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
이계안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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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다. 이럴 땐 마음마저 정화되는 느낌이다. 상쾌함을 간직하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세상이 즐거운 건 자신이 보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 쏙 들어왔을 때 인 것 같다. 방학을 시작한 아이 역시 눈과 일체가 되어 힘찬 에너지를 발산하는 중이다. 경사진 곳에선 아빠의 손을 잡고 미끄럼을 타는 아이들이 하나 둘 보인다. 문득 그 넓은 곳에 노인들은 많은데 아이들은 없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우리 아이들은 이처럼 좋은 날 전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학원에 찌든 아이를 볼 때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자기함정에 빠져버린다. 마음이 원하는 곳은 분명 아닌데 하지 않으면 실패자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기에 두려움을 떨치기 어렵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고 있을까? 21세기 한국 사회의 기득권자들은 과연 어린 시절이 없었던 것일까? 분명 그들도 지금과 다르지 않은 생활을 가졌을 것이다. 교육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언젠가 우리 사회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결코 평탄치마는 않을 것 같다.

대다수의 정치가들은 자신의 정책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틀렸더라도 끝까지 우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좋지 못한 사고방식이 사회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와 경제문제에 이의를 다는 것은 쉽지 않는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한다. 자신들만이 세상을 이해하고 바꿀 수 있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이 여전히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 프랑스 칼레시는 영국왕의 침략을 받는다. 끈질기게 버틴 도시는 함락되었고 분노한 영국왕은 모든 시민을 사형에 처하라고 명한다. 하지만 몇몇의 노력으로 간신히 분노를 삭힌 영국왕은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주기위해 모두가 살기위해선 6명의 목숨을 내어놓으라고 명 한다. 누가 도시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것인가? 칼레의 최고 부자인 생피에르는 제일 먼저 목숨을 내어놓는다. 그리고 지도층 인사들이 그 뒤를 따른다. 탄복한 영국왕은 모두를 살려 주었고 칼레시 상류층들의 살신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자긍심이 되어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무척 감동적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칼레의 상류층들을 볼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부자나 지도층들은 많지만 용기 있고 존경받는 상류층들은 매우 드물다. 뉴스를 장식하는 그들의 비리와 온갖 추태를 바라볼 때 그들에게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 것 같다. 오히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권력을 이용해 오직 자신의 밥그릇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우린 그들을 이렇게 만들고 있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 기득권층이 되면 그들이 품었던 이상은 사라져 버리고 상대하기 싫은 아집만 남아있는 것일까? 그들 역시 돈과 권력만 가지고 있을 뿐 인생을 학원에 저당 잡힌 아이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우리사회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사회는 보이지 않는 점점들이 모여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흐름을 이탈하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뿐더러 사회의 실패자로 전락하고 만다. 한국사회는 승자의 법칙이 지배중이다. 모든 것은 승자에게 집중되어있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보단 일방적인 의사전달방식이 강요되고 있다. 입으로는 창의성을 외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필요치 않는 곳에서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만 한다. 더욱 심화된 양극화는 서민들에게 불안한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부의 세습이 이루어지고 가난이 대물림된다는 현실이 비단 정치인들의 공략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만큼 친미적인 국가도 드물 것이다. 온 세상이 영어로 도배되고 있는 것 같으니 국가경쟁력만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우린 그동안 미국의 환상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기부나 기여문화가 쉽게 들어오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단지 입맛에 맞는 것만 쏙 빼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가 어려울 땐 상류층들의 오블리제가 필수적이다. 그들 역시 사회의 한 일원이기 때문이다.

이계안님은 사회적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신뢰와 똘레랑스(포용력)을 제시한다. 그렇다. 우리사회는 지금 서로간의 신뢰가 필요하다. 나를 믿으라는 말보단 상대를 먼저 믿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가진자의 포용력이 기지를 발휘할 때다. 방안가득 쌓아놓은 현금이 자신의 배를 채워주진 않는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한길로만 달리기에 너무 외롭고 고독한 세상이 아닌가? 또한 세상은 인과의 법칙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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