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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디지털 세상에 남겨진 죽은 이들의 흔적에 대하여
칼 외만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6년 10월
평점 :

세상의 단 하나의 진리라면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우주는 변한다. 그 무엇도 원래의 형체를 보존할 수 없고 결국 하나의 분자로 흩어진다. 인류는 모든 사실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믿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대부분의 현상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사라진다는 것, 누군가에게 잊힌다는 것, 인간에게 이보다 더 불안과 공포를 주는 현상은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은 인간이 한 인간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야할 생에 대한 깊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죽음이 곧 삶의 철학이 된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세계가 확산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특히 망자를 대하는 태도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망자는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접촉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범위를 어디까지 한정할 수 있을까? AI의 변화는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방정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다. 질병이 사라지고, 세상이 평등해지며, 무엇보다 영생을 추구한다. 인류의 오래된 염원이 한 번에 해결되는 듯하다. 반면 이러한 모든 것은 데이터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루에도 수억 건의 데이터가 디지털 세계를 떠돈다. 데이터 센터는 폭주하는 데이터를 감당하지 못해 천문학적인 부채를 끌어들여 생산라인을 구축한다. 명분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많은 데이터는 어디에 축적되고 사용되는가? 엔비디아는 데이터를 묶어 토큰화를 서두르고 있다. 데이터가 자본이 되고 그 자본 안에는 오래된 망자의 데이터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효용성도 문제지만 망자는 여전히 디지털 세계를 질주한다. 데이터 유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시기다.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본 책은 디지털 세상에 남겨진 죽은 이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죽음은 인간에 강한 흔적을 남긴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떠돌아다녔고, 죽음은 곧 이별이었다. 오랜 기간 죽음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형성되었다. 수많은 고대종족들은 망자의 유골을 집안에 두거나 곁에 두며 그들의 영혼을 기렸고 산자에 대한 축복을 기원했다. 이런 문화는 고대중국과 동아시아 문화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몸은 사라졌다. 그런데 망자의 이야기와 감정, 정서적 교류가 디지털 세계 어디엔가 남아있다면 그는 죽은 것일까? 죽음에 대한 생리적 현상은 트랜스 휴머니스트들에 의해 더욱 극적으로 바뀌고 있다. 뇌의 기억을 디지털로 옮겨 재생하는 것이다. 영생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지만 기억은 일정하지 않다. 인간은 직접적 경험과 순간적 인식에 의해 매 순간 변화하기 때문이다.
본 책은 우리가 의식, 무의식적으로 접근했던 수많은 데이터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일상적으로 접촉했던 유튜브와 SNS의 기록들은 사라지지 않고 움직이며 자신을 대변하고 있다. 만약 개인이 사라진다면 남아있는 데이터는 어디에 속하는가? 저자는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메시지를 보내는 이슬람 싸이트 Du3a를 예로 들며 디지털 유해의 탄생과 사후세계에 대한 변화과정을 질문한다. 망자에 대한 예의와 그리움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과도하게 축적된 데이터에 대한 처리방식은 새로운 설정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를 포스트 모털이라 부르며 디지털 세계관은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한다. 무엇을 정리하고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포스트 모털은 기존의 규정과 규칙,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앱과 웹싸이트에 널려있는 수많은 정보의 파편을 규정하는 작업이 우선적이다.
역사가 토마스 라커는 죽은 자들이 문명을 만든다는 말로 우리는 여전히 죽은 자들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표현했다. 고대 인류가 죽음을 근거리에 두었다면 현대인류는 죽음을 빠르게 몰아내고 있다. 오히려 죽음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디지털 세계가 만들어 놓은 문명은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흐릿하게 한다. 저자는 포스트 모털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정치적 경제적 난제들을 조명한다. 디지털 세계에서 떠도는 수많은 망자의 데이터를 어떻게 규정하고 정리할 것인가? 21세기 말이면 사망자계정이 50억 개에 이를 것이란 보고서가 있다. 만약, 폭주하는 SNS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거대언어모델이나 AI가 망자의 기억에 의존한다면 어떻게 데이터의 효용성을 믿을 수 있을까? 디지털 유해에 대한 인식은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문명은 상당한 진통을 겪어왔다. 이젠 죽음마저 새로운 관점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사라진다. 디지털이 영원할 것이란 생각자체가 모순은 아닐까?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