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 - 우리가 법을 믿지 못할 때 필요한 시민 수업
신디 L. 스캐치 지음, 김내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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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 법의 역사와 실존적 의미를 직접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법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제시할 수 있다. 법은 민주주의 국가뿐만이 아니라 전체주의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동일한 방법을 통해 규정된다. 다른 점은 법의 구속력과 범위의 한계다. 또한 법 집행자의 의지 여부가 직간접적으로 적용된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을 믿는 사람이 있을까? 이념은 정당이나 개인의 부조리를 방어하기 위한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만 대부분 법 앞의 평등이란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다수 국민들은 법의 구속력 앞에 무방비 상태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법이 개인주권주의를 표방하는 민주주의를 배반하는 순간 법치주의는 상상 이상의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는 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을 방어하려는 세력 못지않게 법을 수행해왔던 정치역사의 아이러니다. 올바른 법의 기준은 무엇일까? 법이 항상 정의를 실현하는 기준이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고 법의 구속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저자는 근대사회를 이끌어온 법의 구속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최소한의 조건조차 지키지 못하는 법치가 어떻게 개혁과 혁명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독재의 신호탄이 될 수 있는지 복잡하고 다양한 정치 개혁과정의 소용돌이 속에 감추어진 법의 실상을 파헤친다. 법은 법을 잘 아는 권력자들에 가장 좋은 무기이자 방패다. 하지만 법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겐 자유를 박탈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을 겪어야할 공공의 적이다. 이는 사회장벽의 붕괴와 함께 잠시 찾아온 희망이 어떻게 그토록 쉽게 무너지며 변화의 불확실성에 노출되는지 아랍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들에 의해 증명되어왔다. 우리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국가의 성장을 가로막는 대부분의 범죄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법을 책임지는 관료들과 선출된 권력의 직권남용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법꾸라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법의 효능성을 가장 디테일하게 파악하며 처신에 맞게 적용한다. 또한 법관들은 법을 다루는 이들에 극히 우호적이다.

 

본서는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법의 효용성을 의심하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법에 위임하는가의 문제를 밝히고 있다. 또한 법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먼저 법이 어떻게 인간사회의 주류가 되었는지, 고대 창조신화를 통해 선한질서와 권위의 관계를 꺼내든다. 부족단위가 도시단위로 변화하면 인구증가에 다른 복잡성과 다양성이 증가한다. 가능한 예측시스템이 부재하다면 사회는 혼란과 혼돈이 지속될 것이며 쉽게 와해될 것이다. 창조신화는 혼돈한 사회에 질서를 부과할 수 있는 좋은 메시지였다. 신의 개입 이후 나타난 우주질서는 선한 권위를 가져야 했으며 권위는 나쁜 것을 파과하고 재창조함으로 선한질서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선한 질서의 좋은 점은 그것이 권위에 의해 강제되며 실제로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회를 안전하고 안정적이며 예측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인간을 집단으로 묶어주고 타자를 배제할 수 있는, 때론 규칙을 깨뜨렸을 때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는 법의 탄생이다.

 

그런데 법의 탄생이 민주주의에 정말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을까? 저자는 세 가지의 세속적 오류를 예로 들며 법과 민주주의, 개인의 관계를 파헤친다. 어느 순간 헌법은 자체적으로 정의로 인식되고 있다. 최상위 법으로 모든 법률과 규칙의 기준이 되며 사회적 관계를 구속한다. 하지만 헌법은 시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시대에 따라 변화되는 헌법의 역할이 정의로울 수 있을까? 무엇보다 공정한 판단과 결정을 믿을 수 있을까? 구속력이 강한 법의 역할은 사회를 정의하는 판단기준이 되었으며 개방성, 열린사회, 공론이라는 인간 본연의 협동과 자율성을 철저히 배제한 채 분열과 위계질서라는 분리의 수단으로 대체되고 있다. 민주주의란 의미가 법의 강제성과 구속력에 심각한 제한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개인의 선택과 판단이 법에 의해 강제되며 개인의 자율성이 제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본서는 법을 비판하거나 법의 효용성을 무시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법을 가치를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며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 이념이 어떻게 법에 의해 오용되고 해석되는지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

 

민주주의 국가에 법의 구속력이 강화될수록 수많은 사상자와 철학가들은 창발적 질서의 가능성에 주목해왔다. 안정성으로서의 질서라는 관념이 법치국가의 근간을 만들어오면서 자발적인 인간의 통치는 빠르게 밖으로 밀려나갔다. 그런데 팬데믹과 같은 외부적 재앙이 닥쳤을 때 개인은 법보다는 자율통제에 훨씬 안정적인 공간을 확보했다. 놀랍게도 위계와 분리라는 경계선도 쉽게 무너졌다. 저자는 2부를 통해 법의 한계성과 지속가능한 사회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약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생각을 통제하고 자율적인 행동을 통해 공유와 공론의 장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질서유지를 위해 법의 효용성을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법이란 관념이 있기에 자율적 통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법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민주주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옳고 그르다란 이분법적인 사고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빠르게 해소할지 모르지만 문제해결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수용과 포용, 다름의 이해, 개인과 타인의 권리에 대한 해석, 무엇보다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선택의 기준을 어떻게 적용하는가, 법의 남용이 심각한 시대에 저자는 법치주의의 한계와 허상 그 위험성을 고발하며 민주주의의 주체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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