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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ㅣ 코너스톤 초판본 리커버
헤르만 헤세 지음, 강영옥 옮김, 김욱동 해설 / 코너스톤 / 2025년 4월
평점 :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일까? 그런데 세상에 정답이 존재할까? 헤세의 질문은 싯다르타의 인생을 통해 실존적 고뇌와 번민, 삶과 죽음, 배움과 앎이라는 주제로 새롭게 등장한다. 유복한 가정이란 조건이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지도 모르지만 궁극적 삶의 목적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스스로 자유롭다 생각하지만 수많은 조건에 익숙하며 다양한 삶에 접근하는 방법에 서투르다. 제한된 환경은 사유의 자유를 가로막는다. 현실을 벗어나고픈 욕망은 삶의 원초적 질문에 대한 몸부림이다. 뛰어난 재능을 갖춘 싯다르타, 그는 스승의 지혜와 아버지의 가르침으로는 열락에 이르는 길에 들어설 수 없었다. 밖에서는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는 자신에 주어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문을 찾아 길을 떠난다.
숲속의 삶을 통해 고행, 명상, 단식을 경험했지만 이 또한 자신을 구속시키는 과정의 일부임을 깨닫고 불세존이라 불리며 세상에 지혜를 전달하는 가우타마를 만나기 위해 사문을 떠난다. 가우타마의 설법은 삼라만상의 통합이자 번뇌로부터의 탈출이었다.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고 오랜 벗 고빈다도 가우타마의 제자가 되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가우타마의 배움을 통해 자신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그동안 지독하게 억눌렀던 자아를 세밀하게 바라본다. 아트만과 속세는 무엇인가? 나란 존재의 의미를 부셔버린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에 아트만과 속세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방황하며 숲속 길을 걷는 그 앞에 나타난 것은 카밀라라 불리는 아름다운 여자였고 싯다르타는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감각과 육욕을 경험하게 된다.
카밀라는 농밀하고 치밀하게 싯다르타를 사로잡는다. 싯다르타는 그녀의 도움으로 큰 부와 명예를 얻게 되며 빠르게 속세의 삶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부와 탐욕을 쌓으면 쌓을수록 공허함이 커져갔다. 삶의 무료함이 그를 짓누르고 육욕이 그를 사로잡았다. 싯다르타는 스스로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다. 단식하던 싯다르타는 배가 불렀고, 고행하던 싯다르타는 세상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도박으로 모든 것을 잃은 싯다르타는 카밀라와의 마지막을 보내고 예전에 자신을 인도했던 강가에 도착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더럽혀진 현재의 모습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성스러운 단어인 옴이었다. 옴은 브라만의 처음과 마지막을 이루는 신성하고 완전한 의미를 지닌 단어였다. 싯다르타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새로 태어나기 위해 유유히 흐르는 강을 바라본다.
뱃사공이 된 싯다르타, 오고가는 많은 사람을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삶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해되고 해석되며 이는 자신에게도 적용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오랜 기간의 수행과 기도, 단식과 명상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한때 자신은 높이 떠있는 별이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은 떨어지는 낙엽이라 칭했던 그의 고매함은 자신의 아들과의 만남을 통해 산산이 부서진다. 부자간의 정은 그가 마주한 최고의 아픔이었고 상실이었으며 기쁨과 그리움이었다. 성자라도 아들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결국 상실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아들을 떠나보낸다. 이는 그가 마지막 깨달음을 얻게 되는 최후의 순간이다.
싯다르타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크고 작은 수많은 소리가 들린다. 이는 물이 흐르는 소리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음이 결합하는 소리다. 물은 낮은 곳으로 가지만 결국 구름에 실려 생명을 거쳐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다. 윤회는 삶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삶의 진리는 무엇일까? 바수데바의 마지막을 배웅한 싯다르타는 삶의 진정한 깨달음을 전해준 그와의 만남에 경건함과 존경을 표한다. 평생을 뱃사공으로 지낸 바수데바는 자신이 찾고자 했던 어떤 성자나 지식인보다 뛰어난 삶의 철학을 가르쳐주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삶이 어떠해야하는지, 모든 이들이 자신의 답을 찾아가지만 결국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다. 실존적인 삶, 기쁨과 슬픔, 사랑과 분노, 선과 악이 공존하고 공생하는 삶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헤세는 싯다르타를 통해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모든 삶은 흘러간다. 마치 강물처럼 어제의 일이 오늘이 되고 오늘은 내일이 된다. 삶을 이해하는 것은 성자만의 몫이 아니다. 우린 저마다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한다. 헤세는 싯다르타를 통해 자신에 규정된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세상은 합일의 과정이며 이는 숨 쉬는 공기로부터 바람, 물을 통해 우리의 삶에 전달된다. 우린 과거 선조들이 숨 쉬었던 공기를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호흡은 후손에게 전달될 것이다. 지식은 변하고 지혜는 알 수 없다. 헤세는 인간의 다양한 삶의 조건을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삶을 강요할 수 없다. 고빈다를 만난 싯다르타는 사랑을 꺼낸다. 세상에 대한 사랑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싯다르타는 그토록 오랜 기간 수행과 고행을 통해 알아왔던 생각과 행동을 고빈다와 함께 나눈다. 싯다르타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