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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 ㅣ 코너스톤 착한 고전 시리즈 12
알베르 카뮈 지음, 이주영 옮김, 변광배 해설 / 코너스톤 / 2025년 7월
평점 :

옷깃을 올린 채 담배를 물고 있는 까뮈의 초상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무감각한 첫 구절과 함께 시작되는 이방인은 읽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반항적인 것 같은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포용적인데 신경질적이고, 자유를 갈망하는데 구속에 익숙한 뭔가 앞뒤가 뒤틀린 듯한, 상상력이 동원될 때 이해가 시작되는 뫼르소의 행동은 일상적인 범주를 벗어난다. 그는 양로원에 보낸 엄마의 부고소식을 듣고 사장의 눈치를 살핀다. 아직 못질이 끝나지 않은 관 앞에서 밀크커피를 마시며 관리인과 담배를 나눠핀다.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과 자신을 연결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장례식 내내 주변에 관심을 쏟는다. 장례식 날은 끔찍할 정도로 더웠다. 뫼르소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의식한다.
장례식에 돌아온 뫼르소는 수영을 하러 바닷가를 향한다. 그리고 연인 마리를 만난다. 해가 저물고 거리가 활기를 띨 때 뫼르소는 오랫동안 거리를 응시한다. 오고가는 사람들과 눈길이 마주친다. 변할 것 같지 않은 일상이다. 살라마노 영감과 레몽은 이웃이다. 불쌍한 개에게 화풀이를 반복하는 살라마노씨는 오랫동안 혼자 지냈다. 자칭 창고관리인이라는 레몽은 다혈질이지만 뫼르소에겐 친절하다.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쾌감에 선뜻 레몽의 집에 들어선 뫼르소는 와인을 마시며 레몽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의 말만 듣고 레몽의 여자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세상일에 무감각했던 뫼르소는 유독 이웃에 친절하다. 살라마노씨와 레몽을 통해 까뮈는 이방인에 대한 역설을 보여주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뫼르소는 레몽과 함께 해변의 친구 별장을 방문한다. 그들은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그런데 해변 끝에서 레몽을 감시했던 아랍인들이 걸어온다. 그들 중 한명은 레몽이 화풀이를 했던 전 여친 오빠다. 시비 끝에 레몽은 피를 흘리고 쓰러진다. 아랍인들은 도망쳤다. 화가 난 레몽을 따라나선 뫼르소, 찌는듯한 태양이 쏟아진다. 둘은 다시 아랍인을 찾아 나섰고 레몽은 권총을 휘둘렀다. 뫼르소는 빠르게 레몽의 손에서 권총을 낚아챘다. 그들은 돌아갔지만 오는 내내 태양은 더욱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다. 뫼르소는 해변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바위 뒤 샘물에서 다시 만난 아랍인을 향해 다섯 발을 발사한다.
법은 실체적 증거를 진심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야한다. 하지만 법에 상상력이 동원될 때 무한한 권력으로 탈바꿈한다. 실체적 진실은 사라져버리고 집단본능이 자리를 메꾼다. 사실적인 이해관계는 집단적 관념이 지배하며 법은 의미를 상실한다. 법에 대한 해석은 판사, 검사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검사는 살인의 원인에 관심이 없다. 그는 살인에 대한 다른 해석을 유추하며 엄마의 죽음이라는 상상력을 동원한다. 사실적 관계가 뒤바뀐다, 검사의 목적은 유죄다, 그것도 인륜을 거부한 파렴치한 살인죄다.‘이 법정에서는 관용이라고 하는 매우 소극적인 미덕은 고귀한 정의라는 미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시종일관 사회적 정의를 강조하는 검사의 판결이 눈길을 끈다.
‘이방인’The Stranger, Outsider등 다양한 판본으로 출판되었지만 The Stranger로 널리 알려져 있다. The Stranger는 일상을 깨는 사람이다. 평범을 거부하고 자신에 몰두한다. 보편적이고 관념적 세상에 반기를 든다. 무감각하고 무반응하다. 공동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방인은 사회적 소멸을 의미한다. 출간 당시에도 이방인은 난해한 해석으로 다양한 의견들이 난립했다. 특히 카뮈와 함께 실존주의 문학의 중심이었던 샤르트르는 이방인을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적 이변을 일으키는 순진한 자라고 표현했다. 자유와 책임, 무의미성과 사회적 참여를 강조했던 실존주의 문학은 2차 세계대전 후 전쟁의 폐해와 인간성의 말살을 통한 사회의 구조적 갈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 일지도 모르겠다.’ 무심한 말 한마디로 시작한 이방인엔 현실감각을 무시한 까뮈만의 냉소가 담겨있다. 뫼르소의 무관심은 자신과 환경의 분리를 의미한다. 인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 자체다. 자연은 인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부여한 적도 없다. 어쩌면 부조리는 인간만이 지닌 독특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부조리는 욕구와 사회적 현실이 일치되지 않을 때 드러난다. 세상에 무관심했지만 자신만은 잃지 않으려 했던 뫼르소, 그는 결국 죽음이 주는 의미를 진실로 받아들인다. 이해 타산적이고 추상적인 신념 앞에서 자신의 자유와 책임을 선택한 것이다. 이방인은 누구나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여전히 현대인의 삶속에서도 부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