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2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27
빅토르 위고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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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물질세계처럼 정신세계에도 규정된 중력 관계가 있어, 그 관계의 바탕이 되는 원칙과 요소가 불만을 토로했으리라. 넘쳐흐르는 피그득한 무덤, 눈물로 지새우는 어머니들은 무서운 고발자들이다. 대지가너무도 무거운 압력에 시달리게 되면 신비로운 신음 소리가 어둠 속에서 일어나 무한한 깊이까지 그 소리를 듣게 하는 법이다. 나폴레옹은 시대를 뛰어넘어 고발되었고, 그의 몰락은 이미 예정된 상태였다. 그는 신의 뜻을 거스르고 있었다. - P44

테나르디에는 무엇보다도 간사한 꾀가 많은 침착한 사나이로, 악당치고는 온순한 편이었는데 사실 거기에 위선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인간들이 가장 질이 안 좋다. - P114

한편 남편 쪽은 머리에 단 한가지 부자가 되려는 계획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계획을 성공하지 못했는데 그의 훌륭한 재능에 어울릴 만한 무대가 없었던 탓이다. 몽페르메유의 테나르디에는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파산이라는 말이 재산이 전혀 없는 자에게도 해당된다는 전제를 두고 하는 이야기지만………. 스위스라든가 피레네 지방이라면 이 무일푼 사나이도 백만장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관 주인은 운명이 매어 놓은 범위에서만 풀을 뜯어야 했다. - P115

"여관 주인이 해야 할 일은 말이야. 누구든 들어온 사람에게는 음식과휴식, 촛불과 난롯불, 더러운 시트와 하녀, 벼룩, 애교 띤 웃음을 팔아야해. 지나가는 놈들을 붙들어서 조그만 지갑이라도 몽땅 털게 만들고, 큼직한 지갑이라면 적당히 가볍게 만들어 주고, 식구를 거느린 나그네는정중히 재워 주면서 남편에게서는 털어 내고 아내에게서는 뜯어내고 아이놈들에게서는 벗겨 내는 거지. 창문 하나 여닫는 데도 돈을 받고, 벽난로 구석, 안락의자, 보통 의자, 걸상, 발판, 깃털이불, 요, 짚방석, 무엇이든 손님이 건드린 것은 일정한 값을 정해 계산에 넣는 거지. 거울에 비친그림자라도, 그것이 얼마나 거울을 닳게 했는지 알아 두었다가 그 값을매겨야 하는 거야. 그 밖에도 만약 손님의 개가 파리를 잡아먹었으면 그값도 모조리 손님에게 씌우란 말이야!" - P116

인간은 빵으로 산다고 하기보단 훨씬 더 많은 긍정으로 산다. 보는 것과 보여 주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충분하지 않으니 철학은 하나의 에너지가 아니면 안 되며, 그것은 그 노력의 결과를 인간을 향상시키는 어떤 것으로 삼아야만 한다. 소크라테스는 아담 속에 들어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낳게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지복의 인간으로부터 현명한 인간이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에덴동산을 리세움 동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 P305

지난날 공증인 서기 노릇을 한 적 있는 포슐르방 노인은 침착성과 뻔뻔스러움을 겸비한 촌사람들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종류의능란한 무지는 일종의 힘이다.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으므로 누구나손쉽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 P324

수도원에 사는 사람들에게 ‘정부‘란 교권을 간섭하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언제나 이론의 여지가 있는 간섭을 했다. 수도원에서는 규율이 먼저였다. 그리고 세속적 법규는 둘째이다. 인간들이여, 그대들 멋대로 법률을 만들어라.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너희들만의 것으로 간직하라. 카이사르에게 지불하는 통행세는 언제나 신에게 바치는 통행세의 잉여분에 불과하니라. 군주도 교리 앞에서는 무력한 것이다. - P353

수녀원 역시 하나의 감옥이며, 그가 도망쳐 나온 또 다른 집과 불길할정도로 닮았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같은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않았다. 그는 다시 눈앞에 철문과 빗장과 쇠창살을 보고 있었지만, 그것은 누구를 가두기 위한 것인가? 천사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이전에 본, 호랑이들을 둘러싸고 있던 그 높은 담벼락들이 암양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다시금 보고 있었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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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1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26
빅토르 위고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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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출세를 바란다. 자기희생과 봉사에 몸바친 성자는험하기까지 하다. 성자는 피할 수 없는 가난과 막힌 출셋길, 그리고 자기희생을 다른 이들에게까지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면모를 피하려 든다. 비브뉘 예하가 고독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는 어두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성공이란 부패의 골짜기에서 한방울 한 방울 떨어져 내릴 뿐이다. - P74

주교가 ‘당신‘이라는 말을 점잖은 목소리로 품위 있게 말할 때마다 사내의 표정은 한층 밝아졌다. 죄수에게 ‘당신‘이라는 말은 메뒤즈호의 조난자에게는 물 한컵과도 같았다. 비천한 자는 존경을 갈구했던 것이다. - P106

장발장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올바른 문명의 시대에도 비극은 찾아온다. 바로 형벌이 인생의 파멸을 선언할 때이다. 사회로부터 분리되고고유한 정신을 지닌 인간이 재기할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 그얼마나 고통스러운 순간인가! 장발장은 5년 징역형을 받고 항구의 감옥으로 옮겨졌다. - P116

이 숙명적인 사건에서 과연 그 혼자서 잘못을 저질렀던가? 첫째로 그는 좋은 일꾼이었지만 추운 겨울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열심히 살아간 그가 빵을 갖지 못한 것을 그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다음으로 잘못된 선택이 벌어지고 그가 자백을 했음에도 형벌이 너무 무거웠던 것은 아닌가? 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죄의 정도와 맞았던가? 형벌은 뉘우침에 너무 치우쳐 있던 것은 아닌가? 형벌이 아무리 무거운들 이미 벌어진 범죄를 무화할 수 있던가? 무거운 형벌은 사태를 악화시키고, 죄인을 희생자로 만들고, 채무자를 채권자로 만들고, 범죄를 저지른 인간을 결국 법으로 용서해 준다고 든다. 탈옥으로 형기가 늘어난 것은 어땠는가? 강자 앞에서 약자는 얼마나 무력했는가? 사회는 개인에 대해 무죄였는가? 19년마다 매일매일 죄는 늘어나지 않았는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회는 그 안의 부조리와 무자비함을 구성원에게 떠넘길 권리가 있는가? 한낱 불쌍한 영혼을 고통과 결핍 속에 몰아넣을 권리가 있는가? 우연히 이루어진 재산 분배에서 탈락한 불쌍한사람들, 가장 동정받아 마땅한 그들을 사회가 매몰차게 대한다면 그것이 과연 정당한가?
그는 묻고 또 물었다. 그는 스스로 사회를 재판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그는 증오심에 차올라 사회를 벌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가혹한 운명을 사회적 책임으로 돌렸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에 대해 가혹하게 책임을 물으리라 생각했다. 자신이 남에게해를 끼친 것과 남이 자신에게 해를 끼친 것 사이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단정 지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형벌은 죄에 대한 대가였지만 불공정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무언가에 대한 적개심은 이성을 흐리게 만들고 오류를 만든다. 사람은아무 이유 없이 화를 내지는 않는다. 마음속에는 분명 그 원인이 숨어 있다. 장발장은 크나큰 분노를 느꼈다. - P121

신비로운 그 하늘이 주교의 이마 위에 떠 있었다.
한없는 투명함이었다. 하늘은 그의 내부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양심이었다. - P135

"내 형제 장발장이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 당신의 영혼을 샀습니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음울한 곳에서 구원하여 하느님께 바칠 겁니다." - P141

"뭐가 피곤해? 일요일엔피로도 쉬러 가거든?" - P170

멍청한 것을 읽으면 멍청해질 수밖에 없다. - P203

세상에는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일에 지나치게 참견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 사람은 왜 항상 저녁에 찾아올까? 저 사람은 왜 꼭 목요일에 외출할까? 저 사람은 왜 골목길만 골라 다닐까? 저 사람은 왜 집에 도착하기전에 마차에서 내렸을까? 그 여자는 왜 편지지를 한가득 갖고 있으면서도 편지지를 사려고 할까?
그런 의문을 풀기 위해 진정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좋은 일을하고도 남을 시간과 돈을 써가면서 사서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다. 그것은 단지 호기심을 위한 것으로 그 외에 다른 목적은 없다. - P230

청렴, 강직, 진지, 결백, 확신, 의무감 등은 잘못 사용되면 혐오스러워진다. 그러나 혐오스러워도 위엄은 남아 있다. 인간의 양심만이 갖는 그러한 특별한 위엄은 두려움 속에서도 의연히 존속한다. 그것들은 착오에빠질 수도 있는 하나의 결점만을 지닌 미덕이다. 흉악하기 이를 데 없는광신자의 무자비하고도 외곬으로 달리는 희열 속에는 비통하면서도 존경할 만한 광채 같은 것이 있다. 자베르는 스스로 깨닫지 못했으나, 승리를 뽐내는 모든 무지한 인간처럼 그 포악한 행복 속에서 가엾은 존재가되어 있었다. 선이 갖는 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드러난 그의 얼굴만큼 무섭고 또 가슴을 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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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벤투라와 아홉 번째 왕국
실비아 플라스 지음, 진은영 옮김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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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는 목적도 불확실한 이 폭주기관차에서 뛰어 내려야 한다.

"어머니, 저 오늘 못 가겠어요. 절대로 못 가요. 아직 여행할 준비가 안 돼 있단 말이에요."
"무슨 소리니, 메리."
아버지는 딸의 말을 쾌활하게 가로막았다.
"너는 단지 과민해졌을 뿐이야. 북부여행은 고생이 아닐 거다. 그냥 기차를 타는 거야.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다른 건 걱정하지 마라. 승무원이 그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줄 테니까." - P12

"맞아요, 이 노선의 종착지. 아버지는 내가 연결차편이나 뭐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거기서 어디로 가야 할지는 승무원이 말해줄 거래요." - P38

"눈멀지 않았어. 귀가 먼 것도 아니고. 하지만 어쩌다 보니 기차가 더는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되었어. 아홉 번째 왕국에 도착할 때까지 더 이상의정차는 예정에 없단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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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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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 과하면 난잡성(?)이 된다.

쥴리아나 도쿄를 보고 앞으로 나오는 한정현 소설을 좋아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이젠 좋아할 뻔했다고 해야겠다.

짧은 분량에 작가가 소화할 수 없는 설정을 해 놓아 소설이 너무 산만하다.
여장 남자 운서는 언론사의 기자이다. 운서는 트랜스 젠더가 되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여성인 가성을 사랑하는데 이것은 마치 작가가 트렌스 젠더만으로는 신선함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생각했는지 트렌스젠더와 레즈비언을 혼합해 억지스러운 잡종을 탄생시켰다는 느낌이다.
반면 중성적인 외모를 지향하는 페미니스트이자 검안의인 가성의 정체성은 너무 전형적이고 진부하다. 페미니스트와 중성적인 이미지가 필연적이라는 논리는 언제 사라질까? 페미니즘과 여성성은 상호배타적이라는 선입견을 키우고 있는 주인공 답게 만나는 남자들마다 때리고 외도하고… 팔자가 아주 사납다.
자웅동체로 태어나 간성인 수술을 받고 현초의와 연대해 가는 호텔포엠의 사장 에리카까지 너무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러면 정말 성‘소수’자들이 진정한 ‘소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성소수자들을 제외하더라도 등장인물들의 서사는 억지스럽게 파란만장하다. 비구니로 자라다 기생으로 팔려 마약 운반 혐의를 뒤집어 쓸 뻔하지만 가성의 도움으로 풀려난 송화는 거창한 배경설명에 비해 비중도 없다.(폭력과 역사의 부조리를 고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소설쓰기?)
세 명의 용의자 중 하나인 ‘모던조선’ 편집장 선주혜는 윤박에게 화대를 요구 받다가 윤선자의 누명을 풀어주기 위해 죽이지도 않은 윤박을 죽였다고 자수를 한다. 현초의는 편집장 선주혜를 찾아가 윤박에게 자신의 원고를 갈취당한 사실을 고한 적이 있고, 선주혜는 원고에서 한 문장도 말하지 못하는 윤박을 압박하다 감금을 당한다. 끝내 현초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윤박의 식모살이를 한 윤선자는 윤박이 갈취한 현초의의 원고를 대필하는 일을 해 죄책감을 느끼게 되며, 지속적인 성상납도 요구받는다.
미군정 치하에 미군을 체포할 수 없으니 죄를 주변 여성인물들에게 뒤집어씌우라고 뻔뻔하게 요구하는 형사과장이자 가성의 상사인 양준수의 첫 등장부터, 가해자를 밝히고 사실 속에 더 험한 진실을 밝혀내는 구성은 좋았다.
다만 한정현의 소설에 더 이상 퀴어들이 이용당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소자도, 여성도 소설과 역사적 배경에 억지로 짜맞추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쳤다.
매력적일 수 있는 캐릭터들을 창조해 놓았지만 아무도 제대로 빛나지 못했다. 아깝다, 차용해온 역사도, 성소수자라는 소재도.

국가에 쓰임을 증명하는 것. 가성은 증명이라도 할 수 있는 명문대 남학생들의 처지가자신과는 퍽 다르다고 느꼈다. - P40

관계를 확인한다지만 친구라는 건 정말 아무런 대가도 기준도 없는 관계였다. 가성에게 그래서 친구는 더욱 어려운 존재였다. 가성은 어릴 때부터사람들이 이상할 때가 있었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고 밥 한번 먹었다고 친구라고 이름 붙이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친구라는 것은 그저 자신들과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을 거른후 ‘같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끼리 맺는 동맹처럼보였다. 일본인들은 일본인만을 친구로 생각하여조선인들을 착취하고 또 조선인들 사이에서도 자신들끼리 급을 나누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 P108

"이곳에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남자이고 좌익이거나 우익일테죠. 여성과 아이와 노인의 목숨따윈 안중에도 없겠죠. 이 조선 땅에서 저 순교같은 거 안 합니다." - P129

하지만 가성이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죽음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남아 있는 삶과 연결되곤 했다. 꼭 범죄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누군가를 기억하거나 애도하면 죽었어도 살아 있는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반대로 살아 있어도 잊혀져버리면 없는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가성은 가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죽은 이와 살아 있는 이, 누구를위로해야 하는지도 말이다. 하지만 이상했다. - P141

남성과 여성이 한 몸에 있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에리카도, 그의 부모도에리카가 두 가지 성을 가진 것에 큰 관심을 두지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농사에 필요한 것은 아들이었기에 계속 남자아이로 키워졌을 수도 있고 후에의사에 따라 여자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혹은두 가지의 성을 다 가지고 살아갔을 수도 있었다.
운서는 폭력의 가장 위험한 측면이 그거라고 생각했다. 가능성의 삭제. 에리카는 그때 그 모든 가능성을 빼앗긴 것이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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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한정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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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리아나 도쿄>를 읽고 한정현의 소설을 눈여겨 보게 되었고, <소녀 연예인 이보나>를 보며 작가가 왜 이렇게 됐지 싶다가 <마고>를 통해 아주 큰 실망을 하고 결국 산 책이기 때문에 읽어 본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까지, 정말 한정현의 책은 더 이상이 궁금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반드시 피해야 할 책이 되었다.

한정현의 이분법적인 성대결이야말로 진정한 폭력이다. 성폭행만 폭력인가.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강간을 위해 태어나는 존재는 아니다. ‘이상하게 여성들은 변화된 점이 꽤나 있는 것도 같은데 남성들은 확실히 변화하는 면이 적은 것 같고요’(376p.) 같은 편견도 서슴없이 드러내는 이 소설에서는 지연, 도영, 춘희, 의선은 물론 설영의 할머니는 공장에서 관리자에게 강간을 당하고 심지어 사격장 강사인 메이까지 선수촌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나온 사람이다.

당하고만 사는 사람들은 순결하다는 논리.

이걸 근거삼아 아주 고약한 행패를 부린다.

여성과 퀴어를 어떻게 해서든 불행으로 몰아가는 것이 한정현의 주특기이며, 세상의 모든 불행이라면 개연성 따위는 무시하고 억지로 여성의 삶에 가져와 배치해 버려야 만족하는 작가이니, 이제 이 정도 고집이 과연 여성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보탬이 되려는 것인지, 남성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함양하는 데 도움이 되려는 것인지 스스로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불행만큼 한정현이 또 하나 집착하는 것이 추리소설 흉내 내기이다. 억지스러운 설정과 개연성 없는 불행에 추리소설까지 따라해 보려고 사건을 역순으로 구성해 버렸는데, 아쉽게도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개가 없다. 궁금증을 유발해서 사건의 전말을 알고 싶게 해야 하는데, 시간 순서만 꼬아놔서 독자를 혼란하게 하는 것 말고는 잘한 게 아무것도 없다.

알라딘에 중고로 1200원에 팔 수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솔직한 게 좋다고 하면서도 정작 솔직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솔직하게 산다는 건 친구들의 말처럼 무언가를 가졌을 때에야 가능하니 어려운 일이긴 했다. - P11

정확히 말하자면 돈에서 오는 안정감을 갖고 싶었다. - P33

비록 누군가에게 말하진 않았어도 자신이 신바에게 불만을 그렇게 쉽게 가질 수 있었던 건 어쩌면신바가 자신보다 약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연 신바가 정교수에 헤테로 남성이라면 자신이 과연 곧장 그런 불만을 행동으로 드러낼 수 있었을까 설영은 스스로에게 궁금했다. - P56

그런데 말이에요, 그 산 위에서조차 약한 사람들은 그렇게 늘 아무렇게나 건드려도 된다는 식의 취급을 당했어요 - P74

신바는 확실히 일상 전시 자아와 본연의 자아가 따로 있는 사람이었다. - P79

"세츠에 상, 저는 일본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싫어요.
외적으로 잔잔하고 평온한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한 일을저질렀는지……… 물론 좋은 사람 많지요. 그런데 저는 가끔은… 평온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갖는 면죄부 같은 게 아닌가 싶게 느껴집니다, 이 나라에서요. 그러니까, 그저 누군가의 몹쓸 짓을 못 본 척하는 데 그 평온함을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 말이에요. " - P82

뭔가 보수적인 것을 넘어서는 답답함에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대구라는 지명을 가져오곤 했는데 그 역시 어딘지 혐오인 줄 모르는 혐오 같은 느낌이었다. 설영은 이날 자신이 이야기에서 겉돌고 있다고 느꼈다. - P93

설영은 남자가 사용한 그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피해자들끼리 서로 물어뜯게 하는 것, 권력의 최상위층이 가장 잘하는 방식이었다. 자신들은 조금도 나서지 않은 채약한 자들끼리 치고받게 해서 결국 한쪽은 죽고 한쪽은 자신에게 영원히 종속되게 만드는 가스라이팅, - P134

사람들은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을 혐오하는 존재에게 뒤집어씌운다. - P169

"연정아, 우리 업계가 그런 말을 하잖아. 성형은 원본이없어지는 거라고. 그래서 더 예민한 거라고. 근데 나는 자주생각했어. 아니, 요즘 더 자주 생각하게 됐어. 원본이라는게 사람들에게 대체 뭘까, 하고." - P182

그들은 여자들을 마릴린 먼로에 비교하면서 여자들조차 마릴린 먼로를 비난하게 만들었다. 권력자가 만들어낸, 권력 없는 사람들끼리 물어뜯는 구조, 연정이 느끼기엔 그랬다. - P184

상담실장의 어머니는 부도가 난 병원의 시술 기계를 중고로 빼돌리는 업자에게서 넘겨받아 무허가 시술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단속에 걸렸을 때 그 업자가 한 말은 이거였다. "나는 반성 안 해. 얼굴 뜯어고치려고 한 여자들인데, 이게 무슨 죽을병 걸린 사람을 내가 속인 거야? 어디 사람죽었어?"
마음을 죽였겠죠, 연정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외모와 정신이 분리되어 있다는 건, 적어도 성형외과의로서는합의해주기가 힘든 말이었다. - P253

하지만 어느 날 신문에 씌어져 있던 ‘성괴‘라는 단어를 보면서 연정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연정이 보기에여성들의 외모에 신경 쓰는 건 오히려 남성들 같았다. 텔레비전 예능에서 범죄를 저지르려던 사람이 여자의 얼굴을보고 도망친다는 말도 안 되는 개그를 웃어넘길 수 없던 것도 그 이유였다. - P260

"네, 그런데 다시 만난 윤설영 씨는……… 서로 사랑했던,
그리고 이지연 씨가 너무 괴로워했던 마지막 8개월의 기억이 없는 채였어요. 아무리 좋은 의도라지만 굳이 그 아픈기억을 말해줘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게 가끔은 얼마나 힘든지 잘 아니까요."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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