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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을 포기할 때 삶은 가벼워진다 ㅣ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1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7월
평점 :

나는 무엇을 아는가? 이 무거운 질문에 몽테뉴의 모든 철학과 사상 그리고 인생이 담겨있다. SNS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모두 자신이 정답이라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들의 주장에 내면의 생각이 담겨있을까? 표면적이고 현상적 이론에 파묻힌 사고가 깊은 울림을 전달할 수는 없다. 그들은 철저히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생각을 벗어난 언어가 이토록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회는 다양성을 배제한다. 몽테뉴는 확신에 찬 사회가 얼마나 잔인하고 파괴적인지를 직접 목격했다. 어제까지 웃음을 나누던 이웃이 사회적 기준에 의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두려움은 공포를 넘어서 인간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다. 삶에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는 잠적했다. 모든 이들이 비난했지만 어쩌면 가장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이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이것이 진실인가?
1572년 파리는 위그노(개신교)와 카톨릭간의 갈등이 폭발해 종교전쟁이 발발했다. 어제의 이웃이 적이 되어 서로를 무참하게 살해했다. 그들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짐승이라 불렀고 신은 자신의 편이라 믿었다. 학살은 죄가 아니었다. 종교학살의 바라보았던 몽테뉴는 도대체 믿음이 무엇 이길래 인간이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지, 너무도 당황스러웠고 절망했다. 몽테뉴는 사회의 기준의 침착했다. ‘나’라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16세기 보르도는 신이 지배하는 시대였고 나의 정체성은 곧 신에 의해 규정되었다. 절대적 기준은 정체성을 확립시킨다. 결국 자신의 확신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이 목숨보다 소중하게 지켜왔던 확신이 절대적이란 믿음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당시 몽테뉴의 생각은 너무도 위험했다.
몽테뉴는 현실에서 떠났다. 하지만 탑에 들어선 후 더욱 강하게 자신에 침착한다. 우울과 불안으로 날뛰는 감정을 마주하며 자신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는 신의 말, 세상의 시선, 타인의 의견이 아닌 흔들리는 한 인간의 감각과 감정, 행동을 들여다보며 일상을 글로 적었다. ‘여기서 내가 그리려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짧은 어구와 함께 몽테뉴 세계가 시작되었다. 세상은 정의와 공정이란 개념을 심어놓았다.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하는 도덕적이자 정치적 언어다. 개념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용되며 예외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개념이 오용되면 본래 목적이 상실된다. 삶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 놓은 수많은 개념들은 편리성을 위해서가 아닌 개인의 삶을 규정하고 구속하기 위해 존재한다.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정의와 공정을 누군가는 당연하다는 듯이 선을 긋는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진리도 진실도 아니다. 모든 것이 불분명한데 왜 인정해야하는가?
몽테뉴는 자신을 관찰하면서 인간의 감각과 감정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깨닫는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하지 못한 채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핍에 찬 욕구를 내뱉는 것과 같다. 결함투성이 감정을 배제한 채 타인을 의식한다. 불안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 잣대를 들이댄다. 가슴 깊은 곳에 감추어진 불안과 두려움이 자신을 가렸던 고유한 무늬다. 결함을 숨기려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에세는 실수투성이이자 결함이 가득한 인생의 모습을 담은 몽테뉴의 삶의 과정을 수록한 수필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강요하지도 이렇게 살아라 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수상록에 기록된 수많은 쪽지와 메모는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미완성이라는 몽테뉴의 생각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몽테뉴는 철저히 자신을 발가벗긴다. ‘인간은 놀라울 만큼 헛되고, 변덕스럽고, 흔들리는 존재’라는 표현은 그만의 해방선언이다. 그는 인간존재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인물이었다.
우린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특별한 사회적 기준을 맞추기 위해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당하고 의지와는 상관없는 소비문화에 길들여져 있지 않는가?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삶의 방향을 가고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시선이 두렵다. 차라리 눈감고 발을 디디는 쪽을 선택한다. 자신을 잃어가는 시대의 초상은 16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스템 안에서의 자유, 타인을 구속하지 않는 독립, 세상을 벗어나가 어려운 구조, 하지만 결국 인생은 홀로서기가 가능할 때 시작된다. 몽테뉴는 세상이 주는 메시지에 귀를 닫았다. 오만과 의심, 자기 확신이 가득한 세상에 굳이 자유로운 영혼이 상처받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채우려 발버둥 칠수록 나만 부서질 뿐이다. 헛된 욕망이 주는 메시지는 자신을 포기하는데서 가져온 얕은 만족에 불과하다. 권위와 권력, 부와 명에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가장 높은 왕좌에 앉아도 결국 자신의 엉덩이 위일 뿐이다’란 묵직한 울림이 가장 필요한 시기다. 인생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