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조작되는 것이다 시대철학 2
파울 요제프 괴벨스 지음 / 비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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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괴벨스, 히틀러의 2인자이자, 프로파간다의 최선봉자, 홀로코스트의 주인공인 희대의 전쟁광이자, 선동가다. 평생을 주도했던 광신적 믿음과는 달리 병약한 신체를 지닌 채 평범한 어린 시절을 경험했다. 그를 변화시킨 건 전쟁 후 독일인의 실상이었다. 1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은 엄청난 부채와 살인적인 물가에 시달렸다. 가난과 추락, 버려짐에 대한 공포가 생존을 짓눌렀다. 정치적 혼란이 반복되면서 삶의 가치마저 흔들리며 매 끼니를 걱정해야했다. 당시 문헌학박사였던 괴벨스는 혁명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는 폭력적이지만 카리스마가 넘치는 나치당의 히틀러를 눈여겨보았다. 선동적이고 파괴적이었던 히틀러는 혁명에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었다. 나치당에 입당한 괴벨스는 히틀러의 오른팔로 전 방위로 전쟁을 지휘하며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대중은 진리가 아니라 맹신할 우상을 갈망한다.’ 진리는 무거운 책임을 요구하고 고통스러운 자기성찰을 강제한다. 대중은 자신의 짐을 대신 짊어질 우상을 갈망했다. 모든 짐을 자신이 짊어지겠다는 우상, 히틀러의 등장은 철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괴벨스의 작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상을 인정한 대중은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며 무릎을 꿇었다. 대중은 스스로 우상을 지어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히틀러에게 신성을 부여했다. 합리적 의심이 사라진 우상 앞에 권력의 폭주가 시작되었다. 괴벨스가 기획한 총통신화는 모든 의심과 의혹을 멈추게 만들었다. 우상은 실수하지 않는다. 실패는 평범한 인간의 몫이다. 괴벨스의 철저한 조작과 논리는 반유대주의를 통해 가장 혐오스러운 시대를 거치게 된다. 대중이 의지를 잃었을 때 세상은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펼쳐진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조그만 흔들림에도 감정이 폭발한다.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도 논리보단 내재적 불안과 두려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괴벨스는 두려움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통치수단임을 깨달았다. 불안과 공포는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한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시각적 효과가 훨씬 뛰어난 각인효과를 가져온다. 한 번의 발언보다 수천 번의 반복적 언어와 행동이 신념을 바꾸고 믿음을 확정한다. 괴벨스는 다양한 선전광고를 통해 대중여론을 바꿔갔다. 불안에 싸인 대중은 대체수단을 찾는다. 진실과 사실, 논리적 증거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단순한 구호가 마음을 끌어당기고 대중의 행동을 구축한다. 같은 공간, 같은 구호, 같은 외침은 괴벨스 특유의 선전과 함께 독일인의 감정을 자극하며 대중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우상의 갈망, 본능적 두려움, 치명적인 약점, 분노와 증오, 단호한 구호, 대중은 괴벨스와 히틀러의 농간과 세뇌에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게 된다.

 

권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탈취하는 것이다. 권력은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오직 손을 뻗어 빼앗는 자의 것이다. 민주주의 권력은 너무 이상적이다. 하지만 권력의 이면엔 무수한 갈등과 시기와 질투, 혐오와 분노가 내재되어있다. 권력을 잡는다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권력누수에 대한 불안과 집권에 대한 의문이 꼬리처럼 물고 늘어져 권력자의 의지를 무너뜨린다. 권력은 만들어진다. 만들어진다는 것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빚어진다는 뜻이다. 빚어지는 권력은 점토와 같다. 점토엔 지문이 새겨진다. 모든 권력엔 손댄 자의 지문이 남아있다. 지문의 주인이 곧 권력의 주인인 것이다. 모든 권력은 대가를 요구하며 언젠가 지불해야할 몫으로 남아있다. 모든 권력자가 권력이 자신의 것이라 믿는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AI의 등장과 함께 가장 많이 통용되는 단어가 알고리즘이다. 인간의 생각이나 행동을 기준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수준까지 발전하고 있다. 인간의 심리적 행동은 일생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다. 대중의 알고리즘을 넘어 개인의 알고리즘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런데 우린 이미 국가라는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을 통해 일생을 보낸다. 국가는 규정과 규범을 정하고 범위를 한정하며 강제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통제한다. 프레임은 사회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SNS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타인의 프레임에 종속시킨다. 비교, 경쟁, 타인의 시선은 자신을 가두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권력이 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권력 욕구는 본능적이다. 반면 권력에 대한 이해와 생각, 태도에 따라 공동체의 삶이 바뀔 수 있다. 본 책은 괴벨스의 권력찬탈에 대한 뛰어난 예지를 바탕으로 현대사회, 권력구조를 파헤친다.

 

선천적 병약함과 작은 외모의 독일인은 어떻게 대중을 그토록 처참하게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 있었을까? 전쟁광이라 하기에 그는 너무도 치밀하고 계산적이었다. 괴벨스는 전쟁 막바지에 자녀들을 독살한 후 자살했다. 히틀러와의 조우, 광범위한 선전과 대중세뇌, 권력의 내외적 조건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했던 괴벨스의 마지막은 너무도 허망하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은 권력의 무상함을 일컫는 고사 성어다. 역사는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권력을 찬탈하려는 욕구는 변함이 없다. 괴벨스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시대와 환경, 자신의 경험이 만든 시대의 괴물에 가깝다. 우리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제든 권력을 차지하려는 괴물이 등장할 수 있다. 어떻게 대중은 그토록 쉽게 한 인간의 프레임에 빠져들 수 있는가? 저자는 현대사회의 조직구조를 통해 권력의 향방을 유추해본다. 우리가 생각하는 권력은 자신의 의지인가. 타인의 계산으로 시작된 것인가?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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