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스타들의 자살은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준다. 그들은 사회가 원하는 모델이었고 추종하는 자들의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한명의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공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삶의 모든 부분이 대중들에게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중으로 인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을 선택할 기회를 쉽게 얻지 못한다. 도시를 배회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린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인생을 가꾸고 있는가? 인기인들 못지않게 우리 모두는 자신을 갈망하고 있다. 보이는 모습이 전부일리 없다. 우린 스스로에게 커다란 올가미를 씌우고 있다. 절벽위에 선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불쾌한 상상이다. 하지만 일상은 나를 절벽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중성은 현재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어두운 곳을 좋아해 세상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어느 순간, 자신이 알던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당신의 사용하던 물건, 당신이 만나는 사람, 당신이 매일 사랑을 속삭이던 가족들에게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차가움이 느껴진다면, 당신은 지금 어느 세계에 있는 것인가? 당신은 ‘나’ 인가 아니면 다른 객체인가?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는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내 몸은 거대한 물줄기에 휩쓸려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거대한 파도 속으로 돌진한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나는 나를 다시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제3기 문학’을 출발하는 최인호 작가님의 새로운 장편소설이다. 30년 동안의 주제가 타인을 위한 역사와 종교였다면 이번 작품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결국은 나마저 사라져버리는 본지풍광과 본래면목을 이해할 수 있는 최초의 작품이라 자평한다. 그는 현재 암투병중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허락된 시간을 통해 그가 바라본 세상은 나를 잃어가는 도시의 군상과 마치 미로처럼 얽힌 세상을 빠져나오려는 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는 대중들에게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암시하고 있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존재하지 않는 나를 찾아나서는 K의 혼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예전과 다름없는 토요일 아침, 요란한 자명종이 울린다. K는 분명 달콤한 늦잠을 자기위해 토요일엔 자명종이 울리지 않게 해놓았다. 자명종은 결국 그를 침대에서 일어나게 만든다. 욕실에 들어선 K는 알몸뚱이를 한 낯선 남자를 만나게 된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K,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보고 낯선 감정을 느낀다. 이상하다. 모든 것이 바뀐 것 같다. 그가 사용하던 스킨도 사라졌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그는 어젯밤 일을 기억해낸다. 의사 친구와의 만남, 끊임없는 친구의 불평, 그리고 어두운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 그리곤 기억이 없다. 핸드폰과 함께 어젯밤의 1시간 30분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K는 처제의 결혼식에 도착하면서 더욱 혼란에 빠진다. 돌아가셨다던 장인이 버젓이 살아있고 모든 이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우여곡절 끝에 핸드폰을 주은 사람과 연락이 닿아 그를 만났지만 뭔가 꺼림칙하다. 핸드폰을 주은 곳이 영화관이란다. 어젯밤 술집을 기억하는 그는 그 짧은 시간에 영화를 보러 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왕복거리만으로도 2시간이 족히 걸릴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타임머신 속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인가? K가 찾은 곳은 어젯밤 술집이었다. 그 곳은 성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하는 호스트바였다. 분명 이곳이 맞는데, 그는 아무런 기억을 할 수가 없다.

K는 의사 친구의 권유로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누나를 만나기로 한다. 잠시 정신적 혼란이 있었을 것이란 위안을 주면서. 하지만 K는 익숙지 않았던 누나와의 포옹과 사는 모습을 보며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누나에게 욕정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K는 분명 다른 K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다. 작가는 원리 원칙적이고 매사에 빈틈이 없는 K를 등장시켜 일상이 어떻게 허물어지는지를 보여준다. K는 주변의 작은 물건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가족에게 이질감을 느낀다. 하지만 사건은 K를 중심으로만 이루어진다. 어느 것 하나 변한 것 없는데 K의 선택만이 변하는 것이다. K는 자신에게 닥친 극도의 혼란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가 만나는 사람은 K다. 바로 자신이다. 문득, 어딘가에 자신의 가면을 쓴 자신이 있을 거란 상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진짜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또한 진짜일까? 그렇다면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경계선은 무엇일까? 일순간 세상이 케오스에 빠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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