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오랫동안
루스 베네딕트 지음, 정미나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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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국가는 왜 패권을 차지하려는 것일까? 그들이 진정 세계 평화와 질서를 구축한다고 믿는 것일까? 경제적 이해관계든 정치적 술수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패권국들의 열망은 해당국가에 치명적인 고통과 고난을 안겨주었다. 민족의 정당성이 권력에 의해 좌우된다면 2차 세계대전당시 진주만을 침공한 일본 군국주의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당시 일본 침공의 목적은 대동아공영권의 확보였다. 동아시아를 서양 제국주의로 해방시키는데 계층적 위계질서가 확립된 일본만이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계층적 위계질서는 일본 근대사의 산업구조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동아시아 최초로 근대화를 이룬 일본은 자국의 성장을 근거로 동아시아의 위계질서를 주장한다. 동아시아 모든 나라는 일본의 위계를 중심으로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한다는 허무맹랑한 구상을 꿈꾼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는 전쟁을 통한 패권확보였다. 이를 저지했던 미국이 새로운 강자로 떠올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국화와 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해할 수 없는 일본군의 행동을 파악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미 정부가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에 부여한 연구과제였다. 저자는 일본에 가본 적이 없었다. 또한 일본인을 만난 적도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국에 상존하는 일본인을 만나고 일본 문화를 공부하며 일본의 사고와 행동을 세심하게 기록하고 관찰하며 과제를 수행한다. 그녀는 일본을 모순의 나라라 평가한다. 칼과 국화는 무사의 혼이 담긴 칼과 세밀하고 소심하게 다루어야하는 국화를 상징한다. 둘은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나타내고 그들의 사고와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상징이다.

 

각 국가마다 민족을 상징하는 특별한 상징이 존재한다. 미국의 보편적 근거는 자유민주주의다. 공존공영은 미국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반면에 일본은 물질적 승리보단 정신적 승리를 원했다. 당시 일본정부와 군대를 이끌었던 리더들의 호소는 기가 막힐 정도로 처량하다. ‘몸이 고달플수록 정신력이 드높아진다.’추위와 배고픔에 벌벌 떠는 자국민들의 일상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직 정신적 승리만을 추구해야한다는 강박은 일왕에 대한 무조건적인 망상과 맥을 같이한다. 일왕은 전쟁과 평화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지만 일본인에게 절대적 상징으로 사고와 행위의 근간이 되었다.‘천황의 뜻을 받들고, 천황의 명에 목숨을 바쳐야한다.’당시 일왕은 곧 일본이었으며 천황이 없는 일본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니러니 한 것은 일왕에 대한 무제한적인 충성이 전쟁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봉건시대 내내 일왕은 쇼군이나 다이묘에 갇힌 그림자와 같은 존재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엔 야전병원은 물론이고 부상병을 치료할 응급시설도 없었다고 한다. 부상당하거나 아픈 병사들은 파손된 물건 취급을 받았다. 전투력이 병사의 조건이었으며 생사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만이 미덕이었다. 이는 일본군국주의 절대적 허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아무리 철저히 정신적으로 무장을 했어도 옆 동료가 치료도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자신은 어떤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일본은 자체적으로 패망의 원인을 정신적 무장의 실패라 평가한다. 하지만 이면엔 미국이라는 거대국가를 상대로 군국주의 가능성을 시험하려는 오만이 축적되어 있었다. 전후에도 일본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낸다. 한 가지 달라진 부분은 강자의 위치를 잘 파악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위계질서에 의한 판단을 서슴지 않는다. 100년이 지나가지만 한국과의 문제를 정치적 이해관계로 해석한다. 화해와 대화가 그들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것일까?

 

흔히 일본을 가깝고 먼 나라라 이야기한다. 개인의 일본 선호도는 갈수록 늘어가지만 정치적 해법은 요원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여론도 별반 차이가 없다. 세계인, 특히 미국이 바라보는 일본과 한국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반도체를 비롯한 다양한 제조업을 가져와 경제성장을 일으켜왔다. 또한 한국인의 일본 방문은 해마다 새로운 기록을 경신한다. 분명 두 국가는 가장 인접해있지만 다름이 존재한다. 루스 베네딕트의 일본연구는 근대사의 소용돌이와 군국주의에 사로잡힌 과거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일본은 자국의 경제적 위상에 맞는 군사적 우위를 가져가기 위한 로비를 아끼지 않고 있다. 또한 최근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위기감도 팽배해 있다. 국화와 칼은 아름다움 속에서 칼을 벼르는 일본이란 말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루스 베네딕트의 일본 연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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