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얻은 글재주 - 고대 중국 문인들의 선구자적 삶과 창작혼
류소천 지음, 박성희 옮김 / 북스넛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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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시조를 읊어보라거나 산문의 내용을 이야기하라면 숨이 턱 막힌다. 꽤 오래전에 손을 놔버린 한자를 20년 넘게 대한 적이 없으니 기억에 남아 있을리 만무하다. 하지만 학창시절 입이 닳도록 외우고 다녔던 이백이나 소동파의 시 몇 구절은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문은 학창시절 내내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헌데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금 고전문학을 찾고 있다. 수천 년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는 천재들의 시와 문장이 변해 가는 내 마음속의 허물을 벗기고 있는 까닭이다.

중국 역사연구가 류소천의 고대 문인에 대한 예우는 무척 각별하다. 그는 글재주를 통해 전국시대 굴원으로부터 남당의 이욱까지 약 1400년을 아우르는 9명의 시성과 시선을 고찰하고 있다. 이백과 두보를 제외한 7인은 같은 시대를 보내지 않았다. 사마천과 사마상여는 정 반대의 길을 걸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 가지 공통점을 찾으라면 9인 모두 시나 문장에 목숨을 걸었던 인물들이다. 또 하나는 대부분 전쟁이나 내분과 같은 국란을 통해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만개했다는 점이다. 이렇듯 뚜렷한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9인의 시인을 통해 류소천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류소천은 전국시대 초나라의 굴원을 중국최초의 자유사상가란 칭호를 부여하며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무능한 군주 초회왕을 위해 충성을 다한 굴원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전국시대에 군계일학으로 손꼽힌다. 그는 원칙에 충실했고 권력에 타협하지 않았다. 결국 초의 멸망과 함께 멱라수에 몸을 던지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사상과 문장은 중국인들의 가슴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다. 류소천은 굴원에게서 문인이 지켜야할 이상과 원칙을 보았고 그의 글에서 살아 움직이는 예술을 만났다.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인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세계최고의 역사서라는 점에서 엄청난 가치를 부여한다. 권력의 뒤태에 혐오감을 느낀 그 역시 모함에 의해 치욕적인 궁형을 당하지만 세상에 대한 분노를 사기라는 걸작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인물이다. 사기는 민중이 중심을 이룬다. 개개인의 삶이 인정되지 않았던 봉건주의 사회에서 권력에 영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언어를 지킨 것이다. 그 역시 글은 목숨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경지를 보여준다.

류소천은 산업화로 인한 개인주의의 팽배가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자연과 하나 되는 몰아일체를 선택한 도연명의 삶을 제시한다. 동진시대의 잦은 전쟁과 내분 역시 가난한 그를 더욱 삶의 한 가운데로 몰아넣었는데 먹고 살길이 막막한 그는 걸식을 통해 끼니를 해결했다고 한다. 관료직도 잠시뿐 평생 뒤를 쫒는 가난은 그에게 세상과 맞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귀거래사는 그가 육신의 노예로 전락한 마음을 바로세우고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천성적인 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다. 도연명은 본성을 따르는 삶의 태도와 인품으로 후대에 높이 평가받고 있다.

글재주에는 사마상여, 혜강, 이백, 두보, 백거이, 이욱등, 가히 전설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류소천은 그들에게서 봉건주의를 탈피하고자 하는 자유의지와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자했던 진정한 예술인의 관점을 견지한다. 글로써 입신양명할 수 있었던 시절 모든 문인들의 꿈은 글재주에 있었을 것이다. 천재인 이백도 노력파인 두보도 글로써 세상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권력은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자신의 길이었다. 그들은 수만리가 멀다하지 않고 광활한 중국 땅을 돌아다니며 권력이 아닌 세상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예술은 길에서 만들어 진다고 한다. 또한 시련 없는 예술은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한다. 목숨과도 바꿀만한 예술작품이 흔하지 않는 시기에 이들이 주는 교훈이 무척 무겁게 다가온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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