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 코너스톤 착한 고전 시리즈 13
알베르 카뮈 지음, 이주영 옮김, 변광배 감수 / 코너스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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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나오던 의사 리외는 계단 한복판에 죽어있는 쥐 한 마리를 보게 된다. 쥐가 나올 곳은 아니라는 수위 미셸 영감의 한마디에 그냥 넘길 일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루 사이에 마을 곳곳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쥐들이 발견된다. 전염병이 의심되지만 섣불리 판단 할 수 없다. 사회적 혼란을 예상한 시 당국도 손을 놓고 있긴 마찬가지다. 덕분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간다. 특별한 일은 없을 것이라던 믿음이 차츰 불안과 두려움으로 바뀌어간다. 그리고 며칠 후 쥐를 만진 미셸이 엄청난 고통을 호소한 채 피를 토하며 죽는다.

 

페스트는 연대기적 작품이다. 재앙 앞에선 인간에 본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재앙 앞에서 인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페스트가 빠르게 오랑시를 삼키고 있을 때 수많은 이들이 파눌루 신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하느님의 심판이다. 불안에 떨고 있는 불쌍한 시민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다. ‘루시퍼처럼 아름답고 악의 화신처럼 빛나는 페스트의 천사를 보십시오.’ 파눌루 신부는 신의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부조리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는 까뮈 소설의 백미다. 결국 아이의 죽음 앞에서 그는 가장 근원적인 인간애를 마주하게 된다.

 

페스트는 수세기동안 지속적으로 인류를 괴롭혀왔다. 과학지식이 전무한 상황에 페스트를 상대한다는 것은 자연치유나 죽음뿐이었다. 전염병은 인류에 커다란 숙제를 안겨주었다. 일상적인 삶의 몰락이다. 지금가지 경험했던 지식이 무용지물이 되고 삶의 가치는 끝없이 하락한다. 사회적 교류의 단절은 인간 본연에 대한 의구심까지 일으킨다. 까뮈는 이해관계가 다른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전염병을 대하는 군상을 펼쳐나간다. 의사 리외는 페스트의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자신에 주어진 의무를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단 한명의 환자라도 살려야하며 전염병을 방어해야만 한다.

 

21세기 인류는 희대의 사태를 맞이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고 죽음이 일상인 세상이 펼쳐졌다.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했던 인류에게 죽음이 이토록 가까이서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진 적이 있었던가? 죽음은 전 세계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었다. 사회적 단절에 대한 정신적 스트레스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덕분에 좋아진 것이 있다면 푸른 하늘이다. 회색, 황색하늘이 제자리를 되찾은 것이다. 또한 인간애에 대한 재해석이다.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지 스스로 느끼고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전염병을 이해할 수 있을까? 죽음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질병과 죽음에 대한 반항을 시작한다. 타루를 중심으로 보건대가 조직되었다. 삶은 투쟁이다.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이는 인류의 목적과도 일치한다. 생존에 대한 강한 집념이 공동체적 인류를 형성해왔기 때문이다. 페스트는 이방인과 더불어 까뮈의 실존주의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 작품이다. 이방인이 현실과 이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이어졌다면 페스트는 삶에 대한 부조리를 상징한다. 그런데 부조리는 무엇인가?

 

재앙을 어떻게 방어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당하기만 할 수는 없다. 재앙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지식의 오류와, 자연에 대한 모순적 인식, 덕분에 인류는 재앙을 대할 때마다 본원적 실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페스트라는 단어가 시민들 사이에 오고갈 무렵, 도시는 두 분류로 나뉘어졌다. 걱정과 믿음,‘만일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만 정신이 팔려있지 않다면 깨달을 수 있을 거야까뮈는 재앙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은 겸손함을 잊었고 여전히 재앙이 자신의 통제 안에 있다고 믿고 있다. 사회의 격리, 존엄성의 파괴, 일상의 상실, 외로움, 공동체의 의미. 관계의 재해석, 삶에 대한 질문, 죽음과 희생, 죽음에 대한 회고, 의미 있는 삶, 평화에 대한 생각. 자연의 무서움, 인간의 고뇌, 의학, 과학, 무엇이 인간인가? 인간은 과연 존엄한가?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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