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넘 숲
엘리너 캐턴 지음, 권진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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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다채롭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어떤 삶이든 저마다 의미를 지니며 나름의 가치를 표현한다. 세상에 바뀌었다고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 볼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세상에 맞추어 가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이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한다. 우리는 자유의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진실이다. 하지만 누구도 스스로 선택한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타인 의존적이다. 세상은 생존이라는 본능을 통제한다.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며 벗어나기 어려운 구속이다.

 

버넘 숲은 버려진 땅에 원예작물을 심고 자급자족을 실천하는 20명 남짓의 젊은이들이 활동하는 아웃사이더 공동체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환경보존과 평등, 균등한 기회라는 공동의 목적을 추종한다. 리더이자 설립자인 미라는 자신의 일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5년 남짓한 버넘 숲에 위기감이 감돈다. 불안한 수익구조와 불투명한 미래 때문이다. 셀리는 미라의 뒷일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독단적인 미라의 행동과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제자리를 멤도는 버넘 숲에 실망이 커져갔다. 버넘 숲은 서서히 침몰 중이었다. 미라는 재정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곧 공동체가 해체될 것이며 이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는 두려움에 쌓여있다.

 

미라는 공상가다. 계획을 세우기보다 먼저 행동하는 편이며 돈에 관심 없으면서도 성장에 집착했다. 그녀 역시 문제점을 알기에 무너져가는 버넘 숲을 지키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했다. 미라는 오래전부터 손다이크 코로와이 목장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산사태가 일어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녀는 손다이크를 새로운 기회로 여기고 있었다. 손다이크에 잠입한 미라는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억만장자 르모인이다. 처음 만났지만 르모인은 마치 미라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녀에게 사업을 제안한다, 미라는 믿기지 않는 현실을 불신하지만 한편으론 도움이 필요한 자신에 솔직해져야 했다. 하지만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과 버넘 숲이 혐오했던 자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버넘 숲은 환경과 테크를 중심주제로 펼쳐나가지만 등장인물간의 내면적 갈등이 사건의 맥락을 형성한다. 셀리와 토니를 사이에 둔 미라의 갈등, 타인을 종속적 지배관계로만 인식하는 르모인, 자신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혐오하지만 누구보다 치밀한 셀리. 후기 자본주의라는 신계급사회에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는 토니, 그리고 남편의 죽음에 끝까지 의문을 지우지 못하는 질 다비시, 코로와이엔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감정을 토로하며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사건은 오언다비시의 죽음과 함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빠져든다. 감추려는 자와 폭로하려는 자, 거짓과 위선이 소설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그들은 서서히 자신을 잠식하는 내면의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한 채 방향을 잃어가고 있다.

 

저자는 버넘 숲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 했을까? 주인공들은 대부분 어렸을 적 부모나 주변인들부터 트라우마를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생각이 무르익기 전 이미 세상에 대한 저마다의 관념을 형성한 것이다. 특히 타인을 대하는 르모인의 태도에선 겉과 속이 다른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이 투영된다. 버넘 숲을 지향했던 미라와 셀리 역시 르모인의 돈과 외모에 끌렸음은 물론이다. 르모인은 자신의 부를 활용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저자는 주인공들의 모순된 행동을 통해 자본과 계급이라는 거대한 틀에 우리의 생각을 갇히게 만든다.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문제지만 누구에게도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버넘 숲은 환경보호, 후기자본주의의 폐해, 인간의 군상을 손다이크 코로와이로 옮겨놓았다. 엘리너 캐턴은 버넘 숲을 통해 상황이나 사건에 따라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어떻게 변해갈수 있는지를 디테일하게 표현한다. 다비시의 죽음은 르모인의 치밀함과 미라의 놀라운 동조를 통해 감추어진다. 마약에 취해 자신을 잃어버린 셀리의 무모함은 버넘 숲을 잊게 만든다. 그들은 자본위에 놓인 먹잇감에 불과했고 결국 스스로를 속이며 타락한 자본주의에 물들게 된다. 이는 세상을 향한 조용한 외침이다. 환경보호를 앞세운 시민운동가나 사회운동가들에 대한 고민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아낌없이 속일 수 있는 억만장자들의 본모습이다. 저자는 자본과 계급, 테크와 환경이라는 주제를 통해 동시대의 이슈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루미너리스로 최연소 부커상을 수상한 엘리너 캐턴의 압도적 장편소설, 버넘 숲을 추천한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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