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에 대하여 (라틴어 원전 완역본) -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세네카의 가르침 현대지성 클래식 67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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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무관심은 기득권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의 의사표현이다. 사회적 분노는 역사의 물꼬를 바꾸어 왔다. 인류의 역사는 크고 작은 분노를 중심으로 권력체제를 교체해왔으며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작금엔 소득양극화, 이민, 권력투쟁, 정치부패가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전투를 하는 병사에겐 반드시 분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성을 벗어난 거친 언행과 욕망, 타인을 물화하는 분노는 눈앞에 직면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분노가 인류역사의 일부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승자와 패자라는 구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분노는 여전히 인간의 감정을 지배할 것이다.

 

세네카가 생존했던 제정 로마시대 또한 분노의 시대였다. 칼리귤라, 메살리나, 네로, 이름만으로도 탐욕적이고 비이성적인 지배자들이 초기로마를 지배했다. 어린 시절 천식과 결핵으로 죽음을 경험했던 세네카는 10년간의 성찰을 통해 삶의 덧없음과 인간의 태도를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후에 정치가이자 철학자로서 큰 명성을 얻지만 결국 네로의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생을 마친다. 세네카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집중하라는 스토아학파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평생 그를 괴롭혔던 질병과 권력이라는 통제 밖의 변수가 그만의 삶의 철학을 구도한 것이다. 스토아학파는 감정의 통제와 이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수세기동안 로마의 철학을 이끌어왔다, 화나고 불안한 시대 세네카는 분노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펼쳐갔을까?

 

세네카는 모든 감정 중 분노를 가장 혐오했다. 심지어는 악덕이라고 평하며 고집스럽고 고치기 어려운 질병이라고까지 평가한다. 시대적 흐름과는 관계없이 분노는 여전히 타인과 자신의 삶을 엉망으로 망가뜨리고 관계를 후퇴시킨다. 무엇보다 분노는 분노의 상대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분노는 외부 자극으로부터 감각을 통해 감정을 지배하게 된다. 분노는 어떤 감정보다 폭발적이고 주체하기 어렵다. 세네카는 이를 통제하기 어려운 정념이라 표현하며 이성적 절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세네카는 기대가 무시당하거나 뜻이 꺾였다는 감정이 일어날 때 분노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기대는 크고 작은 일이나 사건을 가리지 않는다. 기대하는 욕구는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고의 근간이다. 결국 분노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이나 가족에게 피해를 준 자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네카는 분노와 같은 정념은 불안정하고 본능적 충동만 있을 뿐 어떠한 사리분별이나 성찰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설령 자신에게 피해를 끼친 이에게 벌을 주더라도 분노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법의 판단에 맡겨야한다고 주장한다. 세네카의 주장에 다수의 이론가들이 분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세네카는 가장 쉽게 분노하는 이들이 불만으로 가득한 허약한 존재들이라 평가한다. 세네카는 분노를 벌하고자하는 욕망이라 말하며 영혼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기에 처벌의 대상이라기보다 치유나 교정의 대상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분노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가장 지혜로운 태도는 분노의 최초 자극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분노가 이성을 이기는 순간 이성도 분노에 휩쓸려 정념에 빠지게 된다. 정념을 이길 방법이 없다. 세네카는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분노가 필요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노 옹호를 비판한다. 분노는 통제가 불가능하기에 오히려 적과 맞서기 위해서는 충동을 억제하고, 모든 행동을 절제와 규율 속에 두어여 한다고 강조한다. 세네카의 이성적 판단은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공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노라는 정념은 관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필요치 않는 악덕이다.

 

본 책은 분노에 대한 3편의 에세이와 관용에 관한 2, 평정심과 항상심에 대한 세네카의 깊은 성찰이 담겨있다. 저자는 세네카의 철학을 인생의 상처를 치유하는 연고라고 평가한다. 세네카는 이론가이자 실천적 철학가다. 분노의 본질에 대해 이토록 깊이 사유하고 해결방법과 치료법을 상세히 기록한 이가 있을까? 본 책엔 분노뿐만이 아니라 네로를 교육시키기 위한 관용에 대하여도 포함되어있다. 음모와 복수가 일상이었던 시대, 세네카의 관용이론은 정치윤리학의 백미로 손꼽히고 있다. 철학은 존재론이다. 나라는 존재와 세상과의 관계를 통해 실존을 깨닫는 성찰의 과정이다. 인간은 감정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은 가능하다, 지식을 배우고 지혜를 깨닫는 순간이 보다 나은 선택을 위한 철학적 과정이다. 쉽게 판단하고 빠르게 이해되는 시대에, 세네카의 묵직한 철학적 사유를 추천한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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