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과 가죽의 시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4
구병모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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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결말이라는 감상평들을 보고서야 뻔한 결말을 예측하지 못한 나는 아무래도 책을 읽는 동안 안과 같은 의식의 흐름을 지나왔나 보다.
불멸의 안이 후회하는 지난 (공방 제자 시인의 어머니, 아주 오래전 가죽 공장에서 함께 일하다 연을 맺고, 그 인연의 끝이 불행할 것이라 떠나버렸던) 사랑을 재연하는 미아를 탐탁지 않아하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면서 자신의 이별을 제대로 마주할 용기를 얻고 미아를 지지해주는 결말.
작가의 필력에 통속적이고 교훈적인 결말을 예상치 못하고 재밌게 봤으니, 아무렴 즐거웠다. 같은 내용도 어떻게 쓰냐가 작품의 질을 좌우하는 거 아닌가.

장인과 기술자는 경력과 노하우 상관없이 대체로 동일 강도의 노동을 하지 만 이 부분만은 확실하게 다르다는 안의 견해에 동의한 소수의 수강생이 지금의 교실에 등록하고 있다. - P27

1년 내내 혹서와 혹한이 반씩 지분을 차지하는 극단적인 기 후는 사람을 닮았다. 백 아니면 흑. 나 아니면 너. 우리 아니면 그들. ‘아니면‘의 자리에 ‘과나 ‘와‘가 들어가는 일은 흔치 않다. 간혹 짝지어서 불리는 예외도 있는데 죽음과 삶을 가리킬 때. 죽음과 같 은 삶. 삶이자 죽음. 생명이 거한 곳에 어김없이 절 반의 지분을 차지한, 삶과 죽음. - P12

이미 어머니를 위한 홀컷 구두를 통해 고양감을 가져본 데서 나오는 자존심 같은 것인데, 안은 가능한 한 그것을 지켜주는 쪽 으로 가고 싶다. - P29

자신들의 피와 살과 뼈와 근육을 가진 인간이 되어버린 그 어느 시절에 대 해, 무한의 껍질을 벗고 얻게 된 불완전한 유한에 대해, 이 상태를 진정한 유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 P36

그러던 중 안과 헤어져 다다른 이 나라에서는 어느 공장이나 버스 회사나 가릴 거 없이 산업 전반에서 싼값에 고용 했다 내칠 수 있는 젊은 여자의 수요가 많은 것 같 았는데, 가만 지켜보는 동안 자잘하게 힘쓰는 일, 큰일을 밑에서 떠받치는 일, 무언가를 생산하여 구체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 고되지만 그 중 요성을 인정받지 못하며 그늘에 가려지거나 지워 지는 일들의 상당 부분이 아주머니라고 불리는 여 인들에게 맡겨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주머니 는 철저히 멸시당하는 동시에 그 멸시의 원인 가 운데 하나로 간주되는 그악스러움이 생명력을 상 징하기도 하는, 아이러니하면서도 대상화된 존재 로, 그런 취급과 인식이 그리 새롭지는 않다. 사람 들이 통틀어 옛날이야기라고 부르는 전설이나 신 화, 민담에는 그런 이들 천지다. 저주와 천대와 박 해를 받지만 사실은 유능하거나 은밀한 축복을 받 은 이들이, 잘난 척하다 곤경에 빠진 친인척을 구 해내고 기운 집안의 부를 일구거나 마을을 구한 다. 미아는 형제들과 세상을 거닐 적에 그런 인간 들을 비롯하여 그런 인간들을 부리고 버리는 인간 들을 숱하게 만나보았으며, 그들에게서 삶의 대처 방식을......무엇보다 인간의 바닥을 배웠다. - P64

그러나 객원으로서는 변변히 두각을 드러내 지 못하고 나이 들어가면서 초조해지던 때, 부상 당한 고관절과 무릎 인대가 좀체 회복되지 않는 동안 기량은 확연히 떨어지기만 하여 귀국을 선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종목만 좀 바꿔가면서 아무 스포츠나 예술 분야에 갖다 얹 어도 유사 사례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보편 적인 패턴이다. 극소수만이 정상에 도달할 기회 와 권리를 획득하며 그 이하로는 빠르게 부정과 망각의 대상이 되는. - P72

물론 다른 이들의 불운을 열거해야만 자신의 행 운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아닙니다. - P75

키가 자라고 만질 수도 있고 저마다의 몸에 품었던 묘 향은 극히 일부만 남은 채 개인적 특성을 지닌 냄 새를 풍기며, 무엇보다 부를 수 있는 이름을 가지 고, 이름으로 존재를 규정함으로써 원래의 존재가 내포하고 있던 수만의 속성이 축약된다는 생각에 는 미처 이르지 못한 채, 실재와 환영이 뒤섞인 길 을 떠난다. 세상의 물결에 속해 흐를 수 있고 가끔 머물러야 할 곳에라면 고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반딧불이만 한 믿음을 갖고. 그렇게 언젠가 환영 이 실재에 압살당할 때까지. - P83

그러므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습 에서 최선의 목표는 자급자족 시대를 살아본 적 없 는 도시의 소비자들이 자신의 손으로 처음부터 끝 까지 무언가를 해보았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데 있다. - P118

"그래도 일단 갖고는 있으려고요. 생각해보면, 이제 아이가 없다고 해서 하던 작업을 중단한다는 게, 그건 좀 아닌 것 같았어요. 누구도 신지 않을 것,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더는 쓸데 없어진 것이라는 이유로, 아름답게 완성시키면 안 되나?" - P141

이후 시인의 어머니, 노부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여인을 본 뒤 안은 오래전 그녀를 보낸 자신의 선 택이 더욱 옳았다고 여긴다. 점유할 수도 당겨 쓸 수도 없는 시간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사라지는 인 간과 인연을 맺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고.
그럼에도 그 무의미를 선택한 미아에게 자신은 무 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 남아 있는 날 들의 목표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 P110

꽃받침에 아무리 단단히 매달리더라도 길어야 한두 주의 유예라니,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구체적으로는 살아 있는 것이 뿜어내는 모든 것들의 유효기간이 어쩌면 이리 짧은가. - P162

이 생에서 두 번을 만난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녀의 사라져가는 시간을, 닳아져가는 삶을 마지막까지 지켜보아주어야 한 다는. 물을 머금어본 적 없이 방치되어 말라비틀 어진 씨앗 같은 기억에, 이제라도 솜을 깔고 현재 를 분무해주어야 한다는. 그 행위가 비록 무용하 더라도, 씨앗을 간직해온 사람에게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예의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망각과 기억 사이에 난 미로 같은 길들을 따라 육신의 출구를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배응하는 일이 자신의 몫인 것만 같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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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0
이장욱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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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바다를 모텔 옥상에서 바라보는 연과 천은 숙박업소 주인과 손님으로 아무 상관없어 보이지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인연이다. 연의 남편 모수는 전직 공무원이었으나 내부 고발로 면직되었고, 그 문서를 받았던 천의 연인 한나의 엑스는 아나운서 실장으로, 모수의 제보에 관한 보도를 강행하려다 좌천되었다. 한나 역시 아나운서였으나, 방송에서 웃음이 터지는 사고로 실직하고, 연극 배우인 천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하나는 엑스의 증세가 심해졌다며 천을 떠났다. 모수는 지병으로 병원에서 사망했다.

작가가 의도하려던 ‘침잠’과는 다르게 나는 ‘다음 구름에서 쉬어가요’라는 문구를 보며 연과 천의 다음 미래가 평안하고 고요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격동의 인연을 지나간 그들에게 찾아올 휴식을 말이다.

임계점을 지나 한번 무 너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한꺼번에 급격하게 예 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무너진다. 인간의 몸도 인 간의 마음도 인간의 도시도 그럴 것이다. 마침내 인간이 없는 세상조차도. 그런 세상에는 ‘무너지 다‘라는 단어조차 없겠지만. - P47

어쨌든 왕은 선택해야 했어요. 삶으로 돌아가 서 삶을 긍정하고 진실의 일면만을 보고 살 것인 가, 죽음을 택해서 삶을 부정하고 진실의 온 모습을 볼 것인가. - P54

한나는 예술가가 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 각했고 그것은 진심이었다. ‘나는 예술가를 좋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 예술가는 인간과 세계 를 더 잘 이해할 것 같지만 실은 정반대니까. 그렇
•다는 것을 한나는 알고 있었다. 예술을 통해 인간 과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기는커녕 몰이해만이 깊 어질 수도 있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자신의 작업 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감각하지만, 그 와 동시에 자신의 자아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자각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 에 대해 말하고 자신을 주장하는 것에 익숙해진 다. 그들은 자신의 말과 작업에 쉽게 몰두한다. 몰 두하고 도취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듯이. 그런 몰 두와 도취 때문에 그들은 몰이해의 늪에 빠진다.
실은 예술가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나는 생각했 다. 정치가도 논객도 비슷하다. 토론을 하고 논쟁 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외치지만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하는 당사자들에게 토론이나 논 쟁은 뜻밖의 영향을 미친다. 주장하고 논쟁하고 선언하고 공격하고 설복시키려는 사람들은 논쟁 이나 싸움을 통해서 지혜로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입장과 논거의 포로가 된다. 끊임없는 확 증편향과 증오의 감정과 상대를 부정하는 논리의 개발에 골몰한다. 그들은 점점 진실에서 멀어진 다. 한나는 이런 것이 자신의 ‘입장‘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 P107

해안선 침식에 관한 뉴스를 전하면서 앵커는 해
안선은 원래 변해가는 것이고 그것이 정상이라는 기상청의 설명을 덧붙였다. 바다가 해안선을 잠식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니며 수온이 올라가면 오히려 새로운 어종이 나타나 어획량 이 늘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북방에서는 새 로운 농업과 산업이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 이 이어졌는데, 이 모든 멘트는 최근에 사장이 바 뀌면서 보도 기조가 바뀐 결과였다. 아나운서는 울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렇다는 것을 그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입이 씰룩거 리며 무언가 다른 말이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다. - P110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에서."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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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여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4
이서수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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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녀는 결국 자신의 몸을 생긴대로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녀도 과거 짝궁과 남몰래 같은 학교 남자애들의 외모를 품평하며 즐거워했던 일을 반성하지 않을 것이며, 비루한 자신의 몸만큼, 다른 이들의 비천한 몸을 사랑하는 방법도 모를 것이고, 쾌락은 몸을 도구화하는 비인간적인 짓이니 몸으로 느끼는 즐거움을 얻을 기회도 못 찾고, 시도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게 행복이라고 믿고 살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불필요한 간섭을 삼가하고 그 나름의 삶의 방식에 대한 지지와 응원으로 귀결될 것이니…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세상을 자신의 우 주로 바라보고, 자신의 시선으로 해석하기 마련입 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는 조물주와 같습니다. 모 태 신앙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절대적 존재에게 존 경심을 갖추길 요구하는 환경이 아니라면 아이는 자신이 절대적 존재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렇게 살다가도 유치원에 들어가거나 동네 아이 들과 어울리며 자신이 조물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긴 하지만요. 여하튼 저 역시 조물주의 시선으 로 모든 것을 보던 시기를 벗어나 어른들의 말을 알아듣는 나이가 되면서, 제가 다른 사람의 눈에 말라빠져 보인다는 걸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 P11

섹스가 의무가 아닌 소녀로 돌 아가서 저의 몸을 아무 곳에도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 P59

하지만 저는 섹스에 제 몸 을 사용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아이를 낳는 일에 도 제 몸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갖 는 일은 온전히 저의 선택과 열망으로 결정되어야 할 일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 P61

저는 결혼 자체엔 아무런 불만이 없지만, 정기 적인 섹스는 구독 거절한 신문이 우편함에 계속 꽂혀 있는 것처럼 아주 지겨운 일이라는 것을 고 백하고 말았습니다. 서른이 넘은 성인 여성이지만 섹스에 나의 몸을 사용하는 것이 어렵고 어색한 일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사실은 싫고 불쾌한 일이 었지만 순화해서 말했습니다. - P63

이혼한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니.
저는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들 중에서 유독 ‘몸‘이라는 단어에 귀가 커졌습니다. 어머니가 저 를 딸로 보지 않고 몸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여 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몸으로 보고 있는 것 같 았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이런 문자를 보낸 뒤 이혼을 감행했습니다.
-엄마, 나는 내 몸이 아니라 그냥 나야. 나는 내 몸으로 말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행하는 것으로 말해지는 존재야. - P65

저는 딸들을 역할을 수행해야 할 몸으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사회와 가정이 정해준 역할이라면요. 저는 뒤늦게 저의 행동을 후회했습니다.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그 아이가 이 잔혹한 사회를 혼자 헤쳐 나가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 P85

저는 크게 웃었습니다. 저는 영석 언니가 저와 참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니의 건 강한 태도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섹스를 싫어하는 제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건 아닙니다.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석 언 니가 웃는 저에게, 너 왜 웃니? 하고 묻더니 자기 도 크게 웃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 P95

그러나 저는 그 곳에서 섹스에 꽤 많은 관심이 있고, 그것을 당당 하게 드러낼 줄 아는 여성으로 행동하고 싶은 마 음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거짓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덜트 숍이라는 공간이 저에게 그런 태도를 요구하고 있었으니까요. 섹스를 주체적으 로 즐기는 여성이요.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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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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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엔 소신을 피력하는 듯했으나, 목표했던 분량이 벅찼는지 후반부로 갈수록 자기연민으로 불행에 동정심을 호소하고, 자기합리화로 불안을 무화 시킨다.
무엇보다 심기가 불편한 이유는 저 한심스러운 삶이 나의 것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 말이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신양처럼 품고 살아간다. 이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세상을 좀 살아보면 알게 된다. 아니, 살면 살수록 아니라는 것을 더 크게 느낀다고나 할까? 그래서 흔란스러운 거다. 우리의 가치관이 흔들리니까.

우리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 즉 ‘노력‘이 우리를 자주 배신하기 때문이다.

왜 노력이 우리를 배신하는지,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어도 난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괴로움을 줄이는 법은 안다. 분하지만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없을 수도, 노력한 것에 비해 큰 성과가 있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괴로움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

원래 인생은 공평하지 않아. 노력으로 다 된다는 말도 거짓말이지.
알겠어? 네 노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야.

나도 모르는 사이 어떤 ‘경주‘에 참가했었는데 지금은 그 경주를 기권한 기분이다. 경주에 참여하지 않으니 당연히 승리도 패배도 없다. 그런데 궁금한 건 그 경주가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경주의 타이들은 무엇이었을까?
‘누가 돈 더 많이 버나" 대회?
‘누가 먼저 내 집 장안하나‘ 대회?
‘누가 먼저 성공하나‘ 대회?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든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열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만두길 잘했다.

열정 은 여정을 기반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니 당연히 열정도 없다. 열정 콘텐츠로 반짝 의욕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약발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강요로 만들어진 열정은 대개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경우가 많다.

열정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지 절대 강요로 만들어질 수 없다. 열정은 사랑이다. 그 일을 사랑하는 것에서 열정은 시작된다. 물론 사랑하려고 노력하 다 보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열정이 생기는 일을 찾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돈은 많이 줄 수 없지만, 열정을 가지고 일할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아무래도 이 바닥은 경험이 자산이니까. 못 하겠다고? 넌 열정이 없는 거네."
‘열정 페이‘다. 돈을 안 주거나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실컷 부려먹으려는 속셈이다. 속이 반히 보이는 이야기지만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은 이런 말에 잘 속아 넘어간다. 아무래도 사랑은 눈을 멀게 만드니까. 더 좋아하는 쪽이 지는 게 사랑의 공식이니까.
세상은 우리에게 열정을 가지라고 강요하고 그 열정을 약점 잡아 이용하고 착취한다. 그래서 열정을 함무로 드러내는 건 위험하다. 이런 세상이라면 차라리 열정이 없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열정은 좋은 거다. 나를 위해 쓰기만 한다면 말이다.

좀 과격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노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실패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을 준비하지 못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우리는 과연 자녀들에게. 후배들에게 어떤 잔소리를 해줄 수 있을까?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하라는 잔소리에는 공감하지 못할 것이 다. 나부터도 와닿지 않으니 말이다.

청춘이 끝나서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기쁘기도 하다. 그 이유는 청춘의 열병을 심하게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불두명하고 어 둡게만 보이던 시절, 그때는 하고 싶은 것과 현실적인 문제 사이에서 갈팡질팡 방법도 모르고, 용기도 없고, 그저 삶에 끌려다니는 기분이 었다.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자주 화가 났다.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참 많이도 않았다. 몸은 늘 뜨거웠고 숨은 잘 쉬어지지 않는 시절이었 다. 지금은 그때처럼 뜨겁지는 않다. 일이 많이 내렸다.
다행히 열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그 시절에 했던 고민과 불안은 여전하다. 앞날은 늘 불투명하고 현실의 문제들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으며 여전히 답도 용기도 없다. 나이가 들어도 삶에 끌려다니는 기문은 여전하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인생은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뿐더려 내가 아무리 고민해서 무언가를 선택해도 그 선택이 무의미해지는 순간들이 있다는 사 실이었다. 마치 열심히 한 방향으로 노를 젓는데 커다란 파도가 올려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믿지만, 한날 파도에 휩쓸리는 힘없는 존재일지도 모든다.

우리는 대학 입시와 취직이라는 한 가지 길로 내몰렸다가 또다시 자영업이라는 한 가지 길로 내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지근한 다수를 공략하는 것보다 열광적인 소수를 공략하는 게 더 성공률이 높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자신이 대단한 사랑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커질 수목 괴로움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만든 환상 속의 나는 대단한 사람인데, 현실의 나는 초라하고 별 볼 일 없고 인정도 못 받으니 현실의 내 모습을 점점미워하게 되고 못마땅하여 보기 싫어진단다. 너무 보기 싫어지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일어난다.

더 많은 이야기를 안다는 건
더 많은 이해를 갖게 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 명언은 다 좋은데 이게 문제다. 꼭 누굴 이기고 싶어서 즐기는 건 아니다. 그냥 재미있게 살고 싶은 거다. 누굴 이기는 게 목적이 되는 순간 절대로 즐길 수 없을걸? 아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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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일 오늘의 젊은 작가 37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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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리물. 근데 이런 건 넷플릭스에서 킬링타임용으로 보고 싶지 책으로 보고 싶지는 않더라

조 원장은 인간관계를 끈끈하게 하는 것은 정이나 신의가 아니라 실리와 필요라는 것을 배웠다. 찰리 킴은 그런 쪽에 몹시 영리했다. 그는 신중하게 사람을 들었으며 철저하게 숫자와 문서로 관계를 유지하고 정리했다. - P197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 기대 볼 수도 있겠죠. 사람들은 대체로 내게 다정해요. 내가 너무너무 불행하니까. 나를 동정하면서 아직 자기들이 잃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안도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고, 결국엔 다정했던 사람들도 내 슬픔에 진절머리를 내게 되죠." - P275

가족의 지긋지긋 한 점이 이런 것일 거다. 외면할수록 더 곪는 상처 같은 것.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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