 잃자, 엄마는 ‘어쩌다 이런 일이 동시에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집안 죄받았다 할까봐 부끄러워 어디가서 말도 못 꺼낸다‘고 했다. 그것도 상복 입은 사촌언니 앞에서.
엄마가 늙었나? 그새 분별력과 자제심을 잃었나? 얼굴이 달아올랐다.(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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