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 김별아,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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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새벽 3시에 출발해 도착했는데 비라니, 하지만 평생 한 번 올지도 모르는 기회라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고 우의를 구입했다. 땅은 이미 축축하다. 험하기 이를 데 없는 지리산, 그것도 우중 산행이라니, 사실 몇 달 전부터 아이와 지리산을 종주하기로 약속했다. 지리산은 산장 잡기가 무척 어렵다. 당일로 다녀오기도 쉽지 않아 결국 23일 종주를 선택했는데 도착하자마자 비가 쏟아진다.

 

평상시보다 몇 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쏟아지는 비속에서 고민에 빠진다. 올라가야하나 내려가야 하나, 올라온 것을 생각하면 아깝기도 하지만 다시 내려가는 등산객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흔들린다. 산은 공평하다. 누구에게나 같은 기회를 주지만 아무에게나 자신의 등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 걸음 옮길수록 숨은 자태가 드러난다. 산과의 만남을 인간의 만남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사고일까? 오르긴 힘들어도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운치는 모든 고통을 한방에 씻어버린다. 부풀어 오른 발, 밑창이 터진 신발, 갑작스러운 산행덕분에 온몸이 쑤시지만 산등성이를 타고 내리는 운무의 장엄한 관경 앞에선 지나간 시간이 한줌의 먼지같이 느껴진다.

 

왜 우린 그토록 힘든 산을 타는 것일까? 산악인들은 산은 인생과 닮았다는 말을 한다. 무턱대고 오르면 쉽게 포기하듯이 인생 역시 산을 타는 것과 같은 기분으로 계획을 해야 한다. 오르기 힘든 산은 인생의 고난과 고통을 연상시킨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산행이지만 끝이 없는 산은 없다. 우리네 삶 역시 필연적인 결과가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정상이든 아니든 산을 오르기 위해선 온전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해야한다는 사실이다.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미실, 채홍으로 현란한 글 솜씨와 탁월한 구성이 인상적이었던 김별아님의 특별한 산행에세이다. 말이 쉽지 백두대간을 종단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일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만의 특별한 임무(?)를 수행해가며 한국 산의 멋진 운치와 빼어난 정경을 치유와 공감의 언어로 탈바꿈한다. 교만한 인간의 마음이 겸손해지는 건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뿐이다. 자연을 거부한 인간, 자연과 멀어질수록 인간의 몸과 마음은 조금씩 그러나 빠르게 퇴보해갔다.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질병들이 창궐한다. 약물 중독은 세계적인 질병으로 확산중이다. 자연에서 태어났기에 자연과 어울릴 때 가장 건강할 수 있음에도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은 산과 함께 갈 때 행복하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때문에 믿음이 돈독해진다. 누군가 말을 걸지 않더라도 상대의 의중을 꿰뚫을 수 있다. 놀라운 것은 그 많던 고민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자신의 무게를 느낀다.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무게, 무게를 줄일수록 마음을 비울수록 산행이 가벼워진다. 모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기에 꼭 필요한 것만을 준비해야한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인생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 배낭에 들어있는 무게만큼 삶은 힘이들고 가쁘다. 산은 이 모든 것을 겸손하게 느끼게 만든다.

 

김별아님은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백두대간이 허락한 남부능선을 20개월간에 걸쳐 종주했다. 산이라고 같은 산은 아니다. 산행은 항상 새로운 도전이다. 문득 거대한 산이 눈앞에 다가온다면 한 번의 경험은 두려움을 줄지 모르지만 여러 번의 경험은 겸손과 준비의 미덕을 가르쳐준다. 무엇보다 걷는 내내 산행에 주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같은 산이 없기에 같은 나무도 계곡도 없다. 태초부터 존재해왔던 수많은 언어들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파고든다. 자연은 자체로 치유의 존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혼란스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거대한 자연 앞에 놓인 조그만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뿐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하지만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위해선 자신의 마음을 허락해야한다. 감칠 나고 맛깔스러운 하지만 인생의 내공이 듬뿍 담긴 김별아님의 특별한 산행일기, 치유와 공감의 메시지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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