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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평점 :
다양성이 과하면 난잡성(?)이 된다.
쥴리아나 도쿄를 보고 앞으로 나오는 한정현 소설을 좋아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이젠 좋아할 뻔했다고 해야겠다.
짧은 분량에 작가가 소화할 수 없는 설정을 해 놓아 소설이 너무 산만하다.
여장 남자 운서는 언론사의 기자이다. 운서는 트랜스 젠더가 되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여성인 가성을 사랑하는데 이것은 마치 작가가 트렌스 젠더만으로는 신선함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생각했는지 트렌스젠더와 레즈비언을 혼합해 억지스러운 잡종을 탄생시켰다는 느낌이다.
반면 중성적인 외모를 지향하는 페미니스트이자 검안의인 가성의 정체성은 너무 전형적이고 진부하다. 페미니스트와 중성적인 이미지가 필연적이라는 논리는 언제 사라질까? 페미니즘과 여성성은 상호배타적이라는 선입견을 키우고 있는 주인공 답게 만나는 남자들마다 때리고 외도하고… 팔자가 아주 사납다.
자웅동체로 태어나 간성인 수술을 받고 현초의와 연대해 가는 호텔포엠의 사장 에리카까지 너무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러면 정말 성‘소수’자들이 진정한 ‘소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성소수자들을 제외하더라도 등장인물들의 서사는 억지스럽게 파란만장하다. 비구니로 자라다 기생으로 팔려 마약 운반 혐의를 뒤집어 쓸 뻔하지만 가성의 도움으로 풀려난 송화는 거창한 배경설명에 비해 비중도 없다.(폭력과 역사의 부조리를 고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소설쓰기?)
세 명의 용의자 중 하나인 ‘모던조선’ 편집장 선주혜는 윤박에게 화대를 요구 받다가 윤선자의 누명을 풀어주기 위해 죽이지도 않은 윤박을 죽였다고 자수를 한다. 현초의는 편집장 선주혜를 찾아가 윤박에게 자신의 원고를 갈취당한 사실을 고한 적이 있고, 선주혜는 원고에서 한 문장도 말하지 못하는 윤박을 압박하다 감금을 당한다. 끝내 현초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윤박의 식모살이를 한 윤선자는 윤박이 갈취한 현초의의 원고를 대필하는 일을 해 죄책감을 느끼게 되며, 지속적인 성상납도 요구받는다.
미군정 치하에 미군을 체포할 수 없으니 죄를 주변 여성인물들에게 뒤집어씌우라고 뻔뻔하게 요구하는 형사과장이자 가성의 상사인 양준수의 첫 등장부터, 가해자를 밝히고 사실 속에 더 험한 진실을 밝혀내는 구성은 좋았다.
다만 한정현의 소설에 더 이상 퀴어들이 이용당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소자도, 여성도 소설과 역사적 배경에 억지로 짜맞추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쳤다.
매력적일 수 있는 캐릭터들을 창조해 놓았지만 아무도 제대로 빛나지 못했다. 아깝다, 차용해온 역사도, 성소수자라는 소재도.
국가에 쓰임을 증명하는 것. 가성은 증명이라도 할 수 있는 명문대 남학생들의 처지가자신과는 퍽 다르다고 느꼈다. - P40
관계를 확인한다지만 친구라는 건 정말 아무런 대가도 기준도 없는 관계였다. 가성에게 그래서 친구는 더욱 어려운 존재였다. 가성은 어릴 때부터사람들이 이상할 때가 있었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고 밥 한번 먹었다고 친구라고 이름 붙이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친구라는 것은 그저 자신들과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을 거른후 ‘같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끼리 맺는 동맹처럼보였다. 일본인들은 일본인만을 친구로 생각하여조선인들을 착취하고 또 조선인들 사이에서도 자신들끼리 급을 나누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 P108
"이곳에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남자이고 좌익이거나 우익일테죠. 여성과 아이와 노인의 목숨따윈 안중에도 없겠죠. 이 조선 땅에서 저 순교같은 거 안 합니다." - P129
하지만 가성이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죽음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남아 있는 삶과 연결되곤 했다. 꼭 범죄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누군가를 기억하거나 애도하면 죽었어도 살아 있는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반대로 살아 있어도 잊혀져버리면 없는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가성은 가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죽은 이와 살아 있는 이, 누구를위로해야 하는지도 말이다. 하지만 이상했다. - P141
남성과 여성이 한 몸에 있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에리카도, 그의 부모도에리카가 두 가지 성을 가진 것에 큰 관심을 두지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농사에 필요한 것은 아들이었기에 계속 남자아이로 키워졌을 수도 있고 후에의사에 따라 여자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혹은두 가지의 성을 다 가지고 살아갔을 수도 있었다. 운서는 폭력의 가장 위험한 측면이 그거라고 생각했다. 가능성의 삭제. 에리카는 그때 그 모든 가능성을 빼앗긴 것이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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