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띵 시리즈 9
윤이나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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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에 관한 시시콜콜한 푸념이나 늘어놓는 단편적인 글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책이 얇고 주제도 일상적이지만, 작가의 라면에 대한 애착뿐 아니라 라면과 작가의 삶을 비유적으로 짜임새 있게 꾸린, 잘 익은 라면 한 그릇 같은 책이다.
워킹홀리데이에서 느꼈던 그 순간의 임시방편 같은 삶을 인스턴트 컵라면에 비유한다. 어딘가에 속박되어 있지 않는 자유로움도 있지만 그만큼 부유하고 있던 자신의 청춘을 돌아보며 내 인생의 컵라면과 같았던 시기라는 의미를 붙이는 작가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비빔면의 채소 고명을 보며 상상했던 전원 시골 농가의 삶을 톺아보는 등 작가의 인생에 대한 진한 농도의 고찰을 엿볼 수 있다.
라면 도구와 연관된 일화도 섞여있다. 라면포트와 연관된 원주 창작실의 생활이나 라면땅을 만들 수 있는 에어후라이를 비롯해, 냉라면 레시피를 완성할 수 있는 조미료를 갖추어가는 1인 가구 살림 성장기(완성기?)도 펼쳐진다.
친구들과의 만찬에서 일의 기본기를 언급하며 라면의 기본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하고 김치와의 ‘마리아주’를 완벽히 이룬 주점의 속 깊은 뜻을 헤아리는 일화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후반부 라면의 상차림에서는 호떡 장사를 했던 작가 어머니의 일화를 들고 와, 호떡 하나와 라면 상차림에 투여되는 너무나 많은 노동력을 보며 애틋함과 함께 감상에 젖게 한다.

가벼운 책이지만 너무 가볍지 않은, 라면과 함께 나의 삶에서도 상기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상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은 쓰레기 같은 일이 아니야. 그냥 일이지. 너에게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을 하고있는 사람이 있는 한, 절대 쓰레기 같은 일이 되지는않아." - P53

역시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한법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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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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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콤에서 진 루이즈(스카웃)라는 소녀의 시각으로 미국 남부의 흑인 인권문제와 집단 내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소수자(희생자)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진 루이즈와 오빠 젬(제레미 애티커스 핀치)은 여름마다 레이철 아주머니의 집에 방문하는 딜(찰스 베이커 해리스)과 함께 래들리 집을 가지고 놀이를 즐긴다. 메이콤에서는 래들리 집안의 둘째 아서(부) 래들리가 탈선을 일삼다가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로 집안에 갇혀 살고, 부 래들리가 래들리부인을 살해했다는 등의 괴담이 마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천진한 세 아이들은 래들리의 집을 귀신의 집처럼 여기며 서로의 담력을 경쟁 삼아 래들리 집을 서성거리고, 부 래들리의 생김새를 괴물처럼 묘사하기도 하며, 래들리 집안에 관한 소문을 연극으로 만들어 놀기도 한다.

‘래들리 집안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수 있었는데도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지냈는데, 그건 메이콤에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27p.)

사실 집단주의 문화는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습성이 아니다. 과거엔 어느 문명에서나 사람들은 생존에 유리한 집단생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행동이 유전되어 이제는 단체생활이라는 말로 순화되어 이제는 생존과 관계없이 개인에게 사회 이익을 위하여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단지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가 우리보다 아주 약간 빨랐을 뿐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습성을 아이들부터 스테퍼니 크로포드 같은 어른들의 행동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모디 아주머니 같은 인물은 스카웃에게 알지 못하는 일을 예단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하며, 아버지 애티커스는 아이들의 짖궂은 장난에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한테 일어난 일은 전혀 알 수 없어.’(94p.)-모디

하지만 아이들의 래들리에 대한 호기심은 끊이지 않아 낚싯대에 쪽지를 걸어 래들리 집에 전달하는 등 계속해서 장난을 친다. 그러다 늦은 밤 몰래 래들리 집에 침입을 하다 젬이 바지를 래들리의 집에 두고 도망쳐 오는 일도 생기지만, 바지를 다시 찾으러 갔을 땐 구멍난 젬의 바지가 수선되어 잃어버렸던 자리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한다. 래들리집 근처의 나무 옹이구멍에는 껌이나 동전, 털실 공, 비누 조각 등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해 아이들이 가져오면서 부 래들리와 아이들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듯하지만, 곧 부 래들리의 형인 네이선이 옹이구멍을 시멘트로 막아버린다.

소설의 국면은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흑인인권 문제에 대한 화두로 넘어간다.
애티커스 가족은 핀치스 랜딩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갔다 스카웃이 사촌 프랜시스가 애티커스를 깜둥이 애인이라고 놀려대자 싸움이 벌어진다. 애티커스는 흑인 톰 로빈슨이 유얼집안 사람들에게 쓰인 누명을 풀기 위한 변호를 맡고 있어 마을 백인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애티커스의 동생 알렉산드라는 핀치스 랜딩에서 애티커스의 아이들을 돌본다는 명목으로 메이콤으로 온다. 알렉산드라는 애티커스집안과 함께해온 흑인 가사도우미 캘퍼니아가 백인과 흑인 사이의 선을 지키지 않는다며 배제하려 한다. 애티커스는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맡아 흑인사회에서는 영웅처럼 받들어지고 있었고, 캘퍼니아는 그런 마을 분위기를 고려해 젬과 스카웃을 흑인교회에 데려간다. 젬과 스카웃은 그곳에서 자신들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만나지만 불쾌해하는 이들도 만난다. 알렉산드라는 캘퍼니아의 행동을 맹비난하지만 애티커스는 상관하지 않고 알렉산드리아에게 캘퍼니아를 가족처럼 받아들이길 권하며, 스카웃은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반발심만 높아진다.
톰 로빈슨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유얼 집안은 가난하여 쓰레기장 근처에 살고, 이상한 사람이라 낙인찍혀 백인사회에서 배제당한 사람들이다. 메이엘라 유얼은 톰 로빈슨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집안으로 유인했고, 그녀는 성적인 욕구를 이기지 못해 톰을 덮쳤다. 이 상황을 목격한 메이엘라의 아버지 유얼이 분노하여 메이엘라를 구타하고 톰은 그 상황에서 도망쳐 나온다. 유얼의 분노는 톰 로빈슨에게 번져나갔고, 그는 톰이 메이엘라를 폭행하고 강간했다며 허위로 고발하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왼손잡이에게 구타당한 메이엘라의 상흔과 진술로 오른손 잡이인 톰이 아니라 왼손잡이 유얼에게 구타당한 것이 밝혀지고, 톰은 메이엘라가 자신을 덮치자 그런 상황이 자신에게 화가 될 것이 두려워 저항했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메이엘라도 끝까지 자신이 피해자라고 우기고, 배심원들은 흑인차별이 심한 남부사회의 구성원답게 톰 로빈슨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유얼은 재판에서 이겼지만, 애티커스가 자신에게 가한 심문이 모욕적이라고 생각하고 앙심을 품게 되었으며, 톰 로빈슨은 감옥에서 탈영을 시도하다 총에 맞아 숨진다. 유얼은 재판에서 승리했지만, 유얼의 승리는 백인들 특권의 승리였을 뿐, 유얼에게는 패배보다 더한 모욕이었다.

‘자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했지만, 고통을 치르고 얻은 대가라는 것이 고작...... 그래, 좋아, 이 깜둥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지, 하지만 넌 다시 쓰레기장으로 돌아가, 이런 식이었거든.’(461p.)

결국 유얼은 애티커스에 대한 복수로 핼러윈 축제로 연극을 마치고 돌아오는 스카웃과 젬을 살해하려고 덮치지만 스카웃은 단단한 연극 복장 덕에 살아남고 유얼과 몸싸움을 벌이던 젬도 부 래들리에 의해 구출된다. 그리고 유얼은 끝내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된다. 애티커스는 젬이 정당방위로 유얼을 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보안관 헥 테이트는 유얼이 놓친 칼에 자신이 넘어져 칼에 질려 즉사한 것이라고 애티커스를 설득(?)한다. 이에 대한 진실공방은 벌어지지 않고, 애티커스는 헥 테이트의 의견을 순수히 받아들이다. 젬은 그날의 사고로 장애가 생겼다.

고전은 시대의 분위기에 맞게 새롭게 읽혀야 한다. 당시의 도덕으로 선과 악을 판단해 독자에게 교훈을 주려고 했겠지만, 지금 시대에 이 소설은 조금 의아한 부분들이 많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여성에 대한 관점이 그의 낙천적인 삶의 자세로 용서될 수 없는 것처럼...
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명확하게 선과 악을 구분하여 의도를 전달하려 한 것 같지만, 지금 현재의 입장에서 단지 스카웃의 입장에서만 비친 유얼을 정말 악한 인물로만 평가해야 하는지 의문이다.(사실 그것을 판단하기엔 그의 서사는 너무 단편적이다)
나는 이 작품의 저변에 깔린 의식이 ‘흑인만도 못한 백인 놈을 타도하자’로 보인다. 그런 전제를 발판삼아 흑인인권을 옹호하는 권선징악적 교훈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불편하다. 래들리 집안은 유얼 집안 사람들처럼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메이콤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왔지만, 마침내 백인사회에 선(혹은 이익)을 제공하고 메이콤의 주민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유얼은 가난하고 노력도 하지 않는 이유로 죽음에 대한 진실공방마저 가릴 필요가 없는 ‘쓰레기’ 취급을 받고 죽음에 대한 진실공방도 이뤄지지 않은 채 사라진다.
또 메이콤의 백인들의(혹은 백인 독자들의) 흑인에 대한 인식이 ‘자기들만도 못한 위치에서 배려를 받고, 선을 베풀어야하는 대상’이었는지 ‘동등한 위치에서 동등한 존엄을 가진 인격’이었는지도 묻고 싶다.
그리고 아래 스카웃이 소설에서 지적한 위선을 유얼처럼 아직 백인 사회에 품어줄 수 있는 마땅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다른 백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게 말이지. 오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그렇게 대하는 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말씀하셨거든. 오빠, 누구라도 박해하는 건 옳지 않잖아? 내 말은, 심지어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 나쁜 생각을 갖는 것조차 말이야. 안그래?
......
그날 밤 게이츠 선생님이 법정에서 나오고 계셨거든. 선생님이 스테퍼니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 오빠, 히틀러를 그토록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455p.)

아빠가 나를 내려다보실 때면 아빠의 얼굴에는 언제나 어떤 기대감을 갖게 하는 표정이 나타났습니다. 「너 타협이란게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아빠가 물으셨습니다.
「법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것 말이에요?」「아니, 서로 양보해 합의에 이르는 것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 네가 학교에 가기로 양보한다면, 우리는 전처럼늘 매일 밤마다 계속 글을 읽을 거야. 그러면 되는 거지?」「네, 아빠!」「통상적인 절차 없이 이것을 인준한 것으로 생각하는 거다.」 - P67

세상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죽은 뒤의 세계를 지나치게 걱정하느라고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야. 길거리를 한번 보려무나, 그 결과를 보게 될 테니까. - P93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 줘야 해.」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 P200

「스카웃, 깜둥이 애인이란 아무 뜻도 없는 그런 말들 중 하나란다. 말하자면 코딱지처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무식하고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어느 누가 자기보다 흑인들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할 때 쓰는 말이지. 누군가를 욕하는점잖지 못하고 상스러운 용어가 필요할 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어 버렸어.」
「아빠가 정말로 깜둥이 애인인 건 아니죠?」
「정말로 흑인 애인이란다. 난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래서 때로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지………. 누가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말로 불린다 해서 모욕이되는 건 절대 아니야. 욕설은 그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인간인가를 보여 줄 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해. 그러니까 듀보스 할머니가 뭐라 하시든 실망할 필요 없어. 할머니는 할머니 일만으로도 고통이 많으시단다.」 - P207

고모는 <무엇이 집안에 가장좋은 일인지 단언하는 버릇이 있었고, 고모가 우리 집에 함께 살러 오신 것도 그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P242

고모는 어떤 일도 지루해하는 법이 전혀없었으며, 아무리 작은 기회라도 주어지기만 하면 왕비다운특권을 행사하려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리하고 조언하고 충고하고 경고했습니다. - P243

「그런데 말이야, 딜, 결국 그는 흑인이잖아.」
「난 그런 거 손톱만큼도 상관 안 해. 그런 식으로 대하는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 P368

그 애한테 잘못된 것은 없어. 내 생각으로는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야. 그냥 사람들 말이지. - P420

「게이츠 선생님은 좋은 분이시지, 안 그래?」
「물론이지. 그 선생님 반에 있을 때 좋았어.」
「히틀러를 엄청 싫어하시던데…….」
「그게 뭐 잘못이야?」
「그게 말이지. 오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그렇게 대하는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말씀하셨거든. 오빠, 누구라도 박해하는 건 옳지 않잖아? 내 말은, 심지어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나쁜 생각을 갖는 것조차 말이야. 안그래?」
「스카웃, 물론 옳지 않고말고. 그런데 왜 그렇게 안달을 해?」
「그게 말이야. 그날 밤 게이츠 선생님이 법정에서 나오고계셨거든 ㅡ 우리보다 앞서서 계단을 내려가셨기 때문에 오빠는 선생님을 볼 수 없었지ㅡ선생님이 스테퍼니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 오빠, 히틀러를 그토록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
갑자기 오빠가 버럭 화를 냈습니다. 침대에서 뛰어내리더니 내 옷깃을 잡고 흔들어댔습니다. 「두 번 다시는 그 법정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알아듣겠어? 알아들었냔 말이야! 다시는 나한테 한 마디도 입 뻥긋하지마. 알겠어? 자, 그럼 나가 봐!」 -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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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픽션 -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 테마 소설집
조남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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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에 대한 소설 묶음인데 사는 곳이 소재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올 수 있지 않나…
정용준, 이주란, 조수정 작가의 단편을 재밌게 봤다.

불타 사라진 종묘를 장소라는 의미를 부여해 마음속에 기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실체가 없는 것도 상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스노우>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이주란의 소설은 일상이 따스하게 흘러가는 냇물같아서 좋다. 아랫층 방화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엄마와 썸남 재섭씨와의 소소한 일상과 우연들이 마음이 고요하고 한적해져서 좋다.

중고나라 사기극의 뻔한 전말을 통해 쌩뚱맞은 연민을 느끼는 조수정소설도 재밌었다. 한번쯤은 이런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오죽 했으면 저러고 살까.
부동산 유튜브 강의를 들으며 관광을 다니다 중고사기꾼의 발신 주소를 찾아가 보니 재개발 지역인 것을 알고 사기꾼의 사는 곳에 대한 측은한 마음에 화자가 느끼는 허탈하고, 외롭고, 화나고, 쓸쓸한 감정…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고 딱딱했다. 모두에게 일어난 비극이었지만 내용과 상실의 감각은 제각각이었다. 모두가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한순간에 잃었다. - P57

누가 그랬나. 밤은 초라한 것을 가려주는 아름다운 옷이라고. 이렇게 밤의 시간에 잠긴 종묘는 고요하고 아늑했다. - P77

"음, 지킬 것은 없지만 돌볼 것은 있잖아요. 전 밤마다돌아다니면서 계속 그들에게 말을 걸어요. 여기 있다는 것을 안다고. 기다려달라고. 그렇게 말해요. 어딘가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영혼들이?" - P78

이도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감정이 장소인 것 같다는 서유성의 말을 곱씹었다. 감정이 장소다. 감정이 장소다. - P89

아이의 얼굴에서 20세기의 분위기가 풍기는 동네. - P151

피로했다. 화가 나는 것도 같았고 쓸쓸한 것도 같았다.
서글펐다. 허탈했다. 아니, 외로운 것도 같았다. 뭘까 이감정은. 이 감정에는 대체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는 걸까.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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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리커버)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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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나도 집다운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늘 보통의 집이라고 하는 아파트, 단독주택, 빌라 같은 형식을 벗어난 독특한 형태의 집에서 살아왔고, 그런 결핍으로 인해 나는 안정적이고 안락한 분위기의 거주형태를 갈망하고 산다.

작가는 초등학교에서 ‘너 어디 사니?’라는 질문을 계기로, 사는 곳이 계급을 상징하는 기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어렸을 때부터 부유하게 태어나 자연스럽게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사회에 편승해 자본주의의 구성원이 되는 과정을 볼 듯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고 찾아온 아버지 사업의 부도로 가난해졌고, 대학 입학을 위해 서울에 상경하면서 빈부격차를 더욱더 현실감 있게 체험하며 빈곤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처음엔 낯선 부잣집 딸내미의 배부른 삶의 애환을 들어줘야 하는 책인가 싶었지만 이내 곧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월세나 전세로 원룸과 투룸을 전전하며 살아가던 나의 20대, 그곳에서 타의로 이룬 자립. 아등바등.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흔한 고통이지만 드러내기는 차마 부끄러운 처지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작가가 좋아지고 글을 대하는 나의 감정도 달라진다.

집이란 것은 좋은 점만 보자면 한없이 자랑만 할 수도 있고, 안 좋은 점만 보자면 끝도 없이 불평만 늘어놓을 수도 있다. 안목이 좋았는지 생각이 긍정적인지 모르겠지만 작가는 자신이 거쳐온 어떤 집이든 그 대상을 ‘친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어떤 형태든 집은 나의 은신처고 삶을 지탱해주고 살아가는 힘을 충전하는 곳이니까.

일곱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지만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가 말년에 살던 마르탱의 오두막은 네 평이었고,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은둔의 장소로 삼았던 월든의오두막도 비슷한 크기였으니 불만스러워할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 원룸은 내가 가진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엘리베이터와주차장, 외부 도어락과 빌트인 가구의 혜택까지 누릴 수 있었다. - P55

가난은 서로에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월세 30만 원짜리 자취방이지만 누군가에게 가난은 포클레인이 밀어버릴 쪽방이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가난은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의 삶이었다. 가난을 가늠하는 일은 자신의 과거든 타인의현재든 비교 대상이 필요했다. 마포의 30평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친구의 집을 다녀온 날, 나는 가난했다. 원룸에서 불과 몇 정거장 떨어진 난곡의 쪽방을 목도한 날, 나는 가난하지 않았다.
신림동의 일곱 평짜리 원룸은 마포의 아파트와 난곡의 판자촌 중 어디에 더 가까울까? 아무리 노력해도 한강 전망의 브랜드 아파트가 대변하는 삶에 진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노력을 게을리하면 도시 빈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달동네 판자촌으로 추락할 것 같았다. 난곡의 안쪽을 바라볼 때마다 ‘여기‘가최악은 아니라는 안도감과 ‘저기‘로 굴러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교차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알고 있었다. ‘저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저기‘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저기‘에서나마 쫓겨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그 절박함 앞에서 느끼는 안도와 불안이 부끄러웠다. - P59

세상에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조차 기어이 바닥을 드러내게 만드는 동네가 있었다. 품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타인을 대접하는 사람, 나의 상처가 아픈 만큼 남의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품위는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가진 것 없는 자가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방어선이었다. 나는 매사에 ‘내돈을 써야 하는 일인가만 생각하는 사람, 폭력적인 시선으로남을 쳐다보는 사람, 남의 차에 가래침을 뱉는 사람, 욕설을 퍼붓고 악을 쓰는 사람이 결코 되고 싶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누구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다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런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어떤환경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품위와 교양과인격이 다른 환경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만들어야 하는 태도였다. 피곤하고 지친 나머지 끝내 화만 남은이들에게는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이웃들을 좋아할 수 없었지만 차마 미워할 수도 없었다. - P84

"이제 나도 서른이니까."
동생의 책상 위에는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이 놓여 있었다. 나는 동생이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때 서른 살은 온다"는 구절을 읽고 그런 결심을 하지 않았을까짐작했다. 왜 그런지 동생의 회사에 찾아간 날이 떠올랐다. 나는 로비에서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의 인테리어도,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근사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내 쪽으로 걸어오는 동생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슬립 드레스에 디자이너 브랜드의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동생이 그 장소에 잘 어울려 보이는 데 안도하면서도 그 아이가 매일 느낄 괴리감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려한 사람들로가득한 건물을 빠져나와, 만원 전철을 타고, 어둡고 가파른 골목을 걸어올 때의 기분을. 그동안 동생은 누구에게도 우리의 남루함을 들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따로 살자."
우리는 이 집에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없"는 시간을 너무 오래 보낸 것이 아닐까? - P86

그녀는 혼자 원룸-방에 사는 것 같지만 남편과 아이가 있고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 있다. 여자는 남편이 출근한 뒤에 방으로 가고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온다. 시간이 흐르고 아내가 다른 공간에 드나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남편이 여자를 미행하여 방에 들이닥친다. 그리고 혼자 사는 여자들이 안전을 위해 흔히 그러듯 현관에 놓아둔 남자의 구두를 본다.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확신하지만 그곳은 자기만의 공간과시간을 가질 수 없었던 여자의 ‘자기만의 방‘일 뿐이다. ‘집’은 여자가 가사 노동과 육아를 전담하는 공간, 독립과 자유의 실현을억압하거나 최소한 보류하게 만드는 장소다. 그녀가 고정된 성역할에서 벗어나 지적 갈망을 충족하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곳은 집이 아니라 ‘방‘이다. 여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에서 끊임없이 읽고 쓴다.
여자가 집 바깥에 마련한 자기만의 방이 서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읽는 것은 다른 삶, 다른 사유, 다른경험을 흡수하는 일이다. 과거에 여성은 아버지, 남편, 오빠 같은 남성 가족이 허용한 책만 읽어야 했고 스스로 책을 선택하는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이 여성의 독서를 불온하게 여겼던 이유는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을 차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책은 전복적 세계, 또는 세계의 전복을 꿈꾸게 만든다. - P133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인테리어 업체에 의뢰하는 대신 각 시공마다 개별적으로 인력을 섭외하기로 했다. - P153

학교가 가까워지자 아빠가 물었다.
"좀 떨어진 데 내려주는 게 좋겠지?"
"왜? 학교 앞에 내려줘."
아빠는 내 대답에 흐뭇한 표정이었다. 학교 앞 사거리에서신호를 기다리며 그가 말했다.
"며칠 전에 재경이도 학교에 데려다줬는데 이 녀석이 멀리떨어진 골목에서 내려달라는 거야. 화물차 타는 걸 친구들이 보는 게 싫었나 봐."
장난기가 발동한 아빠는 동생의 속내를 모르는 척 정문에내려주겠다고 했고, 당황한 동생이 거듭 사양하면서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다고 했다. 나는 그런 일로 장난치는 아빠가 좀 어이없었다. 아빠는 동생의 표정이 떠올랐는지 쿡쿡 웃더니 기쁜목소리로 말했다.
"재영이는 착해서 아빠를 부끄러워하지 않지."
물론 나는 화물차를 운전하는 아빠가 부끄럽지 않았다. 착해서가 아니라 직업의 귀천을 따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워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도 아빠는 우리가 함께 살던 시절의 몇 가지 일화를 근거삼아 나를 ‘착한 딸’이라고 확신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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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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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인간들은 다들 미쳤다. 작가가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ADHD가 아닌 사람들을 다 정상범주에 넣어버리는 것은 지나친 과오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조금 불편했던 점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표현 자체다. 그렇다고 이를 ADHD와 비(非)ADHD라고 구분하기에는 억지스럽지만, 내가 보기엔 ADHD도 보통의 삶에 안착해 있는 정상인이다. 인격을 재단하는 것은 누구도 함부로 시도해선 안 되는 영역이다. ADHD를 이해했다느니 응원한다느니 같은 감상은 주제넘어 보인다. 그 자체로 인정하면 될 일이다. 세상엔 우리가 반대하고 싸워야 할 일(차별? 편견? 격차?)이 무수한데, 타인의 산만한 행동 같은 것들을 지탄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내가 ADHD가 아니더라도, 나 자신을 성찰하거나, 보듬어 줄 수 있는 책이다. 거기다 유난히 두드러지는 재능인 ‘글발’ 덕에 통렬하게 유쾌하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우리의 자기반성을 위해서든, 자존감을 위해서든.

세상에는 ‘네가 무엇이든 소중하고 아름답다‘라는 식의 낙관이 유행했지만 내게 적합한 안심은 아니었다. - P10

나는 차라리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상투적 표현을 감투처럼 뒤집어쓰기로 했다. 스스로를 바꾸자 와닿지 않았던 충고들도 전부 새로워졌다.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너무 흔해서 모욕적이기까지 했던 위로들이 생동감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괜찮아지거나 걱정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괜찮아지지 않을까? 이렇게까지 걱정할 일일까?‘ 내게 반복해 물어볼 순 있었다. - P18

심리 테스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스스로를 모르니통계로 정의되길 갈망하는 것이다. - P20

짝사랑은 슬픈 것이지만 상호 혐오라면 해피 엔딩이라고 본다. - P24

나는 홀로 있을 기회로부터 도망쳤어야 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요양이 아니라 고립이었다. 전에는 ‘혼자‘라고 느껴도 군중 속의 고독이었는데 이젠 진짜 물리적으로 혼자인 거였다. 내가 생각보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못 보게 되니 그리워진 심보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외로웠다. 지루했고 고루했고 기약이 없었다. - P46

소주 기준 두 병을 넘기면 자기 고백 욕구와 과잉된 감성이 흔든 콜라처럼 터지곤 했다. - P58

나는 장래희망이 가난뱅이인 사람처럼 돈을 쓴다. 저축도 없고 저축없이 승승장구할 묘수도 없으면서 무모하게 지출한다. - P78

공동생활에서 끊기는 건 늘 나의 인내심뿐이었다. 그러다 보면 인간관계도 끊기게 되니까 나는 혼자 사는 게 나았다. 실제로 혼자 살고 있는 지금 부모님과 자매들을 훨씬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이 변했다. 어떤 사랑은 거리감에서 온다는 걸, 아니 거리감에서만 온다는 걸 독립으로 배운 셈이다. - P86

누군가 이토록 예민하다는 건, 그가 늘 화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 P88

누군가 내게 "넌 정말 싸가지가 없어."라고 하면, 나는 슬퍼하는 대신 이렇게 생각한다.
"한 발 늦었어요. 그 사실은 29년 전의 제가 먼저 발견했답니다. 아직 저의 고향이 엄마 배 속이던 시절에 말이지요."
그러면 욕을 먹고도 윙크할 수 있는 기분이 된다. 약간의 유머를 더하면 변형도 가능했다.
"저는 싸가지만 없는 게 아니에요. 집중력도 없고 기억력도 없지요. 두 사실을 조합하면 님이 지금 하는 말에 집중하고 오래 기억할 수도 없다는 얘기랍니다." - P90

행복을 정의하지 말고 행복해지려는 노력이 뭔지 정의하자는 뜻이다. - P100

어쩌면 난 성숙함 자체보단 ‘성숙해지고 있다‘라는 미래지향적 환상에 집착 중인지도 모른다. - P151

흔한 말로 가족을 둥지라고 한다. 흔한 표현은 싫지만 아직 ‘둥지‘만큼 멋진 두 글자를 찾지는 못했다. 엄마 아빠는서른을 앞둔 내게 아직도 훌륭한 둥지였고, 때문에 난 독립된 세계를 홀로 꾸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 P161

내가 단순히 흥미를 위해 고양이를 들이는 건 아닐까?
고양이가 계속 내 흥미를 끌어 주지 못하면 내가 맷돌이를 짐짝처럼 여기게 되지 않을까? 맷돌이가 갑자기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못난 생각들이 반죽처럼 뒤섞였고 어떤 빵으로도 구워지지 않았다. 맷돌이를 생각하면서도 실은 내 처지만 첨예하게 궁리하고 있었으니, 그때까지의 나는 이타적이고 싶은 이기적인 사람에 불과했다. - P167

많은 인연을 떠나보내며 느낀 건 사람에 대한 기대를 거두어야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 P168

그러나 같이 산다는 건 매일매일 환상을 깨부수겠단 결심이어서, 나는 곧 맷돌이의 잔악한 두 얼굴을마주하게 되었다. - P173

그래서 타인은 지옥이고 내가 선의의 피해자였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피해자는 역시 내 지인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수없이 지적당해 외울 지경인 스무 가지 증언들은 거의 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되갚지 못할 남의 인내를 마구 끌어다 쓰는 게 감정적 사채 빚과 같다는 걸 몰랐다. 관계라는 게 그렇다. 상대방이 양보할수록 내 삶은 편안해진다. 나의 패착은 편안함을 느낄 때마다 착취적으로 굴었다는 데 있었다. 한 개를 내어 주면 두 개를 달라고 하고, 두 개를 받아 낸 후엔 세 개를 취했다. "멀쩡한 네가 나 좀 참아줘." 이런 바람을 은연중에 보였는지도 모른다. - P209

그러면 나는 누구의 사랑과 이해를 받아야 할까? 대체누가 이다지도 엉망인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줄까. 심지어 내게 이용되길 원하면서도 무보수에 동의하는 사람이어야했다. 부족한 나를 발전시키려 들지 않고 오히려 보존하려 애써 주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완전무결의 상냥함이다.
모든 조건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그래도 적합한 사람 하나를 알긴 알았다. 그는 본인의 결심만 선다면 요구받은 것보다 내게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를 최고 등급의 행복으로 적시고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위로와 응원을 퍼부어 줄 수도 있다. 그가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렇게 멋진 사람이 지금껏 나를 외면했던 이유는, 내가 그를 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치 있는사람이라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사는 내내 그 애를 배척하고 흠잡아 오지 않았던가?
미안한 마음을 담아, 들어도 들어도 직접 발음하긴 어색한 이름을 불러 본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명치에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그건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유대감과 충족감이다.
내가 부른 이는 나다.
결국 나에겐 나만이 유효하고 고유하다. 나는 너무 나답게 아름다워서 모든 타인에게 해석에 대한 실패를 주었다. - P223

수치스러울 때는 수치에 솔직해지는 게 낫다. - P234

혹시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자존감까지 결여된 주제에 음침하게 관종요소를 갖춘 이들이 ADHD를 싫어한다면, 그건 놈들이 우릴 부러워한다는 뜻이다. 그런 이들과는 상종을 말고 멀리하자.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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