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 희망이 사치일 때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 닻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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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기다리는 도스토옙스키, 그는 마지막 시간에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까? 이제 5분 후면 눈앞의 모든 것과 기억의 흔적이 사라진다. 멀리보이는 숲의 배경도 푸릇한 풀 냄새도 아련한 과거의 기억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마음을 뒤흔들며 용솟음친다. 하지만 왠지 마음은 평온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도스토옙스키는 2분은 동료들과의 작별에, 2분은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다보는데, 마지막 1분은 세상의 풍경을 눈에 담는데 썼다. 정치적 연극으로 끝난 사형집행은 도스토옙스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가난했고, 병적이었으며, 빚에 쌓인 그의 생애는 그야말로 비참했다. 젊은 시절의 호기가 어떻게 삶을 변형시킬 수 있는지를 깨달은 후, 그는 철저히 자신을 직시하고 삶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특히 4년간의 시베리아에서의 형벌은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을 안겨주었다. 30도가 넘는 혹한, 무거운 쇠고랑이 그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그는 이미 죽음을 경험했다. 죽음 앞에선 1분이 그를 사로잡았다. 고통과 번민은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비참한 수용소의 시간을 통해 땅에 떨어진 인간의 군상을 관찰하며 삶의 밑바닥을 철저히 체험했다. 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외부적 조건이 아니다. 나는 오직 스스로의 의식에 의해 자신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갚아야할 빚과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간질, 그에겐 희망이나 낭만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도스토옙스키는 글을 통해 자신과 마주한다. 내면의 추악한 괴물과 마주하며 영혼을 끌어낸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충분히 만족하면서 보다 더 나은 풍요를 갈망한다. 정서적 결핍이다. 물질적 풍요가 삶의 공허와 무료함, 결국 무기력과 권태를 불러온다. 만족하는 것이 없기에 끝없이 탐닉한다. 누구를 위한 선택인가? 정작 자신은 알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은 시스템이 만들어온 결과물이다. 자신이 추구해온 만족엔 자신만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그럭저럭 흘러가지만 우린 삶의 진실을 놓치고 있다. 조그만 힘들면 회피하고, 불편하면 왜곡한다. 내면을 꽁꽁 숨긴 체, 거짓된 자아를 자신이라고 믿는다. 겹겹이 쌓인 자아는 삶의 진실을 왜곡하며 스스로를 파괴시킨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이 고통자체보다 고통을 모른 척하려는 자기기만 때문에 더 철저히 파괴된다고 보았다. 그는 희망이 섞인 긍정을 혐오했다. 어설픈 긍정은 현실을 감춘다. 비겁한 회피 때문에 실체를 외면한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왜 이 일을 이렇게 받아들이는가? 왜 이 사람의 한마디에 이렇게 무너지는가? 이 안에 어떤 오래된 상처가 있고 미해결된 감정이 남아있는가? 도스토옙스키는 긍정으로 도망치지 않는 자만이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단언했다. 우린 고통이나 슬픔, 두려움을 회피한다. 직면은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슬픔을 인정하는 것, 화났다고 말하는 것,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인정하는 것이다. 직면은 아프다. 하지만 아픔이야 말로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AI가 만든 세상, 인간은 알고리즘에 의해 기획되고 계산되며 통제될 가능성이 높다. 도스토옙스키는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완벽한 유리건물이라는 수정궁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모든 욕망과 행동이 수학공식처럼 계산가능해지는 시대, 그가 어떻게 21세기를 이토록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을까? 수정궁 안에선 통계가 모든 답을 알고 있고, 시스템이 모든 결핍을 채워준다. 도스토옙스키의 상상은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빠르게 수정궁화 되어가고 있다. 그는 작품을 통해 타인의 행복이 주는 갈증을 읽어낸다. 이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결국 책임의 무게 때문에 자유를 반납하는 인간의 나약한 심리와 민낯을 과감히 드러낸다.

 

벼랑 끝에 서면 삶의 진실을 만날 수 있다. 지금껏 살아왔던 시간에 대한 회고와 무엇이 진정한 삶을 완성시킬 수 있는지, 가슴 깊이 숨겨온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도스토옙스키는 내면의 괴물을 인정하며 언제나 주어진 현실을 마주했다. 그는 내면의 추악함과 모순을 정면으로 끌어내어 작품을 위한 연료로 삼았다. 또한 당대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을 선망했지만 그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왜 어떤 사람은 위기 앞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쉽게 포기하거나 굴복하는가? 어설픈 긍정이나 낙관은 혹독한 대가를 남긴다. 우린 긍정론에 쌓여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정답 없는 세상에 이단아가 되어라. 의미 없는 고통조차 나의 역사로 새겨라.’ 도스토옙스키는 문학의 대가이기 전에 지독하게 자신의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우리는 왜 그토록 쉽게 자기 가치를 흥정하는가? 삶이 흔들릴 때마다, 내게 남은 시간이 5분이라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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