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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열두 가지 얼굴 - 당신의 행복을 위한 돈의 인문학
류상철 외 지음 / 한길사 / 2026년 3월
평점 :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온 세상을 다 얻고도 영혼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 가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긴다. 영원히 아름답기를 소망하는 그레이, 그는 온갖 타락과 쾌락을 일삼지만 변하지 않는 외모를 유지한다. 대신 그의 초상화가 늙고 추하게 변해간다. 초상화는 외모에 감추어진 내면의 거울이자 그레이의 영혼이다. 그레이는 탐욕스럽고 추해져가는 자신의 영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레이의 초상은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허영과 욕망이 가득한 부의 추악한 면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부는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인간은 돈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한다. 돈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특별한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착할수록 주종이 변한다. 우린 거울 앞에서 돈과의 관계를 선택해야한다. 돈은 좋은 하인이 될 수 있지만 나쁜 주인이 될 수도 있다. 돈은 어떻게 인간을 구속하게 되었을까? 돈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돈은 기억이다. 돈은 노동의 대가로 자신이 이만큼 사회에 기여했다는 것을 장부에 기록하는 것과 같다. 기여를 인정받고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받을 수 있다는 상호주의 원칙이다. 돈이 기억인 이유는 인간의 유한한 기억력 때문이다. 삶이 확장될수록 가치 기준이 달라지고 범위가 넓어진다. 교환은 생존의 중요한 수단이었기에 사회는 약속과 신뢰를 담보로 기억을 기록하고 보관할 수 있는 기억장부가 필요했다. 당연히 주위의 모든 것, 특히 희소가치 있는 물건들이 돈으로 사용되었다. 기억장부는 효율적으로 작용했다. 결국 인류는 돈에게 기억의 의무를 위임하고 생산적인 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돈이 삶의 유용성은 물론 효율성까지 보장해준 것이다. 이제 그 돈은 돌멩이를 거쳐 데이터의 숫자로 표시되고 있다. 현대사회는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전자정부를 믿는다. 숫자로 인식되지만 정부가 돈을 저장하고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 신뢰한다. 화폐는 사회가 공유하는 기억체계다.
하지만 돈은 외부조건에 의해 심한 변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기억이 배반당한 것이다. 특히 높은 인플레이션은 돈의 가치를 폭락시켜 사회 전체의 신뢰기반을 무너뜨린다. 돈이 신뢰를 잃으면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진다. 과거 역사는 인류에 큰 교훈을 안겨주었다. 과거의 노력이 미래를 보장할 것이란 믿음이 사라지면서 돈은 가치를 잃고 사회의 신뢰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경제는 활력을 잃고 개인은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서며 믿음이 무너지면서 분노와 단절, 사회적 붕괴가 일어났다. 모든 상황은 돈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와 연결되어있다.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지만 빠르게 무너뜨리는 것도 결국 돈과의 이해관계다. 화폐의 기억이 무너지면 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사회적 기억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 서로간의 의식과 믿음, 그리고 시스템을 운용하는 정부와 은행의 신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부채를 사용하는데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부채는 돈의 빛과 그림자를 연상시킨다. 신용사회는 부채를 이용한 레버리지를 활용해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 반면에 부채는 미래의 소득을 미리 앞당겨 사용하면서 시간의 덫에 걸려 치명적인 파산을 일으킬 수 있다. 부채는 정부와 은행이 선택한 마법과 같은 돈의 힘을 보여주는 수단이다. 파이를 키우기 위한 특단의 정책이 이젠 특별한 조건을 걸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부채가 위험한 것은 인간의 사고가 빚에 쉽게 길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채는 인간에게 지속적인 노동을 요구한다. 또한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은 부채를 사용하기를 강요한다. 소득 불평등을 확산시키고 변동성에 취약한 사회구조를 양산한다. 부채는 시간과의 함수다. 연체 이자율과 투자의 함수는 부채가 주는 딜레마다.
돈은 차가운 금속이나 종이가 아니다. 당신을 유혹하고 기억하며 시간을 담보로 거래되는 살아있는 인격체다. 인간은 예측할 수 없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에 인간적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통제를 느끼고 불안을 해소하려는 본능이 있다. 돈은 수세기동안 인간의 감정에 가장 근접한 허구의 실체다. 인격을 부여받은 돈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이 행동한다. 돈과의 접촉점은 인간이 인식하는 돈과의 관계다. 어떤 돈은 사랑과 행복을 주지만 어떤 돈은 불행과 파괴를 가져온다. 돈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곧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다. 돈의 열두 가지 얼굴은 돈의 이면에 담긴 인간의 성찰에 가깝다. 본 책은 돈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돈의 가치, 돈이 주는 기회, 그리고 돈이 주는 메시지를 성찰한다. 돈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자본주의는 돈의 위상을 한껏 올려놓았다. 국가 지도자들은 돈을 경제성장의 이유로 생각하고 돈을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 또한 혁명이나 혁신이라는 기치아래 천문학적인 돈을 찍어낸다. 돈의 신용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시로 변동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덕이 과함과 부족함이란 양극단 사이의 중용에 있다고 보았다. 돈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빛의 유혹에 빠져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고 그림자의 공포 때문에 경멸하거나 외면하지 않는 것, 돈에 대한 중용의 자세다. 돈은 중립적이다. 이를 사용하는 인간의 자세와 태도가 돈의 성격을 부여한다. 본 책은 돈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돈의 기억과 인격, 삶을 향한 태도와 자세, 인간에게 부여한 가치판단의 기준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느끼는 돈의 관점이 곧 당신이다. 돈에 대한 논의는 사회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진행될 것이다. 당신이 느끼는 돈의 깊이는 어떠한가, 또 얼마나 뜨거운가?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