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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앨러스테어 레이놀즈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5년 7월
평점 :

Eversion, 밖에서 안으로 뒤집기란 뜻이다. 눈이 뒤집히다. 발이꺽이다 란 의학적 용어로 많이 사용되는데 엘러스테어는 혼돈이란 의미로 대전환을 책의 주제로 선택했다. 엘러스테어는 대전환을 통해 구조물에 대해 언급한다. 구조물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확정지을 수 없는 혼란 상태를 상징한다. 주인공 사일러스는 구조물을 앞에서 여러 번의 죽음을 맞이한다. 마치 집착을 버리지 못해 이생을 반복하는 불교의 윤회사상이 떠오른다. 탐험 대장 토폴스키는 구조물의 존재를 알지만 대원들을 속인다. 그리고 브루커, 라모스, 코실, 머거크로이드, 모틀락이 중심이 된 데메테르호 선원들은 끝날 것 같지 않은 항해를 시작한다.
19세기, 딱딱한 책상에 앉아 원고를 쓰고 있던 사일러스 앞에 모틀락이 등장한다. 모틀락은 사일러스의 소설에 관심이 많다. 글을 읽을 줄 모르지만 소설의 내용이 지금까지 알았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모틀락은 들은 이야기를 선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긍지로 삼고 있다. 수당이 좋아 배를 타게 된 사일러스와 듬직한 라모스, 일행들은 토플스키의 지휘아래 빙하로 가득한 북극의 균열을 찾아가고 있다. 누구도 왜 균열에 가야하는지,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지 못한 채 거대한 빙하벽 사이를 흐르는 긴 수로에 다가선다. 균열에 가기 위해선 어둡고 침침한 속을 알 수 없는 수로를 건너야만 한다.
그들은 데미테르호를 그 어떤 배보다 튼튼하다고 자부했다. 데메테르호는 좁은 만 입구를 향해 전진하면서 절벽 속으로 들어갔다. 무겁고 축축한 냉기가 갑판 위를 휩쓸고 선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난파선이 발견되었다. 선체의 잔해만이 절벽에 박힌 채 마치 으깨진 곤충처럼 짓눌려있는 유로파호, 그들은 또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을까? 유로파호의 침몰은 토플스키의 배신을 의미했다. 도대체 토플스키는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토플스키와의 실랑이도 잠시, 갑자기 몰려온 조류로 인해 데메테르호는 빙하벽과 충돌한다. 선체는 파괴되었고 부상당한 선원들은 고함을 질렀다. 데메테르호는 절벽과 소용돌이 사이에서 무참히 희롱당하는 노리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부서진 돛대가 추락하면서 사일러스의 허리를 덮쳤다. 마지막 숨을 쉬는 와중에 코실부인의 목소리가 들린다.‘이렇게 죽는다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아요.’
사일러는 꿈을 꾼다. 빛은 멀리서 깜박거리다 이내 사라졌다. 그는 어둠이 가득한 터널에 있다. 거추장스러운 금속제 장비를 착용하고 엄청난 저항을 이겨내려 끙끙댄다. 무기력한 자신을 느끼며 같은 꿈을 꾸었던 기억을 되살린다. 꿈에서 깨어난 사일러스는 몬테비데오를 떠나 남극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도제작자 뒤팽의 지휘아래 선원들은 구조물을 찾고 있었다. 마치 과거의 일을 회상하듯이 사일러스는 사건의 기시감을 느낀다. 같은 선원과 데메테르호 그리고 마주한 석호, 그리고 그들은 또다시 구조물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번엔 광택이 바랜 글씨가 써져있다.‘추진코어 관계자외 출입금지’사일러스는 밀려드는 파도에 죽음을 맞이한다. 대전환은 다시 시작된다.
본 소설은 동일인물, 동일사건이 시대적 배경을 달리하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등장인물들은 동일한 플롯을 벗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SF소설의 매력은 후반부를 통해 다양하게 나타난다. 사일러스의 실체는 무엇일까? 왜 토플스키는 구조물의 비밀을 끝까지 숨기려 했을까? 무엇보다 코실은 사일러스의 죽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목성의 위성 유로파의 얼음 속으로 향하는 대전환은 무지와 의심이라는 SF소설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사일러스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미래를 시뮬레이션 한다. 이는 소설의 복선을 예기하며 시대적 전환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데메테르호와 사일러스, 그들은 어떤 퍼즐을 풀고 있는 것일까? 대전환은 혼돈의 공간이다. 사일러스의 시뮬레이션은 시공간이 뒤죽박죽이다. 원정은 실패했지만 살아남은 승무원들은 데메테르호와 함께 지구로 귀환한다. 혼돈은 귀환과 엮여있다. 진실에 다가갈 때마다 내 세계는 뒤집혔다. 데메테르호 원정대와 함께 미지의 세계를 만나보길 기대한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