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ㅣ 메이트북스 클래식 32
호메로스 지음, 정영훈 엮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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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는 오디세우스와 함께 지중해의 뜨거운 열풍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가 거의 3,000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왜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한 것일까?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은 인간의 마음은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내재적 불안을 벗어나 본적이 없다. 불확실한 미래, 현실의 고민, 타인의 시선이 언제나 자신을 억누르고 가로막는다. 오히려 자신을 보호해줄 신의 구원이 훨씬 가깝고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호메로스는 제우스와 아테나를 인간세계로 데려와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로 현인하며 삶의 당위성과 정의의 기준을 내재화한다. 오디세우스는 영웅의 모험담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내면적 갈등도 아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처절한 논증에 가깝다.

 

오디세우스가 존재하지 않는 이타카, 수많은 구혼자들이 무위도식하며 텔레마코스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 텔레마코스는 태어나서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트로이로 떠난 병사들이 속속 돌아왔지만 오디세우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심지어 생사도 확인되지 않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페넬로페를 차지하기 위한 구혼자들의 끝없는 구걸행위가 텔레마코스를 괴롭혔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도 치욕스러웠다. 어렸고 무시당했다. 수세기동안 그리스인들을 괴롭혔던 신들은 마음이 동했다. 제우스는 아테나를 부르며 새판을 짜기 시작했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 친구로 변신해 텔레마코스에 접근했다. 필로스의 네스토로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에게 가서 오디세우스의 소식을 찾아 나서라고 조언한다. 아테나의 말에 용기를 얻은 텔레마코스는 포도주와 음식을 싣고 필로스로 향한다.

 

그리스에선 낯선 손님을 보호하고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환대(xenia)를 신성의 의무로 여겼다. 나그네와 손님은 제우스의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필로스에 도착한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영웅담을 듣지만 생사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수많은 국가를 전전하며 재산을 모았던 메넬라오스가 오디세우스를 회상하며 프로테우스의 이야기를 꺼낸다. 프로테우스는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저주에 갇혀 님프 칼립소의 집에 붙잡혀 있다고 언급한다. 한편 이타카에 남아있던 탐욕자들은 텔레마코스가 아버지 소식을 듣기위해 필로스로 떠난 것을 알게 되었고 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늦게 아들이 떠난 소식을 전해들은 페놀로페는 이제 아들까지 잃게 됐다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제우스의 명을 받은 헤르메스는 빛나는 신을 신고 칼립소에 날아간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명을 전하며 오디세우스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라 명한다. 아름다운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불멸을 제시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바닷가에 앉아 고향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제우스의 명령은 즉각적으로 실행되었다.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도움으로 뗏목을 만들어 넘치는 파도위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포세이돈은 여전히 오디세우스를 용서하지 않았고 그를 오랫동안 바다의 고통에 묶어놓았다. 그의 고난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신의 질투를 받는 인간이었다. 뛰어난 지략과 용모, 위기를 헤치는 용기, 신은 오디세우스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형벌과 고통이라는 가혹한 운명을 거두지 않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가 도착한 곳은 파이아케스라는 아름다운 궁전이 있는 섬이었다.

 

아테나의 도움으로 파이아케스에 도착한 오디세우스, 그는 왕과 왕비의 호의에 힘입어 몸을 추스르고 그간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이야기한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마녀 키르테, 죽은 자들의 세계, 쎄이렌과 스킬라,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짓눌렀던 시간을 회상하며 크나큰 상실과 절망에 빠진다. 같이 떠났던 동료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의 주변엔 낯선 문명과 기억하기 싫은 수많은 고통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고통이 심해질수록 그의 내면 안에선 더욱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고향을,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만나야 했다. 또한 무너진 자신의 영예와 영광을 복구해야했다. 그가 고향을 떠난 지 스무 해, 이타카에 도착했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했을까? 인생은 알 수 없는 변수로 가득하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불확실한 상황을 예측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강구해왔다. 천문, 점성술, 신화, 종교, 그리고 다양한 문명의 진화까지, 삶의 반경이 확장될수록 불확실성은 커져갔다. 십년간의 전쟁, 끝없는 삶의 고통, 호메로스는 이 모든 것을 신들의 시기와 질투로 묘사한다. 개인의 인생을 신들이 좌우하고 있다면 그들에 충성을 바치면 나쁜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면 신에 불충했기 때문이다. 제우스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아 동료들이 죽임을 당했고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 절멸했다. 하지만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위해 텔레마코스를 설득하고 오디세우스의 마음을 위로했다. 인간을 형상화한 신, 신에 위탁한 인간의 삶, 어쩌면 인간은 가장 나약한 종에 불과할지 모른다. 대다수 오디세우스의 평론은 방황은 할 수 있지만 목적지는 잃지마라는 내용으로 결론을 맺는다. 하지만 방황하는 것이 인생이다. 때론 죽음보다 더한 고통도 만날 수 있다. 자신이 태어난 곳, 자신이 묻혀야 하는 곳,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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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ㅣ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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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도 어렵지만 유지하기는 더욱 어렵다. 통치기술은 권력의 핵심이다. 어떤 방향과 주제를 선정하느냐에 권력의 향방이 갈라진다. 부여된 권력을 더욱 강화할 수도 있으나 사소한 일이 누적되어 상실되는 패배를 경험하기도 한다. 권력은 무상하다. 형태도 없지만 어떤 감정보다 공허하고 무기력을 경험한다. 그런데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권력투쟁은 본능에 가깝다. 누군가의 의지가 아닌 경쟁구도의 생존전략이다. 본능을 벗어난 권력은 특별한 메커니즘을 요구한다. 인간의 역사는 권력쟁탈과 찬탈을 둘러싼 내분과 전쟁의 시간이었다. 반면에 뛰어난 통치술을 앞세워 덕을 밝힌 성군도 존재했다. 중국사는 요, 순, 우 시대의 태평성대를 기억한다.

 

덕을 밝히는 통치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이루기 위한 통치의 조건은 외부적 변수보다 백성과의 관계에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책임감을 요구한다.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 열여섯 자는 요 임금으로 순이 받고 순이 다시 우에게 건넨 것이다. 서경의 핵심주제이자 통치자의 심법이라 불리며 동아시아 통치론의 핵심으로 인정받고 있다. 열여섯 글자 중 精(정)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쌀미와 푸를청이 합쳐진 정은, 쭉정이를 골라내어 맑고 깨끗한 알곡만 남기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을 수양하는 과정이다. 도심은 마음의 근원이다. 민심은 사사로우나 도심은 본성의 바름이다. 도심이 어지러우면 나라가 혼란스럽고 부패가 시작된다. 도심은 왕의 얼굴이자, 통치의 근간이다. 저자는 연산군과 정조의 도심을 비교하며 임금의 한결같음을 강조한다. 도심으로 통치한 정조는 만년에 스스로를 만 갈래 시내에 비친 밝은 달의 주인이라 칭했다.

 

불긍세행, 종루대덕(不矜細行 終累大德), 작은 행동을 삼가지 않으면 결국 큰 덕을 무너뜨린다. 서경 여오의 말이다. 긍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태도다. 즉, 긴장을 풀지 말고 방심하지 말라는 의미다. 큰 덕은 작은 일상이 쌓여 이루어진다. 권력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지만 결국 작은 일 하나에 무너지는 정치인들을 일컫는다. 여오의 다음 문장은 더욱 심오하다. 위산구인, 공휴일궤(爲山九仞 功虧一簣), 산을 아홉 길이나 쌓았는데 마지막 삼태기에 무너진다. 한 길 쌓지 않아 무너진다면 아홉 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지막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이 역시 방심하지 말라는 긍의 의미를 포함한다. 권력자는 큰일에 치중한다. 하지만 모든 일은 작은 일부터 시작된다. 작은 일은 무엇인가? 서경은 민유방본을 통해 백성은 귀하고 임금은 가볍다고 말한다. 또한 내가 만 백성 위에 서 있음이, 썩은 새끼줄로 여섯 마리 말을 모는 듯 두렵다고 기록되어있다. 작은 일은 백성을 돌보는 것이며 큰일은 백성을 헤아리는 것이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는 민귀군경(民貴君輕)은 통치의 핵심덕목이다.

 

정치는 구조적 모순과 개인의 욕망을 내재하고 있다. 국민을 위한다지만 개인의 야욕을 배제할 수 없다. 반면에 대부분 외부의 적보다 스스로의 욕심 때문에 무너진다. 흙을 만지고 수로를 고쳤던 우 임금의 굳은살은 먹줄을 따르면 곧아지고, 간언을 따르면 성군이 된다는 부열의 조언과 일맥 한다. 흙으로 담을 쌓던 부열은 하루아침에 재상이 되었다. 권력은 통치하는 자리가 아니다. 듣고 경청하는 자리에 가깝다. 부열은 묻기를 좋아하면 여유로워지고, 곧음을 밖에서 구하는 겸손함을 가지면 성군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가르침은 배움의 절반이기에 남을 가르치는 일이 자신을 가르치는 일이라 강조했다. 높이 오를수록 곧은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아랫사람 역시 미움을 살까 두려워 먹줄을 대지 못한다. 제 굽음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대의 굽음을 곧게 그어 줄 먹줄 하나가 있는가? 먹줄은 권력이 가장 싫어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본 책은 채침의 서집전을 기본텍스트로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경을 독자적으로 해석한 번역서다. 춘하추동 사계절을 바탕으로 리더의 조건과 실천, 유산과 완성을 담았다. 어떤 한 부분도 허투루 넘길 수 없을 정도의 빼어난 문장과 해석이 돋보이며 고대사는 물론 현대 정치구조를 파악하는데도 뛰어난 기지를 발휘한다. 무엇보다 정치의 본질이 무엇이고 어떻게 통치해야하는지, 통치기술에 질문과 해법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서경은 민유방본을 근간으로 한 통치기술을 서술하고 있다. 중국은 수천 년동안 권력찬탈을 위한 전쟁으로 시달려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목적은 백성의 평화와 안정이었다. 하지만 권력에 의해 백성이 사라져갔다. 시대는 변하였지만 권력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현실정치는 더욱 교묘하게 국민을 호도하고 괴롭힌다. 정치 때문에 피곤하고 혼란스럽다. 누가 정치인들에 호감을 갖고 신뢰를 주겠는가? 서경은 정치 본래의 모습을 추구한다. 리더의 조건과 태도를 이야기하며 권력을 대하는 자세를 좆는다. 고전은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단지,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반복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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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 - 교육이 답이라는 거짓말
롭 헨더슨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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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민이 200명이 내외인 시절, 원시인류는 주변의 모든 것을 알아야했고 배운 것을 후대에 계승했다. 능력의 차이는 특별하지 않았고 오히려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생존이 보장되었고 평화가 유지되었다. 아이들은 평등했다. 부모의 위치와 지위가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았다. 또한 공동육아를 통해 미래의 자원을 보호했다. 각자 스스로의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갔다. 국가가 탄생했다. 공동체가 가족으로 분화되며 계층, 지위가 확산되었다. 수십만 년 인류 공동체가 단위로 해체되는 순간, 하층으로 구분된 아이들은 가장 큰 손실과 피해를 맞게 된다. 안타까운 사실은 누구도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상류와 하류,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비슷한 외모와 학벌, 직업이 다르지 않다면 구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둘은 보는 순간 확연이 구분된다. 품성과 태도가 외적인 변수라면 부모의 위치와 지위는 내적변수다. 특히 미국사회에서의 부모의 위치는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하의 뚜렷한 구분을 증명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희망이 아니다. 상류와 하류층에서 바라본 이미지는 확연히 다르다. 상류층은 1%를 유지하기 위해 아메리칸 드림을 상상하지만 하류층은 생존을 위해 하루를 버틴다. 시작부터가 다르다. 환경이 같지 않다. 그런데 세상의 시선은 다르지 않다. 왜, 라는 논제는 상류층의 무지와 하류층의 무관심으로부터 비롯된다. 둘은 같은 세상을 살지만 전혀 다른 생각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태어나면서 불평등이 시작된다. 덕분에 세상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반면에 사회는 가파르게 양극화되었다.

 

문제는 상류층이 일으키지만 피해는 모든 이들이 감당해야한다. 우수한 대학교를 나와 공공기관과 정부요직에 앉는 이들은 대부분 상류층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부여한 당위적 생각이 국민에게 이롭다는 맹목적인 사고에 집착한다. 대부분의 정책이 성공보다 실패를 반복하며 실질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소수자들의 정책은 놀라울 정도로 집요하게 하류층을 파고든다. 상류층은 자신들이 특별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본인들은 거의 아무런 비용 없이 스스로에게 지위를 부여하거나 부여받는 특별한 지위를 누린다. 특히 미국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은 거친 말을 통해 스스로가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반면에 하류계급의 의견과 아이디어는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로버트 킴 핸더슨, 한국인 어머니와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를 통해 태어났다.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저자는 책의 대부분을 통해 그가 느꼈던 위탁가정의 한계와 가족의 부재, 교육환경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음에도 ‘문제가 있다’는 설정을 만들고 대부분의 위탁아를 문제아로 취급하는 사회복지시스템과 장부정책의 미숙함을 토로한다. 아이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상처를 감추고 내면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환경은 또 다른 변수다. 하층계급의 대부분은 마약에 노출되어 있으며 음주와 폭력을 통해 그들의 고통을 희석한다. 문제는 축적되고 결국 뜻하지 않는 사고가 반복된다. 저자는 10대를 거치면서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 어떻게 무너지고 사라지는지, 누구보다 뚜렷하게 자각했다. 누구도 그들에게 세상의 다른 모습을 이야기하거나 보여주지 않았다.

 

로버트를 변화시킨 건, 아이러니하게도 군대였다. 군대는 로버트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질서가 잡혔고 자신에 갇혔던 생각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았던 로버트는 스스로의 인생을 바로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던 수많은 인간적 갈등과 삶의 조건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그가 가야할 최선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예일대를 거쳐 케임브리지 심리학 박사를 취득한다. 그에게 자수성가란 말이 어울릴까? 세간의 평가보다 세상을 직시하는 그만의 생각과 신념이 로버트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로버트는 사치신념을 꺼낸다. 대학캠퍼스는 낭만이 가득한 곳이 아니었다. 미래의 계급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대학과정을 통해 만난 부유한 젊은이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부모가 존재했다. 부모는 보호막이자 지위를 유지해줄 든든한 디딤돌이었다. 부모의 부재를 뼈저리게 체험했던 로버트의 시각은 기존의 생각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20%가 80%의 이익을 차지하는 팔레토의 법칙은 1%가 99%를 착취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뛰어난 지식과 품성,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면 세상을 비관하고 자신에 가혹한 이들도 쉽게 변하기 어렵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공정하다고 말하는 이들의 속내가 의심스럽다. 정부 또한 불공정한 시스템을 인정하고 활용하길 원한다. 결국 세상은 자신의 의지와 주변의 도움으로 희망을 건질 수 있다. 로버트는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면서 상반된 생각에 젖는다. 자신이 힘들지 않았다면, 지금의 성공이 가능했을까? 반면에 부모가 자신을 케어하고 최선의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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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리더십 - 심리적 안전감을 넘어 책임 안전감을 만드는 ‘AI 시대 리더’의 조건
김유리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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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디지털화 되어가는데 마음은 아날로그에 묶여있다. 아직은 AI가 개인에 직접적으로 침투하지 않았지만 AI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안이 엄습한다. 기업과 정부는 AI가 미래를 책임질 것이라 확신한다. 하이퍼스케일러라 불리는 빅테크기업들 역시 AI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AI시대는 돌이킬 수 없다. AI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산업구조를 개편할 것이다. 산업혁명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인간성에 대한 본질이 재확인되었고 기업은 노동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하게 된다. AI는 산업혁명과 다를까? 아니면 더욱 가혹하게 삶의 본질을 무너뜨릴까?

 

기업은 AI를 가장 선두에서 맞이하고 있다. AI를 대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보조수단으로서의 기능은 차이가 없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최적 안을 추천한다. 실시간으로 크레임를 처리하고 응답지연, 처리속도를 예측한다. 기존인원이 며칠 걸려 하는 일을 단 몇십 분만에 추적하여 통합하고 분석하여 보고한다. 대부분 기존 리더의 일과 겹친다. AI와 함께 리더의 역할도 사라질까? 팀원은 AI의 보고를 신뢰하고 AI의 결정을 따를 수 있을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만남이 부드럽지 않다. 코로나 이후 기업문화는 빠르게 디지털화되었다. AI는 이를 더욱 확산시키며 조직의 문화를 새롭게 형성할 것이다. 리더의 역할도 예외가 아니다. 리더의 존재방식이 바뀌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카톡이 팀원의 사기를 올려주지 않는다. 잦은 보고가 업무의 효율성을 증가시키지 않는다. 기술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빠른 효과를 기대하나 심리적 저항성이 강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누구나 편리하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무속도가 빨라진 대신 불안이 가중되고 마음이 흔들린다. AI가 리더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일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팀원의 마음을 읽고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효용성이 증가한다. AI시대, 리더의 역할은 무엇일까? 속도가 빠를수록 혼란스러운 마음을 잡아줄 리더의 존재가 요구된다.

 

회의가 시작되면 대부분 리더의 눈치를 살핀다. 팀원은 리더의 표정, 말의 내용, 시선, 태도를 보며 신호를 읽는다. 그날의 일정이 결정된다. 리더의 변화에 태도를 확정짓는 것이다. AI는 합리적인 결과를 제공한다. 또한 최적의 계산을 통해 최대효율을 측정한다. 비용대비효율, 시간대비 성과, 리스크의 최소화, 리더는 AI의 판단을 인간의 언어로 해석한다. 반면에 팀원은 자신의 존재가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듣고 싶어 한다. 리더는 데이터 전달자가 아닌 의미역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하며 정답이 어떤 의미인지 해석해 주여야 한다. 즉, 정보의 명확성과 정서적 존재감을 확인하고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리더십은 무엇을 결정하는 가가 아닌 어떤 감각으로 존재하는가의 문제다.


심리적 안전감이 기존 리더십의 조건이었다면 AI시대 리더의 조건은 존재감이다. 존재감은 말이 아닌 태도의 신호로 전달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책임의 위치에 서있는가를 확인할 때 책임 안전감이 형성된다. 조금만 지켜보자. 맞는 것 같다.적당한 회피는 피로감을 가중한다. AI의 보고를 의미화하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위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책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최종결정권자가 누구인지. 결과와 관계없이 책임의 소재가 분명한지, 실패하더라도 학습으로 연결되는지. 위험요소가 많아지면 발언이 줄어들고 조직은 침묵한다. 리더의 책임회피는 혼란과 함께 조직의 신뢰가 붕괴한다. AI시대 리더의 존재감은 결정의 앞에서 책임을 구조적으로 안고 가는 태도에서 완성된다.


AI와 인간은 세상을 다르게 인식한다. 감각이 다르다. AI가 아무리 빠른 계산과 결정을 하더라도 개인의 독특한 특성과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수십만 년동안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왔다. 조직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팀원은 리더의 태도와 시선, 말의 뉘앙스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말보다 비언어적 표현이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무언의 메시지가 진실을 말하기도 한다. 저자는 AI시대, 리더의 역할이 결정에서 신호로 이동했다고 말한다. 팀원들은 리더가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지를 통해 리더십을 해석한다. 4 Role은 보이는 리더십의 전환포인트를 나타낸다. 흔들리지 않는 눈빛, 시선의 일관성, 표정의 안정감이 심리적 안전감을 만들고 짧은 비언언 신호는 성장과정을 보여준다. 팀원들은 나의 표정과 태도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었을까? AI시대, 변하는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차이를 이해하고 해법에 다가갈 때 보다 나은 조직문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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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위한다는 착각
신재용 지음 / 반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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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불안의 역설이 풍요다. 과거 어느 때보다 풍족한 삶을 살지만 상대적 갈망에 휩싸여있다. 희망이란 단어는 현재를 부정한다. 미래는 걱정과 불안에 갇혀있다. 미래와 함께 가장 현실적인 불안이 건강이다. 굶지도 아프지도 않은데 지나칠 정도로 건강에 집착한다. 건강하다는 의미와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실질적 답변이 궁금하다. 덕분에 언론과 미디어는 실시간으로 건강식품 광고를 쏟아 붓는다. 유튜브는 물론 sns도 건강관련 정보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정보가 많아질수록 불안이 가중된다. 병원과 약국은 이미 건강 염려증환자로 가득하다. 의사가 직업 1순위인 이유가 불안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3분 내외의 진료는 환자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남긴다. 다행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안도감이다. 몸은 정신의 지배를 받는다. 건강은 문제가 아니다. 아프다는 것은 극히 일상적이며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두려움을 일으키는 짧은 광고와 후기, 안심을 채워줄 소비, 막연한 불안의 덧셈이 마음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건강을 더하기 프로젝트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영양을 더하고, 근육을 더하고, 검사 항목을 더하고, 수치를 더한다. 부족한 것보다 넘치는 것이 낫다는 과유불급은 과잉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건강이 프로젝트로 바뀌면서 계획하고 실천해야할 의무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계획엔 모순이 가득하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 칼로리는 넘치는데 오히려 피곤하고 무기력이 몸을 지배한다. 검사항목을 늘렸지만 질병 발생확률은 줄어들지 않았다. 과할수록 불안해진다는 역설은 건강관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데 왜 덧셈 회로를 멈추기 어려운 것일까? 단순히 개인의지로 이해해야할까? 주변에 초고열량 음식이 많아질수록 몸은 건강 솔루션을 활성화한다. 매순간 마주치는 건강관련식품들의 유혹은 몸의 이상을 알리는 신호와 같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구조적 모순이라면?

 

모든 경보는 뇌를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도파민은 보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경보를 울린다. 또한 스트레스가 높아질수록 우리의 판단은 더 단기적이고 충동적으로 좁아진다. 보상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결합하면 덧셈이 이루어진다. 뭔가를 더한다는 생각은 순간적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덧셈은 심리적 위안일 뿐이다. 불안을 급히 덮으려는 마음의 위로다. 만병통치약처럼 광고하는 건강기능식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광고는 반복적으로 건강을 자극하며 알약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란 믿음을 심어준다. 결국 과잉건강에 대한 신호가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접속시키며 덧셈에 집착하는 것이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은 뇌의 원시구조와 관련이 있다. 수십만 년, 수렵생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설계된 몸이 낯선 환경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건강을 위한다는 착각은 1부에서 불안의 증후와 뇌의 편집증적 낙관주의를 다룬다. 뇌는 가벼운 두통이나 가슴이 두근거리면 심각한 병이 있을 것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미세한 변화에 반응하는 뇌의 메커니즘이다.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하다. 검사나 주사, 영양제를 맞으면 심리적 안정을 되찾게 된다. 위험신호 앞에선 예민하나 해결 가능성에선 맹목적 희망을 거는 모순이 반복된다. 또한 뇌는 쉽게 떠오르는 생각에 빈도와 위험을 가늠하는 가용성 휴리스틱에 약하다. 광고는 가용성 휴리스틱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자극적이고 강한 문구를 중심으로 병의 대표적 증상을 강하게 드러낸다. 불안과 두려움을 심어주기에 최적화된 화면구성과 플롯, 호스트의 언어를 벗어나기 쉽지않다. 상상의 질병이 알고리즘에 종속되어 불안을 증폭시키고 결국 필요하지 않은 덧셈을 추가하게 된다.

 

덧셈은 필요하지 않은 소비뿐만이 아니라 건강관리에도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온다. 건강을 위한다는 착각은 더하기를 멈추지 않을 때 시작된다. 저자는 불편함, 불안을 마주하는 덜어내기를 강조한다. 덜어내기는 금욕이나 무소유가 아닌 생존의 덧셈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다. 건강을 대하는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진정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의사와 약사의 처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공부, 막연한 불안의 실체를 대면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처방을 자제하고 건강기능식품의 실체를 공부하고 건강앱과 실시간 쏟아지는 SNS의 무분별한 광고에 침묵하는 것이다. 덜어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은 남겨두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배제해 몸과 마음의 치유에 자신을 허락하는 것이다. 불안 징후는 곳곳에 펼쳐져있다. 그런데 불안을 누가 조장하고 있는가? 인간은 유기적인 존재다.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다. 불안을 상품화하는 시대다. 건강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하는 것을 덜어내는 일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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