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번영 - 현대 금융경제학이 빚어낸 희망과 절망
이찬근 지음 / 부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미래를 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일까? 만약 모든 사람들이 내일을 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상상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하지만 어떨 땐 스스로에게 올가미를 씌우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요즘 세계질서를 보는 느낌이 꼭 이런 기분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석학들,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정치, 경제학 박사들 그리고 굴지의 언론인들이 정치세력과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위기에 빠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아니 무너져 가는 미국을 구하기 위해, 그들은 다시 한 번 미래를 예측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브프라임이란 말이 역사적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80년대 동구권의 몰락과 90년대 동아시아의 위기와 마찬가지로 서브프라임 역시 현대사에 큰 획을 긋고 있는 중이다. 이제 위기의 원인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느냐는 경제학의 기본적인 명제만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출구전략은 자신들이 생각한 것만큼 쉽지 마는 않은 것 같다.

이념, 사상주의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지 꽤 오래 된 것 같다. 자본주의란 말 역시 때에 따라 조금씩 해석을 달리 할 정도로 유연성(?)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는 듯하다. 세계화에 대한 비판론 역시 만만치 않지만 세계화로 인해 고성장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더욱 힘들다. 그럼 위기의 문제가 대다수의 석학들이 명제로 내건 인간의 탐욕과 그릇된 도덕관 때문이란 말인가? 많은 부분이 사실이지만 이것 역시 문제를 시원하게 풀어줄 답은 아니다.

우린 세계화란 말에 극히 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면 좋은 것이고 피해를 주면 아주 좋지 않은 것이란 편견이 무척 심하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에 대해선 놀라우리만치 관대하다. 솔직히 대한민국의 경제정책은 거의 틀림없이 미국정책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달러에 취약한 수출의존국가가 세계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80년대 이후 미국의 초호황을 이끌던 주요 산업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이 아닌 금융업이 중심에 있었다. 탈산업화를 피치로 내건 미국의 패권전략은 남들이 따라 하기 힘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이었고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미국기업들은 본업을 버리고 무분별한 금융 정책을 팽창시켜 나갔다. 세계적인 기업 GM과 GE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전 세계는 아주 빠르게 미국 금융에 흡수되어 갔다.

미국은 초단기 금융상품이나 정크본드 혹은 대출상품을 이용한 파생상품에 중점을 두었다. 이미 높은 레버리지를 통해 수백 배의 자본을 확충한 투자은행들은 더 이상 기업의 들러리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업 인수 합병을 통해 막강한 권력을 보여주었고 세계화의 최전방에서 해지펀드를 통해 금융에 허술한 국가들을 마음대로 농락했다. 당하는 국가 입장에선 존망이 걸린 문제였지만 투자은행들은 금융자본에 대한 더욱 강한 확신을 가지는 계기를 만든 셈이었다. 하지만 한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그들은 절대적으로 신임했던 자신들이 만든 무기(금융자본)에 갇히고 말았다. 문제는 그들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이미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누구에게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위기를 바라보는 중국의 입장은 어떨까?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향후 세계의 패권국이 될 거라는 생각은 지나친 상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문제가 만만치 않다. 중국은 미국수출에 의존하며 성장해온 국가다. 그들 역시 미국의 폐해에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동아시아의 위기와 미국의 위기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사회주의 특성이랄 수 있는 저임금구조는 향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전 세계의 생산기지로서 중국의 위상은 크게 흔들림이 없을 것 같다.

불안한 번영은 서브프라임 이전 미국의 경제정책과 이후 세계정세를 낱낱이 파헤친 보고서에 가깝다. 특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옹호론이 주를 이룬다. 진보와 보수에 관한 의견 또한 만만치 않다. 저자는 자유시장의 원리에 강한 점수를 준다. 이제 국가에 의존하지 말고 개인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라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위해 국가가 존재하듯이 국가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특히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빈부의 격차에 대한 해결법을 교육에서 찾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계층의 양산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른다. 결국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사람만이 미래를 풍요롭게 살 수 있으며 국가를 이끌 리더적인 자격이 부여된다는 결론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부정에 있지 않다. 스스로에게 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기에 시간은 한정 없이 흘러간다. 한동안 자주 쓰던 ‘무한경쟁’ 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어떠한 선택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지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지금 우리가 선택할 대상이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로 보는 힘 역시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음을 실감한다. 바뀌어가는 세계 우린 무엇을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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