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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속물근성에 대하여 - SBS PD가 들여다본 사물 속 인문학
임찬묵 지음 / 디페랑스 / 2025년 6월
평점 :

우리 삶은 다양한 매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갑니다. 들판에 피어난 꽃 하나만으로 회상에 빠져들 기도하고 흘러가는 구름을 마주하며 감정에 몰입하기도 합니다. 하물며 오랜 기간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물건은 어떨까요? 누군가에나 자신을 상징하는 古物이 있습니다. 묵묵히 자신 곁을 지켜준 친구와 같은 존재입니다. 오래된 물건일수록 애착이 갑니다. 버리지 못하는 마음엔 묵혀있던 애정이 담겨있습니다. 물건은 새겨진 흔적을 통해 추억을 만나고 과거를 떠올리게 합니다. 현재를 연결하는 연료가 되는 것입니다. 좋아서 구경한다는 완상이란 의미는 사물과의 동질화를 떠올립니다. 저자는 사물완상을‘나이가 들어 조금은 깊어진 마음이 철없던 나를 만나 세상을 이야기한다’라 이야기합니다. 과거와의 단절이 아쉬운 고백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속물근성과 물욕을 꺼내듭니다. 누구나 은근히 과시하고픈 마음이 없을 리 없고 하나보다는 두 개를 갖고 싶은 욕망이 사라질 리 없습니다. 애주가였던 저자는 마리아쥬프레르 마르코폴로의 환상적인 향기에 반해 홍차에 빠져듭니다. 홍차는 중국이 원산지로 아주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었기에 귀족계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귀족은 지위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기위해 문화자본을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귀족적 품위의 탄생입니다. 부르디와는 귀족만이 지닌 품위를 아비투스라 이름짓는데 굳이 교양 있어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몸에 배어 드러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일반인들과 구별 짓는 귀족만의 아우라입니다. 저자의 홍차 애찬은 찻잔으로 이어지며 욕망의 사다리를 업그레이드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이 귀족의 아비투스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속물근성과 욕망은 감정 속에 숨긴 원초적인 모습입니다.
쉽게 잊히고 지나갈 수 있지만 사물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무척 놀랍습니다. 공자의 인과 예를 꺼내며 현대사회의 격식과 품위를 비교합니다. 인을 마음에 품고 예를 맞춘다. 인만 주장하면 촌스럽고 예만 강조하면 겉만 번지르합니다. 文質彬彬(문질빈빈)은 인의 내용과 예의 형식이 조화를 갖춰야함을 의미합니다. 품위와 격식이 무너져가는 현실을 비관하지만 사회 흐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외모가 자신을 만든다는 말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품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유로운 것도 좋지만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규칙과 규정엔 품위와 태도가 함축되어있습니다.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공자의 문절빈빈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과거엔 양복에 맞춰 제법 근사한 시계가 눈길을 끌었는데 스마트폰이 활성화 되면서 쉽게 잊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애호가들은 클래식 시계를 선호합니다. 저자의 속물근성은 부로바라는 시계를 통해 표현됩니다. 저자는 엄청난 가격의 초고가의 시계를 뒤로하고 과거 예물시계로 이름 날리던 부로바를 선택합니다. 중고시장을 뒤져 구입했지만 흠집이 많고 너무 낡아 작동여부도 알 수 없습니다. 결국 구입비보다 많은 가격을 들여 수리를 맡깁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시계가 탄생합니다. 클래식엔 고고한 기운이 감도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옵니다. 벤야민은‘작품이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어도 거기에 담긴 신선함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신비함을 느낄 수 있다’며 예술작품이 지닌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표현합니다. 만족은 소유자의 몫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멋진 시계와의 만남이 탐나는 순간입니다.
저자의 오랜 기간 PD라는 직업을 통해 수많은 사건과 사물, 인간관계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허영과 미감이라는 주제를 통해 사물완상을 이야기하고 인간을 주제로 자신이 겪었던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종군PD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습니다. 프로그램에 올인하다보면 사건의 본 모습을 잃게 됩니다. 파괴된 건물과 절망에 빠진 난민들, 당시엔 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음을 고백하며 삶의 원칙과 태도를 되새겨봅니다.
지긋이 한곳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이는 반가사유상, 불교의 오온계공은 모든 생명은 서로 영향을 주며 매 순간 생기고 없어지니 실체 없는 자아에 집착하지 말라 고 말합니다. 인간은 보이는 그대로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데로 믿습니다. 절대적이라 믿었던 것은 허상에 불과합니다, 저자의 사물완상은 원을 연상시킵니다. 사물에 대한 애착, 정원에 대한 사랑, 직업과 인간관계의 변화, 그리고 삶의 자세와 태도, 결국 모든 것은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는 원과 같습니다. 하지만 생의 놀라움을 알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볼거리 가득하고 생각할 거리 수북한 그 남자의 속물근성, 담백하고 솔직한 인문학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