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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부의 사랑법
테일러 젠킨스 리드 지음, 이경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6월
평점 :

수정같이 맑고 푸른 태평양을 머금은 파도, 광활하고 건조한 산악지대, 이 둘을 시샘하듯 반듯하게 가로지르는 PCH(태평양연안고속도로), 샌타아나의 뜨거운 바람은 내륙을 통과한 후 거세게 해안가에 부딪힌다. 뜨거운 바람은 가끔 재앙의 근원이 되었다. 캘리포니아는 지난 수세기동안 반복적으로 화마가 휩쓸고 갔다. 산악지대의 뜨거운 불씨는 삶의 터전을 빼앗아갔지만 그곳은 놀랍게도 매번 새로운 희망이 싹을 튼다. 1983년 사랑스런 말리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엔 해안으로부터 불씨가 시작되었다.
말리부 해안을 따라 조그만 가게들이 늘어서있다. 준은 부모와 함께 퍼시픽 피시라는 식당을 근근이 운영하는 밝고 명랑한 아가씨였다. 그녀는 식당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잘생긴 청년 믹을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부모의 난폭함에 질려버린 가수지망생 믹은 착하고 순수한 준을 만나면서 단란한 가정을 꿈꾼다. 사랑으로 가정을 이끌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아내 준, 둘의 사랑은 니나의 탄생과 함께 더욱 무르익어 갔다. 준의 헌신은 믹에게 안정을 주었고 가수로서의 성공도 빠르게 다가왔다. 하지만 믹의 성공이 준에겐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믹은 캘리포니아를 넘어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성공했다. 잘생기고 멋진 믹에겐 끊임없는 유혹이 뒤따랐고 믹은 어떤 유혹도 거절하지 않았다. 결국 믹의 성공은 그가 원했던 가정을 파괴했고 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성공 뒤의 무료함. 공허함이 급작스럽게 믹에게 찾아왔다. 그는 포근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준이 필요했다. 믹을 버릴 수 없었던 준은 믹과의 재결합을 허락한다. 하지만 더 큰 불행이 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준은 믹을 믿을 수 없었지만 아이들에겐 그가 필요했다. 하지만 믹은 어느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준을 떠났다. 그리고 준에겐 그가 보살펴야할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니나, 제이, 허드 키트는 준과믹의 네 자녀다. 아이들은 엄마의 죽음을 통해 아빠의 존재를 부정하며 지독한 삶의 운명 앞에 좌절한다. 다행이라면 그들에겐 부모가 물려준 우월한 유전자가 있었다. 또한 평생 곁을 떠나지 않았던 파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혜의 조건을 갖춘 말리부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서퍼들이 활동하며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말리부를 찾는다. 성인이 된 니나는 동생들의 안위가 걱정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 주어진 운명을 한 번도 거부하지 않았다. 브랜던이라는 세계적 테니스 스타와의 결혼을 통해 그녀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또한 서퍼로서 세계적 모델이 되었고 자신의 일을 즐겼다. 이젠 리바스 시푸드로 변신한 가게도 번창하고 있다. 니나와 형제들은 더 이상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해결하지 못한 불안이 항상 그녀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사건은 1983년 8월 27일 오후 7시에 시작되었다. 니나는 자립을 기념으로 동생들과 함께 리바스 파티를 진행해 왔다. 가족끼리의 모임은 수년이 흐른 후 수백 명의 인기인들이 모이는 파티로 탈바꿈했다. 할리우드 스타는 물론이고 각계에서 이름을 날리거나 싶어 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말리부 나나의 집을 찾아왔다. 니나 리바는 이름만으로도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스타였다. 파티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은 누구나 니나의 파티에 참석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 자신들이 파티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정작 니나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다. 이번 파티엔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막내 키트는 매년 믹에게 파티에 참석해줄 것을 요구하는 엽서를 보냈다. 50에 접어든 믹은 수년간 아이들에게 어떠한 아빠 노릇도 하지 않았고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며 인생을 즐겼다. 하지만 공연에서 돌아온 그는 커다란 집 안에 갇힌 자신을 바라보며 무료함, 공허함에 치를 떤다. 성공과 부, 타인의 기대와 쾌락이 더 이상 그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가족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니나와 아이들이 필요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파티는 엉망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해안가에선 아빠 역할을 수행하려는 믹과 이를 거부하는 아이들 간의 논쟁이 한창이다.
저자는 말리부를 통해 1960~80년대 미국의 성장기 고민을 꺼내든다. 가난을 극복한 믹의 성공이 준의 삶을 보장해주진 않았다. 가족이란 경계선이 불분명한 시대,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 하지만 전체적인 아웃라인은 결국 가족의 합체다. 전형적인 미국인의 인식을 느낄 수 있는 직품이다. 또한 본 작품은 다양한 인물을 통해 혼돈스러운 사랑법을 공개한다. 정상이 무엇이고 비정상이 무엇인지,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보다는 즉흥적이고 에로스적인 사랑이 삶의 전반에 투영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세상엔 다양한 사고방식이 존재하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니나는 자유를 찾아 떠난다. 구속이란 결국 자신에 갇힌 멍에를 스스로 짊어지는 것이 아닌가? 사랑이든 자유든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테일러 젠킨스 리드는 말리부 사랑법을 통해 사랑과 유대, 자유를 아름답고 세밀하게 풀어간다.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몰입감이 뛰어나다. 올 여름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를 추천한다면 말리부 사랑법을 소개하고 싶다. 중독성있는 테일러만의 이야기를 추천한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