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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너머의 지식 - 9가지 질문으로 읽는 숨겨진 세계
윤수용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7월
평점 :

보이는 것이 진실일까? 혹 시선 너머에 숨겨진 진실이 감춰진 것은 아닐까?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대체하는 페르소나는 사회변동과 심리적 요구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거듭해왔다. 공동체를 이끌어온 국가는 어떨까? 독립적이고 유일성을 대표하는 민족주의의 이면에 오랜 기간 숨기고 싶은 비밀이 감춰져 있다면, 우리가 인식하는 국가의 실체가 진실과 거리를 두고 있다면, 우리의 무엇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비밀은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어떤 국가나 민족에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나타내기도 한다. 시간은 수면 위에 떠오른 문제에 집착한다. 하지만 정작 시간을 괴롭히는 것은 수면 밑에 고요히 흐르는 풀지 않은 문제 들이다.
소득세율 60%, 거부감이 일어나는 세율이지만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와 사회시스템을 더욱 신뢰한다. 해마다 세계 최상위 복지국가이자 행복한 나라로 선정된 덴마크 이야기다. 그들에겐 휘게(hugge)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휘게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속의 소소한 즐거움,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과 같은 특성을 일컫는 단어다. 덴마크는 14세기, 북유럽 최강자로 군림했으나 속국 스웨덴의 독립전쟁 승리로 급격하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특히 17세기 종교개혁으로 인한 30년 전쟁과 19세기 홀슈타인 영토분쟁은 덴마크인에게 약소국이라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기게 된다. 휘게는 당시의 고통과 아픔을 극복하고자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평등사상과 평민의식을 중심으로 확장되었다. 그런데 지식너머의 진실엔 휘게의 허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포용을 강조했던 휘게문화가 덴마크인들 만을 위한 관념이 되고 있다. 그들은 타민족, 인종, 이민자들에 배타적이다. 겉으론 포용과 평등을 주장하지만 일상은 갈등과 편견이 존재한다. 생일 케익에 국기를 꽂는 덴마크인 들에게 평등과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들은 여전히 제노포비아의 속박에 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세계최고 행복지수 이면엔 말 못하는 진실이 숨겨있다.
싱가포르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세계최고의 경제력, 훌륭한 보건 시스템, 매년 1위를 차지하는 국제학업성취도, 하지만 무엇보다 버려진 휴지하나 보기 어려운 깨끗한 도시 전경이 아닐까? 덴마크와 마찬가지로 높은 행복지수를 자랑하는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싱가포르가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건 말라카 해협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1819년 무렵이다. 당시 인구 150명의 싱가포르엔 도시건설을 위한 노동자들이 인근 국가에서 대규모로 유입되었다. 그런데 140년간의 영국지배가 끝나면서 민족 간의 갈등이 부각된다. 리콴유 총리는 언어, 종교, 출신에 관계없는 능력우선주의를 국가의 원칙으로 내세운다. 결국 경쟁, 평가, 생존만이 과도하게 강조되었고 인간적 존엄이나 가치는 빠르게 사라져갔다. 현재 싱가포르를 관통하는 단어는‘키아수’다. 키아수는 타인보다 뒤처지거나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자기중심성, 이해타산, 탐욕, 몰인정, 타인에 대한 무신경이 싱가포르를 잠식하고 있다. 경제지표만으론 세계최고를 자랑하지만 정작 그들은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잃어버렸다.
시선 너머의 지식은 우리가 믿어온 이상에 대한 진실을 파헤친다. 행복이라는 포장 뒤에 숨긴 공동체의 모순, 선택의 자유를 구속당한 초경쟁사회의 민낯, 여전히 과거에 묻혀있는 미국의 모순적 이해관계를 다루고 있다. 또한 무분별한 대출을 통해 급격한 성장을 이룬 아이슬란드를 예로 들며 타자화된 역사관으로부터 비롯된 왜곡된 자기인식의 결말을 보여준다. 아이슬란드에서 맥도날드가 사라진 것은 다국적기업의 횡포가 아니라 과시적 욕구가 만들어낸 허망한 욕망의 산물일 뿐이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 콤플렉스의 거울, 일본이다. 일본의 허상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들이 왜 그토록 미국에 목을 매는지 뚜렷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미국이 조작해낸 평화로운 민주국가다. 여전히 군국주의에 사로잡혀있고 정체성에 대한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일본이 콤플렉스를 이겨내고 동아시아 문화를 존경했다면, 세계대전 패배 후 처음으로 개진되었던 민주주의가 성장했다면, 분명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를 엿보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시선 너머의 지식은 기존의 관념을 재해석하는 틀을 제공해 준다. 우린 현재를 인식할 뿐 과거에 어떤 일이 존재했었고 이를 통해 사상의 뿌리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이는 한국인에게도 유효하다. 정체성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에도 타협이 불가능한 관념이다. 누구에게나 받아들이기 어렵고 잊기 어려운 과거가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는 것이다. 시선너머의 지식은 겉과 속이 다른 선진 국가들의 민낯을 보여준다. 완벽한 국가나 민족이 존재할 리 없다. 부족한 만큼 공론이 형성되고 성장하면 더욱 나은 시스템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자국우선주의를 앞세우는 건 특정 정치인의 특징이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권력은 시민이나 국민의 몫이다. 휘게나 키아사와 같은 사회적 특징은 전체의 일면만을 보여준다. 우리가 타국의 이면을 안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민낯은 어떠한가? 최소한 자기기만은 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9가지 질문으로 만나본 시선너머의 지식을 추천한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