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0
이장욱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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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바다를 모텔 옥상에서 바라보는 연과 천은 숙박업소 주인과 손님으로 아무 상관없어 보이지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인연이다. 연의 남편 모수는 전직 공무원이었으나 내부 고발로 면직되었고, 그 문서를 받았던 천의 연인 한나의 엑스는 아나운서 실장으로, 모수의 제보에 관한 보도를 강행하려다 좌천되었다. 한나 역시 아나운서였으나, 방송에서 웃음이 터지는 사고로 실직하고, 연극 배우인 천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하나는 엑스의 증세가 심해졌다며 천을 떠났다. 모수는 지병으로 병원에서 사망했다.

작가가 의도하려던 ‘침잠’과는 다르게 나는 ‘다음 구름에서 쉬어가요’라는 문구를 보며 연과 천의 다음 미래가 평안하고 고요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격동의 인연을 지나간 그들에게 찾아올 휴식을 말이다.

임계점을 지나 한번 무 너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한꺼번에 급격하게 예 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무너진다. 인간의 몸도 인 간의 마음도 인간의 도시도 그럴 것이다. 마침내 인간이 없는 세상조차도. 그런 세상에는 ‘무너지 다‘라는 단어조차 없겠지만. - P47

어쨌든 왕은 선택해야 했어요. 삶으로 돌아가 서 삶을 긍정하고 진실의 일면만을 보고 살 것인 가, 죽음을 택해서 삶을 부정하고 진실의 온 모습을 볼 것인가. - P54

한나는 예술가가 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 각했고 그것은 진심이었다. ‘나는 예술가를 좋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 예술가는 인간과 세계 를 더 잘 이해할 것 같지만 실은 정반대니까. 그렇
•다는 것을 한나는 알고 있었다. 예술을 통해 인간 과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기는커녕 몰이해만이 깊 어질 수도 있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자신의 작업 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감각하지만, 그 와 동시에 자신의 자아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자각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 에 대해 말하고 자신을 주장하는 것에 익숙해진 다. 그들은 자신의 말과 작업에 쉽게 몰두한다. 몰 두하고 도취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듯이. 그런 몰 두와 도취 때문에 그들은 몰이해의 늪에 빠진다.
실은 예술가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나는 생각했 다. 정치가도 논객도 비슷하다. 토론을 하고 논쟁 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외치지만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하는 당사자들에게 토론이나 논 쟁은 뜻밖의 영향을 미친다. 주장하고 논쟁하고 선언하고 공격하고 설복시키려는 사람들은 논쟁 이나 싸움을 통해서 지혜로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입장과 논거의 포로가 된다. 끊임없는 확 증편향과 증오의 감정과 상대를 부정하는 논리의 개발에 골몰한다. 그들은 점점 진실에서 멀어진 다. 한나는 이런 것이 자신의 ‘입장‘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 P107

해안선 침식에 관한 뉴스를 전하면서 앵커는 해
안선은 원래 변해가는 것이고 그것이 정상이라는 기상청의 설명을 덧붙였다. 바다가 해안선을 잠식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니며 수온이 올라가면 오히려 새로운 어종이 나타나 어획량 이 늘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북방에서는 새 로운 농업과 산업이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 이 이어졌는데, 이 모든 멘트는 최근에 사장이 바 뀌면서 보도 기조가 바뀐 결과였다. 아나운서는 울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렇다는 것을 그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입이 씰룩거 리며 무언가 다른 말이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다. - P110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에서."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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