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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평점 :
박준시인의 시집을 펼쳤다 완주를 하지 못했다. 시는 생각만큼 잘 읽히지 않았다. 그 얇은 책을 완주하기 버거울 만큼 시는 너무 많은 관념과 추상적인 사색이 담겨있었다.
이번엔 박준시인의 에세이고 완주를 해서 다행이다. 시인들의 에세이는 시만큼 간결하지만 그 양은 부족함이 없다. 글을 닮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내 인생이 이 문장이었으면 좋을 만큼.
고등학교 3학년, 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는평소 잘 들어오지 않는 내 방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에게시험을 치르지 말라고 했다. 내일 시험을 보면 대학에 갈 것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결혼을하고 아이도 낳을 공산이 큰데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사는것이 정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너무 불행하고 고된 일이라고 했다. 더욱이 가족이 생기면 그 불행이 개인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번져나가므로 여기에서 그 불행의 끈을 자르자고 했다. 절을 알아봐줄 테니 출가를 하는 것도 생각해보라고도 덧붙였다. 당시 나는 그길로 신경질을 내며 아버지에게 나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과 삶에 지친 날이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에서 설핏 가난을 느낄때면 나는 그때 아버지의 말을 생각한다. - P141
광부의 삶과 저희 아버지의 삶은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하루 일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이그렇고 생의 대부분을 노동과 다음 노동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보내는 것도 그렇습니다. 수면욕, 식욕 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만을 채우기 급급하다가 나이가 들어병을 얻는 것도 그렇습니다. - P143
"제가 잘은 모르지만 한창 힘들 때겠어요. 적어도 저는 그랬거든요. 사랑이든 진로든 경제적 문제든 어느 한 가지쯤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지요. 아니면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거나, 그런데 나이를 한참 먹다가생각한 것인데 원래 삶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겠더라고요. 다만 점점 내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나이 먹는일 생각보다 괜찮아요. 준이씨도 걱정하지 말고 어서 나이드세요." 충격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후회로 채워둔 사람과 무엇을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간에 어느 한 시절 후회 없이 살아냈던 사람의 말은 이렇게 달랐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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