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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메이콤에서 진 루이즈(스카웃)라는 소녀의 시각으로 미국 남부의 흑인 인권문제와 집단 내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소수자(희생자)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진 루이즈와 오빠 젬(제레미 애티커스 핀치)은 여름마다 레이철 아주머니의 집에 방문하는 딜(찰스 베이커 해리스)과 함께 래들리 집을 가지고 놀이를 즐긴다. 메이콤에서는 래들리 집안의 둘째 아서(부) 래들리가 탈선을 일삼다가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로 집안에 갇혀 살고, 부 래들리가 래들리부인을 살해했다는 등의 괴담이 마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천진한 세 아이들은 래들리의 집을 귀신의 집처럼 여기며 서로의 담력을 경쟁 삼아 래들리 집을 서성거리고, 부 래들리의 생김새를 괴물처럼 묘사하기도 하며, 래들리 집안에 관한 소문을 연극으로 만들어 놀기도 한다.
‘래들리 집안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수 있었는데도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지냈는데, 그건 메이콤에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27p.)
사실 집단주의 문화는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습성이 아니다. 과거엔 어느 문명에서나 사람들은 생존에 유리한 집단생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행동이 유전되어 이제는 단체생활이라는 말로 순화되어 이제는 생존과 관계없이 개인에게 사회 이익을 위하여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단지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가 우리보다 아주 약간 빨랐을 뿐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습성을 아이들부터 스테퍼니 크로포드 같은 어른들의 행동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모디 아주머니 같은 인물은 스카웃에게 알지 못하는 일을 예단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하며, 아버지 애티커스는 아이들의 짖궂은 장난에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한테 일어난 일은 전혀 알 수 없어.’(94p.)-모디
하지만 아이들의 래들리에 대한 호기심은 끊이지 않아 낚싯대에 쪽지를 걸어 래들리 집에 전달하는 등 계속해서 장난을 친다. 그러다 늦은 밤 몰래 래들리 집에 침입을 하다 젬이 바지를 래들리의 집에 두고 도망쳐 오는 일도 생기지만, 바지를 다시 찾으러 갔을 땐 구멍난 젬의 바지가 수선되어 잃어버렸던 자리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한다. 래들리집 근처의 나무 옹이구멍에는 껌이나 동전, 털실 공, 비누 조각 등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해 아이들이 가져오면서 부 래들리와 아이들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듯하지만, 곧 부 래들리의 형인 네이선이 옹이구멍을 시멘트로 막아버린다.
소설의 국면은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흑인인권 문제에 대한 화두로 넘어간다.
애티커스 가족은 핀치스 랜딩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갔다 스카웃이 사촌 프랜시스가 애티커스를 깜둥이 애인이라고 놀려대자 싸움이 벌어진다. 애티커스는 흑인 톰 로빈슨이 유얼집안 사람들에게 쓰인 누명을 풀기 위한 변호를 맡고 있어 마을 백인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애티커스의 동생 알렉산드라는 핀치스 랜딩에서 애티커스의 아이들을 돌본다는 명목으로 메이콤으로 온다. 알렉산드라는 애티커스집안과 함께해온 흑인 가사도우미 캘퍼니아가 백인과 흑인 사이의 선을 지키지 않는다며 배제하려 한다. 애티커스는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맡아 흑인사회에서는 영웅처럼 받들어지고 있었고, 캘퍼니아는 그런 마을 분위기를 고려해 젬과 스카웃을 흑인교회에 데려간다. 젬과 스카웃은 그곳에서 자신들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만나지만 불쾌해하는 이들도 만난다. 알렉산드라는 캘퍼니아의 행동을 맹비난하지만 애티커스는 상관하지 않고 알렉산드리아에게 캘퍼니아를 가족처럼 받아들이길 권하며, 스카웃은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반발심만 높아진다.
톰 로빈슨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유얼 집안은 가난하여 쓰레기장 근처에 살고, 이상한 사람이라 낙인찍혀 백인사회에서 배제당한 사람들이다. 메이엘라 유얼은 톰 로빈슨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집안으로 유인했고, 그녀는 성적인 욕구를 이기지 못해 톰을 덮쳤다. 이 상황을 목격한 메이엘라의 아버지 유얼이 분노하여 메이엘라를 구타하고 톰은 그 상황에서 도망쳐 나온다. 유얼의 분노는 톰 로빈슨에게 번져나갔고, 그는 톰이 메이엘라를 폭행하고 강간했다며 허위로 고발하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왼손잡이에게 구타당한 메이엘라의 상흔과 진술로 오른손 잡이인 톰이 아니라 왼손잡이 유얼에게 구타당한 것이 밝혀지고, 톰은 메이엘라가 자신을 덮치자 그런 상황이 자신에게 화가 될 것이 두려워 저항했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메이엘라도 끝까지 자신이 피해자라고 우기고, 배심원들은 흑인차별이 심한 남부사회의 구성원답게 톰 로빈슨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유얼은 재판에서 이겼지만, 애티커스가 자신에게 가한 심문이 모욕적이라고 생각하고 앙심을 품게 되었으며, 톰 로빈슨은 감옥에서 탈영을 시도하다 총에 맞아 숨진다. 유얼은 재판에서 승리했지만, 유얼의 승리는 백인들 특권의 승리였을 뿐, 유얼에게는 패배보다 더한 모욕이었다.
‘자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했지만, 고통을 치르고 얻은 대가라는 것이 고작...... 그래, 좋아, 이 깜둥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지, 하지만 넌 다시 쓰레기장으로 돌아가, 이런 식이었거든.’(461p.)
결국 유얼은 애티커스에 대한 복수로 핼러윈 축제로 연극을 마치고 돌아오는 스카웃과 젬을 살해하려고 덮치지만 스카웃은 단단한 연극 복장 덕에 살아남고 유얼과 몸싸움을 벌이던 젬도 부 래들리에 의해 구출된다. 그리고 유얼은 끝내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된다. 애티커스는 젬이 정당방위로 유얼을 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보안관 헥 테이트는 유얼이 놓친 칼에 자신이 넘어져 칼에 질려 즉사한 것이라고 애티커스를 설득(?)한다. 이에 대한 진실공방은 벌어지지 않고, 애티커스는 헥 테이트의 의견을 순수히 받아들이다. 젬은 그날의 사고로 장애가 생겼다.
고전은 시대의 분위기에 맞게 새롭게 읽혀야 한다. 당시의 도덕으로 선과 악을 판단해 독자에게 교훈을 주려고 했겠지만, 지금 시대에 이 소설은 조금 의아한 부분들이 많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여성에 대한 관점이 그의 낙천적인 삶의 자세로 용서될 수 없는 것처럼...
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명확하게 선과 악을 구분하여 의도를 전달하려 한 것 같지만, 지금 현재의 입장에서 단지 스카웃의 입장에서만 비친 유얼을 정말 악한 인물로만 평가해야 하는지 의문이다.(사실 그것을 판단하기엔 그의 서사는 너무 단편적이다)
나는 이 작품의 저변에 깔린 의식이 ‘흑인만도 못한 백인 놈을 타도하자’로 보인다. 그런 전제를 발판삼아 흑인인권을 옹호하는 권선징악적 교훈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불편하다. 래들리 집안은 유얼 집안 사람들처럼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메이콤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왔지만, 마침내 백인사회에 선(혹은 이익)을 제공하고 메이콤의 주민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유얼은 가난하고 노력도 하지 않는 이유로 죽음에 대한 진실공방마저 가릴 필요가 없는 ‘쓰레기’ 취급을 받고 죽음에 대한 진실공방도 이뤄지지 않은 채 사라진다.
또 메이콤의 백인들의(혹은 백인 독자들의) 흑인에 대한 인식이 ‘자기들만도 못한 위치에서 배려를 받고, 선을 베풀어야하는 대상’이었는지 ‘동등한 위치에서 동등한 존엄을 가진 인격’이었는지도 묻고 싶다.
그리고 아래 스카웃이 소설에서 지적한 위선을 유얼처럼 아직 백인 사회에 품어줄 수 있는 마땅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다른 백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게 말이지. 오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그렇게 대하는 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말씀하셨거든. 오빠, 누구라도 박해하는 건 옳지 않잖아? 내 말은, 심지어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 나쁜 생각을 갖는 것조차 말이야. 안그래?
......
그날 밤 게이츠 선생님이 법정에서 나오고 계셨거든. 선생님이 스테퍼니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 오빠, 히틀러를 그토록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455p.)
아빠가 나를 내려다보실 때면 아빠의 얼굴에는 언제나 어떤 기대감을 갖게 하는 표정이 나타났습니다. 「너 타협이란게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아빠가 물으셨습니다. 「법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것 말이에요?」「아니, 서로 양보해 합의에 이르는 것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 네가 학교에 가기로 양보한다면, 우리는 전처럼늘 매일 밤마다 계속 글을 읽을 거야. 그러면 되는 거지?」「네, 아빠!」「통상적인 절차 없이 이것을 인준한 것으로 생각하는 거다.」 - P67
세상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죽은 뒤의 세계를 지나치게 걱정하느라고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야. 길거리를 한번 보려무나, 그 결과를 보게 될 테니까. - P93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 줘야 해.」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 P200
「스카웃, 깜둥이 애인이란 아무 뜻도 없는 그런 말들 중 하나란다. 말하자면 코딱지처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무식하고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어느 누가 자기보다 흑인들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할 때 쓰는 말이지. 누군가를 욕하는점잖지 못하고 상스러운 용어가 필요할 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어 버렸어.」 「아빠가 정말로 깜둥이 애인인 건 아니죠?」 「정말로 흑인 애인이란다. 난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래서 때로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지………. 누가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말로 불린다 해서 모욕이되는 건 절대 아니야. 욕설은 그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인간인가를 보여 줄 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해. 그러니까 듀보스 할머니가 뭐라 하시든 실망할 필요 없어. 할머니는 할머니 일만으로도 고통이 많으시단다.」 - P207
고모는 <무엇이 집안에 가장좋은 일인지 단언하는 버릇이 있었고, 고모가 우리 집에 함께 살러 오신 것도 그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P242
고모는 어떤 일도 지루해하는 법이 전혀없었으며, 아무리 작은 기회라도 주어지기만 하면 왕비다운특권을 행사하려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리하고 조언하고 충고하고 경고했습니다. - P243
「그런데 말이야, 딜, 결국 그는 흑인이잖아.」 「난 그런 거 손톱만큼도 상관 안 해. 그런 식으로 대하는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 P368
그 애한테 잘못된 것은 없어. 내 생각으로는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야. 그냥 사람들 말이지. - P420
「게이츠 선생님은 좋은 분이시지, 안 그래?」 「물론이지. 그 선생님 반에 있을 때 좋았어.」 「히틀러를 엄청 싫어하시던데…….」 「그게 뭐 잘못이야?」 「그게 말이지. 오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그렇게 대하는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말씀하셨거든. 오빠, 누구라도 박해하는 건 옳지 않잖아? 내 말은, 심지어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나쁜 생각을 갖는 것조차 말이야. 안그래?」 「스카웃, 물론 옳지 않고말고. 그런데 왜 그렇게 안달을 해?」 「그게 말이야. 그날 밤 게이츠 선생님이 법정에서 나오고계셨거든 ㅡ 우리보다 앞서서 계단을 내려가셨기 때문에 오빠는 선생님을 볼 수 없었지ㅡ선생님이 스테퍼니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 오빠, 히틀러를 그토록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 갑자기 오빠가 버럭 화를 냈습니다. 침대에서 뛰어내리더니 내 옷깃을 잡고 흔들어댔습니다. 「두 번 다시는 그 법정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알아듣겠어? 알아들었냔 말이야! 다시는 나한테 한 마디도 입 뻥긋하지마. 알겠어? 자, 그럼 나가 봐!」 -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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