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진짜 직업
나심 엘 카블리 지음, 이나래 옮김 / 현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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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의사, 중국은 공학자, 세대를 막론하고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국가의 방향과 개인의 성취만족도를 추종한다. 이념이 달라서 선택이 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사회 의사는 독특한 시스템 하에서 특별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의사라는 직업은 경제적 궁핍과는 거리가 멀다. 엄청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에 따른 보상도 확실하다. 고령화가 확장되고 건강에 대한 염려가 커질수록 의사는 더욱 보장된 삶을 가져갈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도 이런 직업이 있었다. 신학자와 철학자다. 지금과 같은 직업적 의미는 아니었지만 당시 일반인들과는 분명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존재와 인식에 관한 내적성찰을 사유했던 철학자들은 어떻게 직업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을까?

 

철학교수이자 박사인 나심 엘카블리는 2023년 프랑스에서 철학자들의 진짜직업 시리즈를 진행했다. 타인의 생각을 유영하며 자신의 길을 찾고자했던 철학자들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었을까? 본 책은 스피노자로부터 시본 베유까지 시대를 아우르며 깨달음을 전해준 당대의 철학가 40인의 진짜직업을 소개하고 있다. 에티카를 집필한 스피노자의 직업은 렌즈 세공사였다. 17세기 계몽의 물결이 유럽에 확산될 때 다양한 광학기기들이 발명되었고 섬세한 손재주를 가진 스피노자는 연마 디스크를 사용해 렌즈를 가공했다. 언뜻 기하학이라는 추상적 관념은 실체적인 렌즈세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광학기기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 보이는 것보단 그 이면에 감춰진 실상을 인식하는 것이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현실을 왜곡하는 직관적 시선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도 어렵다. 이럴 때 믿을만한 철학자가 세상의 진위여부를 가려준다면 훨씬 안정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전쟁과 망명을 겪은 아렌트는 공적 토론의 장이라는 공개성을 구체적으로 구현한 기자다. 소수 전문가들이 독점하던 사유, 추상적인 언어가 남발하던 시대, 자본화 되어가는 시대적 상황에 맞서 세상의 관심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온 철학가다. 모든 정보는 논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보가 일방적일 때 세상은 혼란을 동반한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사회는 진보든 보수든 언론에 자유롭다. 하지만 언론권력이 득세한다면 철학은 사라지고 삶은 피폐해질 것이다. 아렌트는 기존방식을 거부하고 다르게 사유하는 방식을 제시한 인물이다.

 

뤽상부르 정원에서 루아얄광장까지, 산술기계와 기계식 계산기를 발명한 파스칼은 파리에서 최초로 대중교통시스템을 개발한 사업가였다. 철저한 얀센주의자이자 금욕주의자였던 파스칼은 신은 믿어서 손해 볼 것이 없다는 변증론을 주장하며 철학적 입지를 구축했고 사업에서도 대단히 성공해 큰 부를 이루었다. 그는 스스로 개발한 프로젝트를 광고하기 위해 카피라이터로서도 상당한 수단을 발휘했다. 최근 자주 회자되는 세네카, 그의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인이자 교사이자 황제의 친구로 주로 권력주변에서 인생을 보냈다. 하지만 네로의 신임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세네카는 어렸을 적 심한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내적성찰에 집중했고 고요한 마음의 평온이라는 아타락시아를 주장하는 스토아학파에 심취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마음에 두지 말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세네카는 한치 앞을 알지 못하는 인생을 통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준다.

 

철학은 하나의 활동, 취미, 지적 욕구의 실현이자 열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현실적인 직업과는 상반되는 일이다. 저자는 철학자의 진짜직업을 통해 실체와 사상의 접목을 시도한다. 몸과 마음은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세세한 일상은 세심한 철학적 사유가 뒷받침되고 존재를 깨닫기 위해선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우린 그 어느 때보다 직업적 계보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삶의 철학이 먼저일까? 사회적 직업의 순위가 우선일까? 철학이 없는 직업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생각 없는 사회가 진행 중이라는 뉴스가 자주 등장한다. 철학은 인공지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철학 자체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철학가들은 철학을 위해 직업적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위대한 사상가의 본업과 그 속에 감춰진 흥미진진한 삶의 역설을 통해 진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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