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열다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자비네 아이켄로트 외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시가 형성되기 전 숲은 삶의 터전이었다. 인간은 숲에서 나고 자랐으며 숲이 주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했다. 소년들은 더 이상 숲에서 경이로움이나 신비감을 찾지 않는다. 그들 손에서 흙과 숲의 축축함이 사라져갔다. 오감은 세상의 소리에 적응한다. 숲의 고요함, 새와 짐승의 소리, 비릿한 향기, 풀이 자라나는 기적과 함께 세상을 이해해왔다. 마음은 항상 풍요로웠다. 숲이 함께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숲은 우리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숲은 조용하고 흔적 없이 자란다, 인간은 숲이 변하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숲은 자연이 허락하는 순간을 받아들인다. 숲을 떠난 인간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인생을 숲에 비유할 수 있을까? 발저의 산문과 시엔 그가 경험하고 현현했건 숲에 대한 지독한 애착과 사랑, 그리움 슬픔이 묻어난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도시는 빠르게 과거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인간은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현재를 더욱 사랑한다. 숲은 파괴되고 빠르게 사라져갔다. 꿈꾸었던 삶의 정경이 무너져간 것이다. 1은 저자의 숲에 대한 강한 집념과 애착을 보여준다.‘나는 이 숲에 들어왔고 지금은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저자는 평온은 끝났고 세상은 죽었다고 외친다. 그는 숨 쉴 곳을 찾아 숲에 왔다. 숲속에 걸친 노릇노릇한 햇살은 어둠에 감춰진 삶의 희망을 예견하고 잃었던 감각과 감정을 꿈틀거린다. ‘내 심장은 수천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져 이리저리 헤매다 모든 것에 황홀하게 매달린다.’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만큼 숲을 사랑한다. 이제 그가 살아갈 곳은 숲이다.

 

숲에 가면 잃었던 감각이 되살아난다. 푹신한 흙, 부드러운 공기, 귓가를 맴도는 새소리, 자유로운 나무의 속삭임, 저자는 매일 숲의 소리를 통해 살아있음을 감사한다. 숲은 기적을 만나고 기적을 일으키는 곳이다. 숲은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고통스러워한다. 가만히 않아 숲의 정기를 느껴보라, 지금껏 품었던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 찾아올 것이다.‘나뭇가지는 숲의 물결이고 푸른빛은 사랑스러운 촉촉한 물이다. 나는 죽어 그 물과 함께, 그 물결과 함께 달아난다. 나는 이제 물결이고, 물이고, 강이고, 숲이다. 숲 그 자체다.’고통 앞에서 바라본 인생의 부조리, 숲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에 맡기라고 조언한다. 숲을 받아들이는 것은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의 지혜를 숲은 직접 가르쳐주고 있다. 왜 고통 받는 많은 이들이 생의 마지막을 숲과 함께 지내길 원하는가? 그리고 그들은 치유 못지않게 삶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본 책은 짧은 시와 산문, 그리고 카를 발저의 다채로운 그림이 정겹게 펼쳐져있다. 숲에 대한 형제의 애틋한 정감이 엿보인다. 무더운 날 발저는 숲으로 뒤덮인 가파른 산을 올랐다. 초록빛 숲에 오르자 멋진 풍경을 마주한다. 높은 하늘을 감싸 안은 푸른빛, 작디작은 세상,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순간, 수많은 인파들, 하지만 숲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다. 그리고 조그만 벤치 앞에 놓인 전나무가지와 작은 손수건, 작은 인형을 마주한다.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따뜻해진다. 작은 아이가 마법의 물건을 놓고 간 것이다. 길거리에 있었다면 버려질 물건이었지만 숲은 인간과의 공유를 선택했다.‘오 신이여저자의 외침은 삶에 대한 아름다움이다. 아이의 천진무구함은 얼마나 선하던가! 작은 나뭇가지 하나에서 세상의 선함과 아름다움, 위대함, 행복, 사랑에 대한 믿음을 만날 수 있다.

 

숲은 왜 초록으로 덮여있을까? 초록은 오묘한 색이다. 태양에 반사된 호수는 숲으로 인해 초록색으로 덮여진다. 저자는 숲이 초록색이 된 이유를 불가사의하고 흥분되고 오싹한 것이 담겨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초록은 단순하지 않다. 봄이 오면 숲은 초록으로 퍼져나간다. 초록은 광란의 색이다. 미친 듯이 춤을 추고, 분노하고, 솟아나고, 활활 타오른다. 초록은 희망의 색이다. 공포와 좌절의 한 가운데 희망을 품으며 삶을 이야기한다.‘파랑이 우리의 생각과 시 같고, 빨강은 우리의 더 나은 욕망 같고, 형언할 수 없이 짙은 초록은 우리의 삶과 같다.’ 마치 지독한 열정을 앓았던 청년이 숲을 만나고 삶을 이해하는 생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 같다. 초록은 삶이자 사랑이다. 숲이 초록인 이유는 세상과의 조화다. 어쩌면 숲은 과거 현재 미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체로서의 일부인 인간, 숲을 이해하는 것은 삶을 이해하고 만나는 과정이다. 발저의 깊은 철학적 사유에 스스로의 발자취를 돌아볼 시간이다. 숲의 애찬과 찬미, 그리고 사랑, 폭풍처럼 거칠지만 너무도 고요한 숲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